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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연구년은 호주 시드니로 가려고 했었다. 그래서 이향숙 교수님께서 쓰신 KMCRIC의 글 (링크 바로가기)을 고맙게 몇 번이나 탐독했는지 모른다. 큰 도움을 주셨던 이 교수님께서 나의 연구년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부탁하시니 거절할 수는 없는 법. 아마 센터 실장님의 압박이 있으셨겠지만, 덕분에 지난 1년여를 돌아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1년 정도 살면서 개인적인 경험 위주로 써보려고 한다. 이 글은 대표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않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이므로 반박 시 당신의 의견이 맞습니다 (이 표현을 한번 써보고 싶었음 ㅎㅎ). 미국은 케바케의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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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이야기한 듯이 연구년을 위해 원래 가기로 한 곳은 호주 시드니 한 대학의 연구소였다. 와도 된다는 허락까지 받았으나 코로나19로 호주 전체의 방문연구자에 대한 비자 발급이 거의 중단되면서 2022년에 연구년을 가려면 급히 갈 곳을 바꿔야 했다. 두세 군데 메일을 보내던 중 미국 메릴랜드 의과대학의 통합의학센터 (The Center for Integrative Medicine at the University of Maryland School of Medicine)에서 와도 좋다는 답신을 받았다. 이곳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Trusted evidence. Informed decisions. Better health'를 지향하는 Cochrane 그룹의 Complementary Medicine Field의 사무소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체계적 문헌고찰과 코크란 리뷰에 관심이 많았고, 내 주요 연구 분야 중 하나였기에 Cochrane에서는 어떻게 일하는지 옆에서 보고 싶었다. 사실 이 연구소는 예전에 여러 한의계 교수님들이 방문한 적이 있는 곳이긴 하지만 당시 연구소장인 Brian Berman 교수는 이미 은퇴하였고 지금 연구소장인 Chris D’Adamo 교수는 나도 모르고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기에, 연구년으로 와도 좋다는 답변은 사실 좀 뜻밖이었다. 그 답신 덕분에 급하게 연구년 갈 장소를 변경하고 학교의 허락을 받을 수 있었으니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이렇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국 동부 메릴랜드 주에서 가족과 함께 2022년 일 년을 보낼 수 있었다.


막상 미국에 도착하여 연구소에 방문해 보니 연구소 자체의 활동은 거의 없었다. 홈페이지의 여러 연구원은 어디 계신지 찾기가 어려웠다. 연구소장도 직접 만나서 하는 미팅보다는 Zoom 회의를 선호했는데 아마 코로나19 이후 거의 모든 회의가 비대면으로 바뀌면서 이제 일상으로 정착한 듯싶었다. 뭘 시키려고 그리 호의적으로 오라고 하셨나 싶었지만, 워낙 얼굴 보기도 힘든지라…. 뭐라도 같이 하자고 여러 번 문의해도 일 년이라는 짧은 기간 머물 사람이 진행되는 일의 중간에 끼어들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연구소장은 생활면에서는 이것저것 물어봐 주시고 관심을 표해준 친절하신 분이었다. 후에 그의 전문 분야인 영양학 연구를 시작하긴 하였으나 주 며칠을 출근하여 근무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왔던 나는, 덕분에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Cochrane Complementary Medicine Field 파트는 Lisa Susan Wieland 교수가 전담으로 맡고 있었는데 그 또한 연구소에서 보기는 쉽지 않았고 연구소와는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편이었다. Cochrane 그룹 전체가 2022년에 큰 변화가 있어서 Susan 교수는 그 일로 바쁜 듯하였고 이후 한두 가지 연구를 같이 진행하면서 몇 번 만날 수 있었다. 이곳의 조직과 근무 환경은 한국에서와는 많이 달라서 지금도 낯선 부분이 있다. 두세 개 기관의 이중 삼중 포지션은 기본이고 정시 출퇴근은 아예 없어서 혼자 연구실을 지키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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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바꾼 환경은 나에게도 적용이 되었는데 한국에서 하던 연구를 거의 그대로 미국에서도 할 수 있었다 (라고 쓰고 해야만 했다고 읽는다). 최근에 연구년을 다녀오신 분들은 공감하실 텐데, 과거에는 일 년 동안 연수를 가면 한국에서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의 삶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하던 일을 그대로 가져가서 해야만 한다. 이메일과 카톡은 물론 Zoom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회의가 한국 내에서도 일상화된 것처럼 먼 미국 동부에서도 시차만 빼면 한국에서 하던 일을 거의 그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말 그대로 지구'촌'인데 한국에 있는 분들과 실시간 회의는 물론 강의도 몇 번 하였고, 심지어 한국, 영국, 미국 동부에 흩어진 연구진들이 시간에 맞추어 Zoom에서 만나 회의를 한 적도 두세 번 있었다. 물론 실제 사람이 만나서 하는 회의와 100% 같을 수는 없고 내 생각엔 70~80% 정도의 효율은 되는 것 같다. 아직은 어쩔 수 없이 직접 만나야 진행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와서 참여한 질적 연구는 한국에서 한의사 면허를 딴 후 도미하여 개원한 한의사 몇 분을 Zoom으로 만나 인터뷰한 것이다, 인터뷰를 한 원장님 중 한 분은 버지니아 주 맥클린 (McLean)이라는 지역에서 개원하고 계신 정다운 원장님이다. 내가 무릎, 팔꿈치, 허리 등이 아플 때마다 찾아가면 꼼꼼히 진료를 해주셨다. 집에서 차로 한 시간 넘게 걸려서 더 자주 못 간 것이 아쉬울 정도로 잘 치료해 주셨다. 한의원은 철저한 예약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는데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려고 보면 남은 자리가 별로 없을 정도로 환자가 많아 보였다. 환자별로 방이 배정되기에 다른 환자와 동선이 겹치지 않았고, 내가 있는 동안 환자가 꾸준히 증가하였는지 두 차례 확장하였다.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신 분들의 여러 이야기는 정리 이후 출판될 것이니 기대하시라. 이처럼 2022년 미국 서부에서 연구년을 지내시는 이상훈 교수님의 연구를 같이 할 수 있었다.


