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처음에는 여성 과학자의 성공적인 커리어와 뛰어난 글솜씨에 끌려 책을 잡았지만 결국은 한 권의 책 안에 담긴 진솔한 자기 성찰과 이웃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공감하고 또 위로받았다고. 과학자를 꿈꾸던 소녀가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닥친 사회의 높은 벽을 온몸으로 겪어내면서도 자연과 과학을 향한 사랑과 동료에 대한 믿음으로 꿋꿋하게 연구자의 길을 걸어 한 명의 과학자가 되는 이야기는 한 그루 나무의 성장을 지켜보듯 조마조마하면서도 매 순간 즐겁고 경이롭다.


과학은 차갑고 딱딱한 무기물이 아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과학, 사랑을 담은 ‘랩걸’만의 연구


저자 호프 자런은 버클리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후 조지아 공과대학과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부교수로 재직하고, 현재는 하와이 대학교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2005년에는 가장 뛰어난 지구물리학자에게 수여하는 제임스 매클웨인 메달을 받았으며 풀브라이트 상을 세 번 수상한 유일한 여성 과학자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고 있는, 더없이 안정된 경력의 그녀에게도 글을 쓰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또다시 해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흔히들 생각하는 ‘알파걸’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한 번의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백 번 실패하는 모습, 기다림과 끈기로 버티는 평범한 연구실의 24시간을 세밀화처럼 그려냈다. 여성이기에 겪는 편견과 장벽은 또 어떤가. 전문성과 객관성, 합리성으로 대표되는 과학의 세계에서조차 성별을 이유로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노력의 가치가 폄하되는 장면에 이르면 독자의 마음 또한 타들어 간다. 그러나 저자가 그리는 것은 그 속에서 맛보는 달콤한 환희이다.


나무가 가르쳐주는 삶의 과학,

숲이 건네는 연대의 이야기를 듣다


저자가 이토록 실험실에서 열을 올리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식물을 향한 무한한 사랑이다. 처음부터 식물 연구를 하고 싶었지만, 식물 분야야말로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두지 않는 분야가 아니던가. 필요한 연구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녀는 실험실에서 전쟁 같은 하루를 살아내는 와중에 식물을 돌본다. 저자는 자기 몸을 해칠 정도로 무섭게 연구에 몰두한다. 이런 그녀의 열정은 글을 읽는 것만으로 숨을 가쁘게 한다.


저자 호프 자런은 이렇게 말한다. ‘일단 싹을 틔운 식물은 헤매지 않는다’고. 싹을 틔우기까지가 식물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방황이다. 그다음부터는 시들어 꺾이는 순간까지 꾸준히 나아가는 일뿐이다. 물줄기를 향해 적극적으로 뿌리를 뻗고, 태양을 향해 이파리를 흔들며, 몸을 단단히 해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킨다. 때로는 병충해를 앓고 거센 바람에 몸을 다치면서도 상처를 고스란히 나이테에 간직한 채 식물은 성장을 거듭한다. 숲의 특성상 힘세고 높이 자란 나무가 혜택을 받겠지만, 때로는 호되게 병충해를 앓은 나무가 다른 나무에 병을 이겨낼 방법을 전하기도 하고, 근처의 어린나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물을 모아주기도 한다. 호프 자런은 과학자 특유의 시선으로 씨앗이 한 그루의 성목이 되는 과정은 물론, 나무들이 모여 울창한 숲을 이룰 수 있는 비밀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한다. 그것은 사실 비밀이라기보다는 눈 밝은 누구나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 알 수 있는 어떤 신비에 가깝다.


호프 자런은 자신의 이야기, 자신이 아는 것을 전하는 데에 집중한다. 저마다의 생존 방식에 대해, 떡갈나무에게는 떡갈나무의 방법이 있고, 칡과 쇠뜨기에게는 그들만의 삶이 있다고 다정다감하고도 발랄하게 이야기한다. 다른 이의 방법이 아닌 자신의 방법으로 살고, 숲을 이루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하는 작가의 목소리는 무감각하게 자연을 소비하고 파괴하며 잊었던 생명성을 일깨운다.


호프 자런은 자신의 아픈 이야기마저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녀를 괴롭혀온 조울증과, 출산으로 인해 자신의 실험실에서 쫓겨났을 때의 절망,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으리라는 불안. 그런 그녀를 따뜻하게 보듬고 다시 실험실로 향하게 하는 것은 자신이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과 가족 및 동료와의 신뢰, 아이와의 조심스러운 교감이었다.


저자 호프 자런은 전문 분야에서 여성이 경력을 이어갈 때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유리천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결코 과장하지 않은 목소리로 자신이 겪은 일과 여성 과학자로서 견뎌야 하는 시선에 대해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그녀는 여러 칼럼과 인터뷰를 통해 여성이 겪어야 하는 편견과 차별의 벽을 허무는 것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으며, 누군가의 징검다리가 되는 것, 다른 나무를 돕는 든든한 큰 나무가 되기를 기꺼이 자처하고 있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