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식 이사장 (2)

About 한의사 신준식


[학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및 동 대학원 석사, 박사학위 취득


[경력]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정골의과대학 명예교수

-자생의료재단 이사장

-자생한방병원 이사장

-대한한방병원협회 회장

-척추신경추나의학회 명예회장

-경희대학교 한의학과학연구원 수석연구원

-포천중문의과대학 외래교수

-경원대학교 한의학과 외래부교수

-대한항노화학회 회장

-세계중의골과연합회 부회장

-미국 어바인의과대학 국제동양의학연구소 연구이사

-중국 제1군의대학 명예교수

-2012년 <월간 문학세계> 시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저서]

-척추는 자생한다. <느낌이있는책, 2011>

-마흔 아프지 않게 살고 싶다. <라이온북스, 2013>

-비 맞지 않고 크는 나무는 없다. <느낌이있는책, 2014>




Q5.

이사장님께서는 직원들을 대할 때 어떻게 하시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병원 직원들을 뽑을 때 신분이나 학력을 따지지 않습니다. 또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할 때도 서류나 스펙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마인드, 진실성, 성실성, 리더십, 책임감과 자생마인드를 봅니다. 열정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간부가 되는 거고, 지도자,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25년 전, 운전기사로 입사해 열심히 저를 보필했던 분이 있습니다. 한 5년 정도 부천에서 압구정동까지 먼 거리를 다니며 기사로 정말 성실히 일을 하셨습니다. 새벽에 오셔서 제가 늦게 퇴근하더라도 진실하고 열정 있게, 모든 것을 내 일 같이 다 하셨습니다. 감동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기사 일만 하시기엔 아까웠고 그래서 그분을 행정직으로 돌리고, 관리직으로 돌렸습니다. 그분은 관리직에서도 자기 두각을 나타내셨고 열심히 해서 지금은 임원, 즉 이사가 되셨습니다. 전설 같을 겁니다. 많은 분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저희 병원에는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30년 전, 제가 추나요법을 만들어서 추나학회를 만들고, 한국의 대학에 추나학을 도입했습니다. 저는 23년 동안 학회의 회장직을 맡았고 경희대 출신이지만, 경희대, 원광대, 동국대, 세명대 등에 관계없이 전국 11개 대학에서 임원들을 골고루 뽑아 추나학회의 근간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52명의 교육위원들을 배출했고, 그들이 또 해마다 100명 이상씩 한의사를 가르쳤습니다. 열정과 혼신을 다해서 한의사가 한의사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이렇게 피라미드식으로 교육을 해서 지금까지 25년의 세월이 흐른 겁니다. 이제는 외국까지 가서 한국 추나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것을 고집하지 않고, 전체를 다 아울러서 열정, 진실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추나학이 한의학에 큰 공헌을 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한의원, 한방병원, 특히 인턴 레지던트 전문병원을 개원했을 때도 제 모교에서만 스텝들을 뽑지 않았습니다. 전국 11개 대학 한의과 졸업생들에게 기회를 주었고, 지금도 인턴 레지던트를 뽑을 때 전국에서 가장 열린 채용을 합니다. 그 사람의 열정, 진실성과 앞으로 배우겠다는 자세를 중요시합니다. ‘백지상태에서 들어와서 다시 공부하라! 모든 사람이 나이를 불문하고 인턴의 자세로 공부하라!’라고 말하고 실제 인턴의 자세로 가르칩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교육을 합니다. 소문이 다 났을 겁니다. 정말 힘들게 교육을 받지만 가장 큰 보람을 가질 겁니다. 그렇게 전국의 11개 대학 한의과대학들을 아우르는 것이 제 철학입니다.


또 자신의 열정, 진심, 애정을 가지고 환자를 긍휼지심으로 진료를 하겠다고 생각하면, 1,500명 정도 되는 스텝들, 의료진을 포함한 전체 직원 모든 분들에게 기회를 주고 공부하게끔 해줍니다. 이번에도 저희 병원에서 3명이 미시간주립대(Michigan State University) 정골의과대학(College of Osteopathic)에 연수를 갔습니다. 추나학회에서 10명을 더해 전부 14명이 그저께 출발했습니다. 이처럼 저희 병원에서는 병원 자비로 해마다 3~4명씩 미국 유학을 보냅니다.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다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이 우리 병원의 철학입니다.


Q6.

자생병원이 미국에도 진출해있는데, 해외에서는 자생한방병원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정형외과 의사들이 수술하지 않고 척추질환을 치료하는 이 치료법을 알고 싶어서 요청을 했고 미국 LA 세다스시나이 메디컬센터(Cedars-Sinai Medical Center)에 제가 가서 강의할 때, KBS, SBS, MBC 방송 특파원들이 와서 찍었고 방송에 나갔습니다. 가서 강의했을 때는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특히 한의사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강의가 쭉 이어져서 미국에서 여덟 번째로 큰 시카고의 러시대학교병원(Rush University Medical Center)에 가서도 강의했습니다.


