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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부산대학교한방병원 침구의학과 전공의 최지원입니다. 연구에서는 문외한이었던 저였지만, 침구의학과에 지원하여 수련의 생활을 하는 동안 침 RCT 연구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고, 배우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원내에서 김건형 교수님과 함께 서양에서 바라보는 침의 기전 및 효과에 대한 스터디를 진행하였는데, 통증 질환의 수술 치료 및 Oral medication의 부작용이 부각됨에 따라 통증을 조절할 수 있는 침 치료의 효능 및 기전에 많은 연구자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연구자들은 경혈 개념이나 TCM 이론보다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생리학적, 객관적 이론을 규명하고자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한의학적 이론 안에만 갇혀있던 저에게는 그들의 시각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침 2년에 한 번 개최되는 SAR (Society for Acupuncture research) 학회가 2017년 4월 27일-2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국외에서 이루어지는 침 연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견문을 넓히고자 참석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경희대학교, 경희대학교한방병원, 한국한의학연구원, 부산대학교한방병원 등이 참가하였으며, 부산대학교한방병원에서는 저와 김건형 교수님이 함께 Poster session의 발표자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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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은 Society for acupuncture research, 말 그대로 침 치료 및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연구에 대하여 발표하고 의견을 공유하며,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토론을 하는 성격의 국제학회입니다. 2017 SAR은 'Advancing the precision medicine initiative through acupuncture research'라는 큰 주제 아래에 세부 6개의 주제를 두고 패널 토크 및 oral presentation을 통해 다양한 discussion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저는 해외 학회 참석이 처음이었고, 당연히 침 치료 및 연구의 주류는 중의학, 한의학일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학회에 참여하는 사람은 대다수가 미국의 의학 계열 종사자였으며, 그 외에도 Tai-chi를 수련하는 사람, 아로마테라피를 연구하는 사람 등 여러 방면의 연구자들이 침 연구에 대해 관심을 갖고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2017 SAR 프로그램: http://www.acupunctureresearch.org/program


여러 개의 발표가 동시에 진행되어 선택할 수 있게 되어있는 다른 학회들과는 달리, 2017 SAR은 하나의 회의실 안에서 같은 발표를 듣는 형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발표자뿐만 아니라 학회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원탁에 둘러앉아 질문과 토론을 하며 의견을 자유롭게 공유하였습니다. 


이번에 화두가 되었던 것은 무분별하게 늘어가는 주류 의학의 진통제 사용을 문제로 지적하며, 침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침 치료가 진통에 효과적이라는 것은 선행된 연구 및 임상적인 결과를 통하여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또한 현재 서양의학에서 통증에 대처하는 보존적 요법은 매우 한정적이므로 의사들도 침 치료에 대하여 주목하고,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하여 그 효과를 입증하고자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침 치료는  근골격계 통증뿐 아니라 다양한 질환에서 만성적인 통증을 개선하는 데 좋은 임상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의학계에서 발표된 논문의 대다수는 case report 형식이고, 주류 의학인 서양의학계에서 요구하는 과학적인 근거에 대한 부분은 미흡한 실정입니다. 학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대부분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 근전도, fMRI, 동물실험모델 등 수치를 통하여 결과를 객관화하고, 호르몬과 신경의 흐름 등 생리, 병리학적인 이론에 기반하여 침 치료를 설명하는 모습은 한의학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김형준 박사님이 참여하신 Brain지 논문 'Rewiring the primary somatosensory cortex in carpal tunnel syndrome with acupuncture'에 대한 발표는 더욱 관심 있게 들었습니다. 이 논문은 학회에 참석하기 전 뉴로이미징을 사용한 침 치료 연구의 논문으로 미리 원내에서 스터디를 진행했었습니다. 이 논문은 수근관 증후군 환자들을 대상으로 환자들의 fMRI, DTI, BCTQ, 신경전도검사를 시행하여 환자들의 주관적인 증상 개선뿐 아니라 신경생리학적인 개선을 뇌백질의 S1 신경 가소성과 연관하여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Sham침군과 진짜침군을 사용하여 Sham침의 플라시보 효과를 배제한 명확한 개선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흥미로운 논문이었습니다.


