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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가을은 유독 단풍이 예뻤다. 2022년 가을의 단풍은 그리 선명하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예년에 비해 약간은 물이 빠진 듯했다. 반면 2023년은 상대적으로 색이 짙어 계절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아산의 은행나무길이 유독 아름다웠던 이유이기도 했다.

가을, 아산의 백미

예전 아산은 손에 꼽는 국내 관광지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아산이라는 도시의 이름을 알린 건 온천이었다. 이제는 다른 여행지가 많아지면서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가을이면 아산은 단풍 여행지를 찾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은행나무길 덕분이다.

아산의 은행나무길은 제법 규모가 크다. 그 말은 노란 은행나무가 절정을 이룰 때, 장관을 보여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길은 곡교천을 따라서 조성된 가로수길이다. 충무교에서 현충사 입구까지 2.1킬로미터 구간에 총 350여 그루가 자란다. 이중 곡교천변에만 180그루가 심겨 있다. 생각해 보라. 350여 그루가 천변을 따라 골목마다 노란 은행잎을 비처럼 흩뿌리는 광경을. 이곳에 은행나무가 자리를 잡은 건 1966년 현충사 성역화 사업의 하나였다. 이후 1973년 10년생의 은행나무를 심어 지금에 이른다. 수령 50년이 넘은 이 가로수는 아름드리나무로 자라서 아산의 명물이 됐다. 그 커다란 나무가 가을을 온통 노랗게 물들인다.

처음 가는 사람은 이 광경에 입을 떡 벌리게 될 거다. 은행나무로 유명하다는 곳은 전국 각지에 아주 많다. 이 중 대부분은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그 위용을 뽐내는 경우다.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도 그렇고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도 그렇다. 사진 찍는 사람에게 잘 알려진 청도 운문사의 은행나무도 거대한 은행나무가 홀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케이스다. 물론 수령 600년이나 800년이 넘은 나무가 주는 위압감은 대단하다. 여럿이 모여서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과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할 만큼 세월이 빚어낸 경이로움은 서로 다른 매력이다. 그러니 아산의 은행나무길은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가을의 정취를 자아낸다. 여행을 좋아한다면 꼭 한번은 봐야 할 풍경이다. 가히 곡교천변은 가을 아산의 백미라고 할 만하다.

잠시 머물러도 좋은 거리

이 멋진 가을의 경치를 찾아오는 인파가 많은 건 당연한 일이다. 입소문은 사람을 부른다. 그만한 매력도 충분하다. 거리를 걸으며 사람들의 얼굴을 살핀다. 모두가 똑같은 표정. 입가에 미소를 띠고 행복이 가득하다. 이처럼 아름다운 계절을 만끽하는 데 있어 다른 감정은 필요 없으리라. 은행나무길은 차 없는 거리여서 양쪽 가로수 가운데에 서서 충분히 가을을 즐길 수 있다. 이 점이 더 많은 사람의 발걸음을 불러왔으리라. 떨어지는 은행이파리도, 땅 위에 수북이 쌓인 낙엽마저도 감성을 자극한다.

가을의 절정에 이 거리를 찾아야 할 이유는 이 절경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 길이 최근 아산의 문화예술 중심지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거리 한쪽의 골목으로는 곳곳에 문화예술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만큼 다채로운 전시를 감상할 기회가 주어진다. 버스정류장을 활용해서 조성한 정류장 갤러리 같은 곳은 적은 작품이어도 강렬하게 보여주기 좋은 공간이기도 하다. 독특한 외관이 눈길을 끄는 아산문화예술공작소도 반드시 들러볼 만한 장소다. 지하 1층에는 예술단체와 시민 동아리 연습실로 이용하는 ‘뽐나게 연습실’과 ‘도란도란 커뮤니티실’이 있고 1층에는 ‘아장아장 책놀이터’와 차 한 잔을 즐길 ‘은행나무 광장 카페’가 있다. 2층에는 별도의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이 길이 반드시 가을에만 예쁜 것은 아니다. 파릇한 연둣빛 싹이 돋아나는 봄과 녹조가 시원한 여름도 이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준다. 꼭 낮이 아니어도 좋다. 밤에는 천변으로 늘어선 조명이 노란 은행나무길을 밝힌다. 이때는 나무 아래가 아니라 반대편 길에 서서 감상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온 세상을 뒤덮은 겨울에 찾아보는 건 어떨까. 언제든 장소가 품은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여행지가 좋은 여행지다. 그런 의미에서 아산의 은행나무길은 여행하기에 참 멋진 곳이다.

