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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IMH 학회에 다녀왔다. 임상의가 해외 학회라니, 이게 웬 경사인지… 임상의가 해외 학회에 다녀오기란 참 쉬운 일이 아님을 몸소 느끼며, 학회에 가게 된 이야기부터 꺼내 봐야겠다. ICIMH(International Congress on Integrative Medicine & Health)는 통합의학 및 보건 분야의 국제 학회로 ISCMR(International Society for Complementary Medicine Research)에서 공동으로 기획하고 후원한다.


2018년 3월의 한의학콘서트 자료를 만들면서 경추부의 침 치료에 관한 강의 자료를 준비하였던 것을 ICIMH 학회 홈페이지에 초록으로 제출해보았다. 제출했다는 말보다는 한번 넣어보았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어찌 되는지 보자고 던져본 거니까, 게다가 추가 접수라서 안 되면 말지..하는 생각이었다. 한 달쯤 지났을까 갑자기 포스터 준비에 관한 메일을 받았고, 한의원과 가정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한의원은 다행히 함께 진료하고 있는 이현엽 원장이 흔쾌히 다녀오라고 허락을 해주었으며, 아내도 아이 둘을 혼자서 돌보아 주겠다며 적극적으로 응원해줘서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해외 학회는 처음 가보는 터라 포스터 발표를 어찌해야 할지 난감해서 주변에 물어도 보고, 구글에 검색도 해보았다. 이미지 검색에서 다행히 아는 얼굴이 보인다. 조준영 원장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포스터에 관한 조언도 해주시고, 마지막까지 확인해 주셔서 포스터 인쇄까지 마쳤다. 임상의 한 명을 학회에 보내려면 이렇게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여러 사람의 도움에 힘입어 포스터를 챙겨 워싱턴행 비행기에 올랐다.


학회 일정표 (링크 바로가기 클릭) 를 미리 살펴보니, 통합의학 관련 학회이지만 주로 태극권, 요가, mind-fulness, massage에 이어 침 관련 내용이 곁들여진 정도의 분위기로 파악이 되었다. 통합의학에 대한 관점이 침을 주로 사용하는 한국과는 미묘하게 다른 점을 미리 느끼면서 행사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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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Lesondak - Smart Phone, Dumb BioMechanics. Fascia-Based Pain Relief for Modern Times


첫날 근막(Fascia) 관련 워크숍은 근막과 관련된 여러 연구들을 소개하면서 근막을 단순히 근육을 감싸고 있는 막이 아닌 광범위한 개념으로 시야를 넓혀주었다. 거기에 근막을 실전에서 치료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실습시간까지 더해 3시간을 알차게 채웠다. 참여자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재치 있게 워크숍을 이끌었던 David Lesondak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부스에서 몇 개월 전 발간된 「Fascia」라는 책을 구매하여, 저자의 친필사인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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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ondak은 Ida Rolf의 Rolfing과 Thomas Myers의 Anatomy Trains를 통해 주로 국내에 알려진 근막에 관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서 그외에 근막이 가지는 감각기관으로서의 기능을 강조하였다. 거기에 근막과 뇌의 연관성을 강조하면서 Glia cell을 재조명하기도 하였다. 임상적으로는 스마트폰 사용으로 망가지는 현대인의 몸을 치료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보여주기도 하였는데, 견갑거근, 흉쇄유돌근, 소흉근, 전사각근, 내측근간격막, 대후두직근, 요방형근을 포괄적으로 치료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었다. 강연이 끝나고, 실제 치료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하였는데, 치료 시간이 환자 1명당 50분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와는 다른 의료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Melissa Barber - A little evidence goes a long way... how to write a high-quality case report


오후에는 증례보고 워크숍에 참석했다. A little evidence goes a long way... how to write a high-quality case report 라는 제목으로 Melissa Barber가 진행하였는데 구글 드라이브를 통해 자료를 공유해주면서, 증례보고의 예시를 다양하게 보여주고 핵심요소들을 잘 짚어주는 워크숍이었다. 참석 인원이 10명으로 편안히 소통하는 분위기에서 진행되었고, 3명씩 짝을 지은 조별 토론을 통해 증례보고의 기본 틀을 되짚어 볼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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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el - Role of Acupuncture in Integrative Medicine


