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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9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에 걸쳐,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Pain (이하 IASP)에서 주최하는 제16회 World Congress of Pain (이하 WCP) 학회가 열렸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경희대학교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 인지의과학 연구실에서는 침의 기전 연구와 더불어 플라시보나 의사-환자 관계 등 보통 비특이적인 요소로 생각되는 인지적인 요소가 통증에 미치는 영향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12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렸던 제14회 WCP에 이어 이번 제16회 학회에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4년 전에 참석했던 밀라노 학회는 갓 석사과정을 시작하였던 때로 처음으로 가본 해외 국제학회였기 때문에 이번 참가는 4년이라는 기간 동안 저의 연구활동과 변화들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WCP를 개최하는 IASP는 통증 분야에서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PAIN 저널을 출간하고 있으며 세계 다양한 국가에서 통증 연구자들이 서로의 연구를 소개하며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장으로 WCP 학회를 2년에 한 번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 학회는 기초연구자뿐만 아니라 의사, 간호사, 약사, CAM 시술자 등 다양한 분야의 통증 관련 연구에 종사하는 연구자와 시술자들이 모여 통증 연구와 진단, 치료에 대한 학습과 교류를 나누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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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6회 WCP에는 저와 이예슬, 장재환 박사과정 학생이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 소속으로 참가하였으며,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구성태 교수님, 경희대학교한방병원 침구과 이승훈 선생님 등의 한국 연구자분들도 참가하셔서 학회에서 만나뵐 수 있었습니다. 저희 연구실에서는 저와 이예슬 박사과정 학생이 각기 플라시보 진통과 관련해 진행한 기초연구를 소개했습니다. 제가 포스터를 통해 발표한 내용은 플라시보 진통에 대한 기초연구 중에서도 치료 효과를 학습하는 형태가 플라시보 진통 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플라시보 진통 효과의 실험적인 연구는 보통 실제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치료기기가 진통 효과를 가진 것처럼 조건화를 통한 학습을 통해 진통 효과를 기대하도록 유도한 후, 해당 조건이 유도하는 플라시보 진통 효과에 대해 연구하게 됩니다. 이때 이루어지는 조건화 학습에서 기존의 많은 연구들은 파블로프식 조건화 (pavlovian conditioning)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방식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연결시키길 원하는 자극 (종소리-시각 자극)과 무조건적 자극 (음식-통증 경감)을 ‘수동적’으로만 제시하여 학습시키는 방법입니다. 저희는 그 대신 도구적 조건화 (instrumental conditioning)를 사용하는 방식을 제안하였는데, 이는 주어진 여러 개의 선택 조건들을 경험해보고 이들이 가지는 치료 효과를 비교, 탐험해보면서 학습하는 방식입니다. 실험을 통해 도구적 조건화를 통한 플라시보 진통의 유도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내용을 발표하여 많은 사람들과 흥미롭게 이에 대한 논의를 나누고 올 수 있었습니다.


학회를 참석하게 되면 미리 강연 목록을 통해 해당 학회가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를 엿볼 수 있는데, 이번 학회에서는 “Individual Variance in Pain” 즉 “통증에 있어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주제 중 하나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침 연구에서도 Acupuncture Responder의 개념과 연결되는 주제이기 때문에 관심이 있는 한의학 연구자들도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통증 연구에서도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인 특성이 중시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특히 플로리다 대학의 Roger Fillingim이 “Individual Differences in Pain: Understanding the Mosaic that Makes Pain Personal” 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기조강연 (plenary lecture) 을 통해 통증 연구에서의 개별적 차이에 대한 접근이 왜 중요하고 어떤 식의 연구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통증은 조직의 손상, 염증, 중추 감작화 (central sensitization) 등 다양한 원인을 통해 발생하고 기전적인 요인 외에도 구조적인 문제, 유전적 문제, 암성 통증 등 병리적인 원인도 다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들은 원인에 따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다양한 통증을 가지고 있으며, 같은 원인의 통증이라 하더라도 연령, 인종, 성별 등의 요인에 따라 서로 다른 통증 민감도를 가지며, 같은 진통 치료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반응성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강연의 마지막에는 이러한 생물학적 (biological) 요인 외에도 스트레스나 초조, 우울 등의 요소와 