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 11. 전염병 역사로 본 발생 원인: 200년 전 코로나 바이러스는 왜 ‘대유행’ 기록을 남기지 않았나

전염병 역사로 본 발생 원인


농업 문명과 함께 시작된 전염병

가축 매개체로 동물에서 사람으로

도시·교통 발달과 실내·밀집 생활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에 최적 조건

신종 바이러스 넷 중 셋이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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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현미경으로 본 코로나 바이러스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금까지 칼럼에서 코로나19의 특성을 나노 단위의 유전자부터 국가 단위의 방역에 이르기까지 공간을 확장하면서 살펴보았다. 이번 칼럼에서는 과거로 시간을 확장하여, 코로나19가 등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확인한다.


2002 사스, 2009 신종 독감, 2012 메르스, 2019 코로나19. 최근 20년 사이 벌써 네 번이나 신종 바이러스가 인류로 건너왔고, 그중 세 번이 코로나 바이러스였다. 새로운 천년의 시작인 21세기는 바이러스의 시간이 되어버렸다.


세계 인구는 20세기 후반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사람을 숙주로 전파되는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데 전염병의 원인인 수많은 세균과 바이러스 가운데 왜 하필 코로나 바이러스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전염병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사람을 매개체로 퍼지는 전염병은 문명의 발전 상황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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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의 발전과 세계 인구의 증가



인류가 겪은 가장 오랜 전염병의 흔적은 중국 내몽골에 있는 5000년 전의 선사시대 유적에 있다. 거기에는 6평의 좁은 공간에 100여 명의 희생자를 욱여넣고 불을 질렀던 흔적이 남아 있는 움막 터가 있다. 추정 인구가 200명 남짓에 불과한 이 작은 마을에 닥친 불행의 참혹함을 서로 엉겨 불에 탄 유골 더미가 생생히 보여준다. 하지만 수렵과 채집 위주 생활을 했던 당시 마을들은 서로 단절되어 있었다. 전체 인류의 수도 적었기 때문에 가물에 콩 나듯 뜨문뜨문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각 마을이 코호트 격리가 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한마을의 비극이 주변 마을로 퍼져나갈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농경의 도입은 상황을 바꾸게 된다. 농경 집단은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바탕으로 규모가 확장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규모 집단을 관리하기 위해 문자가 발명되어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다. 문명이 시작된 것이고, 이와 함께 전염병의 역사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생활을 공유하는 범위가 커진다는 것은 병원체 입장에서는 숙주 집단이 커진다는 의미다.


또한 문명의 중심인 도시에 인구가 밀집되면서 전염병의 전파 효율도 높아진다. 농경의 시작과 더불어 사육되기 시작한 가축은 야생 동물과 사람 사이에서 병원체 연결고리가 된다. 자연환경에 전적으로 좌우되던 초기 농업에서 가뭄이나 홍수가 발생하면 거대해진 집단은 극심한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이는 집단의 면역 상태를 불량하게 만들어 전염병이 창궐하게 되었다. 전염병은 가장 고통받는 피지배층에서 시작되어 계급을 가리지 않고 퍼져나갔다.


전염병이 바꾼 세계 문명사


농경은 정착을 의미하기에 초기 문명은 인접한 자연에서 유래한 전염병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서서히 집단 면역이 획득되어 균형이 이루어지면 전염병은 토착화된다. 큰 역병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집단 구성원 일부에서 계속 감염이 전파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결과 문명들은 각각 고유한 토착 전염병을 가지게 된다. 이 토착 전염병은 문명의 충돌을 통해 다른 문명으로 전달된다. 이미 토착화된 문명에서는 집단 면역이 있지만 전달받은 문명은 집단 면역이 전무한 상태다. 그 결과 급작스러운 대규모 유행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역병이 발생하게 된다. 전염병 중에서도 빠르게 전파되고 치사율이 높은 경우를 역병이라 한다. 현대적 관점으로 보면 낮은 집단 면역이 원인인 신종 전염병이다.


이에 대한 최초의 역사는 헤로도토스가 기록한 기원전 430년 아테네 역병이다. 문명 충돌의 극단적인 형태가 전쟁이며 이 역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배경으로 창궐하였다. 현재로선 정확한 병원체 확인은 어렵지만,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토착 병원체가 대규모 병력 이동을 따라 이집트를 거쳐 지중해 지역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아테네 시민들은 좁은 장벽 안에 갇혀 식량 부족과 불결한 환경에 시달렸다. 그리고 출정과 귀향을 반복하던 군인 중 일부가 신종 병원체에 감염되어 내부에 퍼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아테네는 수년에 걸쳐 역병에 시달리며 황금시대의 막을 내린다.


