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승남
[Wassup Hopkins!]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의사학교실에서 방문학자로서 한국 한의학을 토대로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칼럼을 통해 연구와 관련된 내용 뿐 아니라, 볼티모어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한의사 이태형 프로필

Peer Review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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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2월입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작성한 지 어느새 4달 이상의 시간이 지났네요. 돌아보면 참 정신없이 보냈던 시간이었습니다. 홉킨스에서 처음 지냈던 봄 학기 때와는 달리 이제 거의 마무리 되어 가는 가을 학기는 제게는 또 다른 도전이었습니다. 첫봄 학기가 이곳에의 적응 기간이었다고 한다면, 지난가을 학기는 어느 정도 연구 성과를 보여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몇 편의 논문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연구도 어느 정도 마무리할 수 있어서 힘들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있는 Dept. of the History of Medicine, 즉 의사학 교실에서의 연구는 대부분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때에 따라 연구자 간의 협력을 통한 연구 프로젝트가 주가 되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실험실에서의 연구처럼 다수에 의해 연구가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사학 연구가 한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개인에 의해 이루어진 연구는 다수에게 발표됨으로써 다양한 동료들로부터 검토 및 비평을 받고, 이를 토대로 다시금 더 나은 형태의 연구로 바뀌어 나갑니다.


지난가을 학기, 논문 작성을 위한 트레이닝으로 두 개의 대학원 수업에 참여하였습니다. 


하나는 제 연구책임자이기도 한 Marta Hanson 교수님의 “An Introduction to Historical Methods”라는 수업이었습니다. 이 수업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최근 과학기술사 및 의사학 분야에서 논해졌던 연구주제들의 소개이고, 둘째는 이 학문 분야에 대한 역사적 소개입니다. 마지막으로 역사 연구 방법 및 역사 기술 방법에 대한 소개가 진행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수업의 진행 방식이었습니다. 매주 특정 주제에 해당하는 5편 내외의 선택된 논문들을 수업에 참석하는 학생들이 미리 읽고, 각 논문에 배정된 학생이 수업 시간에 발제하면, 이후 그 논문에 대한 학생들 간의 다양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수업을 이끄는 Marta Hanson 교수님은 논의를 이끌기 위한 질문들을 던지며 보다 원활한 토론을 유도하였고, 대다수의 시간은 학생들의 능동적인 참여로 채워졌습니다. 학생들의 논의 이후에는 그 의의에 대한 교수님의 정리가 뒷받침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East Asian Studies 과정의 Erin Chung 교수님의 “Advanced Topics in East Asian Studies”라는 제목의 수업이었습니다. 이 수업은 동아시아 관련 연구를 다루는 다양한 분야의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제간 세미나로, 서로의 연구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이 수업에 참여하였던 이유는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논문을 토대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총 2시간의 수업 시간 동안 발표자는 30분 내외로 본인 연구에 대한 발표를 진행하고, 나머지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은 그 연구에 대해 수업 구성원 간의 다양한 논의가 진행됩니다. 저는 의사학 분야의 연구에서 그전까지 영어로 논문을 작성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이 수업을 들음으로써 영어 논문 작성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할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발표 후에 있을 논의 과정을 통해 제 연구에 대한 다른 연구자들의 조언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 수업의 진행에 있어서도 Erin Chung 교수님은 Marta Hanson 교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처음부터 논의 전반에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되도록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논의를 이끌었고, 이후에 의의 및 추가로 생각해 보아야 할 사항을 들어 논의를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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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수업을 통해 제가 가장 크게 배울 수 있었던 것은 peer review의 중요성입니다. Marta Hanson 교수님 수업에 참여하였던 9명의 구성원들은 각각 물리학, 보건 정책, 국제 개발, 사학, 동물학, 의학, 미술 등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두 같은 연구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들은 과학기술사 및 의사학이라는 분야에서 함께 만나 보다 다양한, 그리고 풍요로운 논의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보다 나은 연구”에 대한 공통된 의지를 토대로 중요한 참고논문들을 비판적 시각으로 검토하고, 적극적으로 비교 논의하는 학생들의 자세였습니다. 때로는 강도 높은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지만,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더 나은 연구를 위한 하나의 공헌으로 받아들여지고는 하였습니다.


Erin Chung 교수님의 수업은 각자의 연구를 발표하는 것을 토대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보다 직접적인 동료로부터의 비평 및 조언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사실 30분의 연구 발표 이후에 1시간 반 정도의 논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이전에 소개해 드렸던 콜로키움의 형식과 닮았습니다. 발표 내용은 미리 논문 등의 형태로 발표 이전에 배포되었기 때문에, 실제 발표 현장에서는 발표 자체보다는 질의응답 및 논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East Asian Studies 과정의 구성원들도 사학,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국제학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를 포괄합니다. 일견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연구에 대해 적절한 조언을 해주지 못할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래서 더욱 날카로운 질문과 조언을 제공해주기도 하였습니다. 동료 연구자들의 질문과 조언들이 각자의 연구를 보다 성장시키는 양분이 되는 것을 저 스스로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제 관심은 다시금 한의학계로 향합니다. 한의학이라는 학문은 상대적으로 타 학문과의 교류가 충분하게 이루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한의과대학이 처음 생겼을 때, 한의학은 근대 학문이 아니므로 근대 국가에 한의과대학을 설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였던 것처럼, 때로는 한의학은 기타 학문으로부터 분리된 것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의 한의학은 과거의 한의학이 아니며, 전통적으로 한의학이 당대의 기타 학문과 교류해왔던 것처럼, 현대의 한의학은 현대의 다른 학문과 교류하며 발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더욱 적극적으로 교류를 증진함으로써, 한의학이라는 학문이 현대 학문의 하나로 발판을 다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생각보다 다양한 방면에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의사학의 경우를 통해서 살펴본다고 하더라도, 한의학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콘텐츠는 의사학 연구 방법을 토대로 다양한 연구자들과의 교류는 물론, 의미 있는 연구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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