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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과3학년 황동원입니다. 이번 방학 저는 온라인으로 진행된 경락경혈학회 학술대회에 참관인으로, 포스터 발표자로 참여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의학 기초연구의 현황과 미래라는 큰 주제를 바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학회 특성상 경락과 관련한 내용만 다룰 것이라는 저의 편견을 깨고 한의학 전반에 걸쳐 기초적인 내용부터 임상연구, 독특한 접근, 미래 연구 동향, 최신 정보 등 다양한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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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세션 첫 발표로 이상훈 박사님의 초음파 영상을 통한 경혈학과 해부학의 융합 관련 강의가 있었습니다. 저는 마침 경혈학과 침구학 수업을 들으며 관련 내용에 익숙해지던 참이었는데, 현장의 학자들은 경혈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혹은 어떤 문제점이 개선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저희는 보통 경혈을 체표면 상의 2D 점으로 인식하는데, 현대 한의학에서 경혈에 대해 근육학적 접근을 강조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은 3D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지요.


발표가 끝나고 나온 피드백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를테면 환도혈 등 동아시아 세 국가별로 세부 부위가 조금씩 다르게 합의된 경혈이 있지만, 3D로 보면 사실은 같은 piriformis muscle을 타깃으로 삼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노력 없이 경혈을 한의학적 시각으로만 바라보다 보면 언젠가 보편화될 전자약 (electroceuticals) 주도권을 다른 이들에게 빼앗길 수 있으니, 여러 방면에서 경혈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타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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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김지은 박사님의 연구 소개도 제가 익숙하게 접해온 FD를 salience network라는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실험을 위한 기기인 modified pressure algometer를 직접 제작한 것도 인상적이었고, 진짜 침에서만 salience network가 작동되어 sham acupuncture와의 차이를 기전적으로 보인 것도 이전에 보지 못한 접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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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 기관에서 인턴으로 잠시 활동하며 연구를 할 때 연구자가 보고자 하는 것을 명확하게, 효과적으로 보기 위한 outcome measure를 설정하고 필요하다면 이를 위한 기기를 개발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번 학회 발표를 통해 기초뿐만 아니라 임상연구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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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연구에서는 채윤병 교수님께서 지난 세월 열심히 연구해 오신 ‘인공지능 시대 경락경혈 연구 방향’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로 키워드 분석 결과를 소개해 주셨는데, 2,000여 개의 키워드 중에도 자주 등장한 것들은 침, 경혈, 약침 등 저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단어들이었지만 시대에 따라 트렌드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이를테면 최근에는 경혈 자체보다도 질환이 키워드로 많이 등장하고 있었죠. 또한 기전적으로도 과거에는 NO나 c-fos를 봤다면, 최근에는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방면으로 침의 기전 연구가 수행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선혈의 패턴은 고전 이론 기반인 경우가 많다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포스터 발표에서 소개한 한의사의 Information-seeking behavior 관련 내용과 일맥상통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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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를 마무리하며 살펴본 김승남 교수님, 류연희 박사님의 연구 역시 학술대회의 취지에 걸맞게 최신 연구 동향과 관련이 깊었습니다. 여러 기초연구 중 miRNA를 보는 사례, 전기전도도 등을 바탕으로 체표 반응점을 설정하여 경혈과 관련지어 보는 방법을 알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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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2부의 강연에서는 개별 발표에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진 만큼, 다양한 방면의 학술적 내용을 더 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세 강연자께서 준비해오신 강의 주제가 무척 다양하여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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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강의는 이호섭 교수님의 한방 심신 증후군 연구였습니다. 음양의 생리관부터 처방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지금의 한의사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도 정체성 측면에서 절대 잃지 말아야 할 기본적인 개념들을 상기시키는 강의였습니다. 특히 침구 치료는 음양의 병리 상태를 조절하는 방면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학회의 취지에 걸맞은 강연이었죠.


