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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7월 6~10일, 프랑스 파리의 사회과학 고등연구원 (Ecole des Hautes Etudes en Sciences Sociales; EHESS)에서는 제14회 동아시아 과학사 학술대회 (ICHSEA)가 열렸습니다. 본 학술대회를 주최하는 학술단체인 국제 동아시아 과학사 의학사 학회는 (International Society for the History of East Asian Science Technology and Medicine; ISHEASTM) 1990년 8월 4일 창립되었습니다. 당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열렸던 중국 과학사 학술대회 (the Six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the History of Science in China)에서는 앞으로 중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만을 다룰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 연구를 포괄할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이후 ICHSEA는 3년 혹은 4년 간격으로 개최되었으며, 현재는 동아시아의 과학, 기술, 의학사를 다루는 대표적 학술대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ISHEASTM은 또한 East Asian Science, Technology and Medicine (EASTM)이라는 저널의 발간 주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ASTM은 1975년 창간 당시 Chinese Science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는데 1999년 이후로는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EASTM이란 뜻으로 저널 명칭이 새롭게 변경되었습니다. 1975년부터 1992년까지는 Univ. of Pennsylvania의 Nathan Sivin, 1993년부터 1998년까지는 Univ. of California의 Benjamin A. Elman, 그리고 현재는 Univ. of Tübingen의 Hans Ulrich Vogel에 의해 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14th ICHSEA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참가자들의 지원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전체 22개국에서 385명의 연구자가 학회에 참여하였고, 전체 315건의 연구가 구두로 발표되었습니다. 그리고 5일간의 학회 일정 가운데 진행된 패널의 수는 총 81개였으며, plenary lecture의 수는 3건이었습니다.


국가별 참가자 수 또한 주목할 만하였습니다. 전체 국가 중 프랑스 참가 인원이 63명으로 가장 많았고, 미국이 58명, 중국이 56명으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 총 41명의 연구자가 참석하여 전체 국가 중에 4번째로 많은 연구자가 참가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전체 41명 가운데 한의학계 연구자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이번 학회에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 김남일 학장님, 김태우 교수님, 채윤병 교수님, 나향미 선생님, 한선영 선생님, 이예슬 선생님이 참석하였고,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는 김지연 선생님이 참석하였습니다. 또한 원광대학교 의사학교실에서 박사 과정 수료 후 현재 존스홉킨스 대학 의사학교실에서 박사 과정 중에 있는 James Flowers 선생님과 경희대학교 의사학교실에서 석사 학위 취득 후 현재 옥스포드 대학 인류학교실에서 석사 과정 중에 있는 김현구 선생님도 참석하였습니다.


이번 학회의 주제는 "Sources, locality and globalisation: science, technology and medicine in East Asia"였습니다. 여전히 대다수의 과학사 혹은 의학사 분야의 연구는 서구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아시아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방법, 개념, 평가 기준 등에 있어서 서구의 역사 기술 경험을 토대로 하게 됩니다. 이러한 긴장 관계 속에서 동아시아 과학사 혹은 의학사 분야의 연구자들은 우선 동아시아의 사료(sources)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진행하여야 할 것이며, 이를 토대로 전체 과학사, 의학사 분야의 연구자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commensurable) 지속적인 학문적 교류를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동아시아 과학사, 의학사 연구자들의 현실적 고민은 그들의 중요 연구 주제인 locality와 globalisation이라는 두 개념으로 자연스러우면서도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지리적 특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특성까지 포괄하는 locality 개념과 특정 지역의 지식이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고 변화해가는 globalization 개념은 과거 역사를 탐구하는 시각인 동시에 현재 동아시아 과학사 및 의학사 연구자들 스스로(locality)가 그들의 분야(globalization)와 맺는 관계에서 일어나는 공통된 사안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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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회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매우 다양합니다. 이 가운데 의학과 관련된 패널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Reading medical texts
• Localism in Qing Medicine: Inquiries on Materia Medica and Domestic Healing
• The Concept of Tong 通: Grasping and Circulating Matter in the World, in Society, and in the Body according to Thinkers, Physicians, and Traders in Song, Ming, and Modern China
• Ideas and practices in pre-modern medicine
• Knowledge on the Move: Transmission of Medical Knowledge in Pre-modern China
• Medicine as Method: East Asian Imperialism and Colonial Medicine in a Global Perspective
• Medical Prognostication, Fate Prediction, and the Body in Early Modern China and Japan
• Science, Medicine, and Popular Healing Practices in Modern Japan
• Science as Discourse and Practice in 19th-20th Century Korea
• Medicine in transition (1868-1940)
• Medicine since 1950
• “Traditional” medicine in modern societies
• Chinese medical discourses inside and outside China
• Industrial Hazards and Public Health Sciences in Contemporary Japan, Taiwan and Korea
• The Cultural, Medical, and Political Impact of Vietnamese Pharmaceuticals-China and Beyond
• Crossing Epistemological Landscapes: On the Global Circulation of Therapeutic Objects and Practices
• Health and Environment between Observation, Perception, and Imagination in East Asia
• Female medical practitioners and patients
• Military Medicine in East-Asia: Local and Global Contexts


