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der’s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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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학사 졸업 1995 경희대학교대학원 한의학과 석사 졸업 1999 경희대학교대학원 한의학과 박사 졸업
2017~현재 자생의료재단 명예이사장 2012~현재 척추신경추나의학회 명예회장 2011~현재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오스테오페틱의과대학 명예교수 2010~현재 대한한방병원협회 회장 1998~현재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외래교수 2014~2017 재단법인 자생의료재단 & 자생한방병원 이사장 1991~2012 척추신경추나의학회 회장 1999 자생한방병원 승격 개원 1990 자생한의원 개원
추나(推拿)요법이란?
Q1. 간단한 소개 말씀 부탁드립니다.
A1. 자생의료재단 명예이사장 신준식입니다. 저는 척추신경추나의학회의 전신인 대한추나의학회의 설립자로 추나요법이 국민건강보험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온 당사자입니다.
Q2. 추나(推拿)요법이란 어떤 요법이며 카이로프랙틱 (Chiropractic)과 차별화된 추나요법만의 장점과 특징은 무엇인가요?
A2. 카이로프랙틱과 추나요법은 둘 다 손으로 하는 수기요법입니다. 하지만 치료하는 주체와 치료 방법에서 차이를 보이죠. 추나요법은 정식 한의 의료 행위로 한의사가 시행하고, 카이로프랙틱은 미국의 DC (Doctor of Chiropractic)가 시행합니다.
카이로프랙틱은 해부학에 기초한 치료법이며 정골요법 (Osteopathic)은 신경학, 근육학에 기초한 치료법입니다. 중국의 추나 (Tuina) 요법은 경혈학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일본의 접골요법은 뼈 교정에 집중합니다.
추나요법을 발굴하고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각국의 대표적인 수기요법의 장점을 참고했습니다. 한국인에게 맞는 추나요법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신전 (늘여서 펼침)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죠.
추나요법은 교정 전 관절과 근육, 인대를 충분히 풀어준 후 교정을 합니다. 이처럼 부드러움이 강조된 추나요법은 타 수기요법보다 부작용이 적으므로 뼈와 관절이 약한 한국인에게 적합합니다. 복잡 추나라고 부르는 순간적인 교정 전에 충분하게 신전을 시행하는 것은 한국 추나요법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나요법 연구 계기와 과정
Q3. 학부생 때부터 추나요법에 관한 공부를 시작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3. 학창 시절부터 추나요법에 관심을 가졌었어요. 경희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선친께서 계단에서 미끄러지셔서 척추가 골절되셨어요. 골절되고 여러 질환이 오면서 6년 만에 돌아가셨죠. 그때 마음이 매우 아팠어요. 당시엔 치료해드릴 수 있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결핵도 침범하고 간경화도 왔어요. 항생제를 쓰다 보니 간이 나빠지게 되었지요. 결국 아버지께서 척추 골절 때문에 돌아가셨고, 그때 일을 계기로 척추만큼은 수술하지 않고 치료하고 싶다고 마음먹게 되었죠.
아버지께서 의학, 한의학 복수면허 의사이셨고 어릴 적 왕진을 다니실 때 제가 따라다녔어요. 아버지께서 수기요법을 통해 뼈를 맞추는 게 신기했었죠. 손으로 몇 번 탁탁 소리를 내면서 치료를 하시면 팔 빠져 못 움직이던 사람이 다시 팔을 움직이니까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한의학 공부를 하고 보니 그게 추나요법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4. 추나요법을 탄생시킨 과정이 궁금합니다.
A4. 전국에서 척추 관절을 만지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다 돌팔이였어요. 이론도, 대단한 술기도 없었죠. 작은 기술로 침소봉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제대로 정립해보려고 자생의학회를 만들었어요.
