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RF 동향] 인류의 가장 강력한 마법의 탄환 '항생제'

인류의 가장 강력한 마법의 탄환 '항생제'



항생제가 널리 보급되기 이전에는 황색포도상구균에 의한 패혈증, 특히 균혈증에 의한 사망률이 80%를 넘었습니다. 또한 50세 이상 환자의 경우는 단지 2%만이 생존할 수 있었죠. 항생물질을 발견하고 항생제 개발이 활성화된 것은 20세기 중반부터였습니다. 그 결과 이제 의사들은 다양한 감염성 질환을 여러 항생제들 중 적절한 것을 선택하여 치료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오히려 항생제 오남용이 문제가 되고 있죠. 이번 글에서는 알렉산더 플레밍의 penicillin과 셀먼 왁스만의 streptomycin의 개발과정을 살펴보고, 이 항생제들이 2차 세계대전에서 어떻게 활약했는지, 그리고 항생제의 위기와 발전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플레밍의 페니실린 개발


알렉산더 플레밍은 영국의 세균학자입니다. 1922년 감기에 걸린 그는 자신의 콧물을 채취하여 배양하면서 관찰했습니다. 당연히 배양접시에는 세균이 가득했는데 우연히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게 됩니다. 생물학자로서 샘플이 오염되었다면 당장 시료를 폐기처분해야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배양접시를 살펴보니 눈물이 떨어졌던 부분이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그는 눈물에 들어있을 효소를 그리스어로 녹인다는 뜻의 ‘lyso’와 효소를 의미하는 ‘enzyme’를 합쳐 ‘lysozyme(라이소자임)’ 이라 불렀습니다. 라이소자임은 동식물 등의 다양한 유기체에 존재하는 물질입니다. 플레밍은 의도하지 않은 대발견에 기뻐했지만 바로 실용화하지는 못했습니다. 라이소자임은 인간에게 무해한 박테리아는 잘 죽었지만 질병을 야기하는 거의 대부분의 박테리아에는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그는 라이소자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연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1928년 런던의 세인트메리 의과대학에서 포도상구균 계통의 화농균 실험을 하던 플레밍은 스코틀랜드로 휴가를 떠났습니다. 휴가에서 돌아온 그는 큰 실수를 하였음을 깨달았습니다. 화농균을 배양하고 있던 연구실의 창문을 닫지 않은 것이었죠. 마침 포도상구균 배양접시의 뚜껑이 약간 열려있었고 공기 중의 곰팡이균이 그곳에 침입하였습니다.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 곰팡이는 아래층 연구실에서 날아왔을 가능성이 있다는군요. 그 결과 푸른 곰팡이와 접촉한 세균은 모두 죽고, 곰팡이와 멀리 떨어져 있던 세균은 생존함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6년 전 라이소자임을 연구했던 기억을 떠올려 곰팡이연구에 적용했습니다. 문제의 곰팡이를 재배양하여 1천 분의 1까지 희석했지만 포도상구균의 발육을 억제하는 현상이 그대로 재현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인간의 백혈구에는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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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플레밍의 연구


플레밍은 이런 항균작용이 곰팡이 자체가 아니라 곰팡이가 생산해내는 어떠한 물질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penicillium(페니실리움 속)에 속하는 이 물질을 ‘penicillin’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수많은 실험을 통해 650여 종의 페니실리움 속의 곰팡이들은 페니실린을 만들지 못하고, 처음에 실험했던 Penicillium notatum을 포함한 몇 종만이 페니실린을 생산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페니실린을 만드는 종을 알아낸 후에는 항균작용을 나타내는 세균을 알아냈습니다. 페니실린은 수 세기 동안 인간을 괴롭혀왔던 폐렴균, 수막염균, 디프테리아균, 탄저균 등에 항균작용을 나타내었습니다. 페니실린 이전의 항생물질들은 세균의 성장과 발육을 억제함과 동시에 인간의 세포에도 치명적인 손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페니실린은 이러한 문제점이 없었습니다. 페니실린은 동물과 박테리아 세포를 정확히 구별합니다. 그리고 박테리아를 직접 괴사시키지는 않지만 세포벽 생성을 억제하여 번식을 막습니다. 이 훌륭한 물질이 실용화되는데 장벽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농축에 실패했다는 점입니다. 후에 12년 후인 1940년 옥스퍼드 대학의 병리학자와 생화학자인 플로리와 체인이 농축에 성공하고 생쥐를 이용한 임상실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 페니실린은 비로소 의약품이 되었습니다.



왁스만의 스트렙토마이신 개발


셀먼 왁스만은 유태인 토양미생물학자입니다. 그는 각각의 배지에 여러 가지 균주를 배양하면서 토양을 배지에 첨가시켰을 때 세균 증식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연구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미생물이 증식하며 오염을 유발하기 때문에 결과 예측도 어렵고 변수가 많으며 고강도의 노동력과 지루함이 함께합니다.


