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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중순, 경희대학교한방병원 권승원 교수님의 페이스북을 통해 제35회 대한중풍순환신경학회 봄 연수강좌가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눈길을 끌었던 건 저서 <고령자 한방 진료 高齢者のための漢方診療>로 유명하신 이와사키 코우(岩崎 鋼) 선생님께서 ‘일본 진료 가이드라인에서 다루고 있는 한방 처방’에 대해 강의를 해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수의 한방 서적 집필을 하시고, 일본의 노년의학회 가이드라인 중 한방 파트를 담당하신 분이셨기에 꼭 강좌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학생 신분으로도 대한중풍순환신경학회 봄 연수강좌를 참가할 수 있다는 확인을 받고 당일 새벽 기차를 타고 경희대학교에 도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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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뇌∙심혈관 질환에 관심이 있었기에 연수강좌를 통해 한의학이 이 질환군에 어떻게 응용되고 있는지 들을 수 있게 되어 신이 났고, 또한 이와사키 코우 선생님을 직접 뵙고 선생님의 저서인 <내과의를 위한 한방 진료 内科医のための漢方診療>에 저자 사인을 받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강좌를 마치신 이와사키 코우 선생님께서 복도로 나오시는 걸 기다린 후, 일본어로 간략히 소개를 드리고 사인을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일본 의사분들의 한방 진료를 참관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흔쾌히 승낙하시며 메일을 알려주시고 연락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이와사키 선생님께서는 전에 도호쿠대학병원 한방내과에서 계셨기에 도호쿠대학병원 한방내과의 다카야마 신(高山 真) 교수님을 소개해주시며 일본 대학병원에서 행해지고 있는 한방의료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도호쿠대학병원 한방내과에서 참관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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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대학은 2018년 QS World University Rankings™ 대학 평가에서 종합대학 평가 세계 76위인 일본 명문 대학이며, 도호쿠대학병원 한방내과는 많은 분이 아시는 '인지증의 행동심리 증상에 대한 억간산의 효과', ' 연하기능 저하에 대한 반하후박탕과 침 치료의 효과', 뇌혈관 장애 후의 변비에 대한 대건중탕의 효과' 등의 임상연구로 유명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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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대학병원 한방내과에는 일본동양의학회 한방지도의, 한방전문의를 비롯하여 외과전문의, 소화기외과전문의, 종합내과전문의(総合内科專門医), 순환기전문의, 호흡기전문의, 이비인후과전문의, 신장전문의, 산부인과전문의 등의 전문 의료진이 종사하고 있습니다.


전문 분야는 암 화학 치료에 동반되는 손발 저림 및 권태감, 뇌혈관 장애 후유증, 난치성 신경 질환, 교원병, 염증성 장 질환, 아토피성 피부염 등 다양한 질환을 다루며, 서양의학적 치료로는 만족스러운 효과를 얻지 못한 환자분들께 한방약과 침구를 사용하여 병행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 Tohoku University Hospital

•Address: 1-1 Seiryo-machi, Aoba-ku, Sendai, Miyagi 980-8574 Japan

•Phone: +81-22-717-7000

•Homepage: https://www.hosp.tohoku.ac.jp/departments/d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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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대학병원 한방내과에서 참관실습을 하기 전에 일본의 한방의료 현황에 대해 조사를 했습니다. 제가 파악하고 있는 현황을 간략히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일본 한방의학 교육과정은 2007년도부터 전국 80개 대학 모든 의대의 교육 커리큘럼으로 도입되었습니다 [1].


그 후, 한방 교육은 더욱 구체화되어서, 2017년에는 교육 목표가 “한방의학의 특징과 주요 한방약(漢方薬)의 적용, 약리작용을 설명할 수 있다 (漢方医学の特徴や、主な和漢薬(漢方薬)の適用、薬理作用を概説できる)”로 개정되었습니다 [2].


한방약의 처방 빈도는 굉장히 높으며, Moschik 등의 논문에 의하면 일본 전문의의 83.5%가 한방약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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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진료소의 91.8%가 한방약을 처방하며, 86.3%가 고령자 의료에 한방을 중시하며, 약 50%가 종합적인 진료 능력을 갖춘 의사 양성에 한방의 역할을 지적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4].