진료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잠깐 언급하자면, 미국에서는 병원 등에서 진료받으려면 무조건 내가 가지고 있는 보험부터 확인을 해야 한다. 내가 가진 보험이 이 의료기관에서는 커버가 되는지 그리고 어떤 질환에 몇 번까지 청구할 수 있는지 등을 확인한 후에 진료를 시작할 수 있다. 보통 연구년을 가면 해당 기관에서 제공하는 의료보험을 들거나 그 기관에서 요구하는 범위까지 커버해 주는 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내가 가진 보험은 국내에서 가입한 해외 장기 체류자 보험이었고 기관에서 요구하는 범위를 커버해 주는 상품이었다. 진료를 받으면 우선 개인 돈으로 결제하고 나중에 지출한 금액만큼 환급받는 형태인데 비록 횟수의 제한은 있으나 다행히 침 치료가 100% 커버가 되어 잘 치료받을 수 있었다.


미국의 사악한 의료비와 익숙지 않은 의료 시스템 때문에, 미국에 오며 가장 걱정한 것이 혹시 가족 중에 누가 아프거나 다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점이었는데 다행히 가족 중 누구도 병원을 갈 만큼 크게 아프거나 다치지 않았다. 중간에 아이들이 코로나19에 걸렸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약과 동네 약국의 일반 약으로 잘 넘겼다. 감기 등 약간 아픈 정도면 동네 약국 CVS나 Walgreens 등에 진열된 다양한 약 중에서 필요한 성분을 체크해서 골라 사용할 수 있으니 약에 대한 지식이 좀 있으면 경증 정도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겠다. 물론 한국에서 주로 사용했던 한약제제가 두고두고 아쉬워 가져간 약이 다 떨어졌을 때는 급한 대로 근처 한인 마트에서 (매우 비싼!) 한약제제를 사서 복용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걱정한 것에 비해, 나의 침 치료에만 보험을 사용했을 뿐이니 지금도 참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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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와 관련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지금부터는 의식의 흐름대로 미국 동부와 이곳에서 생활했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메릴랜드 주는 미국 동부의 작은 주로 미국 독립 당시 있던 13개 주 중 하나이다. 수도인 워싱턴 DC에서 가까워 NIH, FDA 등 주요 정부 기관이 많고 DC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많은 편이다. 역사적으로는 옆 주인 버지니아와 함께 남북전쟁의 주요한 전장이어서 주 곳곳에 battle field park가 있다. 날씨는 한국과 비슷하여 4계절이 뚜렷한 편인데 겨울에는 서울보다는 덜 춥고 여름에는 덜 더웠다. 블루크랩이 유명한 동네인데 여름에 한 시간 반 거리의 체서피크만 (Chesapeake Bay)으로 가면 블루크랩을 직접 잡을 수도 있어, 아내가 지인들과 함께 직접 잡아 와서 간장게장을 담가 먹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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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년으로 방문한 기관은 University of Maryland Baltimore (UMB)이다. University of Maryland는 미국 동부 메릴랜드 주의 주립대학으로 메릴랜드 내의 세 곳에 캠퍼스가 흩어져 있다. 학부 캠퍼스는 University of Maryland, College Park (UMD)와 University of Maryland Baltimore County (UMBC)에 흩어져 있고, 특히 UMD는 미국 내에서도 꽤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는 대학이다. 볼티모어 안에 있는 UMB는 의약 계열 및 대학원들이 소속되어 있는 캠퍼스로 병원을 중심으로 건물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통합의학센터는 의과대학 내의 Oncology 파트에 있어서 볼티모어에 자리 잡고 있다.


