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DH 0049-main-01.jpg


2nd official Society for Interdisciplinary Placebo Studies (SIPS) conference on placebo studies가 2019년 7월 7일부터 9일까지 네덜란드 레이던 (Leiden)에서 열렸다. 레이던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네덜란드의 옥스퍼드라 할 수 있을 만큼 오래된 대학도시이다. 지도교수이신 채윤병 교수님께서 나의 견문을 넓혀주고자 뒤늦게나마 등록을 해주셨고, 사정상 학회에 참석하지 못한 교수님의 포스터를 붙이고 학회 강의를 교수님 대신 열심히 듣는 것이 내 임무였다. 첫 해외학회를 혼자 가야 한다는 부담이 매우 컸는데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 교수님과 박사과정 선생님이 같은 학회에 참석한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C-CDH 0049-img-01.jpg


학회가 당연히 레이던대학교에서 열릴 줄 알았는데, 이번 학회는 레이던의 한 콘서트장에서 열렸다. 학회만 참가하면 유서 깊은 레이던대학교를 탐방하기 힘들 것 같아 학회 일정보다 일찍 출국하여 헤이그와 델프트에 있는 레이던대학교 캠퍼스를 둘러보았다. 델프트의 널찍한 캠퍼스와 도서관 등을 보고 이렇게 조용한 마을의 쾌적한 대학 시설이라면 사색과 공부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대학교가 다닥다닥 붙어있고 숨 가쁜 일상을 보내는 한국과는 대조적이었다. 여유와 쾌적함이 부러웠다.


학회에는 Parallel sessions들이 있었는데 주제에 따라 정해진 장소로 가서 들어야 했기 때문에 초록 요약집을 받자마자 어떤 강의를 들어야 유익할까 생각하며 체크했다. 지도교수님께서 추천한 강의와 향후 우리 연구실과 관련 있어 보이는 주제를 먼저 체크했고 지난 학기 대학원 수업 때 알게 된 Nocebo 강의도 선택했다. 2017년 제1회 SIPS 학회의 핫이슈는 Open Label Placebo (OLP, 환자에게 위약임을 속이지 않는 것)였고 덕분에 2019년 제2회 SIPS 학회에서 많은 연구자가 OLP를 주제로 강의와 포스터 발표를 하였다. 이 주제는 우리 연구실에서도 다음 학기 때 실험을 기획 중이었기에 조금 더 관심이 갔다.


C-CDH 0049-img-02.jpg


Nocebo는 지난 1학기 대학원 수업 때 처음 알게 된 개념인데, 치료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는 Placebo와 반대로 치료가 유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유해한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 개념에 대해 수업을 들으면서 환자들에게 고지하는 방법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이번 학회의 Nocebo 강의도 임상에서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 설명법 등 임상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비록 지금 나는 연구를 하려고 대학원에 왔지만, 임상에서 쉽게 적용해볼 수 있는 중요한 Nocebo 개념이 굉장히 마음에 와닿았다.


강의는 당연히 영어로 진행되었다. 영어 리스닝은 읽고 쓰는 거에 비해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전문 분야의 듣기평가는 다른 차원이었다. 다른 연구자들은 강의를 듣고 질문하며 능동적으로 참여하는데 나는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웠고 이런 상황이 너무 답답했다. 학회 가기 전 열심히 플라시보와 관련된 논문들을 읽고 공부하며 준비했지만, 강의를 들으며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회 전 준비마저도 안 했다면.. 생각만으로도 정말 아찔했다. 그나마 임상과 관련된 연구들은 개념 이해가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이와 관련된 몇 개의 강의를 제외하고는 열심히 사진이라도 남겼다. 언젠가 저런 멋진 도표와 문구를 논문이나 연구에 활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을 남겼던 것 같다.


C-CDH 0049-img-03.jpg


나와 연구실의 연구주제와는 별개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강의는 ‘수술에서의 플라시보 효과’였다. 그동안 플라시보 효과를 나타낸 연구들이 주로 내과였다는 점에서 이 주제는 상당히 다른 영역이었다. 강의 타이틀이 ‘The knife and the word: surgeons’ attitudes and usage of placebo effects in clinical practice.’로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였는데 안타깝게도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진행 중인 연구였다. 나중에 개인적으로 이 연구 결과에 대해 꼭 알아보고 싶어졌다.


포스터 앞을 지키는 일은 무지 떨렸다. 다른 연구자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만큼 설명해주고, 뒤늦게 참여한 연구라고 양해를 구하니 다들 감사하게도 웃으며 이해해주었고 출판되었다는 논문 제목을 적어갔다. 어리숙한 발표를 주의 깊게 들어준 3명의 연구자들이 정말 고마웠다. 다른 사람의 포스터를 구경하는 일도 재미있었다. 다들 자신의 연구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과 자부심을 가진 것이 보였고,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어 보였다. 시간이 지나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 석사학위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면 저들처럼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설명해줄 수 있을지 걱정도 되면서 기대감이 드는 시간이었다.


C-CDH 0049-img-04.jpg


그동안 읽었던 논문 속 저자들의 강의를 직접 듣는 것은 정말 신기했다. 실물 영접을 위해 콘서트장을 찾은 팬의 심정이랄까. 하지만 서서 점심 샌드위치를 먹는 것도 적응되지 않았고, 휴식 시간이나 점심때 다른 연구자들끼리 오랜만이라며 인사하고 수다를 떠는 모습은 놀라웠다.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면 점심을 제대로 먹을 수 있었을까 싶다. 같이 학회에 참석한 교수님과 박사과정 선배님의 존재가 큰 위안이 되었다. 또, 저녁 시간에 그 포스 넘치던 연구자들이 파티를 즐기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외국에서는 외향적일수록, 자신을 어필할수록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과연 나는 글로벌 시대에 알맞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연구의 길을 걷는 것이 맞을까 고민이 많아진 것 같다.


C-CDH 0049-img-05.jpg 


첫 해외학회는 영어라는 장벽, 성격, 발표 모습, 진로 등 고민거리를 제공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넓은 세상에서 연구하고 소통하는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보면서 기대하게 만들었다. 항상 걱정이 많지만, 천천히 연구하고 준비하다 보면 부끄럽지 않은 연구자가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발표 준비를 도와주신 지도교수님과 연구실 연구원들, 레이던에서 챙겨주신 교수님과 선생님, 단기 해외연수를 지원해준 한의과학사업단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 KMCRIC 학회 참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