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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7년 4월 27일부터 4월 29일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2017년 침 연구 학술대회 (Society for Acupuncture Research 2017 Conference)’에 참석하였습니다. 침 연구 학회 (Society for Acupuncture Research)가 주최하는 이 학술대회는 세계 각지의 침 연구자들과 임상 의사, 그리고 다른 분야의 과학자들과 교류하기 위한 단체로 보완대체의학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CAM) 분야에서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학회입니다. 침 연구 학회는 홈페이지 (http://www.acupunctureresearch.org)를 통해 회원들에게 침에 관한 최신의 연구 동향뿐만 아니라 거짓 침(sham acupuncture)과 같은 침 연구에 활용되는 다양한 연구 장비, 결과 측정 도구, 그리고 연구 디자인에 관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침 연구 학술대회는 2년마다 개최되는 학회며 이번 2017년에는 ‘침 연구를 통한 정밀 의료 계획의 발전 (Advancing the Precision Medicine Initiative (PMI) through Acupuncture Research)’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정밀 의료 (Precision medicine)란 질병의 예방 및 치료에 있어서 개인의 다양성을 고려하여 최적화된 진단 및 치료를 적용하는 의학 패러다임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개념은 이전에 ‘맞춤 의료 (Personalized medicine)’라는 용어로 많이 사용됐으나, 미국 국립연구회의(National Research Council)에서 '맞춤 의료'라는 용어가 개별적인 치료제나 기구 등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을 우려하여 '정밀 의료'라는 용어를 채택하기로 하였습니다. 특히 2015년 1월 20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인류가 암과 당뇨와 같은 난치병의 치료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하며 나아가 모든 인류가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맞춤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게 하는 ‘정밀 의료 계획 (Precision Medicine Initiative)’의 출범을 발표하면서 정밀 의료는 의학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급속히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2017년 침 연구 학술대회는 이처럼 최근 의학계의 트렌드로 급부상한 정밀 의료, 혹은 맞춤 의료를 침 연구와 결부시켜 기존의 침 연구에서의 주요한 연구 과제 중 하나였던 개인의 다양성 및 반응자와 비반응자간 차이 (Difference between responders and non-responders)를 탐구하는 데 정밀 의료 계획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침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통 의학의 연구 결과가 정밀 의료 계획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을지에 관하여 논의하는 시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학회는 총 2박 3일 일정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 중심가인 유니언 스퀘어 (Union Square) 한복판에 위치한 호텔에서 진행되었는데 세계적인 대도시의 중심부에서 진행되는 학회인 만큼 각국에서 참석한 150여 명의 연구자들로 북적거렸습니다. 논문이나 책을 통해 이름만 들어왔던 침 연구 분야의 저명한 연구자들부터 저와 같이 아직은 학회장이 낯선 병아리 연구자까지 침 연구에 관심이 있는 여러 연구자들이 한곳에 모여 최신 연구 내용을 접하고, 자유롭게 논의하는 열정적이고 활기가 넘치는 시간이었습니다.