한방외래(漢方外来)가 있는 대학병원도 다수 있으며, 한방내과(漢方内科), 화한진료과(和漢診療科), 동양의학과(東洋医学科) 등 다양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도 한방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도호쿠대학병원 한방내과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1] Yoshihiro IMAZU, Sung-JOON KIM, Hiroshi ODAGUCHI, Hiroshi YANAGISAWA, Takeshi SAKIYAMA. The Current Kampo Education Situation at 80 University Faculties of Medicine. Kampo Med. 2012;63(2):121-130.

[2] 漢方の将来ビジョン2040, 国民の健康と医療を担う. 日本漢方生薬製剤協会. (2018年 7月)

[3] Moschik EC, Mercado C, Yoshino T, Matsuura K, Watanabe K. Usage and attitudes of physicians in Japan concerning traditional Japanese medicine (kampo medicine): a descriptive evaluation of a representative questionnaire-based survey. Evid Based Complement Alternat Med. 2012;2012:139818. doi: 10.1155/2012/139818.

[4] 漢方薬使用実態及び漢方医学教育に関する意識調査. 日経メディカル開発.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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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국에 들어가서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다카야마 신 교수님과 단둘이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미리 띄어놓은 PPT로 도호쿠대학병원 한방내과의 활동 및 전망에 대해 소개를 해주시고 저는 질문이 있을 때마다 이야기를 드리는 식으로 첫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방 교육이 한방・통합의료학공동연구교실(漢方・統合医療学共同研究講座)에서 이루어지며 의대생이 한방의학을 주제로 학회에서 발표했다는 이야기로 설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종합진료의(総合診療医)가 한방의 증례 보고를 했으며 고령자 가이드라인에 수록된 한방 파트에 도호쿠의대 의료진이 참여했다는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다카야마 신 교수님의 관심 분야가 한방 교육이었기에 이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놀랐던 것은 일본의 한방전문의를 취득하기 위해 소요되는 기간이었습니다. 6년 의대 교육 과정 후 초기 연수를 2년간 받고 종합의료/내과전문 연수를 3년간 이어서 받은 후 거기에 3년간의 한방전문 연수를 받아야 ‘한방전문의(漢方專門医)’라는 타이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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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내과에 있던 선생님들은 신경과전문의, 부인과전문의 등 이미 타과의 전문의 연수를 마치시고 한방의학에 흥미를 느껴서 도호쿠대학병원 한방내과에서 연수를 받고 계시는 분들이었습니다. 해당 PPT 슬라이드를 보는 순간 제가 흥미를 보이는 걸 보시고 나중에 이 슬라이드를 메일로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위 그림). 그때 저도 한국에서 준비하고 인쇄해 온 ‘한국 한의학의 현황’ 프린트를 드리면서 한국에서는 매년 800여 명의 한의사가 배출되며 그중 100명 이상이 수련 과정을 받는다는 통계를 보여드렸습니다. 교수님께서 신기해하시며 이런 정보 교류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져온 다카야마 교수님의 저서에 사인해주실 때 ‘いっしょに国際交流しましょう。(같이 국제 교류를 합시다.)’라는 코멘트도 남겨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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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야마 교수님과 면담이 끝난 후 한방전문의인 아리타 류타로(有田 龍太郎) 선생님과 함께 도호쿠대학병원 및 한방세미나교실을 견학하였습니다.


도호쿠대학병원의 진료과목 안내판을 보니 첫 번째로 소개된 진료과목이 ‘종합진료과(総合診療医)’였습니다. 종합진료의는 일본의 19번째 전문의이자 ‘전인적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입니다. 한방내과와 같이 한방・통합의료학공동연구교실에 소속되어 있는 과이며, 이 때문에 의료진도 다수 중복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한방내과가 한방의학을 중점으로 진료하는 과라고 하면 종합진료의는 서양의학을 중점으로 보되 한방의학을 적극적으로 응용하는 과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암 화학 치료의 부작용을 케어하는 완화의료과, 노인 질환을 중점으로 보는 노년병과 등에서도 한방약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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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동을 돌면서 날이 갈수록 노화로 인해 암 환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대도시에 있는 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의료전달체계 문제, ‘한방 진료를 AI가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고민하는 것은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어느새 의대생이 한방 교육실습을 받는 장소인 의과대학 한방세미나교실에 도착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제 눈을 끄는 물건이 있었습니다. 일본동양의학회에서 지인이 봤다는 교육용 복진 시뮬레이션 모델이 7종류나 구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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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진 모델을 뒤집어보면 해당 모델의 복증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모델들을 눌러보고 ‘소복불인’, ‘작약증’이라고 답하니 정답이라고 해주셔서 뿌듯했습니다.