볼티모어는 미국 내에서도 위험한 지역으로 소문난 곳이라 시내에서는 살기 어려워 볼티모어로 연구년을 오신 분들 - 대표적으로 존스 홉킨스 대학이 있다 - 중 많은 분이 차로 2~30분 거리에 있는 엘리콧 시티 (Ellicott City)나 클락스빌 (Clacksvill) 등 인근에 거주하고 있다. 우리 가족이 거주한 곳은 엘리콧 시티인데 한국로 (Korean Way)가 있고 H-Mart나 롯데마켓 등 한인 마트라고 할 만한 것이 있으며 한인 교회나 한국 식당, 미용실, 차 정비소 등이 있는 한인 밀집 지역이라고 할 만하다. 캘리포니아 LA나 다른 대도시의 큰 한인 지역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나름 한인타운을 형성하고 있는 지역이라 영어가 부족해도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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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출처: https://www.bestplaces.net/city/img.aspx?p=2426000_MD_Ellicott_City


집 주위에는 고층 빌딩이 없고 조금만 더 서부로 이동하면 와이너리나 여러 팜 (farm)이 있는 한적한 곳으로, 이곳 자체는 평지이나 1시간 내외로 산과 바다에 모두 갈 수 있다. 근처 도시로는 볼티모어가 20여 분 거리이고 워싱턴 DC는 1시간, 필라델피아는 2시간 정도면 갈 수 있어서 당일치기 여행도 가능하다. 예전에 대한항공 광고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에서 나온 메릴랜드 주도인 아나폴리스도 1시간 거리이다. 뉴욕 시나 피츠버그는 3시간 반 정도 걸려 1박 2일로 다녀올 만하고, 나이아가라 폭포나 보스턴이 차로 8시간 정도 걸려 마음먹고 한 번에 가는 분들도 많다. 한국에서 듣기에는 동부로 가면 서부에 비해 다닐 곳이 별로 없을 거라고 하였는데 미국 자체가 동부에서 시작되었고, 미국 내에서 상대적으로 오래된 곳이 많은데다 큰 도시들도 가까워서 나름 갈만한 곳이 많았다. 무료 박물관이 많은 워싱턴 DC에는 수시로 다녀오고, 뉴욕시는 이런저런 이유로 4번 정도 방문하였다. 한국에서 고층 빌딩 가득한 곳에서 살다가 이런 한적한 곳으로 옮겨와 가끔 도시로 놀러 가니 그것도 괜찮은 삶의 방식이다 싶었다. 단기간 여행으로 오면 가기 어려운 공원이나 박물관, 농원, 가까운 국립공원에 가는 재미도 쏠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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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년 초기에 아이들은 차에서 내려 다시 마스크를 끼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집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참 좋아했다. 연구년 오기 전에는 비행기 타기 48시간 전 코로나19 테스트 음성 확인서가 있어야 비행기를 탈 수 있어서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으려고 조심조심했었는데, 미국에 와서는 외부에서는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서 답답하지 않아 살 것 같았다. 그래도 미국 동부는 마스크를 쓰는 편이었기에 실내에서는 아직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도착한 2월 25일의 바로 얼마 전까지 초등학교는 온라인 수업이었고 교회에서도 대면 예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우리 가족이 사는 아파트에는 본래 한국에서 연구년 오는 가족들이 많다고 하였는데 최근에는 거의 없다가, 6월 이후에 한국에서 오는 가족들이 늘어나는 걸 보니 이제 조금씩 코로나19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 같았다.


