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 8. 항바이러스제 개발의 어려움과 한계: 코로나 ‘치료제’는 왜 게임 체인저가 되기 어려울까

항바이러스제 개발의 어려움과 한계


바이러스가 만드는 효소 단백질에 작용

자연 물질엔 없어 만들어 써야 하지만

부작용 동반 문제로 개발 난이도 높아


이전 칼럼에서는 오미크론 감염 증상과 초기 대처법을 알아보았다. 이번 칼럼에서는 진짜 치료제라 할 수 있는 항바이러스제를 알아볼 것이다. 오미크론 감염 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진통제, 해열제 등은 대증 치료제다. 이들은 과잉 면역반응에 의한 증상을 완화해 주지만, 그 원인인 바이러스를 제거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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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러스의 이중 생활



바이러스는 생물일까 무생물일까? 이 질문은 물리학에서 빛의 이중성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생물학자들의 단골 싸움거리였다. 숙주 세포에서 배출되어 외부에 입자로 존재할 때는 무생물, 숙주 세포를 감염시켜 내부에서 증식할 때는 생물의 특성을 가진다. 이처럼 바이러스는 감염, 증식, 배출이 반복되는 생활사에서 무생물과 생물의 상태를 오가는 이중성을 가진다. 이는 바이러스의 감염, 전파, 면역, 방역, 치료 등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지식이다.


코로나바이러스라고 하면 삐죽삐죽한 돌기가 돋아난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험악한 모습과 달리 입자는 바이러스 생활사에서 가장 취약한 상태다. 세포 외부에 존재하는 바이러스 입자는 유전자를 잘 포장해놓은 상자에 불과하다. 생명의 징후가 전혀 없는 무생물이다. 따라서 어떤 물체 표면에서 ‘코로나의 생존력’이라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무생물 입자는 증식은 고사하고, 스파이크 단백질이 망가져도 고칠 능력도 없다. 숙주 세포에서 배출된 순간부터 입자의 감염 능력은 감소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외부에 존재하는 바이러스 입자에는 ‘생존력’이 아닌 ‘감염력’이란 용어를 사용해야 적확하다.


입자의 감염력이 유지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수분이다. 스파이크 단백질은 물 분자에 둘러싸여 있을 때만 형태와 기능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입자가 비말에 포함되어 인체 외부로 나가면 주변 수분이 증발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말라비틀어지면 다시는 감염력을 회복하지 못한다. 계란 부침의 온도가 낮아진다고 흰자가 다시 투명해지지 않는 것처럼, 스파이크 단백질도 일단 변성되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런 바이러스 입자의 취약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수입한 옷가지에 묻은 바이러스 때문에 오미크론 유행이 시작되었다는 황당한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손 소독제가 이런 원리로 작용한다. 알코올은 입자 주변의 수분을 급격히 증발시킨다. 100% 알코올은 단백질 틈 사이로 들어가기도 전에 증발하기 때문에 70%로 희석해 사용한다. 그 결과 바이러스 외막과 스파이크 단백질이 변성되어 감염력이 제거되는 것이다. 즉 빨리 말려 소독하는 원리다. 비누는 계면 활성작용으로 아예 외막을 녹여서 분해해 버린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해결책은 바이러스 입자가 인체 외부에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인체 내부를 소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팬데믹 초기에 표백제를 먹으면 코로나를 죽인다는 극단적 주장이 있었다. 바이러스가 없어질 정도로 표백제를 삼키면 사람이라고 멀쩡할 리 없다. 치료의 목적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지 바이러스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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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현미경으로 본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착색 사진. 녹색이 세포 침투 도구인 돌기 단백질이다.

이미지 출처: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NIAID)



까다로운 항바이러스제 개발 조건


치료제의 기본은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다. 병원체를 아무리 잘 제거해도 구분을 못하면 독약이다. 이런 기본이 튼튼한 것이 항생제다. 세균만 쏙쏙 골라 죽이는 항생제는 인류의 평균 수명을 삼십 년 정도 증가시킨 명약이다. 이 중 최초로 발견된 페니실린은 세균의 세포벽 형성을 방해한다. 세포벽이 없는 세균은 삼투압으로 터져 죽는다. 하지만 사람 세포는 세포벽이 없어 페니실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처럼 세균에는 항생제의 표적이 되는 사람 세포와 차이가 나는 특성이 많이 존재한다.