둘째날은 Role of Acupuncture in Integrative Medicine이라는 주제로 패널토론이 있었다. Osher Collaborative에서 운영하는 미국 전역 5곳의 클리닉 사람들이 참가하여 통합의학 현장에서의 침의 위상을 되짚는 시간을 가졌다. 미국 내 침 관련 여러 통계와 현황부터 리뷰한 UCLA의 침구사의 강연을 시작으로, 하버드의 Langevin 교수님은 침 관련 연구의 기본적인 문제들부터 되짚어주었고, UCLA에서는 acupuncture와 dry needling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주기도 하였다. Osher Collaborative에서 운영하는 미국 내 5개 통합의료센터 각각의 운영현황과 대상 질환 등에 대해서 패널에게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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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evin 교수님의 발표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어서 냉큼 사진을 찍어보았다. Interdependence of duration and dose라는 제목의 슬라이드였는데 자극 시간과 자극의 강도에 따라서 세포신호, 유전자 표현, 단백질 합성에 대한 영향이 달라질 수 있음을 그래프로 표현했다. 여기서는 수 초간의 자극은 세포신호를 유도하고, 수 분 이상의 자극은 유전자 표현이나 단백질 합성을 유도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즉, 자극 시간에 따라 침의 기전이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짚어주었다. 매일 한의원에서 접하는 환자 중 어떤 환자에게 세포신호를 이용해서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고, 어떤 환자에게 유전자 표현이나 단백질 합성의 기전을 이용해야 할지 고려해야 할 것 같다. 기본적으로 기능적인 장애에는 단기간의 자극도 충분하겠지만, 만성적인 변화나 기질적인 변화가 진행된 경우에는 치료 시간을 늘리는 방법이 동반되어야 할 것 같다. 만성적인 건병증, 인대 질환의 경우에는 콜라겐 합성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므로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여담이지만 Langevin 교수님은 논문에서 저자 이름으로만 접하던 분이라 나에겐 연예인을 목도한 느낌이었다. 나중에 복도에서 만나서 위의 그래프에 대한 reference를 여쭤보았는데, 저건 뭐 별도의 참고문헌이라는 것이 없고, 아주 기본적인 내용이라고 하시면서 cell biology 교과서를 찾아보라고 대답해주셨다. 그래프상의 곡선 형태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여쭤보았더니, 그건 본인이 그린 거라고 설명을 해주셨다. 난데없는 질문에도 열린 마음으로 대답해주셔서 나의 연예인께 감사할 따름이다.


Symposium - Interoception, Meditation, and Pain


Interoception에 대해서 연구자들의 발표가 있었다. 나에겐 Interoception이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하지만, 여러 연구실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고, 중추신경계의 회로들과의 연관성을 찾아가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Proprioception이라는 용어가 많이 언급되고 치료에서 응용되기까지 걸렸던 50~60년을 생각하면… 시간이 흐르면서 interoception이라는 용어도 더 자주 사용되고 임상적인 시사점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후 세션이 끝난 뒤 이어지는 포스터 발표에서는 나를 포함한 100여 명의 포스터를 둘러볼 수 있었는데, 주로 mind-fulness, massage, Tai-Chi, meditation 등에 관한 포스터가 많았고, 침 관련 주제는 별로 없어서 Integrative medicine에서 침이 갖는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작음을 느꼈다. 그리고 다른 분야들과 통합적으로 치료를 구성할 수 있도록, 내 것에 대한 좁은 마음을 깨고, 포용력으로 다가서야겠다고 다짐했다. 내 포스터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에게 설명도 해드리고, 다른 분들 포스터를 둘러보면서 이메일도 주고받고, 개별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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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e M. Langevin - Connective Tissue: Putting the Body Back Together Again


하버드 대학 Langevin 교수님의 연부조직에 관한 기조연설을 듣고, 여러 중요한 키워드들을 숙제로 받았다. 연부조직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연구방법, 과학자로서의 태도 등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뼛속까지 임상의라, 화두가 생기면 그것을 임상적으로 어떻게 응용할 것인가 늘 생각하는 편이다. Langevin 교수님의 강연을 통해 연부조직에 하는 침 치료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게 될지 고민해보게 되었다.


