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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질론을 대중화하려고 할 때 가장 어려운 과제는 체질의 증명일 것이다. 체질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가 현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 그리고 다른 직능에 속한 의료인뿐만 아니라 대다수 한의사도 체질론을 믿는 우리를 노골적으로 폄훼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체질이란 걸 붙잡고 있는 대책 없는 집단인 양 본다. 보통의 서양 의사들은 한의사를 향해서 그러는데, 다수의 한의사는 다시 체질 의사들을 그렇게 모는 것이다.

한의사들은 이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이고 주류의 위치를 얻지 못했을 뿐, 한의사에게 경락이나 경혈을 증명할 의무가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생명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은 생명체를 보고 생명의 존재를 느끼고 믿는다. 서양 의사가 침술에 관심이 있다면 한의사가 경락과 경혈의 존재를 믿듯이 그저 믿으면 된다. 체질도 그렇다.

체질론을 폄하하는 시선의 이면에는 시기와 질투가 분명히 있다고 짐작한다. 그래서 체질의학의 조종(祖宗)이라 할 수 있는 동무 이제마 공이 〈수세보원〉의 「광제설」에서 이미 설파하셨다.

妬賢嫉能天下之多病也 好賢樂善天下之大藥也.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질투하는 것은 세상의 많고 큰 병이고, 어질고 착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세상의 위대한 약이다.

선전활동

하나님을 증명하기 어렵듯이 체질 또한 그러하니, 종교인이 선교활동을 하듯이 우리 체질론자들에게도 선전활동이 필요하다. 요즘도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날 청량리역 앞에서 팻말을 들고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던 사람들이나, 열을 지어 딱딱이를 울리던 천리교 신자들처럼 말이다. 이들의 행동이 튀어 보이는 것은 이들 또한 비주류이기 때문이다.

이천수 씨

체질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거나 체질에 대한 개념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쓰는 방법으로 ‘유명인 예시’가 있다. 만약에 토양체질이 주제라면 전직 축구선수 이천수 씨나 「울지마 톤즈」의 고 이태석 신부를 소환하는 것이다. 이분들과 관련된 특징을 설명한 후에 해당하는 인물에 대해서 말하면 내 얘기를 듣는 대상자들을 이해시키기가 무척 쉽다. 이천수 씨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이천수 씨의 경우에는 토양체질의 경솔과 관련하여 설명하는 예시로 많이 써먹었다.

KBS2TV 「1대 100」 422회 (2016. 2. 2.)에 출연한 임상8체질연구회(臨八硏)

선전활동의 일환으로, 2016년 1월에 임상8체질연구회의 동료들과 함께 KBS2TV의 퀴즈 프로그램인 「1대 100」 녹화를 위해 여의도에 있는 KBS 방송국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프로그램 작가가 대기실에 와서 그날의 1인 출연자 중 한 사람이 이천수 씨라는 것이다. 녹화할 때 그와 8체질에 관한 얘기를 나눠달라는 부탁이다. 물론 그와 내가 원수진 일은 없다. MC인 조우종 아나운서가 “아니 그러면 경솔이 체질이란 말인가요?” 하면서 치고 들어왔는데, 이천수 씨는 여유롭게 웃으면서 그의 ‘경솔’을 받아넘겼다.

KBS2TV 「1대 100」 422회 (2016. 2. 2.) 동영상에서 캡처

토양체질은 호기심이 많고 외향적이고 낙천적이고 직설적이다. 경솔해지는 것은 우선 급하기 때문이다. 순발력이 있으니 더 그렇다. 판단과 결정이 빠르니 언행이 경솔해지기 쉽다. 몸으로 움직이는 것보다 말은 더 빠르고 뱉은 후에는 담을 수 없으니 말실수가 많게 된다. 이천수 씨에게도 말(口)과 관련한 별명이 있었다.

