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전설 근거중심 탐구

진월인, 순우의, 편작의 형은 환자의 안색을 보고 병을 알았다고 한다. 아차산의 전설에서 맹인 점쟁이 홍계관은 상자 속에 임신한 쥐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맞혔다고 한다. 알에서 태어난 영웅이나 공주, 왕자의 이야기는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물론 허구다. 하지만 과장이나 와전은 있더라도 완전한 날조는 아니라면? 그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과학과 상상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진짜 이야기를 재구성해 본다.
[학력]
서울대학교 학사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사/석사

[경력]
강동경희대학교한방병원 인턴/레지던트 (한방내과 전문의)
국제인증수유상담가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교육이사
베이비뉴스 칼럼니스트
오마이뉴스 칼럼니스트

김나희
김나희

신화와 전설이 허공에서 창조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실존했던 상황에 상상력으로 살을 붙여나갔을 수도 있다는 가정 아래, 그 사실이 무엇이었을지 탐색해 봅니다. "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고 해주시면 더없는 칭찬이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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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용용 죽겠지 용은 멸종했다 (부제: 유형성숙하고 가끔 탈바꿈하는 거대 양서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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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에게 용은 익숙한 이름이다. 대청룡탕, 소청룡탕 등 탕약의 이름에 등장한다. 적룡(赤龍)은 한의학에서 부르는 혀의 별명이다. 용뇌, 복룡간, 용안육, 용담, 용골 등 약재 이름에도 많이 나온다. 다른 약재 이름은 그냥 용을 비유로 가져온 것인데, 용골 (Fossilia Ossis Mastodi) 만은 한 번 그 기원을 따져 볼 만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한국한의학연구원의 설명에 따르면 용골은 여러 종류의 큰 (포유) 동물의 뼈의 화석으로 기원 동물은 규정하지 않는다. 문헌에는 고대의 포유동물인 코끼리류의 화석을 오화용골(五花龍骨)이라 하고 공룡, 소, 사슴 따위의 골격 화석을 용골(龍骨) 또는 백용골(白龍骨)이라 하였다. 오래된 포유동물의 이빨 화석을 용치(龍齒)라 부른다. 오화용골은 황백색의 뼈 화석에 적갈색이나 회갈색의 줄이 가 있고, 백용골은 전체적으로 희다.


서양의 고생물학자들이 중국에 연구하러 왔는데, 마을 사람들이 용의 뼈라며 땅에서 캐서 갈아서 약재로 쓰고 있길래 뭔가 들여다봤더니, 보존 가치가 높은 공룡 화석이라서 대경실색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나중에 그 고대 생물을 공룡(恐龍)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니, 결과적으로 용골(龍骨)이 맞았던 셈이다.


하지만 인류가 등장하기 전 공룡이 멸종했기 때문에, 인류의 이야기 속에 공룡이 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용의 이미지는 어디서 왔을까? 인류가 가는 곳마다 대형동물들을 멸종시켰기 때문에, 공룡의 기원이 되는 동물도 인류와 동시대에 존재하다가 멸종한 동물이라 짐작할 수 있다. 용은 비늘이 있고 뱀의 모습인 이무기와 연계된다는 점에서 파충류 (뱀 또는 악어)라고 추측되기도 하고 물속에 살다가 등용문을 통과한 잉어가 변신한다는 점에서 어류 (갸라도스....^^)로 추측되기도 한다.

*갸라도스: 포켓몬의 일종, 잉어킹이 진화한 포켓몬.


이 글에서는 용이 이무기에서 ‘변신’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파충류설, 어류설 말고 ‘양서류설’을 제시해 본다. 유생과 성체의 모습이 완전히 다르게 변태 (탈바꿈, metamorphosis) 하는 동물로 압축했을 때, 곤충, 갑각류, 양서류 등이 후보가 된다. 곤충과 갑각류는 대형동물인 용의 후보가 되기에는 너무 작아 배제하면, 물에서 유생 시기를 보내는 양서류가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설화 속에서 이무기, 즉 유생의 상태로 한참 동안 살다가 갑자기 여의주를 획득하게 되면, 또는 여의주 셋 중 두 개를 버리면, 성체인 용으로 탈바꿈한다는 점에서 여의주는 발생 과정의 변태를 촉발시키는 갑상선호르몬의 상징으로 보인다. 유생으로 살다가 외부 호르몬으로 성체로 변신하는 생활사를 보이는 양서류가 있을까? 있다!