하지만 과거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한의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심신(心腎)의 관계는 익숙하지만, 그 내용을 깊이 알지는 못할 수도 있는데, 심신 증후군의 유형을 소개할 뿐 아니라 관련한 연구, 심과 신 사이 상호작용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죠. 다만 아직 연구가 충분하지는 않은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과거 심신불교라고 했던 것을 심신 증후군 관점에서 정리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연구하여 이론을 확장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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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손창규 교수님의 CFS/ME 병태 생리 및 임상 적용 관련 강의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내용입니다. 학교에서 접할 수 있는 임상 수업과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되어 나름 익숙했던 점도 없지 않았습니다. CFS/ME는 지난 학기 갓 배운 내용으로 저도 상당히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손창규 교수님은 해당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제가 몰랐던 최신 트렌드, 업데이트된 정보와 함께 해당 질환이 한의사에게 가지는 중요성 등을 상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만성 피로가 왜 CFS/ME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임상의로서 이러한 환자들을 접할 때 주목해야 할 감별 포인트는 무엇인지, 흔히 기사에서 만성피로증후군을 논할 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무엇이 왜곡인지, 최신 진단 기준은 무엇인지, 한의사로서 어떻게 심각도를 평가하고 증상관리와 치료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죠. 조금씩 헷갈리고 대충 넘겼던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신기했던 점은, 학교 수업 때 병원 교수님께 들었던 것과 유사한 경험에 대해 손창규 교수님이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즉 이러한 환자는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받는 것만으로도 매우 기뻐하곤 한다는 것이지요. 교수님은 CFS/ME를 연구하게 된 계기 중 하나로 과거에 내원한 환자의 사례를 들어주셨는데, 이 CFS/ME 환자는 주위로부터 게으르다, 잠만 잔다 등 핀잔을 듣다가 내원하여 본인이 CFS/ME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은 것만으로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비슷한 사례를 많이 접하며, 적극적으로 치료하여 좋은 효과를 낼 수 없는 난치병이라도 관련 내용을 열심히 공부해서 잘 알고 있으면 어떤 면으로든 반드시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훗날 교수님과 저를 비롯한 많은 한의사의 노력으로 CFS/ME 하면 한의학이 바로 떠오르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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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의 마지막 강의는 김상찬 교수님의 간질환 관련 음양곽의 다중 약물 연구 내용이었습니다. 단순히 고전 이론에 따라 음양곽이 간질환에 좋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근거를 도출해나가는 단계를 이해할 수 있었죠. 이를테면 간질환 관련 방제 46종을 선정 추출하고, 각 방제의 HPLC를 돌리고, 세포 수준에서 효능을 평가하고 구성 약재 134종의 효능도 마찬가지로 평가하는 고된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뛰어난 효능을 보인 약물이 음양곽이었던 것이지요. 당연히 NF-kB, MAPK signaling 및 NO, iNOS, NPS 등 염증인자를 바탕으로 항염증 효과를 검증하는 과정도 수행되었습니다.


두루뭉술하게 여러 염증 기전에 관여할 것이다 넘기지 않고, 각 기전과 관련 있는 인자의 수치를 모두 확인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기전을 음양곽이 건드리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음양곽은 p38, ERK, JNK1/2 수치를 유의미하게 바꾸지 않고, NF-kB가 항염증의 주된 기전임을 의심할 수 있는 식이죠. 추가 실험 소개가 이어진 후, 기존의 뛰어난 처방 생간건비탕에 음양곽을 더해보자 하신 주장도 설득력이 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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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이에 이어 소개된 임상연구 관련 내용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어떤 연구를 하든 똑같은 환자가 있을 수는 없으니, 약물 구성을 정의 내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물론 이것이 단순히 성분에 국한된 내용은 아닙니다. 보중익기탕을 먹으면 피로가 개선된다고 해도 쥐랑 사람은 다른 것처럼 말이죠. 물론 독성연구, 새로운 약의 활용 관련 내용도 강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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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022 경락경혈학회 정기학술대회는 한의학 기초연구의 현황과 미래를 주제로 삼고 있으며, 실제로도 기초 이론부터 임상 현장까지 가장 앞서 나가는 한의사들은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여전히 코로나19가 잦아들지 않아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지만, 오히려 그 덕에 많은 분이 각자의 환경에서 편하게 학회에 참석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비대면 강연이라는 점이 무색할 만큼 활발하고 날카로운 질의응답도 끊임없이 진행되었죠. 한의사로서 첫걸음을 내디딜 준비를 하는 학부생에게도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학회에 소개된 모든 내용이 훗날 사회 곳곳에서 크게 빛을 발하고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데 기여하길 응원하며 학회 참관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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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MCRIC 학회 참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