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유전자

나만의 유전자 - ‘자기(self)’를 알아야 ‘비자기(non-self)’에 맞서 싸울 수 있다

우리의 몸은 어떻게 질병에 맞서 싸울 수 있나? 외부로부터 세균이 침투했을 때 내 몸이 이에 맞서 싸우려면 무엇보다 나의 세포(자기, self)인지, 아니면 외부로부터의 이물질(비자기, non-self)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이 질문에 답을 제시하는 과학이 바로 면역학(immunology)이다. 이 책의 저자이자 일류 면역학자인 대니얼 데이비스는, 나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를 식별할 수 있게 해주는 유전자(적합유전자 또는 MHC 유전자)를 전면에 내세워 ‘자기와 비자기의 투쟁’으로 면역을 설명한다.


면역학의 과학혁명

면역학이 본격적인 과학혁명의 궤도에 접어든 것은 1940년대 이후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화상 환자를 치료하던 피터 메더워(1960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는 피부이식을 하는 과정에서 장벽에 부딪혔다. 환자 자신의 피부를 환부에 이식할 때는 문제가 없는데, 다른 사람의 피부를 이식할 때는 이식거부 현상이 발생했던 것이다. 수많은 실험을 거쳐 메더워는 환자의 몸이 자신의 조직은 자기(self)로 인식하여 받아들이는 반면, 외부 조직을 비자기(non-self)로 인식하여 거부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메더워와 같은 해에 노벨상을 수상한 프랭크 버넷은 인체가 자기와 비자기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버넷은 ‘항체’에 집중했는데, 다만 항체가 수많은 종류의 세균을 인식하면서도 자기의 세포나 조직을 공격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해야 했다. 버넷은 닐스 예르네(1984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가 제시한 가설을 약간 수정하여 그 유명한 클론선택이론을 제시했다.


클론선택이론은 다윈의 자연선택이론을 세포에 적용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버넷은 인체를 자연생태계와 같은 동적 장소로 보고, 그 속에서 수많은 세포들이 상호작용하고 증식하고 사멸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특정 세균에 맞서는 면역세포가 경쟁에서 승리하여 면역계의 지배적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했다.


적합유전자는 왜 나만의 유전자가 되었나?

적합유전자는 왜 그렇게 다양한 것일까? 단지 이식을 까다롭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그 진정한 역할은 무엇일까? 1973년 피터 도허티와 롤프 징커나겔(1996년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은 적합유전자가 이식의 적합성만이 아니라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면역 반응까지도 조절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나아가 이들은 ‘만약 바이러스를 감지하는 과정이 사람마다 다르다면,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입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천재적인 가설을 제시했다. 달리 말해, 인간이 적합유전자의 다양성을 진화시킴으로써 많은 사람이 동시에 바이러스로부터 피해를 볼 가능성을 차단했다는 것이었다.


사랑, 마음, 임신에도 영향을 미치는 적합유전자

적합유전자는 우리가 매력을 느끼는 상대에도 영향을 미친다. 급진적인 연구들은 DNA 분석을 통해 자녀에게 양질의 유전자를 물려주고 오르가즘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이상적 배우자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직 미지의 영역인 뇌에서도 면역계 단백질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특히 우리가 병에 걸렸을 때 슬픈 느낌이 드는 것은 면역계와 신경계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추정도 제기되고 있다. 임신의 성공 여부에도 적합유전자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적합유전자는 이처럼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의 생로병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적합유전자의 이러한 다기능성은 삶의 다양한 측면들이 궁극적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이 질병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시킨 면역계가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가 된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