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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기초한의과학과 경혈학교실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정원모입니다. 저는 한국 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에서 지원하는 한국-스웨덴 연구자 교류 사업의 지원을 받아 스웨덴 린셰핑 대학 (Linköping University)의 GRASP 연구실에 방문연구자로서 2016년 3월 15일부터 6월 1일까지 2달 반의 기간 동안 연구활동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동안의 연구생활에 대해 한의약융합연구정보센터를 통해 소개를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제가 방문한 린셰핑 대학의 GRASP 연구실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GRASP는 Group for Research on Affective Somatosensation and Pain의 약자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연구그룹의 주된 주제는 ‘Pleasant Touch’로 알려진 체감각을 통해서 전달되는 촉각적 자극의 감정적인 영향에 관한 연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적으로 힘이 들 때 다른 사람의 어루만짐을 통해 큰 위안을 얻곤 하는데요. 포유류의 경우 이러한 촉각적인 자극은 영아시기의 온도조절이나 사회적 관계 형성 등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습니다. 한의사가 진료 시에 환자에게 전달되는 촉각적인 자극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일 뿐 아니라 체감각의 인지적 영향은 침의 기전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제가 속해있는 경희대학교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는 린셰핑 대학의 GRASP 연구실과 2014년 6월부터 MOU를 맺고 활발한 연구 교류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 교류의 일환으로 지난 2015년 5월에는 한국에서 ‘Acupuncture: discriminative, affective, and therapeutic touch’를 주제로 한국-스웨덴 공동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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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셰핑 대학은 스톡홀름에서 남서쪽으로 기차를 타고 2시간 정도 걸리는 린셰핑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스웨덴에서는 린셰핑 의과대학, 공과대학 등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의과대학은 린셰핑 대학의 본 캠퍼스와는 5km 정도 떨어진 곳에 린셰핑 병원과 함께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가 방문연구한 장소 및 실험실도 린셰핑 병원 옆에 위치한 건물이었습니다. 린셰핑 병원은 10동이 넘는 병원, 의과대학, 연구동 건물들이 함께 상당히 큰 규모의 컴플렉스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상 깊었던 점은 병원 어떤 복도를 걷든 다양한 장르의 수많은 미술작품들을 전시해 놓고 있었던 점인데요. 이 때문인지 린셰핑 병원에서는 한국의 대형 대학병원들에서 느꼈던 차갑고 약간은 우울한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 제가 머물던 기간 동안 린셰핑 병원이 스웨덴에서 가장 훌륭한 병원으로 뽑혀서 이를 위한 축하 행사를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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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스웨덴에서 머물며 주로 진행한 연구는 구심성 A-베타 말초신경을 통해 체감각을 전달하는 피부 촉각기관 중 하나인 ‘field receptor (이하: 필드 리셉터)’를 다루는 것이었습니다. GRASP 연구실의 Håkan Olausson 교수님은 마이크로뉴로그래피라는 방법을 통해 이 필드 리셉터에 대해 신경생리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계셨는데요. 이 필드 리셉터는 기존에 신경생리 교과서에 실린 4가지 종류 촉각 수용기의 범주로 구분될 수 없는 수용기로 80, 90년대의 신경생리 실험들에서 보고된 바 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최근에 한 쥐를 모델로 한 연구에서 필드 리셉터의 유전적인 특성을 밝힘으로써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수용기입니다. 저는 이러한 필드 리셉터나 말초신경계에 대한 신경생리학적 공부가 부족했기 때문에 도착 후 1달 동안은 필드 리셉터가 연구된 논문들에 대한 문헌 검토부터 연구를 진행하며 동시에 사람을 대상으로 한 마이크로뉴로그래피 실험에 참여하여 실험을 돕고 방법을 배워나갔습니다.


마이크로뉴로그래피 실험은 말초신경계의 신경생리를 알기 위해서 수행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실험방법으로 신경에 미세한 크기의 전극을 삽입하고 신경의 활동을 기록하는 실험입니다. 제가 참여한 실험에서는 사람의 common peroneal nerve에 전극을 삽입하기 위해 사진처럼 무릎관절 밑쪽으로 침과 같은 형태의 전극을 꽂게 됩니다. 말초신경다발에는 근육, 피부, 교감신경 등 다양한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들이 묶여있는데 미세한 크기의 탐침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원하는 타깃의 신경으로부터 신호를 듣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저는 이 마이크로뉴로그래피 실험에 참여하면서 이 실험이 낚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낚시처럼 손의 미세한 감각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하고, 또 신경 다발에는 무수히 많은 신경들이 있기 때문에 원하는 신경을 찾아내는 것이 물고기를 낚는 것처럼 어렵지만 원하는 타깃을 낚아냈을 때의 쾌감 또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이크로뉴로그래피 실험은 스파이들이 수행하는 도청과도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탐침 전극의 끝을 원하는 신경에 가져다 대고 이 신경이 전하는 전기적 신호를 스피커를 통해 음성화하여 실험을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신경이 활성화되며 나타나는 스파이크들이 지직거리는 화이트 노이즈를 뚫고 “뚜뚜뚜”하는 소리로 나타나게 되면 탐침이 신경을 제대로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희의 실험은 피부에 있는 촉각 수용기로부터 전달되는 신경의 전기적 신호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소리를 들으며 발과 다리의 피부를 계속 문질러 자극을 하여 해당 수용기가 반응하는 영역 (receptive field)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신경과 수용기의 영역을 찾게 되면 본격적으로 해당 피부 부분에 여러 가지 종류의 촉각 자극을 가해보며 각각의 자극에 대한 전기적 신호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수용기의 범주를 구분하고 이 수용기가 저희가 찾는 필드 리셉터라면 이의 특성에 대해 기록하고 연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의 실험이 길게는 4~5시간에 걸쳐 진행될 때도 많고, 시간을 많이 투자했더라도 원하는 필드 리셉터를 하나도 찾아내지 못하는 실험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간으로 자극을 전달하며 신경의 전기생리신호를 측정하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고 연구에 있어서도 많은 장점이 있는 실험이어서, 앞으로 침 연구에도 많이 활용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4월에는 독일 에센에서 연구년을 지내고 계신 채윤병 교수님이 방문하셔서 Håkan 교수님과 미팅을 진행하기도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마이크로뉴로그래피 실험데이터와 관련된 정신물리학적 접근의 실험을 기획하여 4-5월 두 달간 수행하고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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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시절 독일의 튀빙겐의 MPI 연구소에서 방문 연구를 할 때도 유럽 연구소들의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스웨덴 역시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나 근무일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들의 연구를 스스로 책임 있게 진행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있던 GRASP 연구실은 CSAN (Center for Social and Affective Neuroscience)이라는 그룹에 속해 이들과 같은 연구공간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서로 활발하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능동적으로 연구를 진행해나가는 모습에 많이 고무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스웨덴이 복지의 나라로 유명한 만큼 연구 환경을 위한 복지 역시 훌륭했습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연구에 지칠 때 당을 보충해주던 언제나 가득 채워진 과일 바구니와 연구실 책상 앞 유리창으로 보이던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이 글을 적는 순간에는 얼마 전까지 느꼈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묘합니다. 아직까지는 한국의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와 스웨덴 GRASP 연구실 간의 연구협력이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이와 같은 연구 교류가 더욱 활발히 이루어져 침 연구나 pleasant touch 연구에 모두에 많은 발전을 가져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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