멕시코의 수생 양서류인 우파루파 (아홀로틀, axolotl)는 유형성숙 (neoteny, paedomorph)의 생활사를 보인다. 유형성숙이란 유체의 형태로 그대로 성숙한다는 뜻이다. 즉, 올챙이 상태로 그대로 어른(?)이 되어 짝짓기도 하고 늙어간다. 평생 개구리가 되지 않는 것이다. 우파루파는 시상하부-뇌하수체-갑상선의 축이 다르게 기능하고 유형성숙에 해당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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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체 상태로 평생 사는 우파루파와 인위적으로 변태시킨 성체 우파루파

사진출처: Monaghan, James & Stier, Adrian & Michonneau, Francois & Smith, Matthew & Pasch, Bret & Maden, Malcolm & Seifert, Ashley. (2014).


이렇게 이무기 같은 유생 상태로 평생을 살아가는 우파루파에게 인위적으로 갑상선호르몬을 투여하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 야생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성체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 우파루파의 유형성숙 및 조건적 탈바꿈에 대해서는 유럽에 1세기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고, 줄리언 헉슬리 (Julian Sorell Huxley)가 1920년에 이에 대한 논문을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줄리언 헉슬리의 동생 올더스 헉슬리 (Aldous Leonard Huxley)도 이에 영감을 받아 <가자에서 눈이 멀어, Eyeless in Gaza>라는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우파루파가 사는 멕시코의 민물호수에는 갑상선호르몬의 필수 원소인 요오드 (아이오딘)가 극히 적고 호수의 물이 연중 따뜻하여, 열을 내는 갑상선호르몬이 (필요) 없는 상태에 적응하여 유형성숙이 자리 잡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럴듯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인간의 발길이 닿기 전 남아시아의 어느 내륙 습지에는 유형성숙 하는 거대 수생 양서류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바다에는 요오드가 풍부하기 때문에 요오드가 결핍되려면 내륙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활동 반경을 늘려 그 습지 근처에도 마을이 생기고, 사람들은 점차 그 양서류의 생활사에 익숙해져 이무기는 거대한 유생 상태로 평생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반도와 교역하던 상인이 교역 물품인 말린 다시마 한 조각을 우연히 습지에 떨어뜨렸다. 지나가던 이무기 하나가 다시마를 냠냠 먹는다. 그런데 다시마는 어떤 생물인가? 부등편모조류에 속하고 감칠맛의 해결사이며 무엇보다 요오드 함량이 가장 높은 생물이다. (인간은 다시마 80g만 먹으면 요오드 1년 권장 섭취량을 섭취할 수 있다.) 다시마를 먹은 이무기는 자기 몸이 급격하게 이상해지는 것을 느낀다. 꼬리가 사라지고 뒷다리가 쏘옥 앞다리가 쏘옥 튀어나온다. 다리는 점차 굵고 튼튼해진다. 아가미가 점차 사라져서 물속에서 숨을 쉴 수가 없게 된다. 숨이 막히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자신도 모르게 물 위로 솟구친다. 그제야 숨을 쉴 수 있다. 이무기는 자신이 예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갑상선호르몬의 존재로 탈바꿈한다는 가설은 또 다른 설화와 잘 맞아떨어진다. 여의주 세 개를 물고 있는 이무기가 자신은 왜 용이 되지 못하는지 의문을 품고 살아간다. 정답은 여의주 두 개를 버리고 하나만 남기라는 것이다. 호르몬의 작용은 비선형적인 용량-반응 관계를 보인다. 즉 호르몬이 많다고 더 큰 효과가 나오는–선형적인-관계가 아니라, 어느 용량 이상이 되면 음의 피드백에 의해 회로가 닫혀버려 오히려 아무 변화가 없거나 역의 반응이 나오게 된다. 소량일 때는 호르몬 효과가 나타나는데, 대량일 때는 오히려 호르몬 효과가 전혀 없을 수 있다. 다시마환 세 개를 먹은 이무기는 용이 되지 못하고, 한 개만 먹은 이무기가 용이 될 수 있는 까닭이 여기 있다.


사람들은 기다란 거대 올챙이 상태로 평생 물속에서 살던 이무기 중 하나가 갑자기 물 밖에서 사는 성체로 변신한 것을 보고 놀란다. 이 새로운 형태를 용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용과 이무기는 인간의 활동으로 습지가 파괴되고 때때로 사냥당해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결국 멸종해 전설로 남게 된다. 그리고 전설 속에서 악어나 뱀, 잉어 등의 다른 생물의 특성이 추가되어 전해지게 된다.


[덧붙이는 글]

용의 기원 생물이 멸종했듯 우파루파도 멸종 위기종이다.

‘오펀: 천사의 비밀’은 인간의 유형성숙을 다룬 공포영화다.



References


[1] Monaghan JR, Stier AC, Michonneau F, Smith MD, Pasch B, Maden M, Seifert AW. Experimentally induced metamorphosis in axolotls reduces regenerative rate and fidelity. Regeneration (Oxf). 2014 Feb 20;1(1):2-14. doi: 10.1002/reg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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