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어남

폭발적으로 눈부시게 깨어나다

《깨어남Awakenings》은 1920년대 전 세계를 휩쓴 대유행병인 ‘수면병(기면성뇌염)’에 걸려 수십 년간 얼어붙어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로 살아온 사람들 이야기다. 올리버 색스는 1960년 중반 뉴욕의 마운트카멜병원에서 제1차 세계대전 직후 기면성뇌염이 유행한 이래 50년 동안 꼼짝없이 그곳에 갇혀 있던 뇌염후증후군 환자를 처음으로 만났다. 당시 색스는 레지던트를 마친 지 1년밖에 안 된 젊은 의사로서 이 질병과 마주했던 것이다. 그는 어떤 형태로 발현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이 질병에 매혹되었고, 환자들의 상태를 관찰하고 병을 연구하며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67년 조지 코치아스가 엘도파L-Dopa를 파킨슨병에 걸린 한 환자군에게 평소보다 1,000배나 많은 용량을 투여해 성공을 이룬다. 이 결과로 파킨슨증 환자들에게는 없던 미래가 다시 펼쳐지게 된 것이다. 색스 역시 이런 연구 결과에 주목하며 환자들을 돌보았지만, 엘도파를 처방하는 데 망설였다. 그가 담당하던 환자는 파킨슨병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심각하고도 이상한 뇌염후증후군성 장애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색스는 조심스럽게 뇌염을 앓은 뒤 입원한 환자군을 대상으로 이중맹검법에 의해 엘도파를 투여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러고는 엘도파의 눈부신 효과를 체험하게 된다. 엘도파의 효과는 결정적이었고, 의미 있었다. 색스는 환자 전원에게 엘도파를 투여하기로 결심했고, 1969년 ‘잠을 깨우는’ 놀라운 신약 엘도파를 자신의 환자들에게 투약하기 시작했다.

엘도파를 처방받은 환자들의 첫 반응은 행복이었고, 눈부신 ‘깨어남’의 축제였다. 그러나 그 효과는 계속되지 않았고, 모든 환자가 고통과 시련을 겪었다. ‘기적의 신약’이라 불린 엘도파는 특정한 부작용을 일으켰으며, 일련의 문제 양상, 즉 돌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반응의 변이, 급속한 전개, 엘도파에 대한 극도로 민감한 반응, 그리고 투약 용량과 그 효과를 정확하게 맞추기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직면했다. 색스 박사는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며 환자들에게 엘도파 이전의 삶과 엘도파 치료를 시작한 뒤에 일어난 변화, 그리고 그 뒤에 일어난 삶의 변화를 담은 이야기, 즉 환자들의 일대기인 감동적인 휴먼스토리 《깨어남》을 썼다.


의학사상 전례가 없던 사건의 유일한 증언이다

엘도파는 수십 년간 ‘잠’들어 있던 환자들을 깨워냈다. 올리버 색스는 이 환자들이 경험한 폭발적이고 눈부신 ‘깨어남’과 ‘되살아남’, 자양과 생기를 얻어 한 사람 한 사람 깊은 잠에서 빠져나오는 그 순간의 기록을 매우 특별한 보고서로 탄생시켰다. 수십 년의 ‘잠’에 뒤이은 ‘깨어남’은 의학사를 통틀어 전례가 없던 사건이고, 색스는 이를 환자의 일생과 약에 대한 반응을 장기간 추적한 병례사 혹은 일대기의 형식으로 남겼으며 이는 유일한 증언이 되었다.

1960년대 후반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격리시설에 수천 명의 뇌염후증후군 환자 그룹이 있었다. 주요국 가운데 뇌염후증후군 환자가 없는 나라는 없었다. 그런데도 그 환자들의 1969년의 극적인 ‘깨어남’에 관해 현존하는 기록은 이 책뿐이다.

올리버 색스의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책이 연구일지나 치료일지를 벗어나 많은 독자에게 울림을 주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는 기술적으로, 수치적으로, 과학적으로만 접근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는 환자의 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 색스의 입장이다. 그래서 이 책 역시 주인공은 환자들이고, 그 환자들의 삶이다. 환자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기 위해 색스는 병례사, 일대기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다.

《깨어남》의 중심축은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상하지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 아니 어쩌면 우리 자신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기록이다. 책 속에는 색스 박사가 만난 다양한 환자들의 사연이 자세히 소개된다. 그들은 이상하고 기이한 병을 앓다가 치유의 과정을 겪거나 아니면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다. 그들이 살아낸 다른 세계, 다른 삶에는 우리의 삶과 다를지언정 공감할 만한 상상력을 일으키는 힘, 타인에 대한 강렬하며 창조적인 각성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


환자들이 보여준 열정과 용기에 감동받다

《깨어남》에서 색스 박사는 특유의 문학적인 글쓰기로 인간 ‘사화산’으로 살아온 환자들이 보여주는 삶에 대한 열정과 용기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사연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환자들은 죽음과 같은 질병 속에서도 각자의 개성과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으며, 깨어나는 순간 그 모든 것을 발현했다. 잃었던 인생을 엘도파로 되찾은 후에는 매순간 기뻐하며 강렬한 행복감으로 삶을 살아냈다.

그러다 엘도파 투약 후 부작용으로 인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고, 고통 속에서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의연하게 그리고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았다. 색스의 환자들이 보여주는 이런 삶의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인생의 역경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본보기가 되어준다.

색스는 자신의 환자들의 ‘사연’, 그들의 삶을 세상에 알린다는 것에 크게 주저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의 환자들이 그를 격려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해줘요. 안 그러면 영영 알려지지 않을 테니까요.”

색스는 그의 환자들과 그들의 삶에 대해 이렿게 술회했다. “몇 사람은 아직까지 살아 있고, 알고 지낸 지도 스물네 해가 되었다. 그러나 죽은 사람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죽은 것이 아니다. 펼쳐진 차트와 편지 속에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와 마주 보고 있다. 내게 그들은 아주 개인적인 방식으로 살아 있다. 그들은 환자였을 뿐만 아니라 교사이자 친구였으며, 그들과 함께한 세월은 내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들의 삶과 존재가 인간에게 닥치는 역경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본보기로 간직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특수한 사건의 증언이며 유일한 증언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우화가 될 수도 있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