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부당 끼워넣기 지시" "하루 10시간 근무" 실험실의 우울한 일상

이공계 대학원생 5명 중 1명이 최근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부당한 논문 저자 끼워넣기를 지시 받은 적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결과를 정해놓고 실험을 진행하는 ‘끼워맞추기’식 연구를 지시 받은 경우도 11%에 이르렀다. 반면 29%는 학과나 연구실에서 체계적인 연구윤리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해 현장에서부터 연구윤리를 강화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원생 3분의 2는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10시간이 넘고, 주말과 휴가가 없다는 답도 최대 29%에 이르는 등 처우도 여전히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와 생물학연구정보센터(브릭) 등 6개 전문연구정보센터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이공계 대학원생 처우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 결과’를 30일 발표했다. 8월 20일~9월 8일까지 총 20일 동안 1330명의 국내 이공계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온라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로, 64개 문항을 통해 대학원 생활과 연구 만족도를 심도 깊게 짚었다.


●”부당한 저자 끼워넣기 겪어봤다” 22%...윤리 교육은 불충분


조사 결과 최근 사회 전반을 흔들고 있는 연구윤리에 어긋나는 지시를 받은 적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22%(286명)는 “연구 기여도가 적은 사람을 저자에 추가하거나 반대로 기여도가 있는 사람을 빼는 행위를 지시 받았다”고 답해 저자권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11%인 145명은 “결론에 맞춰 연구를 진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답해 수준 이하의 끼워맞추기 연구도 여전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반면 연구윤리에 대한 지도는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 저자권이나 부실학회, 데이터 처리 방법 등과 관련한 연구윤리 교육을 학과나 연구실로부터 받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46%에 불과했다. 받고 있지 않고 있다는 비율도 29%에 이르렀다.


대학원생의 열악한 처우도 다시 한번 확인됐다. 62%는 하루 평균 근무시간이 10시간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29%는 공식적인 휴가가 없다고 응답했고, 휴일 출근이 강제된 곳도 1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실에 오래 머물면서도 주말과 휴가를 보장받지 못하는 대학원생이 많다는 뜻이다.

 

안전 상해에 대한 보장은 불충분하거나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대학에서 연구실 안전사고에 대한 별도의 상해보험을 가입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35%에 불과했다. 가입한 경우에도 발암물질 장기노출, 오랜 피펫 사용에 의한 손목 손상 등에 실험실 보험이 충분한 보장을 제공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27%만이 충분하다고 답해, 충분하지 않다고 답한 23%와 큰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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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저자 부당 끼워넣기를 겪어봤다는 응답자가 22%에 이르렀다. 반면 연구윤리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는 응답은 과반수가 못 됐다. 브릭 제공


●하루 10시간 근무, 주말 강제 출근 여전…논문·연구윤리 지도는 ‘낙제점’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은 자신의 연구 외에 해당 연구실이나 교수가 수행하는 연구과제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평균 과제 수는 1.5개로 대부분이 1개 이상의 과제에 참여했다. 대체로 자신의 졸업 연구 주제와 관련 있는 과제지만, 5명 중 1명(21%)은 졸업 연구 주제와 관련 없는 과제를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40%의 대학원생들은 연구 외에 다른 업무량이 많다고 응답해, 적다는 응답(22%)보다 두 배 많았다.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연구 외 활동은 절반이 선택한 '영수증 풀칠' 등의 연구실 행정(49%)이 꼽혔다. 연구실 실험장비 관리(32%), 학회 행정 및 행사준비(24%)가 뒤를 이어, 여전히 연구실 내 잡무를 대학원생이 도맡고 있는 현실을 드러냈다. 이들이 과제와 조교활동 등을 통해 받고 있는 급여는 100만~125만 원이 가장 많았다(18%).


반면 주 1회 이상의 정기적 논문지도를 받지 못하는 등 교수로부터 최소한의 지도를 받지 못하는 대학원생이 3분의 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 1회 이상 논문 연구지도를 받는 사람은 64%에 불과했고 월 1~2회 지도를 받는 경우가 26%였다. 10%는 거의 없다고 응답했다. 자신이 충분한 지도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절반인 51%에 그쳐, 두 명 중 한 명은 연구 지도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에 대한 아쉬움도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로서 필요한 기초적인 소양인 논문작성과 발표 방법을 배우는 경로는 지도교수(31%)보다 연구실 선배(38%)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6%는 인터넷 등을 통해 배운다고 답했다. 수업에 대해 만족한다는 응답도 37%에 그쳤다. 반면 연구시설이나 환경에 대해서는 61%가 만족한다고 답해, 수업이나 교육 등 소프트웨어의 질보다는 물리적 환경 등 하드웨어 좀더 만족감을 느끼는 역설적 상황도 연출됐다.


이 같은 불만은 전반적인 대학원 학위과정에 대한 불만으로 나타났다. 대학원 입학시점으로 돌아간다면 현재의 학과나 대학, 연구실을 택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3분의 1(37%)에 불과했다. 20%는 한국을 떠나 유학을 하겠다고 답했고, 20%는 아예 취업으로 진로를 바꾸겠다고 답했다.

 

●대학원도 사람 사는 곳…갈등 있지만 도움 받긴 꺼려져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학업이나 노동 여건 외에 생활에서 오는 갈등을 많이 느끼지만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주로 연구실 구성원간 성격차이(39%), 연구 외적인 업무의 분담 문제(26%) 등으로 갈등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할 학과 내 절차나 프로그램이 있는지 모른다는 응답이 48%, 프로그램이 없다는 응답이 34%로, 거의 대부분이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도 32%만이 이용 의사를 밝혔다. 대부분 신분 노출을 꺼리거나(42%), 해결될 것이라고 믿지 않아서(28%)가 이유였다. 학내 상담 프로그램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로에 대한 상담에 대해서도 74%가 “학내에 진로상담할 곳이 없거나 있는지조차 모른다”고 답했다. 연구직 외의 다른 진로에 대해 교육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81%가 없다고 답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1월 14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와 23일 대전 유성구 KAIST에서 ‘타온홀 미팅’을 개최한다. 이공계 대학원생과 교수, 대학 관계자, 정책 전문가 등이 모여 이공계 대학원생의 경제적 처우 개선과 권익 보호, 연구실 안전 제고, 고충 관리 및 연구 윤리 증진 방안을 토의할 예정이다.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이공계 대학원생은 한국의 미래 과학기술 역량을 좌우할 핵심 축”이라며 “뛰어난 연구자로 성장해 나가도록 제도적 기반을 잘 갖춰야 한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와 11월 개최되는 타운홀 미팅을 통해 대학원생의 어려움에 대해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찾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동아사이언스 윤신영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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