이를 통해 근대 이전과 근대 이후의 동아시아 의학 지식 형성 및 전파, 그리고 그 영향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의학 자체의 내적 관점에서 그 특징을 살펴보려는 연구도 있었지만, 동아시아 의학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받아들이려는 노력도 다소 있었습니다. 19세기 이후 근대화 과정 중에 존재하였던 동아시아 의학의 급격한 변화는 역시 중요하게 다루어졌고 중국, 한국, 일본, 대만, 홍콩 등 국가에서 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근대화 과정에 대응해 왔다는 사실은 이번 학회에서도 계속해서 뜨거운 주제였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의학과 관련된 패널이 아니었지만, 다음과 같은 패널들에서도 의학 관련 발표가 진행되기도 하였습니다.


• Individuals in history and historiography
• Stories of globalisation
• The Universality and Locality of the History of Science and Civilization in Korea as Seen from the Perspective of East Asia


김남일 학장님께서는 Individuals in history and historiography 패널에서 “Joseon Scholar-Physicians in Korean Medical History”라는 제목의 발표를 하셨고, 김태우 교수님과 저는 Medicine since 1950 패널에서 각각 “Phenomenology of Disease Names in East Asian Medicine: An Anthropological Investigation in the Case of South Korea”, “Korean Medicine in the National Health Care System: The Process of Modernizing Korean Medicine”라는 제목의 발표를, 한선영 선생님과 이예슬 선생님은 “Traditional” medicine in modern societies 패널에서 각각 “Sharing Experience: The Transmission of Pulse Diagnosis in Contemporary Korean Medicine”, “Interpretation and Representation of Health in Korea: Changes between the Past and the Present”라는 제목의 발표를 진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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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회는 동아시아 과학사 및 의학사 관련 연구자들이 대다수 참석함으로써 그들의 연구를 통해 최근의 연구 동향을 살펴볼 수 있고, 관심 있는 주제를 토대로 논의를 나눌 좋은 기회였습니다. Johns Hopkins 대학의 Marta Hanson 교수님, Abington 대학의 Pierce Salguero 교수님, Binghamton 대학의 Sonja Kim 교수님, Texas A&M 대학의 Hoi-eun Kim 교수님,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의 John Dimoia 교수님 등의 발표에서 동아시아 의학이 영어권 학자들에 의해 어떻게 연구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국내 연구자들의 발표를 통해서 한의과대학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동아시아 과학사 및 의학사 연구 동향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 참가자 중에는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서울대학교 기초과학연구원, 전북대학교 과학학과,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학과에 소속된 교수님들과 연구자들이 있었는데, 이분들의 발표 및 논의를 통해서도 학계의 연구 동향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한의학계에 소속되어 있는 연구자로서 제 자신이 비단 한의학계 내에서뿐만 아니라 전체 학계에 어떠한 방법으로 공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학회의 테마가 “sources, locality and globalisation”였던 것처럼, 한의학계 연구자인 저 스스로에게도 한의학의 locality와 globalization 이슈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번 학회에서의 경험을 되짚어보면 한의학계의 locality는 globalization 이슈와 반드시 연계가 불가능(incommensurable)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적절한 연구 방법을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함으로써 한의학이 가진 locality는 단순히 한의학이라는 학문의 범주 안에 제한되기보다 더 보편적 범주에서 발전적으로 논의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 한의학의 특수성만 강조되지 않고 학계에서 논의되는 학문 전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더욱 활발한 학문적 교류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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