미국에 와서 초기에 집 세팅을 하면서 놀란 것은 주위에 마트가 정말 많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는 마트의 종류가 한정적이었으나 미국에서는 월마트만 알고 온 나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꽤 큰 크기의 마트가 여기저기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 많은 물건이 다 팔리지도 않는 것 같은데 이런 마트는 어떻게 유지되나 쓸데없는 걱정도 해보았다. 마트 물품의 가격이 세세하게 다르고 할인되는 품목은 가격 차이가 꽤 나서 부지런히 움직이면 가성비 물품을 득템할 수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또 놀란 것은 미국은 환불 시스템이다. 환불 천국이라더니 무엇을 사도 영수증만 잘 보관하고 있으면, 때로는 영수증이 없어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그냥 환불을 해준다. 오픈한 물품이거나 심지어 조금 사용한 물건이라도 환불해 주는 것을 보면서 물품 가격에 환불에 대한 손해분까지도 포함된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나로서는 이해가 잘 되진 않았지만, 아무튼 신기한 경험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옵션이 다양한 나라인 것 같다. 마트도 그렇지만 무얼 하나 사려고 할 때 잘 찾아보면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나 가격이 다양하고, 종종 프로모션이 있어서 품을 팔고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꽤 괜찮은 가성비 물건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정보를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 한 곳에 정보가 모여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잘 모르고 구입하면 꽤 많은 가격 차이에 속이 쓰린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바로 환불해 버리면 되니…. 참 알다가도 모를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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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중 초등학생 두 명이 있었기 때문에 교육도 중요한 이슈였다. 하워드 카운티 (Howard county, 카운티는 우리나라에서 군과 비슷한 개념)는 미국 내에서도 공교육이 잘 되어있는 편이어서 별 고민하지 않고 근처 초등학교에 넣을 수 있었다. 공립학교의 경우 집 주소에 따라 학교가 배정되기 때문에 집을 고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학교 배정이다. 엘리콧 시티에서는 초등학교 대부분이 10점 만점에 7점 이상이어서 점수가 높은 편이다.


공교육이 잘 되어 있으니 교육열이 높은 인도, 중국, 한국 등 아시안이 많이 사는데 최근 기사 (링크 바로가기)에서 보니 2010년에서 2020년까지 아시안이 꽤 많이 늘어 카운티 전체 인구의 19%를 차지했다고 한다. 내가 선택했던 Manor Woods 초등학교의 경우 아시안이 거의 50% 가까이였고 카운티에서 운영하는 초등학생 오케스트라를 보면 대부분이 아시안일 정도로 교육에 관심이 많은 아시안 가족들이 많은 동네이다. 얼마 전까지 메릴랜드 주지사였던 Larry Hogan의 부인인 Yumi Hogan이 지금의 남편과 결혼 전 교육 때문에 미국 서부에서 이사 온 곳이 바로 하워드 카운티이다. 참고로 하워드 카운티는 미국의 3,200여 개의 카운티 중에서 가구 중위 소득 기준 상위 10위 내에 드는 카운티로 최근 조사에서 130,000달러 정도라고 하니, 우리 가족은 이 동네에서 좀 어려운 가족이었나 보다….


우리 가족이 거주한 아파트만 하더라도 체감상 반이 인도 계열인 것 같고 한국 가족도 꽤 많았다. 우리 아이들이 영어가 부족한 상황에서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 재미있게 잘 다니고 있다. 말도 잘 안 통하면서도 또래랑 노는 것은 재미있나 보다. ESL 선생님이 한국 분이셔서 소통이 원활하였고 학교 내에 한국 학생들도 많아 완전 멘붕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들이라 영어가 금방 늘 줄 알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한국에서 준비해온 만큼 영어 실력도 느는 것 같다.


