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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도쿄에서 개최되었던 ISPOR Asia Pacific 2018에 이어 두 번째로 ISPOR 2019 학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지난번 아태평양 지역 학회에 비해 규모가 훨씬 큰 Annual meeting이었습니다. 해마다 5차례가량 열리는 ISPOR의 학회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연례 학회의 경우 다수의 참석자들이 미국, 유럽에서 오는 것을 감안하여 보통 미국 동남부 지역에서 개최되는데요, 금년도 ISPOR 2019는 재즈 음악과 남부 소울푸드의 도시, 루이지애나주의 뉴올리언스에서 5월 18일부터 22일까지 5일간 진행되었습니다.
(https://www.ispor.org/conferences-education/conferences/past-conferences/ispor-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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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id. Disruptive. Innovative: A New Era in HEOR*라는 제목하에 치러진 ISPOR 2019 학회는 65개국에서 4,000명에 육박하는 다양한 관계자들이 참석하였으며, 이번에도 여실히 느낀 점은 ISPOR은 학회 참석자들이 학계뿐만 아니라 업계 분들이 참 많다는 것, 그리고 그 외에도 규제 혹은 평가 기관에 해당하는 정부 기관의 참여도 두드러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러한 학회 구성원의 다양성은 그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된 프로그램 구성에도 드러나며 덕분에 때로는 아주 흥미로운 토론을 구경할 기회도 생기게 되더군요. 여기에 더해 환자 대표와 공공/민간 납부자 (payer)까지 참석하는 ISPOR은 정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신약과 신의료기술이 어떻게 더 신속히 환자들에게 도달할 수 있을지를 강구하고, 또 한편으로는 역시 어떻게 가장 신속하게 환자들의 반응을 업계와 정부에 전달하여 의료 서비스의 질 혹은 가격을 개선할 수 있을지 등에 관한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는 장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혁신적인 연구 방법과 전략이 필요한데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과학과 기술에 발맞추어 의료 분야에서 역시 정책, 서비스, 연구, 그리고 의료기술평가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HTA) 모두 페이스를 맞춰나가야 할 새로운 시대임을 알리는 것이 이번 학회의 큰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 HEOR: Health economics and outcome research


ISPOR 학회 프로그램의 구성을 살펴보면 우선 학회의 정식 개막 이틀 전부터 양일간 제공되는 short courses가 있고 (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함), 개막 후 3일간 하루 한 개의 plenary session을 비롯하여 poster presentation과 oral podium presentation, workshops, issue panels, forums 그리고 symposia 등 1,800개가 넘는 발표들이 매일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빽빽하게 시간표를 가득 채웁니다. 그 중간중간에는 지역별 모임이라든지 학생 모임, special interest group (SIG) 모임 등이 있고 저녁 7시 모든 발표가 끝난 뒤부터는 보통 9시, 늦게는 9시 반까지 계속되는 networking reception까지 있어 혼자 참석해도 지루할 틈이 없고 쉽게 녹초가 될 수 있는 스케줄이지요.


5일간의 학회 기간 중 첫 이틀 동안 진행되는 short course의 경우 보건경제학과와 관련된 주제들로 초급, 중급, 고급 모든 수준의 수강생들을 위한 수많은 강의가 준비되는데 작년 도쿄 학회에서 초급 강의를 선택했던 저는 이번에는 중급으로 눈을 올려 Statistical Methods in Economic Evaluations와 Network Meta-Analysis 두 강의를 수강하였습니다. 두 강의의 강사진 모두 수년째 해당 강의를 맡아온 베테랑들이어서 그들에게 주어진 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이 제공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에 능숙한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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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키워드로는 Real-World data (RWD)와 Real-World evidence (RWE)가 있었습니다. ISPOR 학회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RWE SIG가 있을 뿐만 아니라 포스터, 워크숍, 패널 토크 등 여기저기 빠지지 않고 RWD 혹은 RWE 두 단어가 제목 혹은 내용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때 근거중심의학의 출현과 함께 체계적 문헌고찰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요, 특히나 제가 이번 학회에 발표한 포스터 내용 및 현재 연구 주제 역시 RWD와 연관이 있기 때문에, 다른 연구자들은 어떤 데이터를 가지고 어떻게 가장 연구 목적에 합당한 RWE를 생성해나가는지를 다양한 포스터와 세션 발표를 통해 관찰할 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물론 가장 기본적으로는 RWD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부터, RWD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RWE를 생성할 것인가, 나아가 의료 의사 결정 (healthcare decision making) 과정에서는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혹은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RWE를 신뢰하고 반영할 수 있는가 등 여전히 많은 부분에 토론이 필요하고 아직 더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이 공론이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이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보였어요.


