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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7일에서 15일까지 한국약학대학생연합 (KNAPS)의 주최로 동국대학교 일산캠퍼스가 공동주관하는 '아시아-태평양 약학 심포지움 (Asia-Pacific Pharmaceutical Symposium)'이 열렸어요. 줄여서 APPS라고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아시아-태평양지역 약대생들의 행사로 매년 다른 나라에서 열리기에 한국 약대생들은 접하기 쉽지 않은 행사기도 합니다. 다행히 이번 15회차는 동국대학교 일산 캠퍼스에서 개최한다는 소식을 듣고 참가하게 되었어요. 저는 작년부터 KNAPS 소속 APPS 홍보팀 스태프로 행사를 준비하였는데 처음 해보는 행사이고 더군다나 국제적인 행사이기에 기대감에 들떠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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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S는 총 8일에 걸쳐 이루어졌는데요, 7일에서 9일까지는 LIT (Leadership in training)로 국제약학대학생연합 (IPSF, International Pharmaceutical Students’ Federation) 소속 임원진이나 선발대를 신청한 참여자에 한해 본격적인 APPS 행사 전에 리더쉽 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참여자들이 며칠 동안 함께 생활하며 리더쉽에 관한 토의와 발표를 하고 서로의 친목도 다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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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가 끝난 후 본격적인 행사는 첫째 날 Welcome Party로 시작되었어요. 웰컴 파티는 APPS 본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로 풍물놀이와 태권도를 선보였고 또 외국인 참가자들을 섞어 12개의 그룹으로 나눈 후 친해지기 위한 다양한 게임이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어색해 보였는데 곧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퍼져 나왔어요. 저도 사이에 껴서 게임을 하고 싶었지만 홍보팀으로서 사진촬영과 뉴스레터를 주 업무로 맡고 있었기 때문에 구경만 해야 해서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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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엔 심포지움과 워크숍이 열려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이 듣고 싶은 강의를 선택해서 들을 수 있었어요. '보건의료의 미래-감염성 질환에서 약사의 역할'이 이번 APPS의 주제였기에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여 국내외 약학 전공 학생들의 견문을 넓혀 주었습니다. 특히 참여를 강제하지도 않았는데 외국인 학생 전부가 강의를 들으러 오는 모습에 놀랐어요.


그 후 교외행사인 캠페인을 준비하기 위해 조별로 피켓을 만드는 행사를 했는데 저도 잠시 바쁜 진행스태프 대신 들어가 참여해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해보는 영어 대화가 기빨리는 것 같다는 동료의 말에 ‘여기 조는 내가 리드해보겠어!’ 라며 자신 있게 들어갔지만, 영어가 유창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외국인들 앞에서 저는 OK! Sounds great!만 남발하는 예스맨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쉬웠던 캠페인 준비를 뒤로하고 메인행사 중 하나인 Korean Night 시간이 되었어요. 외국인 참여자 두 명을 뽑아서 전통혼례식을 치르는데 한복이 예쁘다는 감탄사가 나올 때마다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한 제기차기 등 전통 게임과 많은 먹거리를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고 아까 예스맨의 아쉬움 때문에 외국인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려고 노력해 태국 친구들 무리와 친해지게 되었어요. 이때 알게 된 태국 친구들과는 행사가 끝난 다음 따로 만나기도 하였고 지금도 계속 연락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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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도 심포지움과 워크숍을 시작으로 포스터 경연대회, 임상약학대회, RA가 열렸습니다.


포스터 경연대회는 자신이 만든 포스터를 청중 앞에서 발표하는 대회입니다. 학술행사로 참가자들이 정말 많이 연구하며 준비했다는 걸 알 수 있는 기회였어요. 많은 외국인 참가자 또한 발표자들의 포스터를 하나하나 유심히 들었어요.
그다음 이어진 임상약학대회는 주어진 환자의 증상을 보고 그에 대한 알맞은 약물을 처방하는 식의 문제를 푸는 시험이에요. 여기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약대생들이 자신의 갈고 닦은 약학적 지식을 서로 겨뤄보는 대회라 볼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참가자들도 가장 많았고 시험 때 긴장감이 흘렀는데요. 저도 몇 분간 촬영했는데 방해되는 것 같아 더이상 촬영을 못 하고 금방 나왔습니다.


한편, RA는 아시아-태평양지부의 나라별 대표 임원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것으로 내년 행사의 주제 선택, 행사의 콘텐츠 개발, 다음 개최지 선정 등 많은 주제로 토론을 합니다. 이 회의는 APPS 모든 날 동안 열릴 정도로 회의 내용이 많고 다양한 의견들이 오갑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일산 화정역과 호수공원 등지에 나가 금연에 대한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날이 매우 더워서 지나다니는 사람 자체가 적어 캠페인을 보는 사람은 적었지만 그래도 시민분들이 함께 참여해주셔서 좋았습니다.


