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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International Congress on Complementary Medicine Research (이하 ICCMR)가 2019년 5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렸다. 보완대체의학 학회 중에서 꽤 큰 편에 속하고 매해 한 번씩 개최되는데 이번에도 30여 개국에서 400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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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내가 가본 첫 학회는 2017년 홍콩에서 개최된 류머티즘 학회였는데 당시에는 실제로 연구를 해본 경험이 없어서 발표를 들어도 질문할 것도 없었고, 들으면 듣는 대로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였다. 실제 연구 경험은 홍콩 학회에 다녀온 이후에 하게 되었는데, 신경병증성 통증 환자를 대상으로 질적 연구를 수행하고 논문을 쓰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한의 치료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 더 나아가서는 혼합 연구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서 국내 질적 연구 학회에 가보았다. 그런데 혼합 연구에 대한 내용도 부족했고, 질적 연구도 대부분 간호대에서 수행한 연구여서 한의사로서 실제 환자를 대하며 느끼는 점이 반영되지 못하고 있었고, 한의 치료에 대한 질적 연구가 없어서 실망스러웠다. 그러던 중 감사하게도 경희대학교한방병원 침구과 이승훈 교수님께서 ICCMR 같은 큰 해외 학회에 참가해보면 질적 연구와 혼합 연구에 대한 견문도 넓힐 수 있고, 질적 연구로 포스터 발표를 해보는 것도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추천해주셔서 참석하게 되었다. 이러한 학술적인 목표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혼자 가더라도 적극적으로 질문도 하고 먼저 인사도 하면서 유익한 자극을 많이 받고 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설레는 마음으로 인생 첫 명함도 만들고 질적 연구에 대한 포스터도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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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학회인 만큼 참고할만한 질적 연구 포스터도 많았고, 각종 워크숍과 심포지엄 시간에도 질적 연구와 혼합 연구를 다루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질적 연구 워크숍에서 직접 조별 활동으로 질적 연구 디자인을 해본 시간이었다. 우리 조에서는 미션을 완수하지는 못했지만 미션을 하는 과정에서 조원끼리 나눈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우리 조에는 미국인 약사, 브라질인 의료정책 공무원, 호주인 침구사, 홍콩인 중의사가 있었는데, 나라도 직업도 각자 달랐지만, 질적 연구가 양적 연구에 비해 좀 더 현실을 반영할 수 있고, 보완대체의학의 정체관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질적 연구를 더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했다. 하지만 주류 저널에서는 질적 연구를 아예 다루지 않는 경우가 많아 투고 시 거절을 받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워크숍 진행자는 그들이 귀 기울이게 만들려면 그들에게 익숙한 양적 연구를 질적 연구와 함께 수행한 혼합 연구 방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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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에서 접한 질적 연구 중에서는 특히 의사와 침구사를 대상으로 뉴질랜드에서 진행한 연구가 인상 깊었다. 내가 수행한 연구는 환자만 대상으로 한 질적 연구였는데, 뉴질랜드에서 수행한 질적 연구는 의사와 침구사를 대상으로 그들 간의 의사소통 경험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환자가 침구 치료를 받는 데 있어서 의사의 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함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한의사가 의사처럼 전문적인 의료인으로 인정받는 한국과는 달리 뉴질랜드는 한의사 대신 침구사가 있다는 것이 의료문화의 차이인데, 한국이나 뉴질랜드나 의사가 주류 의학을 담당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의사가 한의학을 대하는 태도가 환자의 한의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적용할 수 있는 연구 결과였다. 추후 연구에서는 환자뿐 아니라 의사와 한의사를 대상으로 양한방 간의 소통 문제에서 무엇이 핵심인지 알아보기 위한 질적 연구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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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혼합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했는데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소개된 예시 연구가 바로 영국에서 수행된 요통 환자와 치료자 대상 혼합 연구였다. 물리치료/정골요법/침 치료를 받은 환자와 각 군의 치료자를 나누어서 그들이 임상에서 나누는 대화를 분석했다. 예를 들면, 대화를 부정적 대화, 시술 과정에 대한 대화, 심리사회적 대화 등으로 나누어 각각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한 후, 어떤 대화가 라포 (rapport)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했다. 질적 연구와 양적 연구 각각 장단점이 있는데 잘 설계된 혼합 연구라면 그 둘의 장단점을 적절히 보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과학과 종교 두 축이 충돌해온 서양과는 달리 동양은 유가와 도가 두 축이 모순이 아닌 긴장 관계를 유지해왔다. 