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침대에서 내다리를 주웠다

이것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올리버 색스 박사가 실제 경험한 병상 기록이다!


“어느 날, 내 다리가 사라졌다! 침대 밖으로 삐져나온 그것은 내 다리가 아니었다.

낯설고 모형같이 생긴 것이 내 엉덩이뼈와 연결되어 있다. 진짜 내 다리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올리버 색스 박사는 노르웨이의 산을 오르다 발생한 사고로 다리에 부상(한쪽 다리의 근육과 신경이 심하게 손상된)을 입는다. 직업이 의사였지만 한 번도 환자가 되어본 적이 없던 그는 사고 덕분에 온전한 환자가 되어 수술대에 오른다. 그는 수술 후 “다리가 마비되어 ‘나’와 유리되면서 자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대상’으로 변해버린 것” 같았다고 말하며 자신이 겪고 깨달은 병상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의학계의 계관시인’답게 자신이 치료받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올리버 색스 박사는 이야기 사이사이에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놓는다. 부상을 당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신경심리학적 현상들과 존재론적인 현상들, 환자로서의 경험과 나중에 바깥세상으로 돌아갔을 때의 경험, 의사와 환자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의 복잡성과 그들이 특히 둘 다 잘 모르는 문제를 이야기할 때 겪는 대화의 어려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더 많은 환자들에게 적용하는 문제, 연구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 등이다.


이 오지에서 내가 절망을 향해 갔다가 돌아온 것은 영혼의 여행이었다. 의학적으로 내 상태는 암점에 꼼짝없이 고정된 채로 전혀 변하지 않았으니까. 또한 내 주치의들과 나 사이에는 “깊은 문제들”은 언급하지 않기로, 그다지 냉정하지만은 않은 합의가 이루어져 있었다. 이 오지에서, 이 어두운 밤 속에서 나는 과학에 기댈 수 없었다. 이성으로는 풀 수 없는 현실과 맞닥뜨린 나는 예술과 종교에서 위안을 얻으려고 했다.(132쪽 중에서)


이성적으로 사고해야만 하는 의사가, 그리고 그렇게 훈련받아온 사람이 수의학적인 접근 방법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현상들을 경험했을 때 그 기분은 어땠을까. 결과적으로 그가 경험한 증상은 바로 말단부 신경장애였다. 다시 말해 신체이미지장애와 신체자아장애가 올리버 색스 박사를 비롯해 이와 비슷한 증상을 경험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히스테리 환자나 정신분열증 환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올리버 색스 박사는 이후 자신과 같은 증상을 가진 환자들을 연구했다. 손과 발의 감각에 심각한 장애가 있는 이들은 모두 자신의 손과 발이 실종되었거나 아니면 팔과 다리에 붙어 있는 낯선 물체라고 생각하곤 했다. 올리버 색스 박사는 이 증상이 생각과 정서의 ‘억압’ 때문이 아니라 신경단절의 결과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통해 밝혀낸다. 이와 함께 그는 ‘몸’과 ‘영혼’을 구분하는 데카르트의 이분법적인 사고가 의학계에 팽배해 있다는 사실을 비판하며,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경학적인 연구에 이끌린다.


이 책에는 묘한 불일치가 있다. 공식들은 기계적이고 분석적이고 사이버네틱스적이며, 전적으로 ‘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 묘사되어 있다. 반면 환자들의 경험담과 행동을 묘사한 부분에서 기반이 되는 것은 자아다. 손이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은 곧 환자에게 낯설다는 뜻이다. 어떤 행동이 이루어진다면 그 행동을 하는 사람은 환자다. 하지만 어디에나 은연 중에 존재하는 환자들은 공식적으로는 노골적으로 부정당하고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책의 내용에 독특하게 이중적인 사고가 스며들었고, 신경심리학 전반에도 독특하게 이중적인 사고가 스며든 것이다.(252쪽 중에서)


올리버 색스 박사는 이 책을 마무리하며 “지금까지 아주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기계적이고 ‘고전적인’ 모델에서 완전히 개인적이고 자기참조적인 뇌와 정신의 모델로 크게 도약하는 것은 이제 신경학의 몫”이라고 말한다. 이런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징후들이 많다면서, 만약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면 우리 시대의 가장 중대한 혁명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400년 전 갈릴레오 식 사고, 즉 물리학이 부상했을 때만큼이나 혁명적인 변화 말이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