• 목소리를 보았네

청각장애인들의 세계를 문화적·부족적 과점에서 다룬,

청각장애를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책!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난 수천 년간 청각장애인들을 보는 시각은 부정적이었다. 기본적인 인권마저 근대에 이르러서야 개선되었을 정도로 대체로 그들의 삶은 고달팠다. 수천 년간 이어지던 이런 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한 것은 계몽주의가 발달할 즈음인 18세기부터인데, 1800년 파리로 끌려온 ‘아베롱의 야생 소년’을 필두로 그들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서서히 늘어났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귀머거리’ ‘벙어리’라는 청각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 방송이나 책에서 버젓이 사용될 정도로 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또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청각장애를 시각장애보다 덜 심각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청각장애가 생활하는 데 불편한 건 맞지만 심각한 장애라고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날 때부터 듣지 못하는 사람이나 언어를 습득하기 전 갓난아기 때 청력을 잃은 사람의 세계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르다. 정상인은 물론 언어를 습득한 뒤에 청력을 잃은 사람조차 그 세계를 상상하기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들은 질적으로 다른 범주에 속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단 한 번도 소리를 듣지 못했고 청각적인 기억이나 연상 또한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결코 깨어지지 않는 철저한 무음의 침묵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올리버 색스는 우연히 청각장애인들의 세계와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인 수화에 관한 글을 읽고 새로운 탐구에 대한 의욕을 갖게 되었다. 그것이 이 책의 시작이다. ‘귀머거리이자 벙어리’인 채로 수천 년간 살아온 청각장애인들의 세계 그리고 그들의 가족, 학교,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특별한 대학인 갤러데트대학을 접하게 되면서 올리버 색스는 매혹과 경악을 동시에 느낀다. 그리고 그 감정은 언어에 대해서, 말하기와 가르치기의 본질에 대해서, 아동발달에 대해서, 신경계의 발달과 기능에 대해서, 공동체와 세계와 문화의 형성에 대해서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주었다.


이와 동시에 올리버 색스는 또 다른 영역을 인식했는데 그것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영역이 아니라 문화적인 영역이었다. 올리버 색스는 청각장애인들이 완전히 다른 종류의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언어는 인간의 사고력에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풍요로운 공동체와 문화의 매개체 역할도 했다. 바로 ‘수화’다. 그는 수화라는 독특한 언어와 감수성 그리고 자기들만의 문화를 지니고 있는 청각장애인들을 하나의 ‘종족’으로 보는 새로운 시각도 갖게 되었다.


완전한 언어 수화, 그 아름다움을 올리버 색스만의 언어로 보여주다

올리버 색스는 이 책에서 언어를 습득하기 전에 청력을 잃은 아이들이 어떻게 언어를 습득하고 발전해나가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소개한다. 청각장애인들은 수화를 통해 명사와 형용사를 비롯한 각 품사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터득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대화’하는 법을 배운다. 청각장애인들에게는 ‘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언어와 정신을 발진시키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사용하는 수화는 그동안 일종의 팬터마임이나 몸짓 기호 정도로 무시되어 왔다. 이러한 생각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말부터다. 젊은 중세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윌리엄 스토키가 갤러데트대학에 부임하면서 수화가 그림이 아니라, 복잡한 내적 구조를 지닌 복잡한 추상적 기호라고 확신한 것이다. 그는 수화의 구조를 분석하고, 해부하고, 구성 요소들을 찾아낸다. 이후 수화에 대한 연구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발전적으로 이루어진다.


올리버 색스 박사는 이 새로운 언어에 매료되면서 이 언어가 표현력이 매우 뛰어나며 말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특히 어휘, 문법, 구문 등 모든 부문에 걸쳐 ‘공간’이 수화라는 언어에 이용되는 것을 주목한다. 말로 하는 언어에서는 선형적, 순차적, 시간적으로 이용되는 공간이 수화에서는 대개 동시적, 다층적으로 이용된다는 것이다. 올리버 색스는 이러한 공간적 문법, 즉 공간을 언어적으로 사용하는 이 놀라운 현상이 1970년대에 수화 연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말한다. 올리버 색스는 이 밖에도 수화만이 지닌 독특하고 경이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다양한 연구들을 소개하며 수화가 지닌 아름다움에 매혹된다.


갤러데트대학의 학생 시위, 그들도 독특하지만 우리와 동등한 존재다!

마지막으로 올리버 색스 박사는 1988년 3월에 벌어진 갤러데트대학의 학생 시위를 이야기한다. 그는 청각장애인들이 처음으로 힘을 합쳐 그들의 요구사항을 밝히고 관철해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좀더 나은 환경이 그들 앞에 놓이기를 기대한다. 청각장애인들의 학교에 청각장애인 총장을 임명하자는 요구와 함께 시작한 이 시위는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 속에서 결국 성공을 거두었다. 올리버 색스는 이 현장을 직접 둘러보며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름다운 수화로 대화하며 시위하는 광경을 경이롭게 쳐다본다. 아울러 이들의 시위가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과연 모든 것이 바뀐 것일까? 이 ‘의식의 변화’가 영원히 지속될 것인가? 갤러데트의 청각장애인들만이 아니라 청각장애인 사회 전체가 바라는 대로 기회를 얻게 될 것인가? 귀가 들리는 우리들이 그들에게 그런 기회를 허락해줄 것인가? 그들이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우리들 속에서 그들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꾸는 것을 허락해주면서도 그들을 모든 면에서 우리와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일 것인가? 갤러데트의 시위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본문 225쪽)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