그리스 문명의 적자인 로마는 잘 정비된 제도와 교통망을 바탕으로 제국을 확장해나갔다. 강력한 군대로 전쟁에서 계속 승리하며 영역을 확장했다. 하지만 이에 비례해 신종 병원체와의 접촉도 늘어났고 발달한 교통망은 전염병의 전파를 촉진하게 된다. 도시일수록 피해가 컸으며, 인구밀도가 낮고 도시와 접촉이 적은 시골은 비껴갔다. 전쟁에서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었지만, 전염병에서는 흩어져야 살고 뭉치면 죽었다. 로마 시대에도 힘든 부역에 시달리는 사람들에서 전염병이 주로 발생하였다. 제대로 음식을 제공받지 못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집단으로 생활했기 때문이다. 면역의 영어 단어인 ‘이뮨 (immune)’은 로마 시대의 부역 면제자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면역을 획득하여 전염병에 대해 면제받는 것과 유사해 붙여진 이름이다. 승자의 저주처럼 반복되는 역병에 시달리던 로마 제국도 세상의 종말로 기술된 키프로스 역병을 기점으로 서서히 몰락한다.


로마가 쇠락하면서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함께 중세가 시작된다. 그리고 사막과 산맥으로 분리되어 있던 동서양이 접촉하게 된다. 이로써 전염병의 전파 범위는 구대륙 전체로 확대된다. 중세 전염병의 주인공은 이름 자체가 역병의 대명사인 페스트 (pest)다. 중세 시대에 주기적으로 창궐한 페스트는 쥐에서 증식하는 세균이 원인이다. 쥐는 사람의 눈을 피해 교역상의 식량을 훔쳐 먹으며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사람과 직접 접촉할 일이 없는 쥐의 세균을 쥐벼룩이 옮겼다. 원래 페스트는 중국 중부의 풍토병이었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집단 면역이 전무한 신종 전염병이었다. 중세는 페스트로 시작해 페스트로 끝났다고 할 만큼 시달렸는데, 특히 7년간 유럽을 초토화한 두 번째 대유행은 흑사병 (Black Death)으로도 불린다. 페스트균이 전신의 혈관을 터트려 피부가 까맣게 멍이 들면서 죽어갔기 때문이다. 당시 서양 인구의 절반이 페스트로 사망할 만큼 피해가 컸기에 방역의 개념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최초로 격리 개념을 도입한 밀라노는 사망자가 인구의 15% 정도로 그치는 성과를 거둔다.


흑사병의 창궐은 중세를 지탱하던 농노제를 붕괴시킨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사람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으로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노동력 붕괴는 산업 혁명으로 돌파구가 열린다. 흑사병의 대가로 발달한 산업과 과학으로 무장한 서양은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한다. 구대륙에서 벌어진 초기 패권 경쟁에서 밀려난 국가들은 새로운 식민지를 찾기 위해 바다를 뒤지고 다닌다. 그리고 1492년 바다로 격리되어 있던 신대륙을 발견한다. 이로써 구대륙과 신대륙의 모든 문명이 연결되고 인류는 이 세상의 모습을 처음으로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영광의 기록은 서양의 입장일 뿐 신대륙 문명은 비참하게 몰락한다. 그 원인으로는 총과 칼도 있지만 무엇보다 신종 전염병의 창궐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구대륙의 문명들이 서로 병원체를 주고받으며 몰아닥치는 역병과 회복 과정을 겪으며 집단 면역을 획득하는 동안, 신대륙은 안전하게 격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침략자를 통해 구대륙의 병원체들이 퍼지기 시작하자 격리는 순식간에 대재앙의 원인이 된다. 구대륙의 병원체에 대한 집단 면역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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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세균 공포 벗어나니 바이러스가 활개


문명의 시작부터 인류를 괴롭혀 오던 전염병의 원인이 세균과 바이러스라는 것을 알아낸 것은 신대륙이 발견되고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전염병은 여전히 신의 저주나 귀신의 장난으로 여겨졌다. 그러다 르네상스에 뿌리내린 자연철학에서 피어난 과학의 눈을 통해 미지의 공포는 정체가 드러난다. 하지만 정체를 아는 것과 치료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세균 감염이 원인이라는 걸 알아도 손쓸 방법이 없었던 없었던 상황은 플레밍에 의해 반전된다. ‘게으른 똑똑함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 플레밍이다. 실험실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떠난 휴가에서 돌아온 어느 더운 여름날, 그는 곰팡이가 잔뜩 핀 세균 배양 접시를 발견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누가 볼까 봐 재빠르게 치워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다 곰팡이 주변에만 세균이 자라지 못한 것을 알아차린다. 이 페니실린 이야기는 과학사 최고의 ‘행운의 발견 (serendipity)’으로 여겨진다.


