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자와 달리기 - 중년의 철학자가 달리면서 깨달은 인생의 지혜와 성찰

육체는 허물어져 가더라도 삶은 아직 살 만한 가치가 있다

중년의 철학자가 달리면서 깨달은 인생의 지혜와 성찰


저자 마크 롤랜즈는 달리는 철학자이다. 그는 여기저기 고장 난 중년의 육체를 이끌고 42.195km의 마라톤을 달리기 시작한다. 그동안 거의 전 생애에 거쳐 달리고 달렸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가장 처음에는 거대한 몸집의 래브라도 리트리버인 부츠와 함께 딱히 특별한 이유도 없이 뛰었다. 아이나 개는 꼭 이유가 있어야 뛰는 게 아니니까. 그다음 어른이 된 후에는 혈기 넘치는 늑대 형제 브레닌으로부터 집안의 모든 물건이 깨부수어지는 일을 막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독일 셰퍼드와 말라뮤트의 잡종인 니나와, 브레닌의 딸인 테스까지 이 달리기 무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 말이 없는 친구들과 함께 산으로, 바닷가로, 정글로 달리며 달리기의 고유한 리듬과 심장박동을 느낀다. 그리고 달리고 또 달려 생각이 마침내 사유로 전환되는 곳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 발견했다. 그는 이 모든 깨달음과 발견을 사르트르, 하이데거, 플라톤 같은 철학자들의 사유에 대입하여 사색하고 성찰한다.


이제 그에게 달리기란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자, 허물어져 가는 육신을 진정한 자유와 환희로 안내하는 방법이다. 저자는 달려야 할 운명을 가진 엉덩이 큰 영장류의 불행에 대해 토로하면서도 달리기의 목적은 그저 달리기 위함에 있음을 발견한다. 달리기에서 발견하는 자유 역시 원하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종류의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종류의 자유로부터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지 깨달을 때 오는 자유라고 설명한다. 바로 그 순간 어떠한 이유도 자신을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찾아오는 환희를 만끽한다.


마크 롤랜즈는 유려한 문체를 통해 외부에 목적이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하는 후보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풀어낸다. 목적을 따라 논리적 결론을 내리다 보면 계속해서 삶만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삶의 진짜 가치, 즉 삶의 의미의 후보가 될 수 있는 것을 찾고자 한다면 목적이 없는 것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달리기가 자극하는 매력적인 명상이 진솔하고도 열정적이며 위트 넘치는 그의 회고록에 실려 펼쳐진다. 저자 특유의 유쾌하고 감각적인 문장을 통해 달리며 느끼는 자유가 허물어져 가는 육신에 환희의 세계를 선물하는 과정을 함께해 보자. 이 환희의 세계는 중년의 철학자가 달리며 깨달은 삶과 죽음, 나이 듦과 자유가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성찰의 세계이다.


나는 내가 왜 달리는지 안다. 바로 중년의 위기 때문이다


2년만 있으면 50이 되는 중년의 철학자 마크 롤랜즈는 이리저리 고장 난 육체를 이끌고, 훈련도 거의 하지 못해 찜찜한 마음을 안은 채 마이애미 마라톤의 스타트라인에 섰다. 별안간 신발을 신을 수도 없을 정도로 엄지발가락이 퉁퉁 붓고, 내리막길을 천천히 걸어도 아킬레스건에 통증이 느껴지거나, 재활했음에도 종아리 근육 파열이 재차 찾아오는 일도 그를 막지는 못했다.


바로 그 순간, 인생의 의미 있는 달리기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고향 웨일스에서 종일 달리던 소년, 사랑하는 늑대 브레닌과 함께 프랑스의 해변과 아일랜드의 산을 누비던 청년, 그리고 이제는 플로리다의 늪지를 개 휴고와 달리는 중년의 자신. 철학자 마크 롤랜즈는 거의 전 생애를 달렸다. 그에게 있어 달리기와 철학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수많은 달리기의 기억을 더듬고 그 속에서 여러 철학자의 사유를 찾으며 저자는 묻는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보는 질문인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고. 달리 말하면, ‘삶에서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또는 ‘삶에서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이며, 살아가는 방식이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을 반영한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볼 수도 있다.


삶도 달리기도 놀이가 될 때 가장 가치 있다


우리는 어떤 측면에서 괴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 바로 쓸모를 효용과 가치에만 두는 공리주의 시대이다. 돈은 필요한 물건을 사는 수단이다. 약은 건강을 되찾아 주는 수단이므로 도구적 가치가 있다. 달리기 역시 건강해지고 싶다든가 여가 활동으로 한다는 등의 도구적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도구적 가치‘만’ 가진다는 주장은 틀렸다. 도구적 가치는 달리기의 주된 가치도 아닐뿐더러 그 주장은 사실도 아니다.


달리기에서는 삶의 본질적인 가치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본질적 가치란 행복처럼 가치 자체가 목적인 가치를 말한다. 달리다 보면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새롭게 찾은 앎이라기보다는 되찾은 앎에 가깝다. 어렸을 때 체화했지만 어른이 되어가며 잊어버린 이 앎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힌트는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은 가장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있다.


열셋부터 마흔여덟이 될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린 저자는 마침내 달리기가 놀이가 될 때, 그저 순수하게 달리기 위해 달릴 때 가장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와 개는 이유 없이 달린다. 그리고 놀기 위해 논다. 삶에서 본질적으로 가치 있고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만드는 것은 일이 아닌 놀이이다. 그들은 애쓰지 않고도 본질적 가치를 직관적으로 안다. 환희는 본질적 삶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기에 이런 열정과 함께 환희가 온다. 도구적 가치의 지배를 받는 삶은 무엇을 하건 그 목적이 다른 것에 있기에 늘 쫓아다니기 바쁜 삶이다. 현세에 의미가 있다면 ‘쫓아가지 말고 그저 달려라’ 이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반문한다.


42.195km, 삶과 죽음, 나이 듦과 자유를 깨닫는 거리


살아가다 보면 큰 소리로 나를 덮치고 멈추게 하려는 수많은 이유를 알게 된다. 삶이 지쳐갈수록 그 이유들은 더 많고 거세진다. 하지만 달리기를 통해 느끼는 자유는 그 이유가 아무리 거칠게 으르렁대도 나를 강제할 수 없음을 알게 한다. 바로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노년의 자유이다. 나이가 들면 삶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향하고 있는 목적지가 아니라 외부의 환희가 내부로 들어와 우리를 따뜻하게 하는 그러한 순간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즉 결과가 아닌 활동에, 목표가 아닌 행동 자체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순간에 가장 근본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환희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것이며, 한 사람의 삶에서 자명해지는 본질적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몰입과 집중, 혹은 심지어 고통도 환희의 한 형태일 수 있다. 그 형태가 무엇이든 환희는 달리기의 심장박동에서 가장 뚜렷하게 경험된다. 달리기가 이 중년의 철학자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토록 중요한 이유이다. 달리기는 마치 기억이 날 듯 말 듯 애태우다 사라지는 꿈처럼 한때 알았지만 기억할 수 없었던 진리를 속삭인다. 자유와 환희는 삶에서 본질적 가치를 느낄 때 찾아오는 가장 확실한 증상이며, 목적과 의미가 멈춘 곳에만 존재하는 본질적인 가치를 느끼는 것이다. 이 독창적이고도 감동적인 책 속에 녹아 있는 죽음, 중년과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을 통해 정점에 오르는 순간부터 언제나 내리막길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에 달리기가 가져다줄 최고의 선물을 만나 보기를 바란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