왁스먼이 관찰했던 세균은 10,000만여 종인데 이것은 배양배지를 적어도 1만 개 이상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는 흙 속의 동물과 식물이 부패하여 사라지는 것은 토양미생물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에 그는 토양에 서식하는 미생물 중 병원성 미생물과 싸울 수 있는 종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플레밍의 페니실린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페니실린의 놀라운 능력에 자극을 받은 그는 다른 미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유용한 미생물을 토양으로부터 찾는 연구에 더욱 매진하였고, 일생을 바쳤습니다. 왁스만은 1만여 종 중 항균 가능성이 있는 종수를 줄이고 줄여 13가지 세균을 선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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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렙토마이신의 구조

사진출처: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1943년 병든 닭의 목에서 배양된 특이한 곰팡이가 결핵균의 생장을 억제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streptomyces griceus, 즉 방선균의 일종이었습니다. 스트렙토마이신이라 명명된 이것은 페니실린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장티푸스와 결핵균 그리고 다른 수많은 병원균에도 효과를 보입니다. 인간을 결핵을부터 구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스트렙토마이신은 현재 결핵의 1차 약제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장내 구균성 심내막염, 페스트, 야토병, 브루셀라 감염증 등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항생제


폐렴과 같은 감염 질환의 해결책이었던 페니실린이 존재감을 드러냈던 곳은 바로 전쟁터였습니다. 페니실린을 발명한 플레밍은 사실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입니다. 군의관으로 참전한 그는 프랑스 전선의 야전병원에서 복무하면서 수많은 부상병을 치료했습니다. 그곳에서 부상으로 인한 감염으로 목숨을 잃는 자신과 같은 세대의 청년들을 숱하게 목격했죠. 습하고 위생적이지 못한 참호 속에서 병사들은 폐렴을 비롯한 각종 감염 질환에 시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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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중 나온 페니실린 감사 포스터


종전 후에 그는 그 모습을 간직한 채로 세인트메리 병원에 돌아와 세균과 면역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그 결과, 세계 2차대전에서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총기를 비롯한 각종 무기에 의한 부상이 넘쳐나는 전쟁터에서는 상처가 그리 심하지 않더라도 덧나면서 상태가 악화되어 전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외부의 세균을 막는 1차 방어선이 피부인데, 이것이 손상되면 체내로 세균이 들어가 감염을 일으켜 패혈증과 같은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패혈증을 페니실린이 막아주었습니다. 왁스만의 스트렙토마이신도 2차 세계대전 말기부터 미국의 군부대에서 치료제로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처음 치료를 시도한 두 명의 환자는 치료에 실패하지만 세 번째 환자부터는 성공적 결과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세 번째 환자는 훗날에 미국 상원 의장이며 대권에 세 번이나 도전했을 정도로 미국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Robert Dole입니다. 이렇게 전쟁에서 살상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방식으로 지대한 공헌을 한 항생제를 두고 사람들을 마법의 탄환(magic bullet)이라 부르게 됩니다.



페니실린의 위기와 발전


페니실린은 2차 세계대전 중 많은 생명을 구했지만 여기저기서 마법의 탄환을 무분별하게 남용하였습니다. 그 결과 8년 뒤인 1950년경 포도알균의 약 40%가 페니실린에 내성을 가지게 되었으며, 다시 10년 뒤인 1960년경엔 내성률이 80%에 육박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더 이상 마법의 탄환으로서의 효과는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죠.


세균과 마찬가지로 인간 또한 적응과 진화의 동물이기에 1959년 메티실린(meticillin)을 개발했습니다. 그러나 2년이 채 가기도 전에 메티실린에 내성을 가지는 포도알구균이 발견되었습니다. 플레밍은 1945년 뉴욕타임스에서 페니실린의 과도한 사용은 황색포도알균에서 내성을 가지는 돌연변이를 유도하고, 그 내성균주가 감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하지만 항생제의 오남용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새로운 항생제와 이에 내성을 가지려는 미생물의 경쟁은 끝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1970~1980년경의 항생제의 황금기를 지난 현재, 새로운 항생제의 개발 속도는 내성세균의 출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내성 미생물에 의한 중증 감염질환이 21세기 의료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이유이죠. 또다시 새로운 항생제가 필요하고 인간은 그 능력을 가진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항생제가 상용화되기까지 평균적으로 5~10년이 소요되며 수억 달러가 소모됩니다. 개발과 상용화에 성공하여도 내성 세균은 순식간에 나타날 것입니다. 즉 항생제의 수명이 개발 시간보다 짧은 것이죠.


그럼에도 항생제가 인류에게 꼭 필요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사실입니다. 화학구조를 재구성하여 새로운 항생물질을 찾는 방법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다시 고전적인 방법으로 돌아가 플레밍과 왁스만처럼 자연의 동식물로부터 새로운 계열의 항생물질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의 학자들은 아예 새로운 방향의 치료법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기법과 같은 분자의학 분야가 바로 그것입니다. 질병의 초기 단계에서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찾아 진단하고, 그 유전자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억제하여 치료하는 방법입니다.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기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유전자가 mRNA로 전사되는 단계를 조절하는 방법.

둘째, mRNA가 단백질로 번역되는 과정을 조절하는 방법.

셋째, 최종 형성된 단백질의 기능을 조절하는 방법.


생명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유전자가 mRNA로 전사되는 과정을 조절하는 유전자와 단백질이 하루하루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 연구의 산물이 인류를 질병에서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해방시켜 주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을 마다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에 사람들은 위로를 느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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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log.naver.com/basic_science/222040215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