동양에서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부지런히 읽고 서로 주석을 달기도 하며 인문학적 깊이를 이루어냈는데, 한의학과 의학의 관계나 질적 연구와 양적 연구의 관계 또한 모순 관계가 아닌 긴장 관계로서 서로 좋은 반려자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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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잠 못 자가며 공들여 설계하고 분석한 내 연구라 당연히 내 머릿속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요약하려니 말문이 막히는 걸 보고 아직 스스로 내 연구에 대해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되도록 본인 포스터 옆에 있으라는 학회 안내를 받아서 그때는 누군가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영어로 설명하는 연습도 해봤다. 요점을 강력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Figure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도 Figure에 많은 공을 들이긴 했지만 직접 설명을 하려고 보니 처음 내 논문을 접하는 사람에게 설명하기에는 Figure 만한 것이 없단 걸 알았다. 그리고 영어 실력은 어려운 단어를 쓴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라 쉬운 단어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명확히 전달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다행인지 내게 질문하는 사람은 없었고, 대신 점심시간 동안 포스터 옆에 서 있으면서 건너편 포스터 발표자들과 서로 어떤 연구를 했는지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포스터 상의 글자만 읽기보다 저자 직강을 라이브로 들으며 바로 질문도 하고 대답도 들을 수 있어서 집중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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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4일 중 첫 2일은 이끌어 주는 사람 없이 혼자 다니느라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는 가치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동시에 여러 세션이 진행되다 보니 못 듣고 지나가는 강의도 꽤 있어서 아쉽던 차였다. 그런데 3일째 되던 날 목동동신한방병원 한방내과 임정태 선생님과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 (AMSRC) 이향숙 교수님, 원지윤 선생님을 만나 함께 점심을 먹게 됐다. 빵에 질리려고 했는데 일본라멘을 사주셔서 맛있게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다른 학회와 비교도 해주시고, 아까 들은 발표는 결과가 도출되지 않은 상태라 걸러 들어야 한다는 것도 짚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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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에 Congress Party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난 따로 신청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임정태 선생님께서 마침 다른 약속이 생기셔서 쿠폰을 주신 덕분에 감사하게도 참석할 수 있었다. 심지어 125달러짜리였다! Congress Party에서 이향숙 교수님을 다시 만나 뵙게 되었는데 혼자 온 나와 다른 과 동기도 함께 챙겨주셔서 한국한의학연구원 이명수 선생님, 오달석 선생님, 부산대 한의전 신병철 원장님, 임병묵 교수님도 뵙고 Congress Party 후에 맥주도 한 잔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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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CMR 외에도 또 다른 좋은 학회로 코크란 학회, Society for Acupuncture (SAR) 학회 등을 소개해주셨고, 침구 연구로 유명한 Claudia Witt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셨다. 그리고 학회에서 내가 듣지 못한 다른 세션에서 다룬 Practice-Based Research Network (이하 PBRN)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셨다. 특히 PBRN을 강조하셨는데 이는 1차 의료와 동떨어진 대학병원에서 진행되는 연구가 아니라 실제 1차 진료에서 접하는 문제에 대해 개원의들이 스스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연구자들과 만든 연구네트워크이다. 1차 진료의부터 근거를 축적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보다 실제 진료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연구를 할 수 있고, 케이스 같은 임상 데이터가 쌓여야 이후에 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을 포함한 상위 연구의 질도 좋아질 것이므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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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간의 학회가 끝난 후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내가 목표하던 바를 다시 곱씹어 봤다. 직접 연구를 수행해보기 전에 갔던 홍콩 학회 때와 비교했을 때, 이번 ICCMR에서는 질적 연구에 대해 질문할 수도 있었고, 나름대로 그 연구만의 장점은 무엇인지 보는 눈도 생겼다. 혼합 연구를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지도 알게 되었고,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특히 대학병원이나 연구소뿐만 아니라 1차 진료의, 더 나아가 세계 곳곳의 다양한 직군에서 한의학과 보완대체의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연구와 진료의 질을 더욱 높여야겠다는 자극이 되었다. 연구에 있어서는 환자뿐 아니라 의료인도 대상으로 한 질적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혼합 연구 방식에 관해 공부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영어 공부를 좀 더 해서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보다 편하게 의사소통하고 더욱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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