항생제를 기점으로 세균의 기세가 꺾이자 바이러스가 문제로 부상한다. 호랑이가 사라지면 여우가 왕이 되는 법이다.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이었던 세균성 감염의 치료가 가능해지자 인류의 평균 수명이 47년에서 79년으로 대폭 늘어나게 된다. 평균 수명이 늘면서 인구 폭발이 일어나고 암, 고혈압, 당뇨병 같은 노령 질환이 증가하였다. 항생제가 만든 상황 변화는 바이러스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인구 밀집도가 증가하면 전파가 쉬워지고, 면역기능이 떨어지는 노령 인구가 증가하면 감염 기간과 전파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독립 생명체인 세균과 절대 세포 기생체인 바이러스는 전파 특성이 다르다. 외부 환경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세균은 외부에서도 물과 영양분만 있으면 증식이 가능하다. 반면 바이러스는 외부 환경에서 입자로 존재할 때 감염력이 유지되는 시간에 한계가 있다. 일종의 시한부 감염체이기에 사람의 밀집도와 생활 습관이 전파 확률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바이러스 입자는 호흡기와 소화기 두 경로를 통해 우리 몸으로 들어온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무생물이기에 공기나 음식물에 섞여서 들어오는 것이다. 이를 구분해 소화기와 호흡기 바이러스로 나눈다. 과거에는 물이나 음식을 통한 소화기 바이러스 전염병이 흔했고, 사람 간 직접 전파되는 호흡기 바이러스는 확산이 어려웠다. 하지만 현대 문명으로 상하수도가 정비되면서 감염자의 배설물에 의한 수인성 전염병의 전파 경로가 차단되었다. 반면 도시 확장과 실내 생활의 증가로 숨 쉬는 공기의 질은 점차 나빠졌다. 그 결과 소화기 바이러스 유행은 점차 줄어들고 호흡기 바이러스의 유행은 점차 늘게 되었다. 호흡기 바이러스 입자는 외부 환경에서 감염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광범위한 확산의 필수 조건은 감염자의 직접 이동이다.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


현대 팬데믹의 주범은 호흡기 바이러스다. 최초의 현대 팬데믹은 1889년 러시아에서 발생한 신종 독감이었다. 당시는 철도 교통 발전의 초기였음에도 발생 5주 만에 전 세계로 퍼진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와중에 미국에서 시작된 1918년 스페인 독감은 더욱 큰 파괴력을 보였다. 대규모의 병력 이동, 전쟁으로 인한 환경 악화, 식량 부족까지 겹쳐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다. 이후 항공 교통이 발전하기 시작한 1957년 싱가포르와 홍콩에서 시작된 아시아 독감 대유행에서도 최소 백만의 사망자가 나왔다.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주기적으로 인류로 건너왔다. 독감 바이러스만큼 두드러지지는 않았으나, 그 증거는 감기 바이러스로 남아 있다 (독감은 바이러스 이름이고 감기는 증상에 대한 이름이다). 감기를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 바이러스에는 네 종류의 코로나 바이러스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바이러스들도 처음에는 신종 바이러스로 건너왔으며, 200년 전에 건너온 것이 가장 최근의 것이다. 가려져 있던 코로나 바이러스는 다른 전염병의 위험이 통제되면서 드러나게 된다. 특히 2000년 이후 본격화한 유전자 증폭 기술 (PCR)을 통해 신속한 코로나 바이러스 유전자 확인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졌다. 이를 통해 사스와 메르스 같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계속 건너오는 것이 확인되던 중 코로나19가 결국 팬데믹을 일으킨 것이다.


신종 호흡기 바이러스는 인류가 등장한 이후로 꾸준히 건너왔지만, 과거에는 발생 지역을 넘어 확산하기 어려웠다.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기 전에 유행 지역의 집단 면역이 올라가면 진정되는 풍토병의 범위를 넘어서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항공 산업의 발전은 세계를 말 그대로 지구촌으로 만들었다. 과거에는 바이러스가 대륙을 건너기 위해선 배를 타고 건너가야 했다. 그 사이에 감염자가 죽거나 선원들의 집단 면역이 획득되면 전파가 차단된다. 하지만 이제는 무증상 잠복기의 감염자가 지구 반대편으로 하루면 날아갈 수 있다. 비행기가 호흡기 바이러스에도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전염병의 역사를 통해 다양한 병원체가 인류로 계속 건너오고 있으며, 당시의 문명 발전 상황에 적합한 것이 대규모 유행을 일으킨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특히 바이러스의 경우 생활환경 변화가 유행의 결정적 배경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구 증가, 도시 확장, 밀집된 실내 생활, 교통 발달은 현대 팬데믹의 배경을 조성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화된 현대 문명이 지구 생태계에 치러야 할 대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피해가 가능한 최소화하는 선에서 대가를 치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 방법은 현대 과학이 이미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이를 실천할지 말지는 생태계의 운명 공동체인 우리의 몫이다.


주철현 (울산의대 미생물학 교수)



출처: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10459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