관련된 심리학적 (psychological) 요인과 사회적 (social) 요인들도 있어 이 세 가지 요인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개개인의 특수한 통증 상태를 만들게 된다는 내용의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이외에도 King’s College London의 Stephan McMaho의 “Why me? Neurobiological Mechanisms of Pain Vulnerability”란 제목의 기조연설이나 관련된 topical workshop 등을 통해 많은 연구자들이 통증에서의 개인적 특성을 이해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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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회에서는 “Great Expectations or Real Physiological Effects: What Is Underlying Analgesia Induced by Sham and Real Acupuncture?”라는 제목의 Acupuncture와 관련된 topical workshop도 진행되어 흥미를 가지고 참여하였습니다. 이 세션에서는 일본침구학회의 연구위원장을 맡고 계신 메이지 대학의 Kenji Kawakita, 호주 RMIT 대학의 Zhen Zheng, 하버드 Martinos 센터의 Kong Jian 세 분의 침 연구자들이 각기 하나씩 발표를 맡았습니다. 특히 저는 Kawakita 교수님의 강연이 인상적이었는데, Kawakita 교수님은 많은 임상연구들에서 sham침과 진짜침 간의 유의미한 차이가 보고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과연 가짜침 (sham acupuncture) 이 생리적으로 정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가? 만약 가짜침이 생리적으로 활성을 지닌 중재라면?”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Lecture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밝히는 수단으로는 microneurography를 통해 얻은 결과를 보여주셨습니다. microneurography는 인체의 신경에 전극을 삽입하여 말초에서 오는 신호를 잡아내는 방법입니다. Kawakita 교수님은 진짜침, 기존의 피부를 뚫지 않는 (non-penetrating) 가짜침, 피내침, 그리고 피내침의 가짜 (sham) 버전인 sham press tack needle (이하 PTN) 등을 시술하고 이때의 말초신경 (특히 C fiber 에 초점을 두어)의 활성을 비교하였습니다. 이 결과 sham PTN 을 제외한 나머지 조건들 모두 말초신경의 활성을 일으키는 결과를 보고 하며 뭉툭한 침첨으로 자극하는 non-penetrating 가짜침이나 최소침 자극 등은 플라시보 대조군으로서 적절하지 않으며 기존 침 임상연구들에 대한 재분석이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그 주장의 과정에서 한중일 3국의 침법을 비교한 연구를 소개하며 가는 침으로 득기 감각을 일으키지 않게 얕게 놓는 침법을 사용하는 일본의 침법이 기존의 플라시보 대조군과 거의 유사함을 이야기하며 기존 플라시보 대조군의 문제점을 추가적으로 비판하기도 하였습니다. 강연의 마지막에서는 “polymodel receptor hypothesis”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침의 기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과학적 가설을 설명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강연은 옥스포드 대학 Irene Tracey의 “Translating Neuroimaging Discovery Science for Patient Benefit”입니다. Irene Tracey교수님은 기능성 뇌 영상 방법을 이용한 pain 연구 분야의 저명한 연구자입니다. Tracey 교수님은 자신과 협력 연구자들의 통증 관련 뇌 영상 연구들을 전체적으로 리뷰하면서, 인간의 뇌를 대상으로 한 뇌 영상 연구들이 실제 임상에서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즉 실제로 통증 환자에게 어떠한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들인지에 대해 강연하였습니다. 그 연구 분야는 매우 다양하여 통증의 기전을 밝히는 데 기여한 부분, 통증 정도 측정의 새로운 기준으로서의 가능성, 플라시보 진통 등의 내재적 진통기전에 대한 탐구,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나 섬유근육통 환자들 치료의 전임상 모델 설정에 대한 기여 등이 있었습니다. 이 강연이 저에게 특히나 영감을 주었던 이유는 Tracey 교수님이 뇌 영상 연구가 실제로 환자에게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맥락을 깊게 고민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Tracey 교수님은 10여 년 동안 옥스포드 fMRI 연구센터인 FMRIB의 소장으로 센터를 이끌어 오셨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이러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연구자로서 특히나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던 부분이었기 때문에 인상 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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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소개했던 것처럼 이 학회는 제가 석사 1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에 참가했던 이후 4년 만에 참가한 국제통증학회였습니다. 4년이란 시간 동안 제가 어떠한 것들을 갖추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게도 하였지만, 시간이 지났어도 부족한 점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더 들었습니다. 또한 여러 국내, 국제학회들에 참관하면서 이제는 학회에 참여하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익숙해진 만큼 잊혀진 처음의 설레임과 호기심을 다시금 떠올려볼 수 있었던 학회였습니다.



© KMCRIC 학회 참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