항생제란 말 그대로 생명을 방해하는 약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미 죽어 있는 바이러스 입자를 또 죽일 수는 없다. 또한 항생제는 세균과 세포는 구분하지만 감염 세포와 정상 세포를 구분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항생제를 아무리 많이 투여해도 바이러스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코로나 감염 시 항생제가 가끔 사용되는 것은 이차성 세균 감염 때문이지 바이러스 제거를 위해서가 아니다. 따라서 코로나에 대한 항생제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약물은 항바이러스제라고 하며, 가장 중요한 기본은 감염 세포와 정상 세포의 구분이다. 무생물인 바이러스 입자는 숙주 세포에 감염된 뒤 유전자가 활성화되어야 생명 활동을 시작한다. 이때 감염 세포의 차이점이 비로소 드러난다. 문제는 바이러스가 만드는 소량의 단백질만이 유일한 차이점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항바이러스제의 개발 난이도는 항생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항생제는 자연에서 ‘발견’된 것이 대부분인데, 항바이러스제는 순전히 ‘개발’되어야 했다.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지는 자연계에는 세균을 제압하기 위한 수많은 항생물질이 존재한다. 하지만 항바이러스 물질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고등 생물은 정교한 면역으로 바이러스를 제거한다.


항바이러스제는 바이러스가 만들어내는 중합 효소나 절단 효소를 표적으로 한다. 톱니바퀴 사이에 낀 작은 돌처럼 바이러스 단백질의 작동 부위에 끼어들어가 기능을 방해하는 것이다. 현재 상용화된 코로나 항바이러스제는 팍스로비드 (화이자)와 라게브리오 (머크)가 있다. 팍스로비드는 코로나 단백질의 절단 과정을 방해한다. 바이러스는 제한된 크기의 유전자로 가능한 다양한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큰 단백질 덩어리를 만든 뒤 잘라서 최종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이때 가위 역할을 하는 코로나 단백질에 끼어 들어가 절단을 방해하는 것이 팍스로비드의 주성분이다. 라게브리오는 코로나 유전자의 기본 재료인 핵산과 유사한 물질이다. 코로나 유전자 복제에 이 핵산 유사체가 끼어들어가 방해를 하는 원리이다.


이런 항바이러스제들이 치료제로 사용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세포막을 통과해 바이러스 증식이 일어나는 위치까지 간다. 세포 대사에 의해 파괴되거나 배출되지 않는다. 바이러스 단백질의 기능 부위에 단단하게 결합한다. 세포의 정상 단백질은 건드리지 않는다. 투여 후 혈액 내 약물 농도가 일정 수준 유지된다. 간이나 신장에 독성이 없다.’ 이 정도가 최소 조건이다.


항바이러스제 개발은 질병의 제왕이라는 암을 치료하기 위한 항암제 개발 난이도와 비슷하다. 세포막의 구멍을 통과할 정도로 작으면서 바이러스 단백질만 정확히 골라서 결합하는 구조를 가진 약물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약물 크기가 작아질수록 구조적 다양성도 같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상 단백질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고려해야 하는데 이는 부작용이 동반된다는 의미다. 부작용 문제는 개발의 시작부터 끝까지 과학자들의 혼을 빼놓는다.


투여 시점 중요…5일 이내 투여해야


모든 약은 독이라는 말에는 ‘안전 용량을 초과하면‘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물 마시는 것을 위험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몸무게가 80kg인 사람이 짧은 시간에 7.2리터 이상 마시면 사망한다. 실제 2007년 미국에서 열린 ‘물 마시기’ 대회에서 물 중독으로 참가자가 사망하였다. 이처럼 우리 몸에 들어가는 모든 물질에는 안전 용량이 있다. 항바이러스제라고 하면 언제든 체내의 바이러스를 제거할 것 같지만, 이는 항생제처럼 안전 용량에 여유가 충분한 경우에나 해당한다. 감염 세포가 늘어나면 바이러스 단백질에 결합하기 위해 필요한 항바이러스제의 양도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항바이러스제의 용량을 늘이면 부작용도 따라 증가한다. 따라서 안전하게 감당할 수 있는 감염 세포의 양에 한계가 존재한다.


코로나 항바이러스제도 이런 제약 때문에 초기 증상 발현 후 5일 이내 투여가 원칙이다. 특히 코로나는 증식 속도가 빨라 너무 진행되면 감염 세포 수가 감당 가능한 수준을 넘어간다. 하지만 적시에 사용되면 위중증 진행 가능성은 대폭 줄어든다. 바이러스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더라도 과도한 염증의 발생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칼럼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내용이지만, 위중증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과도한 염증이 원인이다. 실제 위중증 환자의 치료에서는 선천 면역의 과잉 반응 통제에 주력한다. 위험한 고비만 넘기면 적응 면역이 작동해 바이러스를 제거하기 때문이다. 항바이러스제를 초기에 사용하면 과도한 염증 반응 발생 시기를 늦추고, 적응 면역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해 준다.


백신의 경우와 비슷하게 항바이러스제도 상용화 전에는 팬데믹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백신도 항바이러스제도 팬데믹을 해결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되지 못하였다. 게임 체인저가 되기 위해선 항생제처럼 감염이 많이 진행된 상황에서도 효과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부작용 때문에 적용이 까다로워 고위험군만 대상으로 감염 초기에 투여되고 있다. 백신 예방 접종처럼 위중증을 막는 예방 치료 개념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결국 과학은 무기일 뿐, 팬데믹의 게임 체인저는 과학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주철현 (울산의대 미생물학 교수)



출처: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10396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