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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르셀로나 홈구장에서 축구 의학의 미래를 이야기하다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제26회 국제스포츠재활외상학회(International Conference on Sports Rehabilitation and Traumatology)에 다녀왔다. 3년 전에 이런 학회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고 작년에 가려고 하였으나 선뜻 시간 내기가 어려워 못 갔었는데, 드디어 올해 가게 되었다. 학회 장소가 캄프 누(Camp Nou, FC 바르셀로나팀의 홈구장)에서 열린다는 것이 더욱더 가고 싶게 하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바르셀로나는 개인적으로 작년에 세계의사축구대회 참석차 다녀와서 1년 만에 또 가게 되니 뭔가 부산이나 제주도를 가는 느낌이 들었다(당시에도 축구 경기가 Camp Nou에서 멀지 않은 축구장에서 열린 터라 근처에 숙소를 잡고 그 주변에서 주로 돌아다녔었다). 여행이 아니라 학회 참관만 빠듯하게 하고 오는 짧은 일정이라 여행의 설렘보다는 ‘학회가 과연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출발하였다.


내가 참가한 국제스포츠재활외상학회(International Conference on Sports Rehabilitation and Traumatology)는 Isokinetic Medical Group이 주축이 되어 FIFA(Medical Centre of Excellence)와 Barca Innovation Hub의 주관으로 개최되는 학회이다. Isokinetic Medical Group은 1987년 개설되어 국제 스포츠 의학과 관련된 스포츠 손상의 예방, 진단, 치료, 재활에 대한 교육, 연구 분야 활동을 하는 단체로서 헤드쿼터와 교육, 연구부서는 이탈리아 볼로냐에 있으며 현재 런던, 로마, 밀라노 등의 외래 클리닉을 보유하고 있다. 이 단체는 FIFA Medical Centre of Excellence  네트워크, 즉 FIFA의 평가 및 인증을 받은 우수 의료센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FIFA 우수 의료센터로 지정된 곳은 현재 기준으로 34개 센터, 2개 클리닉이며 그중 아시아권은 일본과 태국 각각 1개 센터에 불과하다. 공동 주관이었던 Barca Innovation Hub는 FC 바르셀로나에서 운영하는, 바르샤 혁신 허브 프로젝트로, ‘지식과 혁신을 적용한 스포츠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목표하에 스포츠와 관련된 데이터 수집과 정보 공유를 하는 단체이다. 이 학회에 와서 안 사실이지만 FC 바르셀로나팀 자체에 이처럼 연구 및 정보 확산 부서가 따로 있고, 심지어 의료 매뉴얼 북을 만들어 배포하고 연구하고 있다는 것에 ‘세계 최고의 팀은 뭔가 다르구나’라고 생각하였다. 


학회는 토요일(5/13)부터 월요일(5/15)까지 3일간 진행되었다. 금요일 저녁에 도착하여 숙소에 짐을 풀고 시차 적응이 안되어 한숨 자고 일어나니 토요일 아침이 되었다. 9시부터 등록이라 8시 30분쯤 숙소를 나서서 걸어서 5분 거리인 학회장에 도착했는데 웬걸, 등록하는 곳에 대기하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학회장 안으로 들어가는 줄이 마치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서 서 있는 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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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는 크게 세 군데의 장소에서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진행이 되었다. 경기장의 관람석(grandstand terraces)에서 주로 초청연자의 발표가 이루어졌고 그 밖의 oral presentation은 경기장 밖의 Auditori 1899, 경기장 내의 Fundacio(fondation의 뜻이다)에서 이루어졌다. 그밖에 워크숍이나 증례발표 등은 Sala París(파리홀), FC 바르셀로나 전 사무총장의 이름을 딴 Ricard Maxenchs pressroom 등에서 열렸다. 나는 메인 발표 위주로 들었기 때문에 경기장 관람석에 주로 있었고, 몇몇 관심 있는 임상 주제를 듣기 위해 Auditori로 갔었는데 Auditori의 경우 장소가 그리 크지 않은 데다 임상 실제에 대한 내용이 많다 보니 듣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 몇 번은 자리가 없어 들어가지 못하기도 했었다. 메인 학회장인 경기장 관람석은 Tribuna라고 불리는 곳인데 실제로 경기를 보러 오면 선수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까지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관객석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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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오전에만 공통주제로 한 곳에서 진행이 되었다. 학회에 온 걸 환영한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었다. 이 학회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지금까지 진행이 되었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로드맵을 가지고 진행할 건지 등을 소개했다. 축구라는 단일 종목을 주제로 한 학회에 90개국의 나라에서 2,500여 명의 참석자가 있었다는 것에 축구의 매력과 파급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이 기조연설에서는 축구를 포함한 스포츠 의학에서 첫 번째로 biotechnology와 regenerative medicine을 적용해야 하고, 두 번째로 부상 방지를 위한 선수의 행동과 능력을 분석할 수 있는 생체 역학 기술이 요구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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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션에 발목 염좌 등 임상적인 내용을 하는 학회장으로 갔는데 아쉽게도 학회장이 좁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세션들을 살펴보니 이 학회는 크게 외과의를 위주로 질환별 수술에 관한 분야, 일반 임상의들을 위한 치료 매뉴얼에 관한 분야, 스포츠 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연구 분야 등으로 파트가 구성되어 있고, 각 분야별로 세분화 되어 있었다. 