초등학교 수업은 교과서도 따로 없고 시간표도 한국처럼 자세하지 않아 처음에는 수업을 어떻게 준비시켜야 할지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공립학교라 학비도 따로 없고 스쿨버스도 무료인데 점심 식사는 무료가 아니어서 도시락을 싸가든가 아니면 학교에서 사 먹어야 한다 (삼시 세끼 요리를 하는 아내는 장금이가 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를 적어보면, 두 달에 한두 번 정도는 부모가 학교에 갈 만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 저녁에 학교 마당에서 영화를 보거나 가족 단위로 빙고를 한 적도 있었고, 신간 서적을 저렴하게 파는 행사 또는 학교에서 배운 악기로 학년별 오케스트라 발표회를 하기도 하였다. 반별로 도네이션 경쟁을 붙이기도 하고 코리안 나잇이나 히스패닉 나잇과 같은 행사들도 있었다. 여기는 선생님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을 권장(?)하는 곳이라 스승의 주간, 크리스마스, 밸런타인데이 같은 날에는 학부모끼리 돈을 모아서 선물로 주거나 개인적으로 선물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면 꼭 선물을 잘 받았다고 땡큐 카드를 개별적으로 써서 보내준다.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한국과는 달라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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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마치면 학생들은 방과 후 활동을 많이 하는 편인데 한국처럼 학원을 보내기보다는 학교에서 하는 체육 활동을 하거나 카운티에서 운영하는 공립 도서관에 모여서 여러 활동을 하기도 한다. 물론 사설 활동도 많이 있지만, 카운티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프로그램이 꽤 많고 잘 되어 있어서 한국에서는 못 해본 농구, 테니스, 펜싱, 낚시 등 여러 운동을 배우고 드럼, 그리기, 체스 등 프로그램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보통 카운티에서 사설 기관과 연계하여 초보자용 프로그램을 저렴하게 운영하고 있고 더 깊이 배우려면 해당 기관에서 배울 수 있다. 학교 마치면 학원을 전전하는 한국의 학생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활동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잘하지 못해도 계속 잘한다고 격려해 주고 조금만 잘해도 아주 뒤집어질 것처럼 칭찬을 해주는데 여기 문화이다.


