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키워드립니다.
 

“사람을 잘 뽑아야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한의대 6년 교육을 받고, 병원에서 인턴생활을 할 정도면 일단 기본이 됐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렇게 여기 오신다면 일단 검증된 것으로 보고 당신을 시험에 들게 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키워드립니다.“

교수님께서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라며 자신 있게 말한다. 흔히 수련의 생활이라 하면 피곤한 육체에 긴장된 정신의 조합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특히나 의국원이 몇 안 되는 규모가 작은 과의 경우에는 더더욱. 의국원이 10명이든 1명이든 한 과에서 처리해야 할 기본적인 업무라는 것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인터뷰하러 마주앉은 레지던트 3년차, 2년차 선생님 둘의 얼굴은 그야말로 싱글벙글이다. 스스로, 본인들이 일당백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클리닉 위주로 돌아가는 강동경희대학교병원의 특성상 한방3내과는 소화기/보양클리닉이라는 한의과대학병원 내 진료센터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 곳에서 수련의는 3년에 2명 선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과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니 이렇게 설명한다.

“입에서 항문에 이르는 위장관과 관련된 모든 질환을 대상으로 합니다. 특히 기능성 소화불량 환자 분들이 많이 내원하는데요. 최근 박재우 교수님의 크론병 연구 발표 이후 크론병 환자들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보양이라는 센터 이름은, 피곤을 호소하는 환자들은 저희 과가 도맡아 치료하겠다는 야심이 있는^^ 하하하”


당연한 것이 장점이 되는, 상식적이고도, 합리적인


3내과에서 소화기 질환 환자를 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당연한 것이 현실 속에서는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물론 수련의를 마치고 나면 ‘내과전문의’로 전문의 시험을 치르게 되지만, 한방병원에 방문하는 환자군이 제한적인 경우도 많고 병원 나름의 사정 등으로 인해 세부전공에 따라 좀 더 전문적인 수련 과정을 받아야 함에 불구하고 세부전공에 맞춰서만 환자를 진료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강동경희대병원 3내과에서는 소화기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 특히 일반 한의원에서 보기 힘든 완고하고 난치의 소화기 질환 환자들을 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그와 더불어 보양클리닉이다 보니 단순 피로를 호소하는 환자가 방문하였는데 악성 종양과 같은 기질적 질환이 발견되어 이를 양방과 협진하여 적절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는 등의 특징적인 진료 행태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또 하나 당연한 것으로 사생활과 업무에 대한 명확한 분리를 들 수 있겠다. 규정에는 없지만 수련의를 하는 도중에 결혼을 하게 되면 동료나 스텝 등 주변에서 싫어하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생활은 말 그대로 사생활일 뿐이고, 근무시간에 열심히 일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정착되어 있어 오히려 결혼을 장려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당연한 것, 상식적인 것이 받아들여지고, 업무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강점인, 평범하고도 특별한 곳이 바로 이 곳 강동경희대병원 3내과이다.


공부, 공부, 공부!


“기능성 증상을 호소하는 분, 원인이 없는 경우, 양약이 아무 소용 없는 환자들이 진짜 많이 오거든요. 그런 환자를 잘 치료해야지 명의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런데 실제 들어와 보니 쉽지는 않아요. 양약을 아무리 먹어도 안 낫는 환자는 한약도 쉽지는 않거든요. 그렇지만 오히려 그게 더 매력인 것 같고, 그런 환자들만 주로 보다 보니까 더 자신감도 생기고. 전문성도 생기고. 수련을 마친 후에도 소화기계 쪽으로 계속 진료하고 싶습니다.“

이와 같은 전공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끊임없는 공부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공부를 위한 교실 내의 지원은 확실하다. 외부 강의의 경우 시간을 할애하기 힘든 수련의 신분은 제약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가능하단다. 특히 연구와 관련된 강의를 듣는 경우에는 그 비용까지 전적으로 지원해주신다고 하니 본인이 배우고자 한다면 그 기회는 무궁무진할 수 밖에 없다.

“좋은 강의는 추천도 해주시고 들을 기회도 주세요. 다른 과에 비해서도 교육의 기회는 정말 확실합니다. 물론 그만큼 활용도 하시지만. 하하하. 그만큼 업그레이드 되는 거고, 또 실제로 쓰이게 되는 지식들이에요. 이걸 또 언제 쓸지 모르니까 집중도 더 잘됩니다.”

열심히 하는 만큼 수련의들에 대한 교수님의 기대도 크시다고. 그동안 내과학회에서 하는 학술대회에 나갔다 하면 상을 타는 바람에 상 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시는 교수님 덕에 부담백배다. 올해도 우리 2년차 선생님이 곧 탈 예정이라고 장담하는 의국장의 말에 믿음이 가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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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처럼 흐르는 끈끈한 동료애


인터뷰 하는 내내 은근 슬쩍 교수님 자랑을 하기에, 아예 대놓고 해보라고 교수님은 어떠시냐고 물어보니 더 신이 나서 이야기한다. 환자들에게 늘 웃으며 대하듯이 수련의들에게도 굉장히 젠틀하고 인격적으로 대해주신다는 것부터 다른 과에서는 교수님과의 식사가 어색하고 불편한 경우가 많은데 3내과는 매일 점심시간 교수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오히려 관계가 더 친밀하다는 이야기까지 자랑이 끊이질 않는다. 교수님과 수련의, 수련의 3년차와 2년차 간에 딱딱한 위계질서보다 더 강한 신뢰와 유대감이 느껴졌다.

바이올린을 수준급으로 연주하시는 교수님들과 플룻을 수준급으로 하는 의국장에 이어 플룻에 입문한 레지던트 2년차까지, 악기 하나는 해야 3내과에 들어온다 싶을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이 곳의 또 하나의 자랑이다. 병원 내 직원들과 동호회를 결성,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병원 로비에서 연주회를 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는 일종의 협업이다. 오케스트라 단원처럼 한 명 한 명이 각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서로를 믿고 자신의 선율을 상대방의 소리에 더해가는 과정에서 완성해 가는 협주곡처럼, 끈끈한 동료애를 바탕으로 그렇게 3내과가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3내과에 들어오려면 악기를 하는 것 이외에 어떤 조건이 필요하냐는 농담 섞인 질문에 진지한 답변이 돌아왔다.

“임상연구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 저희 과에 들어온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교수님께서 연구에 관심이 많으신데다가 교육의 기회도 많고, 실전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기회가 아주 많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업무들을 레지던트이니까 네가 다 해라. 이런 것은 아닙니다. 필요하면 연구코디네이터를 쓴다든가, 그렇게 합리적으로 돌아간다고 생각돼요. 그래서 고생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쪽에 관심 있고, 실력 면에서 성장하고 싶은 분이 오면 굉장히 좋을 것 같습니다.”

무조건 키워드립니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 곳에서 한의계의 시원한 그늘이 되어 줄 나무들이 앞으로도 계속 자라나기를 기대해본다.



KMCRIC 의국스토리 기자: 김송이 cl2300@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