밤에는 International Night을 했는데 각국의 전통 음식과 장기자랑을 보며 교류의 장을 열었습니다. 각국의 부스에 가서 모든 음식을 먹었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인도네시아의 두리안 젤리가 제일 기억에 남았습니다. 인도네시아 참가자들은 다른 나라 참가자들 앞에서 정사면체 모양의 정체불명의 검은 젤리를 이름도 말해주지 않고 먹어보도록 유도하다가 풉! 하며 혼자 웃음을 참는 모습에 맛이 독특할 것이라는 직감이 왔습니다. 저는 안 먹었지만 제 친구가 먹어봤는데요. 그 친구가 젤리를 먹은 후 입을 벌리는 순간 친구의 입이 작은 재래식 화장실이 된 것 같은 향이 내뿜어져 나왔습니다. 아직 안 먹어 보신 분들이라면 그냥 먹지 않는 걸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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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역시나 워크숍이 있었어요. 행사가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모든 외국인이 가득 차서 듣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특이했던 것은 한국의 전통 국악이라는 강연이 있었습니다. 재미있고 부담이 없는 수업이라 한국 참가자들은 그쪽으로 많이 갔는데 오히려 학술 강연이 외국인 참가자로 자리가 꽉 차서 학술 강연 인원들을 국악 강연 쪽으로 옮겨야 할 정도였어요. 외국인 참가자들이 학술에 관한 의욕이 넘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이날 행사의 메인은 ‘복약지도 대회’인데요. 환자 역할을 맡은 사람의 증세를 파악하고 곧바로 진단을 내려 복약지도까지 대면형식으로 하는 대회입니다. 보면서 굉장하다 느낀 게 복약지도라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식후 30분 후 드세요’ 이런 것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증세를 보고 질병을 맞추고 그에 대한 작용 약물의 종류와 기전까지 명확하게 파악하여 필요한 부분만 집어내어 설명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전문가 같은 느낌이었어요. 이 모든 과정이 불과 5분 남짓해서 이루어집니다. 환자의 증세를 직접 보고 약물을 추천하고 복약지도까지 자세히 설명해주는 것이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꿈과 같은 일이라 약대생으로서 참 부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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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Field Trip이 있었습니다. 필드 트립은 우리나라 약사의 다양한 직능을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도록 마련된 행사인데요. 저는 공장팀에 속해서 갔기에 유한양행 공장으로 견학을 갔습니다. 공장 견학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우리가 보는 약의 모든 것이 자동화되었다는 거예요. 처음 캡슐에 약물을 담는 것부터 포장을 완성하기까지 단 하나도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습니다. 사람은 단지 안정성과 공정라인 오류만 체크하고 있었어요. 불과 2초 만에 라인을 쭉 따라가면서 포장지 하나하나가 저절로 접히고 약들이 넣어져 하나의 박스가 완성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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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은 모든 대회의 결승전이 이루어지고 저녁은 일산 킨텍스에서 뷔페와 함께 Gala Dinner Night을 진행했어요. 마무리 행사인 만큼 모두들 재미있게 즐기며 친목을 다지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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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는 동국대학교 약학대학 권경희 교수님의 자문과 도움을 제외하고는 시작부터 끝까지 개최국인 우리나라 약대생들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의미가 더욱 크고 뿌듯함도 컸던 행사였어요. 또한 외국 학생들과 다양한 행사를 통해 교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근데 사실 APPS 행사의 메인은 심포지움과 워크숍입니다. 모든 날의 일정에 심포지움과 워크숍이 있고 외국인과 한국인 참가자 모두 수십 개의 강연을 골라 들으며 약학에 대한 견문을 넓히는 것이 이 행사의 첫 번째 목적이에요.
 