초기 멤버 6명을 중심으로 해서 50여 명까지 회원 수를 늘렸습니다. 또한 제대로 배우기 위해 해외의 학자들을 초청했어요. 미국의 카이로프랙틱, 정골의학 (Osteopathic Medicine), 일본 접골사들의 수기요법, 중국의 추나를 전공하는 교수들을 다 초청해서 수기요법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각 요법의 장점은 물론 단점들도 알게 되었죠. 예를 들어 카이로프랙틱의 경우, 미국 팔머대학 (Palmer College of Chiropractic)의 건스테드 (Gonstead) 박사가 개발한 기법들은 서양인 체구에 맞는 기법입니다. 환자를 묶고 손으로 “우두둑우두둑” 소리를 내며 과격하게 교정하는 건데, 그걸 그대로 우리나라 환자에게 써보니 다음날 환자가 더 아프다고 했어요. 그때 카이로프랙틱 기법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형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기법을 모아서 리모델링, 리메이킹을 하자 다짐하고 한국형 추나를 다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의 여러 기법을 다 가져와서 미국식 카이로프랙틱처럼 thrust를 가해서 교정하는 게 아니라 근육과 관절을 풀어주는 방향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근육을 신전하고 난 뒤, 관절의 가동성을 늘리고 thrust를 약간 가하여 교정하니 부작용이 없이 치료가 잘되고 정말 좋은 거예요. 그렇게 여러 수기요법을 집대성한 결과, 한국 추나요법이 탄생했습니다.
Q5. 당시 추나요법에 대한 반응은 어땠나요?
A5. KBS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 출연해 ‘요통, 디스크. 수술 없이 치료한다.’를 주제로 대해 이야기하고 직접 추나요법으로 치료하는 걸 보여줬어요. 1993년에는 조선일보에 ‘나쁜 자세 고쳐 질병 치료한다.’ ‘30회 받으면 좋아진다.’라는 내용의 신문기사도 투고했습니다. 당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방송 후에 환자 6,000명이 예약을 했어요. 역삼동에 있던 한의원 건물이 꽉 찼고, 주변 음식점까지 인산인해였죠.
Q6. 반면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A6. 의학 쪽에서 공격을 많이 받았어요. 1990년대 초반에는 디스크는 무조건 수술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KBS 같은 공중파에 나가서 수술을 안 한다고 하니까 온 사방에서 공격했어요. 근거가 어디 있냐고 묻고, 사기꾼이라고 하고, 고발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날 도와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요. 한의계에서도 잘 안 도와주고 그때 제일 힘들고 슬펐습니다.
또 한의학회에 추나의학회를 정식 학회로 등록할 때, 대학교수들 중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왜 비면허자들이 사용하는 기법을 연구하느냐고 지적을 많이 했죠. 처음에 학회에서 받아주지 않아서 그다음 해에 어렵게 학회에 들어가게 되었죠.
Q7. 추나요법을 배우고 싶어 하는 한의사도 많았었다고 들었습니다.
A7. 추나요법이 유명세를 치르면서 한의사들이 앞다투어 배우고 싶어 했었죠. 그래서 1995년에 이론서인 <한국 추나학>이란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표준화된 교육을 위해서 표준임상진료지침도 만들었죠. 그러다 보니 교육위원을 맡을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아카데미를 만들고 ‘한국 추나의 체계적 교육을 위한 교육위원’ 52명을 길러냈어요. 추나 교육 중에 한 번만 결석해도 제적을 시켰어요. 매우 엄하게 교육했지요.
여기 있는 7개의 비디오로 교육을 했습니다. 이 자료들을 1995년에 만들었어요. 그래서 지금 전국 한의대에서 가르치는 추나가 모두 같아요. 표준화가 된 것입니다.
추나요법의 급여화
Q8. 추나요법을 국민건강보험에 진입시키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A8. 추나가 붐이 일면서 환자들도 많이 찾고, 한의사들도 적극적으로 배우길 원했죠. 그래서 추나를 대중화시키고, 나아가 국민건강보험에 들어가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환자들이 더 많이 찾고 추나학이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Q9.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추진하시면서 난관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A9. 우선 추나요법은 한의학계에서 학문적으로 인정하는 의료행위입니다. 하지만 외관상 유사한 카이로프랙틱은 의학계에서 학문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추나요법은 한방의료행위라는 유권해석을 만들어냈습니다. 한의사를 위해서였죠.
추나요법의 근거자료를 많이 만들어야 했어요. 그래서 추나의학회 회장직을 제자인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신병철 교수에게 물려줬습니다. 그러면서 추나에 대한 논문을 많이 쓸 것을 부탁했어요. 논문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라고 했죠. 그때부터 8년간 신병철 회장이 정부에서 요구하는 안정성, 유효성, 경제성 평가 등을 충족하는 evidence를 만들었어요.
추나요법이 이번 건정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을 통과하는데 의협에서 계속 반대하고 훼방을 놨어요. 안정성, 유효성 등을 이유로 삼았죠. 그럴 때마다 근거자료를 다 만들어서 제출했습니다. 병원, 학회뿐 아니라 한의사협회의 도움도 많이 받았죠.