얼리어답터

토양체질은 대표적인 얼리어답터 (earlyadopter)이다. 얼리어답터는 새롭고 신기하며 고급이고 고가이면서 고성능인 제품에 대한 즉각적이며 신속한 추종 (구매)이 특징이다. 이것은 우선 호기심과 급함, 변화에 민감함의 반영이다. 그리고 귀도 무척 얇다. 그들은 신속하게 제품에 대한 소개와 구매 후기를 올린다. 이것은 토양체질이 지닌 자기 표출 욕구이다. 즉 자랑질이다. “나는 새롭고 멋있고 비싼 것을 샀어. 이것 좀 봐줘.” 제품도 즐기고 덩달아 그에게 오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즐긴다.

인터넷에서 관종이라고 극단적인 평가를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체질일 것이다. 외부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자기에 대한 호기심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양체질은 자기 자신을 향한 호기심도 좀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토양체질의 호기심은 색상이 화려한 것, 디자인이 특별한 것처럼 시각적인 것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런 물건들은 자신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표현의 일부가 된다. 낸시 랭의 고양이처럼 말이다.

결정 장애

초등학교로 향하는 길목에 문방구가 있다. 초딩 여자아이가 거기로 들어갔다. 이 아이는 예쁜 샤프펜슬을 사고 싶다. 그런데 종류가 너무 많다. 이것을 들었다가 저것을 집었다가, 이리도 보고 저리도 보고. 그러는 중에 주인아저씨에게 “이건 얼마예요? 저것은요?” 하면서 꽤 여러 종류의 가격을 물어본다. 그러면서 혼자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진열대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되풀이한다.

이 아이가 울면서 집에 왔다. 엄마가 샤프펜은 샀는지 물었다. “문방구 아저씨가 이제 자기네 가게에 다시는 오지 말라고 했어요.” 그 아저씨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을 것이다. 조금 귀찮다고 물건을 팔지도 않고 어린 손님을 쫓아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도무지 선택할 수가 없잖아요.”

2015년에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에서 8체질론을 강의할 때, 수강생들에게 자기 보고서를 받았다. 자신이 어떤 특징을 가진 사람인지 써보는 숙제였다. 40여 명 중에서 ‘나는 결정 장애가 있다.’고 쓴 학생이 네다섯은 되었던 것 같다. 나는 결정 장애란 용어를 그때 학생들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결정 장애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성격을 표현하는 신조어’라고 하니, 그런 성향을 지닌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것 같다.

저 초딩 아이는 내 딸이다. 문방구에 갔던 그때는 아마도 2000년대 초반일 것이다. 지금은 20대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데 통계학 전공으로 학위과정 중이다. 자기에게 딱 맞는 것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쉬운 공부’란 없기도 하고 말이다. 내 딸은 사교성이 부족하다. 대학에 처음 들어가서는 듣는 과목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대인기피증 같은 것도 있었다고 한다. 또 말주변도 없어서 남들 앞에 서서 발표하는 시간이 아주 부담스러웠다는 것이다.

솔직

토양체질은 낙천적이며 표현이 직설적이고 솔직한 편이다. 남과 세상을 향해 베풀고 봉사하고 헌신하려는 태도도 가지고 있다. 이런 특성과 성품이 조화를 이룬다면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성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이다. 「울지마 톤즈」의 고 이태석 신부처럼 말이다. 이때는 다른 어떤 특징보다 솔직함이 필수적일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토양체질과 정반대인 수양체질의 태도는 거짓일까? 그렇지 않다. 토양체질의 솔직은 자기 표출 욕구와 연결되어 있다. 이와 반대로 수양체질은 자기 표출적이지 않다. 스스로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이 가진 본디 의도와는 다르게 마치 고의로 숨기는 것 같게 된다.

그는 쌍꺼풀 수술을 받았다. 그런 그를 보고 그와 늦게 알게 된 다른 사람들이 본디 그에게 쌍꺼풀이 있던 것처럼 느낀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 그에게 “너 그 쌍꺼풀 진짜야?”하고 직접 물어오지 않는다면, 구태여 “나 쌍꺼풀 수술했어.”라고 먼저 말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가 스스로 드러내 고백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가 거짓을 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토양체질은 하고 싶은 얘기를 제일 처음에 하고, 수양체질은 하고 싶은 얘기를 제일 마지막에 꺼낸다. 또는 마지막까지도 감추거나 애매하게 흐린다.

© 이강재 원장과 떠나는 8체질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