한국에서 사교육을 시키면 짧은 기간 내에 효과적으로 실력이 느는 것을 추구하기에 한국 부모들이 보면 좀 아쉬운 측면도 없진 않지만, 운동이나 여러 활동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을 배운다는 점에서는 본받을 만하겠다. 여기서 놀란 점 중 하나는 근처 한인 교회에서 중고등학생들이 매주 수요일에 저녁마다 모임을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중고등학생이면 그 시간에 학원 가느라 주중에 따로 모임을 하기 어려웠을 텐데 50여 명이 넘는 학생과 선생님이 매주 모일 수 있다는 게 신기하였다. 여름방학 때 교회에서 진행한 초등학생 여름성경학교에서는 크루 리더들이 모두 중학생들이었는데 일주일 내내 5시 이후의 오후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약물 등 미국 내에서도 여러 문제도 있겠으나 확실히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는 한국보다 덜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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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한국에 비해 많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우리는 시간만 되면 열심히 놀러 다녔다. 메릴랜드 지역의 초등학교는 6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여름방학이었고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일주일 정도의 짧은 방학이 있었다. 그 밖에 여러 공휴일이 월요일이나 금요일에 있는 경우가 많아 주말을 이용하면 가까운 곳은 다녀올 만하였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여름방학 막바지에 다녀온 유타 주의 아쳐스 국립공원을 비롯한 와이오밍 주의 옐로스톤 국립공원 여행이나, 추수감사절을 껴서 다녀온 플로리다 주 올랜도까지의 로드트립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세계에서 제일 처음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자 가장 넓은 곳이라고 한다. 유명한 간헐천이나 유황 냄새가 나는 온천뿐만 아니라 깊은 협곡, 넓은 대지, 엄청나게 큰 호수, 잔잔한 강물, 도로를 걷는 바이슨과 같은 신기한 동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이라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곳이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뿐만 아니라 그 바로 옆에 있던 그랜드 티턴 국립공원도 경치가 말도 못 하게 아름다웠다. 유타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아처스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이나 옐로스톤 국립공원으로 올라오는 길 또한 내가 언제 이런 곳에서 운전해 보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광활한 자연 모습을 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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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연휴 때는 큰맘 먹고 올랜도까지 로드트립을 하였는데 엘리콧 시티에서 올랜도까지는 중간에 숙박하지 않고 가면 15시간 정도 되는 거리이나 (실제로 그렇게 오가는 가족도 있다) 무리하지 않고 하루 최대 운전 시간을 7시간 이상 넘기지 않으면서 잭슨빌, 올랜도, 디즈니월드의 여러 파크들, 애틀랜타, 내슈빌 등을 거쳐서 돌아왔던 여행도 기억에 남는다. 이 로드트립을 하고 나서는 차로 3, 4시간 거리는 크게 긴장하지 않고 갈 수 있어 이제 한국에 가면 경주, 광주 정도는 가볍게 다녀올 수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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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나 농구 등 스포츠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갈 수 없었는데 본고장인 미국에 왔으니 시간이 되면 야구장에 갔었다. 아이들 봄방학 때 갔던 토론토에서 류현진의 투구를 직관할 수 있었고 (아쉽게 패전하고 그 이후는 수술대로...) 사는 동네 근처인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워싱턴 내셔널스 경기는 두 번씩 가서 오타니와 김하성, 트라웃 경기를 직관하기도 했다. 비록 하늘에서 가까운 자리라 선수들의 얼굴도 잘 안 보였지만 아이들도 좋아하고 야구 규칙도 설명해 주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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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여러 가지 보고 경험한 것 중 한국과 달라 인상적이었던 점들이 있으나 글이 너무 길어져 몇 가지만 죽 나열만 해보자면… 먼저 학교나 방학 캠프에서 아이들 간식을 챙겨줄 때는 꼭 nut-free snack을 챙겨줘야 하는 점이 있다. nut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 심하면 봉지를 뜯고 냄새만 맡아도 증상이 유발된다고 한다. 미국은 참 알레르기의 종류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 식당에서 gluten free 메뉴를 제공한다. 또 pet을 키우는 집이 많아 어디서든 반려견 산책을 시키는 사람을 만나볼 수 있다. 여행을 가려고 숙소를 잡을 때면 pet allowed 여부가 기본적으로 기재된 것을 볼 수 있다. 호텔비는 사악하지만 대부분 호텔에 2개의 더블베드가 구비되어 아이들과 여행할 때 숙소 잡기 편했던 점, 다수의 식당에서 kidz menu를 볼 수 있던 점 (택스와 팁까지 내라니 크게 맘먹고 가야 하는 식당에 그나마 저렴한 메뉴들), 인원수대로 안 시켜도 되는 식당 (인원수대로 시켰다가는 배가 터질 수 있는 경우가 많으나 남은 음식들은 대부분 다 싸간다), 식당에서 메뉴 한두 개 더 시킬 수 있을 만큼 줘야 하는 팁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STOP 사인과 보행자 우선은 굉장히 잘 지키지만 고속도로만 들어서면 제한 속도 따위 무시하고 무섭게 씽씽 달리는 차들, 주차 장소가 넓어 대부분 전방 주차를 하고 차의 사이드미러는 접히지도 않는 점, 마트에서 산 물건은 환불이 잘 되지만 공연, 전시, 스포츠 게임 등 티켓은 환불이 거의 가능하지 않아 못 가게 되면 알아서 팔아야 하는 시스템 (QR 코드가 활성화되어 있어서 입장할 때 QR 코드만 있으면 누구인지 잘 확인하지 않는다), 은행 간 송금이 한국만큼 원활하지 않고 Zelle, Venmo 등 서드파티를 써야 한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이해되지 않는 check (수표)! 이걸 왜 즐겨 쓰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기본 조명만으로는 저녁에 집안이 너무 어둡다는 것이다. 밤에 아파트 단지 안을 돌아다녀 보면 우리 집이 아파트 내에서 가장 밝은 축에 속한다.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저녁에 집안을 밝게 해두는 것 같다. 그리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잘 안 하기 때문에 몽땅 모아서 버리니 편하긴 하지만 좀 찝찝했던 경험도 있다. 평생 한국에서만 살았던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의 시각에서는 신기하고 놀랍고 인상적인 점이 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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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 년을 돌아보니 개인적으로는 선물과 같은 날들이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가족이 계속 붙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언제 또 여유롭게 가져볼까. 좀 더 연구를 많이 하고 랩 미팅이 활발한 연구실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 아쉬움은 못 가본 길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기에 코로나19의 상황과 제한적인 정보 내에서 결정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로 남겨두고, 해외 생활이 전무한 나로선 가족과 함께 무탈하게 일 년을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하다. 이 글을 쓰는 시점 기준으로 약 한 달 후면 한국에 있을 텐데 정신없던 그 시간 속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또 언제 미국에 다녀왔나 싶어질 정도로 금세 적응해 있을 것 같다.


연구년을 온다고 했을 때 먼저 경험한 여러 선배들이 인생에서 가장 귀한 시간 중 하나라고 말했다. 진정으로 그런 시간을 보낸 것 같아 참 감사하고 (비록 미국의 역대급 고물가와 원-달러 고환율 이중고에 통장은 텅장이 되어버렸지만.. 흑흑) 이 시간을 허락한 경희대학교와 한의대에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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