그러면서 매일 정부 관계자를 만나러 다녔어요. 관계자들에게 “국민들이 이렇게 원하는데 보험 해줘야 할 거 아니냐?”고 따지고, 자료도 많이 제출했고요. 정부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켰고 조사 결과 국민들의 치료 만족도가 92%를 넘었어요. 정부가 관련 자료들을 보고 안 해줄 수가 없었겠죠. 반대할 명분이 전혀 없었습니다.
정부가 우선 시범사업부터 제안해서 65개 시범사업 기관을 선정했습니다. 그 결과 추정 예산이 6,000억이 나왔어요. 생각보다 많이 나와 정부와의 협상 끝에 환자 1인당 연간 20회, 한의사 1인당 하루 18명을 치료하도록 제한을 두었습니다. 모든 일은 시작이 반입니다. 예산은 추후에 늘리면 되니까 우선 성문을 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문이 한 번 열리면 작은 문들은 쉽게 열리겠죠?
꼭 말하고 싶은 건 이 모든 일이 절대로 혼자서 이뤄낸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한한의사협회 최혁용 회장과 그 임원들, 척추신경추나학회의 신병철 회장과 학술부, 대한한방병원협회, 대한한의학회의 지원이 있었기에 건정심을 통과할 수 있었고 어떤 단체가 방해하더라도 다 이겨낸 거라고 생각해요.
Q10. 이번 추나요법 국민건강보험 진입의 의의는 무엇일까요?
A10. 추나요법과 같이 행위 정의, 상대 가치 점수 평가 등의 절차를 거쳐 국민건강보험 급여화가 된 것이 사실 한의계에서는 처음입니다. 옛날에 침술이나 구법 같은 것은 건정심을 통과한 게 아니었고 그냥 들어갔던 거였어요. 이번을 계기로 다음에 첩약이나 다른 요법들도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이번 급여화로 예산 1,200억을 확보한 것뿐만 아니라 한의계도 보장성 강화에 발을 맞추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추나요법이 밟은 트랙을 따라 모든 한의 치료들이 적절한 근거를 제시하면 국민건강보험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길을 열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는 거지요.
Q11. 앞으로 한의 술기들이 사보험의 적용도 받을 수 있을까요?
A11. 실손보험 진입을 목표로 지금 한의사협회와 한방병원협회에서 8년 동안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의사협회랑 공조하면서 작업 중입니다. 현재 90% 능선까지는 왔는데 10%의 깔딱 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어요. 손해보험협회와 협상하면서 그쪽에서 요청하는 자료를 다 줬어요. 그 결과 표준약관을 개정하기로 2018년도에 일단 한의사협회, 한방병원협회, 손해보험협회, 생명보험협회 합의서를 썼어요.
그런데 합의서를 써놓고 나서 그쪽에서 약속을 안 지켜요. 국회를 찾아 질의하고 금감원 (금융감독원) 주재로 보험협회와 한의 단체가 계속 심도 있게 의논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머지않아 결국 실손 특약으로 단독 한방상품까지 나올 수 있다고 저는 믿어요.
한의학의 치료 효과와 미래
Q12. 지금까지 치료하셨던 환자분들 중 기억에 남는 난치병 사례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A12. (몇몇 자료를 보여주시며) 이분은 파킨슨 병을 진단받아 약을 먹고 계셨어요. 파킨슨 병 때문에 미국, 유럽, 호주 등 유명한 치료법 있는 곳은 다 찾아다니신 분이에요. 영상을 보면 한 번의 치료로도 증상 완화가 잘 되는 게 보이죠? 파킨슨 병은 완치가 힘들지만, 한의학으로 증상 완화를 탁월하게 해낼 수 있어요. 이외에도 무도병이나 하반신 마비, 구안와사 등등 많은 환자들이 기억납니다.
환자들의 동의를 얻고 모아둔 자료가 5,000건이 넘습니다. 이것을 외국 의사들한테 보여주면 놀라움을 금치 못하죠. 메커니즘이 뭐냐고 엄청나게 물어봅니다. 내 진료 인생 30년 동안 쌓아놓은 자산이죠. 하하.
Q13. 한의학이 어디까지 치료할 수 있을까요?