제 강의 스타일은 전혀 못 움직이는 사람들, 즉 들것에 실려 온 사람들, 통증이 있어 디스크가 터지고 탈출되고 극심해서 못 움직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 환자들을 그 자리에서 바로 치료해 걸어 다니게 합니다. 이건 말로 하는 것과 달리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직접 옆에서 보니까, 다른 이야기가 필요 없습니다. 수술하는 의사가 됐든, 뭐가 됐든, 나은 것이 바로 눈앞에서 보이니까. 그다음부터 메커니즘이 뭐냐고 막 질문하는데 가뜩이나 영어도 짧은 사람이 메커니즘까지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한의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있지만, 서양의학적으로는 메커니즘이 밝혀진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관광공사 이참 사장과 외국을 한 5년, 매년 5개국씩 다녔습니다. 한번은 두바이에 가서 알자지라(Aljazeera) 방송에 출연했습니다. 거기서도 디스크로 잘 못 걷는 환자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치료를 하니 바로 걸어 다녔습니다. 거기에 있던 왕족이 그걸 지켜보고는 자기도 목 디스크가 있다고 해서 치료해줬더니, 카메라맨까지 자기도 디스크 진단받았다고 하며 카메라를 고정해놓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게 방송에 다 나갔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레바논에서 방송 보고 엄청나게 많은 요청이 왔었습니다.  레바논까지 가서 공주도 만나고 국영 티브이에 나가서 방송도 했습니다. 한국의 한의학을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서 이걸 배우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건 한의학의 세계화를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지금 뛰고 있습니다. 미국에도 여덟 군데에 클리닉을 만들어 주로 백인들을 치료하고 싶었는데, 그 수가 해마다 늘어서 보통 30% 정도의 백인들이 와서 치료받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원하는 것이 한의학의 표준화, 과학화, 객관화, 세계화 이 네 가지입니다. 누가 뭐라 하더라도 저는 그걸 위해서 30년이란 세월을 한 가지 일에 매진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나갑니다. 개인 시간을 다 버리고, 진료도 다 빼고, 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해서만 갑니다. 다음 달에도 미국 미시간주립대 (Michigan State University) 정골의과대학(College of Osteopathic)의 학장, 부학장과 함께 멕시코에 있는 아산병원 정도로 큰 병원에 가서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강의하고, 바로 거기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올 계획인데 예약이 어마어마합니다. 이렇게 계속 외국에 나가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보여주고, 강의할 것입니다.


Q7.

언론에 노출이 많으신 만큼, 오보가 나가는 등 오해를 사는 경우도 종종 있으신데 그럴 땐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하는 일이 옳고 정의로우면 쭉 그 길로만 가는 겁니다. 잘못 편견을 가진 사람은 그 사람의 생각입니다. 언젠가는 그분들도 좋은 생각을 가지고 편견을 없애버리실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손뼉 쳐주시면서 예전엔 잘 몰랐다고 너무 늦게 알아서 정말 아쉽다고 하시며 도움을 주시고 같이 동참을 하고자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옳고 정의롭고 이것이 한의학을 위해서, 후배들을 위해서 옳다면 그냥 가는 겁니다.


Q8.

얼마 전 채널에서 추나 베개를 소개해주셨는데,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그 방송 재미있었죠. 보셨어요? 우리 모든 몸은 자세가 제일 중요합니다. 한의학은 균형을 잃었을 때 이를 맞춰주는 겁니다. 우리의 몸은 스스로 낫는 거잖아요. 근데 베개가 높다든지 낮다든지 너무 딱딱하다든지, 여러 가지 불편하게 몸에 맞지 않는 베개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프로그램이 베개에 관한 것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방송국에서 온 프로가 다큐멘터리인데, ‘시장에 무질서한 베개들도 많고 건강에 도움을 주지만 도움을 주지 않는 것도 많이 있다. 그런데 올바른 상식을 알려주면 시청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 우리가 추나를 하는 의사로서 척추 교정을 하고 자세를 반듯하게 하라고 하면서, 베개에 대한 상식이 전무하면 안 되지. 그것도 좋은 방법을 일러주는 게 좋겠다.’ 싶어서 과학적으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또 바로 스튜디오에서 입증을 시켜주었습니다. 이게 이렇게 차이가 난다고 말입니다. 한쪽은 베개 두 개를 말아서 목에다 대고, 하나를 말아 후두골에는 대고 자게 해서 목에 c커브를 만들어 줬을 때, 불과 1~2분만 지나도 긴장도가 풀어지면서 목이 뒤로 잘 안 넘어가던 것이 쉽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좋은 맞춤 베개를 하기 전과 후를 DITI로 체크해서 체혈의 흐름과 혈액순환의 흐름을 비교했습니다. 또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수면에 대한 것을 체크해서 잠자기 전과 잠들 때 걸리는 시간, 자는 동안 뒤척거려 발을 차는 횟수 등을 측정했는데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정말 단순한 베개만 처방해줬는데도 컨디션도 아주 좋아지고 수면도 푹 잘 수 있게 되고, 그런 걸 보면서 참 재미있었습니다. 시청자들이 아주 좋아하셔서 좋은 반응을 많이 불러일으킨 거로 알고 있습니다.


