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사를 바꾼 16가지 꽃 이야기

[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꽃을 고르듯 시를 모으다


하지(夏至)가 코앞입니다. 동지 (冬至)와 비교하면 일출과 일몰이 각각 2시간 이상 빠르고 늦은, 덕택에 해가 비추는 시간이 많을뿐더러 당연히 날씨까지 온화해서 야외나들이에 안성맞춤인 시기이지요. 코로나19가 종식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백신 접종률이 나날이 높아지는 만큼 예전의 활기찬 모습을 되찾는 것도 머지않은 기분입니다. 뉴스를 보면 산으로 들로 유원지를 찾는 인파가 갈수록 많아지잖아요?


『세계사를 바꾼 16가지 꽃 이야기 (Blooming Flowers: A Seasonal History of Plants and People)』는 인터넷 서점 서핑 중 근교의 산행길에서 마주쳤던 꽃들을 떠올리며 구입한 책입니다. 클리셰 (cliché)한 제목이지만 그래도 솔깃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아마존 식물 분야 베스트셀러라는 광고까지 덧붙여 있으니 구독하지 않을 재간이 없더군요. 일독 후에는? 역시 좀 과장된 우리말 제목이라 여겨졌습니다. 원제의 의미를 최대한 살려서 「16가지 계절별 꽃들에 얽힌 인간사」 정도가 어땠을까 싶더군요.


저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인 캐시어 바디 (Kasia Boddy)입니다. 문학과 문화사에 정통한 영문학자답게 책 전반에 세계 각국의 문학·역사·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미술·영화 등을 꽃과 관련지어 다양·방대하게 풀어놓았더군요. 다만 구미인 (歐美人)이 아니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인지 흥미·감흥이 반감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일진대 기초지식이 탄탄하지 않으니…(ㅠ·ㅜ).


책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을 대표하는 각각 4가지의 꽃들 (데이지·수선화·백합·카네이션·장미·연꽃·목화·해바라기·샤프란·국화·메리골드·양귀비·제비꽃·제라늄·스노드롭·아몬드)과 연관된 내용이 가득합니다. 그야말로 깨알 정보 꾸러미인데, 본문에 등장하는 표현 - “각기 다른 내용을 모아 편집한 책은 다양한 꽃을 합친 화환이나 꽃다발로 비유했다. 선집 (選集; anthology)이라는 단어는 원래 꽃 (antho)을 모은다 (legein)는 의미였고, 특별히 내용을 세심하게 골랐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 에서는 지은이의 자신감까지 물씬합니다. 하지만 식물을 마주할 때면 늘 본초 (本草)로 접근하기 마련인 한의사인지라, 책 자체를 흠뻑 즐기지는 못하겠더군요. 누가 봐도 흠잡을 데 없는 양서 (良書)임을 인정하면서도….


얼마 전 제주 사려니 숲에서 천남성 (天南星)과 큰천남성 (-天南星)을 마주쳤을 때의 전율이 생생합니다. {부끄럽게도 직관 (直觀)이 처음이라 ‘모야모’라는 앱 (App.)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 비늘줄기며, 잎이며, 압권인 꽃까지 그 모습이 정말 엄청나더군요. (가을에 열리는 붉은 색의 열매 또한 대단합니다). 외양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 문자 그대로 체형기상 (體形氣像)과 용모사기 (容貌詞氣)에서 “와∼, 이놈 물건이네. 겉모양만으로도 이렇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놈은 도대체 어떤 성질재간 (性質材幹)을 지녔을까” 상상하게 만들더라고요.


우리 한의학, 특히 본초 공부란 그저 책에 수록된 박제된 지식·정보만 주워섬기는 게 아닙니다. 대부분 온라인 수업이었던 1학기도 마무리 단계이니, 학부생들은 들로 산으로 놀러 다니며 공부하는 일거양득을 꿈꾸시길….


출처 : 민족의학신문 2021-06-18

https://www.mjmedi.com/news/articleView.html?idxno=52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