오랄 발표는 각 분야에 대한 개인 연구자들도 있었지만 규모가 큰 연구센터나 스포츠재활센터(swiss concussion center, oslo sports trauma research center, Linköping University football research group 등)에서 한 세션 내의 몇 강의를 모두 담당하는 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또한 다양한 축구 관계자들을 패널로 하여 몇몇 시나리오에 대해 의견을 자유롭게 제안하는 세션도 있었는데, 왜 실제 경기 현장 속에 내재된 연구가 필요한지가 주제였던 세션에서는 전직 축구선수도 참여해 본인의 경험을 담아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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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한의사들이 주로 하고 있는 분야인 매뉴얼 테라피에 관한 발표가 예정되어 있었던 둘째 날 오전 세션에 기대가 많았는데, 강의는 개괄적인 내용만 소개하는 정도였다. 예를 들어 카이로프랙터 연자 발표에서는 수기 요법의 전체적인 내용 및 장점 등을 간략히 소개하는 수준이었다. 다른 발표에서는 침에 대해 효과가 좋다는 정도로 잠깐 언급되었다. 그 밖에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침, 한약, 부항 등에 관한 오랄 발표는 없었다. 단지 포스터 세션에서 레이저침을 축구선수의 관절염에 사용해서 좋은 효과가 있었다는 전향적 연구 한 건이 있었고, 부항을 진단 및 치료 목적으로 사용해 좋은 결과를 얻은 케이스 한 건이 있었다. 부항 연구의 경우, 축구 선수가 갑자기 시합 중에 근육통을 호소했는데 처음에는 MRI 진단을 통해 normal thigh muscle 문제로 여겨졌다가, 방사통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부항을 척추에 붙여 통증을 소실시킴으로써 방사통임을 진단하고, 동시에 치료 효과를 얻어 부상 발생 일주일 후 공식 경기에 복귀한 사례였다. 유럽에서도 침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축구 관련 학회에서는 많은 내용이 발표되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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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학회든 관련 의료기기가 많이 전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학회 또한 한국에서 직접 못 보았던 기기들을 볼 수 있었다. 크리스티아노 호날두가 개인적으로 구입해서 사용하는 cryotherapy 기계, 선수들이 재활할 때 사용하는 비디오로 움직임을 분석해서 가속도, 각속도 등을 측정해주는 시스템, 학회 후원기업 중 하나인 TOSHIBA의 초음파를 비롯한 다양한 의료기기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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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회에서 또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동양 사람이 전반적으로 많지 않았는데, 그중에 대부분이 일본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포스터 발표도 일본인들이 꽤 많이 했다. 한국은 하나였고 일본은 10개 정도 되었다. 동양인들이 흔치 않아서 어느 나라 사람인가 이름표를 보면 대부분 일본이었고, 싱가포르나 홍콩 쪽의 중국인들이 조금 있었다. 축구나 의료계나 일본은 좀 더 우리보다 먼저 세계와 소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축구도 보면 일본인 지도자들은 스페인이나 유럽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학회에 와보니 일본 쪽에서는 FIFA에서 인정하는 축구 관련 치료 및 재활의 병원들이 몇 군데 있는데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없다. 이건 관심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여러 가지로 좀 더 다양하게 세계에서 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번 학회를 참관한 목적은 축구의학만을 위해 열린 국제학회를 경험해 보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4년 전에 대한축구의학회가 만들어졌고 현재까지 학회가 3회 열렸다. 축구의학회가 한국만 있는 줄 알았는데 세계는 넓었다. 이번에 참가한 학회는 역사도 길고 수준도 최첨단 의료지식과 기술의 집합 및 교류의 장이었다. 특히 참가자들이 현재 유럽 명문팀의 팀닥터, 트레이너, FIFA 메디컬 스태프들이 많았고, 그들이 발표를 함으로써 최신 축구의학의 트렌드를 알 수 있었다. 또한 유럽의 축구의학 종사자들끼리는 이 학회 말고도 서로 자주 만나면서 더 많은 교류를 하여 공유하는 내용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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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축구를 매우 좋아해서 나중에 크면 한국 축구 발전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 늘 생각했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체대를 가서 축구 관련 연구를 할까, 아니면 한의대에 가서 축구선수들을 치료해줄까 고민하다가 한의사가 된 나로서는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다. 또한 한국에서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현직 유럽 명문 축구팀에서 팀닥터 등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보니 마음 속에 간직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닥터의 꿈이 다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내년에도 동일한 장소에서 ‘Football Medicine Outcome’이라는 주제로 학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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