일례로 제가 방청했던 패널 토크는 Dr. Marc Berger의 진행 하에 ‘Replication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Using Real-World Data: What Does Good Look Like?’라는 주제로 토론이 이뤄졌습니다. 제목은 어떤 replication 방식이 이상적인 방법인가를 논하는 것도 같지만, 실은 이런 유의 연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자체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토론 방청은 양측의 논지를 모두 들어볼 좋은 기회였는데요, 패널 토크에는 한 명의 좌장과 세 명의 패널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의 패널만이 replication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Replication에 찬성하고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쪽은 미국 FDA와 하버드의 Brigham and Women’s Hospital 연구진이었습니다. 그들의 입장은 황금률로 여겨지는 RCT의 결과와 연계 (anchoring)하여 RWE를 다루는 방식을 통해 RWD로부터 도출되는 RWE가 얼마만큼 RCT 결과를 재현 (replicate) 할 수 있는지를 보고, 그 결과에 기반하여 RWE의 신뢰도를 측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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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ide from “Replication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with Real World Evidence” by David Martin, M.D., M.P.H., Associate Director for RWE Analytics, Office of Medical Policy Center for Drug Evaluation and Research,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반대 입장은 미국의 다국적 기업 Syneos Health에서 나온 Dr. David Thompson이 대변하였는데요. 연구 대상인 중재가 임상시험 환경과 실제 임상 환경에서 다르게 작용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efficacy-effectiveness gap’을 언급하며 RWE의 결과가 RCT 결과와 다르게 나오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고, 바로 이런 차이점이 RWE를 ‘보완재’로 가치 있게 사용될 수 있게 하는 것이지 대체재로서의 잣대로 RWE를 바라보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RCT가 황금률이라면 RWE는 그냥 은이지 금은 아니라는 식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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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ide from “Replication of RCTs with RWD: What Does Good Look Like?” by David Thompson, PhD, Senior Vice President, Syneos Health


첫째 날 Dr. Daniel Kraft의 키노트 발표는 사실 학회 기간 내내 들었던 발표 중 가장 인상 깊은 발표였습니다. ‘The dawn of disruption in the health sector-Will innovative technologies require innovative ways of thinking?’이라는 주제 하에 다뤄진 첫 Plenary session에서 Dr. Kraft는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기술과 그 발전이 의료계에 가지고 온, 그리고 가지고 올 영향에 대해 광범위하게 다루며 모두 함께 exponential step을 걷자는 그의 비전을 나눴는데요. 발표의 내용도 좋았지만 Dr. Kraft라는 발표자의 청중을 매료하는 말솜씨 역시 빛이 나는 시간이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TED talk 를 참고해 보세요.)


‘기술’의 발전을 이야기하며 AI는 빠질 수 없는 꼭지였습니다.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해당 부분의 핵심 내용은 ‘AI won’t replace doctors, doctors using AI will replace those don’t’입니다. 발표에서 언급된 부분은 임상의들에 관한 내용이었지만,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 연구진들에게도 이 문장이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체계적 문헌고찰에 AI를 활용하는 법에 대한 연구들도 종종 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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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모두의 일상 깊이 들어온 각종 wearable device부터 증강 현실, 3D 프린팅, 유전자 치료 등 다양한 기술들의 현주소와 미래가 소개되었습니다. 발표를 들으며 한편으로는 한의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신기술들이 어떻게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번 ISPOR 학회에서 제 눈에 띄었던 또 다른 주제는 ‘value assessment frameworks’였습니다. 이 키워드는 작년 ISPOR 그룹에서 발표한 special task force report 시리즈 중 3편에 해당하는 “Defining Elements of Value in Health Care-A Health Economics Approach” 논문에서부터 출발이 되는데요, Value Flower라고 불리는 그림은 학회 내내 많은 발표 슬라이드에 등장하여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꽃에는 core elements로 분류되는 QALY (quality-adjusted life-years) gained와 net costs를 비롯하여 비교적 자주 언급되지만, 아직 일관성은 부족한 productivity, adherence-improving factors, 그리고 마지막으로 잠재적 element로 분류되는 equity, value of hope, insurance value, reduction in uncertainty 등 다양한 비교적 새로운 value들이 등장하는데요, 자연스럽게 비용효과 분석 관련 연구를 위해 the Second Panel*에서 제시하였던 impact inventory template가 떠올랐습니다. ISPOR은 특히 환자들이 정말 중요시하지만, 그동안 의료기술평가에서 등한시되어 온 가치들이라며 이 꽃 그림과 novel value들을 열심히 홍보하고 있지만, 아직 이 가치들을 정말 차후 평가에 포함해야 하는지, 측정은 가능한지, 이중 계산 (double counting)의 문제는 없을지 등 앞으로 토론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그리고 일찍이 언급하였듯이 학계뿐만 아니라 제약업계, 연구용역업계 등이 깊이 관여하고 있는 학회의 특성상, 혹시 이 ‘새로운’ 가치들이 오히려 중요한 core elements에 대한 초점을 흐리게 만드는 distraction은 아닌지도 더욱 비판적인 시각으로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 Second Panel: Sanders GD, et al. Recommendations for Conduct, Methodological Practices, and Reporting of Cost-effectiveness Analyses: Second Panel on Cost-Effectiveness in Health and Medicine. JAMA. 2016 Sep 13;316(10):1093-103. doi: 10.1001/jama.2016.12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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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alue Flower” from Lakdawalla DN, et al. Defining Elements of Value in Health Care-A Health Economics Approach: An ISPOR Special Task Force Report [3]. Value Health. 2018 Feb;21(2):131-9. doi: 10.1016/j.jval.2017.1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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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ide from “Getting the Science Right on Novel Value Elements” by Darius Lakdawalla, PhD,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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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mpact Inventory Template” from Sanders GD, et al. Recommendations for Conduct, Methodological Practices, and Reporting of Cost-effectiveness Analyses: Second Panel on Cost-Effectiveness in Health and Medicine. JAMA. 2016 Sep 13;316(10):1093-103. doi: 10.1001/jama.2016.12195.