첫째 날에는 개회식 후 ‘정밀 의료에서의 침의 역할 (The role of acupuncture in precision medicine)’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움이 진행되었습니다. 한의학에서의 변증 체계 (Symptom differentiation)가 정밀 의료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그리고 이러한 적용을 시도할 경우 연구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여 질병의 원인을 한(寒), 열(熱), 허(虛), 실(實)로 나누어 진단하고 치료하는 변증 체계는 아무래도 서양 연구자들에게는 생소할 개념일 텐데, 그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변증 체계 및 그 활용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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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첫째 날과 둘째 날 저녁에는 포스터 발표가 진행되었는데 첫째 날에는 다양한 연구자들의 포스터들을 보고 필요한 경우 질문도 하며 설명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포스터 발표에 참석했습니다. 기초 실험 연구와 임상 연구를 비롯하여 문헌 연구까지 현재 세계 각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침 관련 연구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둘째 날 오전에는 ‘주류 의학에서의 침의 역할에 관한 임상적/정책적 연구 (Clinical/policy research on the role of acupuncture in mainstream medicine)’라는 주제로 심포지움이 진행되었습니다. 이 심포지움은 만성 통증 치료에 많은 사회적 비용이 소모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National Pain Strategy와 같은 국가적인 노력을 소개하였는데 임상에서 침 치료가 가장 많이 적용되는 분야인 통증 치료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된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이어 또 다른 연구자들은 만성 통증에서의 침 치료에 관한 최신 연구 동향과 그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후에는 여러 연구자들의 구두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다발성 경화증 혹은 섬유근통과 같은 신경계통의 질환뿐만 아니라 강박장애와 같은 정신질환까지 다양한 질환에 침 치료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시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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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 이후에는 세 번째 심포지움이 ‘전자기기를 활용한 증상의 도식화 (Electronic symptom drawing)’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최근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보건의료 현장에서도 태블릿 PC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의 빠른 도입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트렌드에 맞추어 환자가 본인의 증상을 표현하는 데 전자기기를 활용하는 것의 실행 가능성과 그 가치에 관해 논의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보다 자세히는, 증상의 도식화에 활용되는 다양한 인체 그림의 형태 및 전자기기를 통해 작성된 내용의 신뢰도 및 정확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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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심포지움은 침 연구에서 자주 논의되는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한 ‘침 반응자의 성별 차이(Sex differences in acupuncture responders)’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 의학은 일찍이 진단과 치료에 있어서 환자의 성별을 고려해 왔지만, 이러한 사항이 연구에서 체계적으로 논의된 적은 사실상 많지 않았습니다. 이번 발표를 통해 성별에 따른 통증의 인식 차이와 성별 차이가 어떠한 기전으로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논의되었습니다. 또한 침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통 의학에서 고려하는 이러한 성별의 차이가 정밀 의료 및 맞춤 의학에서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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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은 기초 및 임상 분야에서 침 연구의 최신 연구 동향에 관한 심포지움에 이어 기초 및 임상 연구 부문으로 나뉘어 동시에 구두 발표가 진행되었는데, 저는 임상 연구에 관한 구두 발표를 들었습니다. 임상 연구 부문에서는 무릎 골관절염, 폐경기 여성의 안면 홍조, 급성 뇌졸중, 그리고 류마티스 관절염과 같은 각종 질환에 관한 침 치료의 효과를 소개했습니다.


이날은 점심 식사 중에 같은 테이블에 앉은 연구자들과 함께하는 간단한 워크숍이 진행되었습니다. 전통 동양의학에서의 변증 체계가 주류 의학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이를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에 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부족한 영어실력 때문에 주로 연구자들의 토의 내용을 듣기만 해서 아쉬웠지만 변증 체계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인들이 변증 체계에 관해 바라보는 관점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오후 심포지움은 오레곤과 버몬트 주에서의 침 치료에 관한 보건 의료 정책과 보험의 적용 범위에 대한 발표가 이루어졌습니다. 실제 각 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침구사들에 의해 연구된 내용이어서 비록 다른 지역의 이야기였지만 보건 정책이 침 치료의 활용 및 그에 관한 연구에 있어서 미치는 영향을 간접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어 정밀 의료의 적용 가능성이 가장 고려되는 질환 중 하나인 암 치료에서의 침의 역할에 관한 내용을 끝으로 2017년 침 연구 학술대회는 막을 내렸습니다. 


저에게는 첫 해외 학회 참석이었는데요, 우선 그동안 이름만 들어왔던 침 연구 분야에서의 저명한 연구자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발표를 직접 듣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구두 발표 및 포스터 발표를 통해 세계 각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침 연구에 관한 최신 동향을 살펴볼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통해 제 연구에 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접근 방법을 통한 침 연구 내용을 한번에 접할 수 있었던 종합선물세트 같았던 시간이었기에 침 연구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라면 나중에라도 기회가 될 때 꼭 한 번 참석해 보시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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