A13. 중풍이 왔을 때 보통 서양의학에서는 뇌압을 떨어뜨린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3일 정도 응급처치를 하죠. 뇌경색, 뇌출혈 등이 왔을 때는 초반엔 이렇게 치료하는 게 낫습니다. 그런데 응급처치 후에 신경이 잘 살아나지 않잖아요. 그 신경을 살릴 수 있는 건 한의 치료가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의 치료를 제대로 하면 그 자리에서 신경을 살릴 수 있습니다. 잘되는 경우엔 다리를 못 움직이는 사람이 한 번에 다리를 움직일 수도 있지요.
이런 사례들을 현재 서양의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요. 이미 뇌졸중 (stroke)이 와서 뇌의 운동신경이 마비되어 위아래로 연결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한의 치료를 할 때 “어떤 신호가 전달되길래 다리를 들을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거야?”라고 다들 의문을 가지지만 현재로선 이해할 수 없죠.
결론적으로 응급처치 이후 여러 번 치료하면서 점점 신경을 살리는 건 한의학이 더 좋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협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죠. 중풍, 후유증, 재활은 한의학이 정말로 좋은 면이 많습니다. 전문적인 협진병원이 더 발전해야 하고 우리의 강점을 더 살려야 합니다.
Q14. 회장님께서 생각하시는 한의학의 바람직한 미래가 궁금합니다.
A14. 평소 ‘현대 한의학’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곤 합니다. 그 시대에 머물러 있지 않고 꾸준히 발전해 가고 있기 때문이죠. 시대에 따라 질환의 양상도 달라집니다. 결국, 보다 효과적인 치료법이 있다면 의학의 경계에 구애받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환자 우선주의’의 관점에서 한의학과 의학의 장점을 아우를 수 있다면 우리나라 의학계가 보다 빨리 통합의학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Ups & Downs
Q15. 한의대 입학 이후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A15. 솔직한 심정으로는 힘들었던 순간이 너무 많아서 한 가지만 말하기가 어려워요. 하나를 해결하면 하나가 터지고, 35년 동안 그랬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볼 땐 화려해 보이겠지만 속은 많이 상했어요. 내가 흰머리가 안 나는 사람이거든요. 최근 3~4년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되었어요. 아마 내 마음을 여기저기 누르면 다 피고름이 날 거예요. 힘든 순간이 참 많았네요.
Q16. 한의대에 입학한 이후,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A16. 특별히 언제가 기뻤을까요? 글쎄요, 국가고시를 치고 면허증 받았을 때인가? 아! 환자 볼 때 최고예요. 탈진되어 힘들 때도 환자를 보면 힘이 납니다. 혼자서 환자 173명까지 본적도 있고 보통 하루에 150명씩 10년 이상 봤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허리 병 환자를 제일 많이 본 의사로 한국 기네스북에도 올라갔어요.
예전엔 잠을 4시간밖에 안 자고, 식사도 15분 만에 했어요. 서서 밥 먹을 때가 많았어요. 앉아서 먹으면 오래 걸리니까. 그렇게 정신없이 살았어도 환자를 보니 매일매일 행복했습니다. 그때 동영상을 보면 눈에서 레이저가 나왔다니까요? 이제 내일모레면 70살 먹은 할아버지인데, 20년 이상 되신 환자분들이 저 보고 예전이랑 똑같다고 해요.
앞으로의 이야기
Q17. 진로 고민이 많은 한의대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A17. 한약을 먹으면 간이 나빠진다는 낭설이 파다하죠? 천만의 말씀. 우리 병원에서 입원환자 7,00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는데 간을 치료하는 한약이 아니라 디스크를 치료하는 한약을 투여했습니다. 그 결과 간이 더 좋아졌어요. 7,000건이면 엄청난 횟수잖아요. 한번 인터넷에 논문을 검색해보세요. SCI급으로 나갔으니까. 이렇게 간 치료에도 한의학은 강점이 있습니다.
아토피는 근본 치료가 잘 안 되죠. 스테로이드를 쓰면서 근본치료가 안 될 때 한의학이 강점이 있어요. 메니에르 증후군도 있죠. 내림프 수종으로 인해 어지럽고 갑자기 쓰러지고 토하기도 하잖아요. 이런 건 한의학으로 정말 치료가 잘되는 쪽에 들어가 있어요. 더 어려운 병들도 한의학으로 치료하면 효과를 많이 봅니다. 의학에서 잘 안 되는 걸 커버하는 게 많지요. 저는 한의학은 특별히 내과에 강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은 근골격계 환자만 치료하려 하지 말고, 내과적 측면의 강점을 살려서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치료의학으로써 한의학을 발전시켜보세요. 내가 나이가 10년만 젊다면 근골격계보다 중풍이나 간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또 하고 싶어요. 그걸 발전시켜서 후학들한테 물려주고 싶어요. 너무 안타까운 것이 이렇게 훌륭한 학문이 그대로 묻혀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연구하고 배워서 지금 이야기한 장점들을 발전시켜 세계적인 병원 또는 의원을 키워내는 의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Q18. 회장님의 Next step이 궁금합니다.