핵심적으로 스트레칭과 연부조직, 그리고 면역인자와의 연관성을 밝혀주었다. 동물실험에 불과하긴 하지만 임상적으로도 응용할 수 있는 단초를 주었다. Interstitium이라는 실체를 통해서 연부조직의 구성을 체계화하고, 암 치료에 있어서는 stroma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암의 형성과 전이에 연부조직이 작용한다는 점을 짚어주었다. 면역체계에서 resolvin 분비와 관련된 스트레칭과 소염작용과의 관계도 제시하였다. 하지만 주로 동물실험 위주의 연구가 소개되어, 인체에 적용할 때 적정한 스트레칭의 강도, 방법, 기간에 대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동물실험에서는 암모델을 만들기 위해서 암세포를 주입하여 발현되는 상태를 관찰하지만, 인체에서는 유방암에서 마사지나 스트레칭을 통해 전이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도 고려하여 주의 깊은 적용이 필요하겠다.


전체적으로는 약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려고 하는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여 물리적인 실체를 통해 질병과 치료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화두를 남기며 강연을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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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rizio Benedetti - Placebos, Words and Drugs: Sharing Common Mechanisms of Action


학회에서 만나뵌 경희대학교 채윤병 교수님이 아니었더라면 Benedetti의 강연을 지나쳤을 텐데, Placebo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라는 소개를 듣고 채윤병 교수님과 나란히 강연을 들었다


침이 플라시보에 불과하다라는 여러 지탄들을 숱하게 들으면서 플라시보에 대해서 다소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강연을 들으면서 임상의로서 플라시보를 어떻게 극대화 해서 환자의 치료적 효과를 극대화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들이 샘솟았다. 환자에게는 내 입에서 나오는 말, 후각 또는 시각적인 자극에 더하여 손을 타고 전해지는 내 온기까지 치료적 효과를 가지게 된다. 침 치료를 하면서 침이 가지고 있는 생리적이고 물리적인 효과 이외에도 플라시보 효과를 어떻게 극대화하고 이를 환자에게 이득이 되도록 할 수 있을 지, therapeutic context를 조성하는 문제에 대한 화두를 넘겨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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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Wayne - Bringing the Body Back into Mind-body Research


Peter 교수님 역시 Langevin 교수님과 함께 하버드에서 오신 분인데, 본인의 태극권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계신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여러 연구를 통해 태극권이 보행능력, 인지기능 등 다양한 방면의 기능을 향상시킨다는 것을 쉽게 설명하면서, 보행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기능을 관찰한 연구들을 소개하였다. 또한, 건강과 인지기능과 연합운동을 관찰하는 지표로서 보행을 자세히 관찰하는 방법들을 보여주고 무술에 호흡, 다양한 인지기능 향상을 도모하는 통합적인 도구로서의 태극권을 열정적으로 안내하였다. 임상적으로는 치매, 파킨슨, 낙상 위험 등과 관련한 연구들도 함께 소개하면서 재미있는 강연을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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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mposium - Neural Mechanisms of Manual Therapies for Chronic Pain


5명의 패널이 만성 치료에 대한 수기치료의 효과에 대한 여러 연구를 정리해서 보여주었는데, 수기 치료를 정량화하기 위해서 생쥐를 잡아놓고, manipulation 하는 장치를 만든다든지 하는 집요한 방법론은 흥미를 끌었다. 결론적으로 침뿐 아니라 수기 치료도 만성 통증에 대해서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을 간략하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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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을 하는 입장에서 해외 학회에 다녀오는 것은 꿈에만 그리던 일이고, 학교에서 연구하시는 분들에게나 해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좋은 학회에 다녀오고, 많은 치료적 영감과 최신의 연구 결과들을 담아왔으며, 세계적인 석학들을 만나게 되고, 포스터를 보면서 여러 아이디어를 얻고, 이메일을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학회라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알았더라면 대진을 쓰고서라도, 또 아내와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해서라도 진작에 나와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내가 이런 지식과 영감을 몇 년 전에 얻었더라면, 지금의 내 관점과 치료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약간의 아쉬움과 함께 몰려온다.


이번에 학회에서 열심히 받아 적고, 사진 찍고, 관심 가는 참고문헌을 메모해왔는데, 아마도 몇 개월간은 그 내용들을 복기하고, 참고문헌 원문을 찾아보면서, 그렇게 그 여운을 증폭시켜 머릿속에 꼭꼭 눌러 담아가며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용렬한 임상의의 해외 학회 참관기를 KMCRIC에 싣도록 허락해주신 이향숙 센터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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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MCRIC 학회 참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