제가 체험한 모델은 복력실/허(腹力実/虚), 심하비경(心下痞鞕), 흉협고만(胸脇苦満), 복직근연급(腹直筋攣急), 소복구급(小腹拘急), 소복불인(小腹不仁) 모델이었습니다. 이외에도 복력2, 3, 4 모델과 위내정수(胃内停水), 제방압통(臍傍圧痛) 모델이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Yakubo 등의 논문 [5]을 참고하면 좋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5] Yakubo S, Kinoshita Y, Aki T, Ota H. Improvement of A Simulator Production Project for Abdominal Palpation in Kampo Medical Training. Kampo Medicine. 2008;59(4):595-600.


아리타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도 복진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놀라워하셨습니다. 제 모교인 원광대의 경우 본과 진단학 실습시간에 간단한 복진 수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연하게도 도호쿠대학에 오기 직전 진료 과정에 복진을 사용하시는 한의원에 로컬 실습을 했기에 자신 있게 답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다음에는 실습용 약재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이 부분은 한국과 크게 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쯔무라 제약 등 한약제제들이 많이 갖춰져 있었다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이때 아리타 선생님께 “일본 의사분들이 한약제제를 합방하여 사용하는 걸 보았는데 감초나 황금 등이 겹칠 수도 있어 불편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점에 대해 일본의사분들이 주의를 하고 있으며 도호쿠의대에서는 탕약(煎じ薬)으로도 환자에게 투여하고 있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오늘 오후 한방내과 콘퍼런스 시간에 전탕약을 시음해보고 답을 맞혀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며 어떤 전탕약을 문제로 낼까 같이 의논해보자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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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한방 진료 현장을 참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와사키 선생님께 한방 진료 참관을 부탁드린지 딱 4달 만의 일입니다. 진료실에 의사 두 분이 계셨는데, 한 분은 연수를 받고 계시고 다른 한 분은 지도해주시는 분이셨습니다. 두 분 모두 타과 전문의이신데 서로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받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억이 나는 케이스 몇 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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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하지궐랭으로 한방내과에 내원하시던 환자분이 어느 날 사고를 당하여 우측 무릎이 잘 안 굽혀지고 우측 발목이 상당히 부었다며 한방내과에 내원하셨습니다. 다리 골절로 붓기가 생기고 이에 순환이 잘 안 되어서 부기가 심해졌다고 판단했습니다. 외과적 진단을 끝난 후 혀를 보여달라고 하시더니 치흔이 뚜렷한 것을 보고 수체(水滯)라고 진단했습니다.


기존에 치료받으시던 대로 우차신기환, 당귀작약산, 계지복령환 쯔무라 제제를 사용하였으며 무릎이 잘 안 굽혀지는 것은 물리치료를 지속하고 수족냉증에는 온열치료를 병행하도록 하였습니다. 제가 저런 외상 치료에 왜 침 치료를 안 하시는지 여쭤보니 도호쿠대학병원은 의사와 침구사의 역할이 구별되어있다고 합니다. 한방 진료 참관 후 침구과 참관도 할 예정이라고 전달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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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의 어머니이며 이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어하시는 환자분이 오셨습니다. 약을 먹고 난 후 오히려 피곤해졌다고 호소를 하십니다. 수면 상태를 확인하였더니 요즘 더워서 제대로 잘 수 없어 피곤하다고 하시며 빈혈 기미도 있고 변은 부드럽지만 찝찝하다고 합니다. 냉방을 쬐면 체온이 내려가는지를 여쭤보니 그렇지는 않다고 합니다.


이후에 복진을 했습니다. 먼저 앙와위 상태에서 다리를 펴도록 하고 늑골, 흉골병, 복직근, 서혜부 등을 눌러 압통 여부를 확인한 후 다리를 굽히도록 하여 복부를 타진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배를 흔들어보고 물소리가 나는지도 확인했습니다.


오늘 증상을 보고 “오령산을 처방해야 할까?”에 대해 의논을 하시더군요. 추가 문진을 통해서 여름이어서 물을 더 많이 마시게 된 걸 확인하고, 여름이 지난 후에도 변이 무르고 수체(水滯) 증상이 지속될 경우에 다시 고려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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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치료 부작용으로 더 이상 양방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어 한방내과에서 치료 중인 소세포폐암(小細胞肺癌) 환자분이 오셨습니다. 인삼영양탕을 베이스로 맥문동, 지모 등을 가미한 전탕약을 사용하는 중입니다. 약을 먹고 나서 힘이 난다며 고마움을 표하셨습니다.