A18. 한의학의 과학화와 국제화, 그리고 민족의 얼을 찾는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2014년에 개인재산을 다 사회에 환원했어요. 자생의료재단은 공익 한방의료재단입니다. 보건복지부 거예요. 지금 20개 병원도 모두 재단법인에 넣었죠. 우리가 병원을 운영하지 않으면 건물을 팔아서 보건복지부로 돌아가게 됩니다. 재단은 박병모 이사장에게 넘기고 이사진들은 한의학과 교수들로 채웠어요. 이렇게 한 목적은 사회공헌과 R&D에 힘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병원에선 1년에 15편 이상 SCI급 논문을 내고 있습니다. 수련의들은 SCI급 논문을 써야지만 수료를 시킵니다. 4년 동안 한 편도 못 쓰면 졸업을 못 해요. 다행히 아직 졸업을 못 한 사람은 없어요. 아까 말한 것처럼 “한약 먹으면 간이 나빠진다.”라는 식으로 공격을 받으면 우리는 “8,000명 치료했더니 간이 안 나빠지고 더 좋아지더라.”라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공격받은 내용을 가지고 더 좋은 논문을 더 내는 거죠.
지난번에 수련의 선생님이 낸 논문을 보면, 심평원에서 나오는 20만 건이 넘는 환자들의 case를 정리해서 분석해 보니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들의 수술률이 50% 더 낮게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발표가 방송으로 나갔고 한의원마다 복사해서 걸어놓았다고 듣기도 했어요. 이렇게 한의 치료의 효과를 증명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evidence’ 그 자체입니다.
한의학의 세계화에도 집중하고 있어요. 해외 각 대학에서 강연하고 한의학을 알리고 세계화하는 작업을 15년 동안 하고 있죠. 2002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 (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 UCI) 의과대학에서 한국 추나학을 강의했어요. 2008년엔 WHO에서 초청해서 국가대표로 강의하러 갔어요. 거기서 한국 추나와 카이로프랙틱, 정골요법과의 차별점과 특장점에 대해 강의하고 시범도 보였습니다.
그 후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정골의과대 (osteopathic medical school)와 인연이 되어 2011년부터 강의를 하기 시작했어요. 평가가 너무 좋으니 거기서 명예교수로 앉혔어요. 4년 뒤엔 미시간주립대뿐 아니라 AOA 보수교육을 할 수 있는 보드를 받아서 미국 전역의 의사들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민족의 얼을 찾는 일을 할 예정입니다. 올해가 3.1 운동 100주년이죠. 제 선친들도 독립운동을 하셨어요. 아버지는 독립군으로 활동하다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열 달간 복역하셨고, 할아버지이신 신흘 장군은 대전자령전투(大甸子嶺戰鬪)에서 군의관으로 활약하셨죠. 사실 아버지의 유서에 할아버지 이야기가 다 쓰여 있었어요.
그렇지만 유공자 신청은 안 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잃어버린 영웅들을 찾는 정상규 작가에게 연락이 오고 서원하라고 해서 공개하게 되었죠. 최근 국민대 이기형 교수가 찾아낸 기록들에 할아버지의 행적이 자세히 나와 있었어요. 군의관으로 활약하신 이야기를 듣고 많이 먹먹했어요.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민족의 얼’을 위해 독립유공자 유족에게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지금 사회를 보면 일제강점기 친일파들은 좋은 대학도 나오고 대대손손 잘 사는데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너무 가난하고 못 배웠어요. 이제는 그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후...
짧지 않은 인터뷰 시간이었는데 명예이사장님께서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난관에 수없이 부딪혔지만, 그때마다 정면돌파를 택해온 신준식 명예이사장님의 인생사를 들으며 한의계 후배로서 본받을 점이 상당히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귀한 시간을 내어주신 신준식 명예이사장님과 자생한방병원 비서진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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