심포지움은 첫날 손문기 식약처장의 ‘감염성 질환에 대한 식약처의 게이트 키퍼 역할’이라는 주제로 시작되어 국제기구인 국제백신연구소(IVI)의 김재옥 연구원의 '개발도상국의 감염성 질환에 대한 IVI의 백신 개발' 등 여섯분의 강연으로 이어졌어요. 저에게는 한미약품 이영미 전무님의 '한미 바이오 R&D의 도전과 미래'라는 주제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약회사에도 관심이 있기 때문에 사진촬영을 하면서도 귀를 기울이며 들었지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국내 제약시장은 대부분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을 대상으로 복제약을 개발하는 바이오 시밀러에 치중되어 있어요. 이것은 한미약품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글로벌 제약사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신약이 필요했는데요. 이에 한미약품은 순서를 바꾸어 신약을 개발하기보다 바이오 약품의 공통적 문제점인 짧은 반감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신약 플랫폼 기술개발을 먼저 시작하는 결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플랫폼 기술개발 도중 기반 단백질의 지속성을 부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앞에 붙여주는 프로틴 펩타이드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하여 재조합 비당쇄화 면역글로불린 (Aglycosylated Fc)을 폴리에틸렌 글리콜 (PEG)로 생리활성 폴리펩타이드와 연결시키는 기술이 개발됐어요. 이 기술이 접목된 약물은 안정성과 활성을 동시에 높여준다는 실험 결과가 나오자 이는 지속성 단백질 개발 기반기술 (LAPSCOVERY)로 발전하게 됐습니다.


우리 몸에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들이 들어오면 재빨리 분해시켜 몸 밖으로 내보내려 하기 때문에 질병을 치료하려면 자주 약을 투여해야 했는데 랩스커버리 기술로 인해 약물의 반감기가 늘어나게 되면 예를 들어 하루에 한 번 투여하던 주기를 1주일에 한 번으로 늘릴 수 있게 된 것이에요. 이 기술은 다양한 약물에 적용할 수 있기에 현재 한미약품은 당뇨병 치료제에 중점을 두어 기술 적용 중이고 후에 감염성 질환 바이오 약물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신약개발이라 하면 기존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치료제를 만들거나 이미 있는 약물의 구조 수정으로 효능을 높이거나 이미 있는 약물의 Side effect를 역이용하여 다른 타깃으로 삼아 개발되는 것 등을 떠올렸는데 기존 약물의 반감기 자체를 길게 만들어 투여 간격을 줄이고 약의 효능도 높일 수 있는 기술인 랩스커버리를 먼저 개발하고 이 기술로 기존의 약들에 적용시켜 상대적으로 손쉽게 발전된 신약으로 만드는 접근 방식은 매우 신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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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움과 워크샵도 유익했지만 제가 이 행사에 참여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복약지도 대회였습니다. 그 시스템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했기에 놀랐고요 또한 외국인들과 대화해보면 복약지도라는 과목이 있는 대학이 많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없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선 환자들이 약을 빠르게 처방해 주는 것을 선호합니다. 약국 포화시대에 빠른 처방은 약국의 경쟁력 중 하나가 되기 때문이에요. 또한 환자가 느끼기에 약사가 약에 대한 전문가 느낌보다는 약만 꺼내와 편하게 돈을 버는 직업으로 여기기에 긴 복약지도는 오히려 환자의 불만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의 복약지도가 단순화된 것 같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약사가 쉽고 편하게 돈 버는 직업이란 인식을 깨부수고 전문적 지식인으로 대우 받으려면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외국 약사와 같이 복약지도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느꼈어요.


또한 대부분의 외국 약대생 참가자들은 학부생임에도 불구하고 약학 자체에 관심이 많고 실력도 일반 한국 약대생들보다 월등히 좋은 것을 보고 ‘한국 약대생들이 글로벌 제약사에서 일하게 될 경우 저 친구들보다 경쟁력이 있을까?’ 라는 위기감 또한 느꼈어요. 더욱 놀란 것은 행사 때마다 외국인 약대생들에게 나중에 무슨 직업을 가질 거냐고 물어보면 약국, 병원으로 가겠다는 답변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열이면 열 모두 제약회사 연구소나 국가기관 연구소에 들어가겠다고 했어요. 우리나라의 경우엔 연구소를 꿈꾸는 약대생은 매우 적은데 말이에요. 아마도 이러한 가치관 차이가 APPS 행사 중 약학이란 학문에 대한 내외국인의 관심도 차이로 드러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국내 약대생들이 약국으로 몰리는 것은 약국에 비해 안 좋은 연구소 환경 때문입니다. 석사를 마치고 제약사 연구직으로 가도 학사 마치고 바로 갈 수 있는 약국보다 일반적으로 근무시간은 더 길고 봉급도 적은 구조는 문제가 있습니다. 손쉬운 길만을 추구하는 것 또한 문제가 있지만 단순히 열정 하나만으로 안전한 길을 포기하고 불안전할 수도 있는 다른 길로 도전하란 말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만일 이러한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면 수십 년이 흐른 후에 직면하게 될 국내외 신약개발의 차이는 APPS 행사에서 본 약학 자체에 대한 관심도 차이 정도로는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아요. 특히 약학 전공자만이 할 수 있는 연구분야에서는 더더욱 말이죠. 외국 약대생들과의 교류라는 목적으로 참여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던 행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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