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타버스 사피엔스

오늘날 가속화되는 다섯 가지 트렌드가 있다. 탈세계화와 신냉전, 기후 위기와 정체성 위기,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두드러진 탈현실화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21세기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칠 흐름은 단연 탈현실화다. 그리고 이러한 탈현실화의 한가운데 바로 메타버스가 있다.


메타버스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비국지적 경험이 가능하며 여러 개의 몸을 지닐 수 있는 미래 인터넷, 체화된 인터넷, 디지털 현실 플랫폼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주할 새로운 현실은 더 이상 아날로그 현실이 아니다. 그런데 아날로그 동물인 우리 인간이 디지털 현실을 체험하는 것이 가능할까? 뇌과학적으로, 우리 뇌는 ‘현실’을 끊임없이 재구성해 받아들이기에 메타버스에서 살아가는 것은 생물학적인 인간에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Z 세대의 뇌는 이미 부분적으로 자신들의 고향을 디지털 현실이라고 여기며, 놀이, 사회활동, 소비를 디지털 현실에서 이어가고 있다. 요컨대, 21세기 대항해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런데 메타버스라는 이 디지털 현실이 인류 역사의 방향을 완전히 뒤바꾸고 있다. 지난 1만 년의 역사는 서로 다른 문화와 기술이 한데 얽히며 여러 ‘현실들’이 통합되어 가는 과정이었고 그 통합의 정점에 인터넷이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모바일 인터넷이 진화한 인터넷 3.0 또는 몸을 지닌 인터넷인 메타버스가 ‘현실’을 다시 여러 개로 갈라놓고 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가 우리의 두 번째 현실이라면,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도대체 현실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왜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할까?’ ‘탈현실화된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의 김대식 교수가 뇌 과학, 컴퓨터과학, 인류학을 통해 이 질문들에 답한다.


Z 세대의 욕망이 모여드는  21세기의 유토피아/디스토피아,

메타버스가 던지는 깊은 철학적 물음들


탈현실화된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저자에 따르면, 서로 다른 여러 개의 현실로 갈라진 다중 현실의 모습을 띨 것이다. 이를 방증하는 한 가지 강력한 사례가 필터 버블이다. 필터 버블이란 정보가 이용자에게 선별적으로 제공됨에 따라 이용자가 스스로 선호하는 정보 안에 갇히는 현상으로, 2021년 2월 과학 전문지는 미국 사회가 이미 사이버공간에서 정치적으로 2개 이상의 필터 버블로 갈라졌다는 연구를 소개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정치적 신념이라는 한 가지 기준에 따른 분열일 뿐으로, 이용자들이 지닌 취향과 신념의 수는 여럿이고 그에 따라 인터넷 공간에서 현실이 다시 여러 개로 쪼개지는 일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세대 차원에서도 공유된 현실은 붕괴하고 있다. 인간 수명이 길어지고 과학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2022년을 기준으로 한국과 대부분의 OECD 국가들에는 4개의 서로 다른 세대들이 같은 사회에서 공존하고 있다. 동일한 물리적 공간 안에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1차적 현실’을 서로 달리 받아들인다. 특히 무선 인터넷을 편리하기보다는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Z 세대는 더 이상 아날로그 친화적이지 않은데, 그들의 뇌가 아날로그 현실보다 디지털 현실을 편안하다고 느끼며 ‘고향’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점점 더 많은 Z 세대 그리고 그 이후의 알파 세대가 인터넷 공간으로 도피하거나 이주할 것이라는 점을 방증한다.


현실은 정말 여러 개로 끊임없이 갈라지고 쪼개질까? Z 세대나 알파 세대 이후의 세대는 디지털 공간으로 이주하며, 아날로그 현실을 부차적인 공간으로 여기게 될까? 아날로그 현실은 영화 〈월-E〉나 〈레디 플레이어 원〉에 등장하는 쓰레기뿐인 지구처럼 결국 폐허로 남게 될까? 그렇다면 아날로그 현실의 가치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 던지는 이러한 인문학적 물음들을 따라가다 보면, 인류 역사의 마지막 장일지도 모르는 새로운 장 앞에 서게 된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