실제 저자의 Presentation 발표와 함께 관련 설명을 듣게 되니 개인적으로는 영광스럽기도 하고 궁금했던 이론적인 것들이 해결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학회에 참석한 분 중 뇌과학 연구를 하는 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걸음마 단계인 논문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연구를 기반으로 침 치료의 생리학적인 효과가 입증되고, 향후 더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어 세계인들에게 침이 인정받는 치료 도구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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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치료를 받는 사람의 Sex difference를 과학적으로 증명했던 패널 토크도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여성이 기육이 얇고, 감정적으로 유약하기 때문에 당연히 침을 아파한다고 여겨왔고, 그것을 ‘증명’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연구진은 신경생리학적인 측면과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고통의 수용에 대하여 연구하고 그 차이를 수치로 객관화하여 왜 성에 따른 침 치료 반응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지를 고민하였습니다. 남성 9명과 여성 10명의 양릉천(GB43)에 자침을 하고, fMRI와 그들의 득기감을 체크해 보았을 때, 여성의 fMRI상에서 침 치료 후 더욱 활발한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또한 여성은 침 치료 후 connective tissue에서 남성보다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 나타나 침 치료에 있어서 성별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인식시켜주었습니다. 정말 모든 것이 과학적이고 이론적 기반하에 설명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Oncology acupuncture'라고 하는 종양 치료에서 침의 역할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변증에 따른 침구 치료, 아시혈 취혈을 부정하고 환자마다 정형화된 치료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일반적 acupuncture와 Oncology acupunctrue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종양의학에서 침 치료는 아직 적극적인 치료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한의학계에서도 대학병원 수준의 한방병원에서 암센터를 건립하고, 통합의학을 통하여 암 환자를 유치하고 있습니다. 저희 부산대학교한방병원에서는 부산대학교병원과 협력하여 대장암 환자의 수술 후 오심구토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실제 임상적으로 환자들에게 침 치료를 병행하였을 때 수술 후 부작용 비율이 낮았습니다. 저는 근골격계 위주의 환자를 상대하고 있으므로 종양 치료와 한의학을 접목하여 생각해 볼 기회가 적었고, 막연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강의와 저희 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를 접목하여 생각해보니 종양 치료 후 나타날 수 있는 오심구토, 통증, 정신심리적인 케어에 있어서 한의학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점심식사를 하며 이루어진 Lunch Presentation과 discussion이었습니다. TCM과 서양의학이 침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정리해보고, 각자 앞으로 침 연구의 발전을 위하여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와 계획에 대하여 테이블 토의를 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처음에는 왜 식사할 때까지 힘들게 발표를 진행할까 불만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곧 그들의 열정적인 태도에 반하여 함께 적극적으로 의견을 듣게 되었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일단 서양의학에서 필요한 것은 기존 TCM 이론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그들은 symptom pattern, 즉 우리가 ‘증’이라고 부르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고, 침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한의학, 중의학의 경혈, 경락 이론을 이해해야 침 치료가 발전해 온 역사와 기전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에 동의하였습니다. 또한 TCM에서 부족한 것은 객관적이고 이론적인 기반과 실험을 통한 증명이었습니다. 현재 쌓여 있는 임상 데이터는 많지만 그것을 주류의학에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객관화, 과학화하는 과정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융합한다면 침 치료가 더욱 세계화, 보편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서양사람들이 진지하게 침의 발전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침=한의학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저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열정을 한국에도 고스란히 전파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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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는 매일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로 학회에 참가하는 내내 저에게 행복을 안겨주었습니다. 또한 유익한 프로그램 구성은 학회 참여가 후회 없는 선택이었으며, 한의사로서 시각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막 전공의를 시작한 1년차고, 해외에서 열린 학회에 처음 참가하였기 때문에 준비나 참여하는 자세에 있어서 모든 것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한의학적인 관점에서 외국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은 많았으나, 부족한 영어 실력이 안타까웠고, 연구에 있어서도 공부를 하여 더 실력을 쌓아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학회에 다녀오고 나니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의학 연구는 매우 부족한 수준이며, 진짜 연구를 하는 한의사의 배출이 소수라는 점이 더욱 피부로 다가왔습니다. 세계에 침, 그리고 한의학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국내에 있는 의료진들과 연구진들의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되고, 앞으로 열릴 학회에 더 많은 한의학 관련 연구종사자, 학생 및 전공의들이 참가하여 연구에 대한 관심을 쌓고, 해외 학자들과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을 마련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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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MCRIC 학회 참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