포스터 발표의 경우 각종 질병 계통과 의료기기, 약물, 정밀의학, 대체의학과 영양 등 수많은 주제로 분류되어 있는데 한국의 중풍 코호트를 다룬 제 논문은 심혈관계 질환 관련 연구로 분류되어 화요일 오전에 전시가 되었습니다. 제 포스터에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해오는 분들은 크게 한국 건강보험공단 자료는 누가,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 제공되는 표본 코호트의 간단한 특성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 제가 사용한 RWD 자체에 대한 궁금을 표하는 분들과 제한된 관찰 기간에서의 결과를 가지고 lifetime까지 extrapolate 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는 분들로 나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졸업이 언제냐고 물으며 명함을 건네주시는 분도 계셨고요. 학회 방문 전에 방문했던 미국 CDC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에서 알게 된 Dr. Ekwueme 역시 학회에서 다시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는데요, 현재 NCI (National Cancer Institute)에서 보완대체의학 관련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며 슬쩍 추천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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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학회에서 뵐 수 있었던 너무나 반가웠던 분은 포스터의 공저자이신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의 장보형 교수님! 머지않은 (hopefully) 졸업을 앞두고 진로 고민을 하고 있는 제게 좋은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포스터 발표가 있기 전날 저녁에는 학회 기간 중 단연코 1위 식사였던 악어고기 튀김과 신선한 굴 요리, 뉴올리언스의 소울푸드 검보 (gumbo) 잠발라야 (jambalaya) 등 만찬을 사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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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작년 도쿄 학회의 경험으로 ISPOR 학회 일정이 얼마나 빡빡한지 잘 알고 있었지만 멀리 뉴올리언스까지 와서 학회장과 호텔만 왔다 갔다 하기는 아쉬울 것 같아 공식 일정이 끝나면 아무리 피곤해도 연구실 동료들과 함께 가까운 French quarter로 나갔습니다. 카페 드 몽드에서 맛본 베녜 (beignet), 거리의 술집마다 다양한 라이브 음악이 쏟아져 나오는 Bourbon street, 재즈 피아노 연주를 꼭 들어야겠다며 찾아갔던 Pat O’ Brien’s, 학회 마지막 날 공항 가기 직전에 택시 타고 가서 눈도장 찍고 온 아름다운 세인트루이스 성당까지, 비록 토막 토막의 시간뿐이었지만 쏠쏠히 즐길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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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POR은 분명 HEOR 분야에서는 선두 역할을 하는 세계적 규모의 권위 있는 학회입니다. 발 빠른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가파르게 오르는 의료비용을 통제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 시대 가운데, 이제는 신약, 신의료기술뿐만 아니라 이미 심사 문턱을 넘어 임상에서 활용되고 있는 중재들마저도 지속적인 재평가를 통해 그 비용 효과를 재확인 받고, 이러한 평가 결과들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의료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하는데요. ISPOR 학회는 저와 마찬가지로 HEOR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생 및 연구자들에게 세계 각지에서 어떤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 무슨 주제가 주목받고 있는지 등 가장 핫한 트렌드를 한눈에 훑어볼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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