오늘은 변비 문제로 오셨습니다. 관장을 하려고 했는데 변이 딱딱하여 불가능한 정도라고 합니다. 양방 변비약을 복용해도 차도가 없다고 합니다. 대장암을 의심하여 검사하였지만 이상이 없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일단 아침마다 화장실 변기에 앉는 습관을 길러라”라는 지도를 하셨습니다. 마자인환과 윤장탕 중 처방을 고민하시더니 감초가 안 들어가는 마자인환을 처방하기로 하였습니다. 변이 안 나올 때에 한해서 전날에 마자인환을 복용하라고 복약지도를 했습니다.


차트에 ‘심신의학요법(心身医学療法)’이라는 항목이 보여서 이 항목은 무엇인지 여쭤보았더니 생활지도도 수가 점수로 넣을 수 있다고 답을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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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후 침구진료실에서 참관하였습니다. 마취과전문의이자 한방전문의 연수 과정 중이신 선생님 한 분과 도호쿠의대 본과 4학년 학생분과 함께 침구사 선생님의 침구 치료를 참관하였습니다.


C-KSH 0050-title-12.jpg 대상포진으로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


침구사 선생님도 설진, 맥진 등을 하여 진단을 내리고, 침 한 개마다 개별포장이 되어있는 멸균 제품을 사용하여 침 치료를 하였습니다. 좌측 대퇴사두근 앞쪽에 이상 감각 등 문제가 있으면 우측 삼두근 부위에 자침하며, 문제가 되는 부위에 변화를 확인하는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반응점을 이용하는 침법이기에 침은 비교적 얇게 놓는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좌병우치 침법을 사용하시는 것 같아 참관이 끝나갈 무렵 어떠한 침법을 사용하고 계시는지 여쭈어보니 동씨침 계열을 사용하신다고 하였습니다.


C-KSH 0050-title-13.jpg 다리 전체에 이상 감각을 호소하는 환자


기(氣) 순환에는 태충, 혈(血) 문제에는 삼음교, 수체(水滯)에는 음릉천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체력이 약한 환자인 경우 얇은 침을 사용하는 등 여러 궁리를 하셨습니다. 이상 감각을 호소하신 환자분께서 변비가 있다고 하며 식욕이 없다고 했는데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고 좋아하셨습니다.) 수체(水滯)와 담(痰)을 해소하는 풍륭에 자침한 순간 환자분께서 “배고프게 하는 혈자리에 침을 놓았나요? 침을 맞자마자 갑자기 허기가 지네요.”라는 말씀을 하셔서 신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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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내과 콘퍼런스 전 휴식 시간에 선생님들과 함께 한방양생 부루마블을 했습니다. 자신의 체질을 감별한 후 계절마다 일어날 수 있는 이벤트가 나열된 부루마블 주사위 게임을 진행합니다. 칠석 불꽃놀이, 여름방학, 장마 등의 이벤트에 어떤 한약 및 음식을 먹어서 대처해야 하는지 자연스레 습득되는 게임이었습니다.


1. 먼저 자신의 체질을 자가진단합니다.

2. 위 오른쪽 사진의 표에 점수를 매겨서 기허, 혈허, 음허, 기체, 혈어, 수체(습담) 중 자신의 체질을 고른 후 기본 점수 50점을 받고 게임을 시작합니다.

3. 주사위를 굴리기 전 생약, 음식 카드를 4장씩 받고 각 턴마다 무조건 하나씩 써야 합니다. 쓰고 나면 카드 한 장을 다시 뽑습니다.

4. 주사위를 굴린 만큼 자신의 말을 움직인 후 말이 도착한 칸에 적힌 내용에 따라 자신의 체력을 깎거나 더해가면 됩니다.

5. 몇몇 칸은 해당 체질에 불리한 내용이 적혀있으며 이때 카드를 사용하여 이를 막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 예시를 들자면, 수체(습담)체질이 장마를 만나면 체력이 10이나 깎입니다. 이때 오령산 등 이수제제(利水薬)를 사용하여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수박도 이수제에 해당하여 장마에 대처할 수 있다고 하네요. 일반인들도 이런 게임을 하거나 혹은 관련 콘텐츠를 많이 접할 수 있다면 몸의 이상을 느낄 때 한의원에 자연스레 내원하게 되는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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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한방 생약 소믈리에 협회(日本漢方生薬ソムリエ協会)의 [6] 한방 생약 소믈리에 (중급) 자격증을 보유하신 아리타 선생님께서 직접 끓인 탕약을 갖고 오셨습니다. 더불어 탕약에 들어간 약재 샘플들을 상자에 담아서 오셨습니다. 저도 도전해봤지만, 본초학 실습 이후 오랜만에 보는 약재들이라 답을 못 맞췄습니다. 정답은 대시호탕이었습니다.