챔피언의 손길이 만든 커피

은행나무길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 정확히는 6.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가면 지중해마을이라 부르는 먹거리타운이 나온다. 탕정지구라 부르는 지역인데, 신도시와도 같은 이 동네에 눈에 확 띄는 외관이다. 말 그대로 마치 그리스 산토리니를 옮겨놓은 듯한, 독특한 곳이다. 여기에 아산에서 꼭 들러야 할 카페가 있다. ‘브릭빈커피로스터스’라는, 아산 지역민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곳이다.

이곳이 유명해진 건 카페를 운영하는 황인규 대표 덕이다. 그는 국가대표 바리스타다. 2022 코리아 내셔널 바리스타 챔피언십 & 코리아 커피 인 굿 스피릿 챔피언십(2022 KNBC & KCIGS)라는 긴 이름의 대회에서 KCIGS 부분 우승을 거머쥐었다. KCIGS는 커피와 알코올류를 접목해서 특별한 음료를 만드는 커피 칵테일 대회다. 여기서 황인규 대표는 ‘계절에 어울리는 커피 칵테일’이라는 주제로 여름과 겨울 두 가지 콘셉트의 음료를 선보였다.

그런 인물이 운영하는 카페가 이곳에 있다는 건 얼핏 뜻밖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지역에 실력 있는 바리스타가 터를 잡고 카페를 운영할 때 그 지역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카페에서 사용하는 원두부터 남다르다. 브릭빈커피로스터스는 세계 곳곳에서 생산한 커피 중 상위 7퍼센트에 드는 스페셜티커피를 쓴다. 스페셜티커피는 국제스페셜티커피협회에서 여러 품목을 평가해서 그 점수가 80점 이상일 때만 받을 수 있는 최고등급 커피다.

이런 원두를 바탕으로 황 대표는 이 카페에 와야만 마실 수 있는 시그너처 음료를 만든다. 벨기에 전통 다크초콜릿과 초코크림, 프랑스식 누가틴을 더한 ‘클라우드 쇼콜라’와 화이트초콜릿에 연유, 크림을 더한 ‘퓨어스노우’ 두 가지다. 클라우드 쇼콜라가 쌉싸름한 어른의 맛으로 입안을 물들인다면, 퓨어스노우는 달콤한 듯 부드럽게 혀끝을 사로잡는다. 마치 천사와 악마가 각기 다른 매력으로 사람을 홀리는 듯한 기분이다. 아산 여행에서 이런 맛의 향연을 누릴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은행나무길과 커피, 이 두 가지만으로도 아산으로 떠나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한국인은 중간이 없다. 어느 순간 원두를 갈아 내린 커피가 유행을 타더니 이제는 누구나 하루에도 몇 잔씩 마시는 국민 음료로 자리 잡았다. 커피는 건강을 위한 순기능이 많다. 최근에는 네덜란드에서 8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하루에 블랙커피 1~4잔까지는 신장의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결과도 나왔다. 특히 당뇨병 환자의 경우 신장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커피에는 카페인이 들어 있어 뇌의 활성도를 높이고 집중력 향상에 효과가 있다. 더불어 중추신경을 자극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Cortisol)의 분비를 촉진한다. 이로 인해 각성 상태가 되어 피로감을 덜어줄 수 있다. 커피는 일부 암과 우울증,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에도 예방 효과가 있지만, 지나치게 많이 마시면 불면증, 심장 질환, 위장 질환 등의 부작용이 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