Q9.

한국 학생들 외에도 세계 여러 사람을 많이 지도해오고 계시는데, 앞으로 교육에 목표가 있으시다면?


이론적인 강의도 좋지만, 실질적으로 자기가 체험을 하면서 익힐 수 있는 전문수련한방병원들이 많이 있어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학생들이 직접 옆에서 지켜보고 또 본인이 직접 치료도 해보는 체험을 통해서 의술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 제가 항상 주장하는 바입니다. 또 내가 왜 그 많은 직업 중에서 의료를 택했는지, 의료의 사명이 무엇이고 본질이 뭔지 생각해야 합니다.


500년 동안의 훌륭한 의사 중에 우리가 이름을 아는 사람은 허준 선생님 빼고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 내가 이 세상에 왜 나왔고 왜 가는지의 목적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래도 내 이름 하나는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만한 업적과 자기 보람을 느끼게 하려면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긍휼지심을 가지고 진정한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다가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모르겠습니다. 100년 후, 신준식이라는 이름을 한의계에서 기억할까요?


Q10.

<월간 문학세계> 시 부문 대상을 받으시기도 했는데, 문학가로서는 어떤 활동 계획이 있으신지 듣고 싶습니다.


며칠 전, ‘비 맞지 않고 크는 나무가 있으랴’라는 수필을 하나 썼습니다. 전엔 ‘앉으랴 서랴 걸으랴’라는 시집을 냈었습니다. 저는 새벽에 글을 많이 씁니다.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서 조용할 때, 순식간에 세 편, 다섯 편씩 글을 쫙 씁니다. 또 힘들 때 글로써 내 마음을 표현합니다. 직원들한테 얘기하고 싶은 것도 글로 써서 메신저로 보냅니다. 시로써 글로써 화답해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원로 원장님 중에서 시를 못 쓰던 분이 시인처럼 글을 잘 쓰게 되셨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제게는 그냥 일상생활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말로 하는 대화도 있지만, 어떤 때는 말로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고, 글로 표현해야만 전달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내 안에 있는 솔직한 것을 글로 표현한 것만큼 힘이 있는 것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내 진실한 내 마음을 상대방한테 전할 때 시나 서문 등 글로 써서 주면 아주 감명을 많이 받고 그럽니다. 학교 다닐 때 연애편지 안 써보셨어요? 말로 하는 것과 글로 하는 건 다릅니다. 글로 표현하게 되면 서로가 솔직한 심정을 주고받는 것 같아서 더 많이 받아들이죠.


Q11.

자생한방병원을 자생의료재단으로 출연하신 계기와 앞으로 재단이 어떤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


지금 전국에 열여덟 곳인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중 열다섯 군데의 의원들을 전부 공익재단 법인에다가 넣었습니다. 다 출연한 겁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국가 복지부 관할로 되어있습니다. 서울에서 진찰하나 대전, 부산에서 진찰하나 같은 진찰법과 치료법, 과학화되고 표준화된 진료법을 전파하고 싶어서 출연한 겁니다. 과거에 다 개인으로 되어있던 것, 지분으로 되어있던 것들을 전부 출연 시켜 하나로 만들면 어떤 새로운 치료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전부 표준화가 됩니다.


그러면 환자가 추간공 협착증이든 디스크 (추간판 탈출증)이든 질환이 있을 때, 얼마 동안 치료하고, 치료 예후는 어떻고,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이 미리 수식처럼 어느 정도 표준화가 되어있어야 그게 진정한 과학이라는 겁니다. 우리 한의학은 치료도 잘하고, 내과 같은 것은 정말 훌륭하거든요? 서양의학에 비해서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근데 계량화, 수치화, 객관화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진단법도 서로 다 다릅니다. 똑같은 내과 질환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 다르기에 현대 의학에서 불신하는 것은 당연하고, 오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하나로 통일되게 표준화하면, 같이 동참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좀 더 용이해집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그러한 설득력이 없으면 환자들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한의학을 신뢰하고 다가오게 하기 위해서는 한의학을 과학화, 표준화하고, 치료법을 전체가 다 공유해서 시골에서도 지방에서도 똑같이 치료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의 재단으로 묶어버린 겁니다. 제가 마음만 좀 편안하게 비우면 되니까요.


Q12.

앞으로 도전하고 싶으신 다른 분야나 꿈꾸는 삶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꿈꾸는 삶과 도전하고 싶은 건 있습니다. 근데 그건 여기서 할 얘기가 아니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결과로써 보여야 하겠죠. 지금은 제 나이도 적지 않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의 황혼기를 어떻게 더 아름답게 보낼지를 생각하면서 미래가 더 보람 있도록 계획해야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