한약재 크기가 작다 보니 복령과 반하가 헷갈렸고, 생강은 주사위처럼 잘려 있어서 한 알 먹어보기 전까지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한방전문의 선생님들께서도 처방 별로 약재가 표로 정리된 책을 가지고 열심히 찾아보셨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탕약 테이스팅과 더불어 약재 감별 시간을 갖는다고 합니다.


[6] 일본 한방 생약 소믈리에 협회(日本漢方生薬ソムリエ協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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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부터 선생님들이 다 모여서 환자 케이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만화 원작 드라마인 ‘라디에이션 하우스(ラジエーション・ハウス)’를 보고 남편의 병이 ‘뇌척수액 감소증 (Cerebrospinal fluid hypovolemia)’이라며 의사의 진단을 불신하는 환자, 사우나나 핫요가를 통해 땀을 내지 않는 날은 부종 때문에 몸무게가 10kg이나 늘어나는 환자, 입에서 철 비린 맛이 난다는 케이스 등을 소개하면서 의견을 공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대다수의 환자가 다른 병원이나 병원 내의 타과의 소개를 받아서 온 환자들이었습니다. 의사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맡아서 해결하는 곳이 한방내과입니다. 제가 농담으로 매일매일 ‘코난 (일본 탐정만화)’처럼 사는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다들 웃으시더군요.


콘퍼런스 도중 ‘왜 기존 처방에서 황금을 빼고 황백 용량은 낮춘 후 후박을 더했나요?’ 등 구성 약재에 대해 질문을 하고 이에 답하는 장면도 참 인상 깊었습니다.


여러 전문의 선생님들이 한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듣고 있으니 복잡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기 때문입니다. 협진 체계가 잘 갖춰진 한방병원들을 제외하고는 의사들은 한의학을 접해볼 기회도 없고 한의사들을 경쟁의 대상으로만 보기 쉬우니 한약을 복용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인 분들이 많고 침이 플라시보라는 주장을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한의학과 관련된 논문이나 책은 읽어보지도 않고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이 있어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이루어진 한약 간독성 연구나 하버드의대와 공동으로 진행된 침의 기전에 대한 연구를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어 공모전에 출품해보거나, 일본에서 의사들이 많이 사용하는 한방약의 과학적 근거들을 모아둔 자료를 번역해보기도 했습니다만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일본 의사들의 한약 토론을 보면서 ‘이 광경을 한국에서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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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참관실습은 일본의 한방의료를 보러 가기 위해서였지만, 한편으론 한국 한의학의 현황을 알리는 기회이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의 한의사 제도와 한방전문의 수련 과정들을 간략히 소개해드리니 좋은 자료라고 칭찬해주시고, 한국에선 한 봉지에 침이 10개가 들어간 제품을 쓰고 어떤 한의사분은 도침을 쓴다는 걸 실제 제품을 보여드리며 설명해드리니 신기해하셨습니다. 특히 황련해독탕 약침 등 한약을 사용한 주사 약침에 대해 말씀드리니 굉장히 흥미로워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한국의 원외탕전이나 한의대에서 이루어지는 침구 교육 등에 관심을 보이시기도 하셨습니다. 조금이나마 이와 관련된 말씀을 해드릴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일본 소학교(小学校)에 전학을 갔을 때 한국에서 온 학생으로서 전교생 앞에서 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당시 외교관을 꿈꿨던지라 ‘제 꿈은 장차 한국과 일본을 잇는 가교(架け橋)가 되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던 기억이 납니다. 우연히도 다카야마 선생님께서 ‘가케하시(架け橋)’라는 표현을 쓰시면서 앞으로도 한국 한의학과 일본 한방의학의 교류가 활발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주시니 먼 옛 기억이 새록새록 났습니다.


졸업 후에도 일본을 왕래하며 교류를 지속하고 싶습니다. 도호쿠대학병원 한방내과를 참관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이와사키 선생님을 비롯하여 실습을 지도해주신 다카야마 교수님과 여러 한방전문의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학생이 쓴 부족한 참관실습 후기이지만 마지막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KMCRIC 학회 참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