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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4일부터 2023년 2월 28일까지 영국 코번트리의 워릭대학교 의과대학 임상시험단 (Clinical Trials Unit, Warwick Medical School, University of Warwick)에서 방문부교수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자격으로 연구년을 보냈습니다. 평소 업무에서 벗어나 연구와 체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승인해 준 부산대학교, 업무 공백에도 불구하고 배려해 주신 침구의학과 동료 교수님들, 그리고 자리 한곳을 차지하고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받아들여 준 워릭대학교 줄리 브루스 (Julie Bruce) 교수님에게 먼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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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 교수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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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릭대학 (University of Warwick)은 1965년 영국 중부 코번트리 지역에 설립된 종합대학입니다. 2022년 기준 전체 재학생 수가 28,823명이며, 넓은 부지에 학생들과 연구자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캠퍼스 곳곳에 기숙사가 세워져 있습니다. 제가 있는 임상시험단 (Clinical Trials Unit)에서는 3개 대주제 - 통증/수술/재활, 응급의료/외상, 암 - 에 대해 영국 전역에 걸친 임상시험을 수행합니다. 코번트리-워릭셔 대학병원 (University Hospitals Coventry & Warwickshire)과 연계되어 있어서, 임상시험을 설계/수행/관리하는 연구자들은 매주 수요일 병원에서 일합니다. 아침에는 커피 미팅이 있는데, 각자 바쁜 일정 속에서 함께 잡담을 나눌 수 있는 귀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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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릭대학교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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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릭대학 임상시험단 웹사이트: https://warwick.ac.uk/fac/sci/med/research/ctu/


임상연구는 매우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품질 관리 부서가 연구 수행을 엄격하게 관리합니다. 대부분 10개 기관 이상에서 환자 모집을 하는 다기관 연구라서 연구계획서 준수와 자료 수집, 모니터링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통계학자, 보건경제학자, 질적 연구자, 임상심리학자, 물리치료사, 임상연구 코디네이터로 이루어진 다학제적 팀이 구성되어 있으며, 상호 존중에 기반한 건강한 조직문화를 이루며 강한 팀워크를 발휘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우수한 임상연구는 건물이나 많은 돈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고, 잘 준비되고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 모여야만 가능하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진실이 실제로 작동하고 구현되고 있다는 점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워릭대학교 임상시험단은 기업체 후원 임상시험은 하지 않고, 오직 공공 기금 기반의 연구만 한다고 합니다. 연구를 통해 공공의 건강과 보건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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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상시험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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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연구자를 위한 워릭대학교 직원 기숙사에 배정되어 매우 만족스럽게 지냈습니다. 2층으로 이루어진 공동 주택으로 한국의 연립 빌라와 매우 비슷하며, 여기서는 플랫 (flat)이라고 부릅니다. 캠퍼스 내에 위치하여 안전하고 잔디밭에서 풀을 뜯는 거위, 토끼와 호수에서 떠 있는 백조, 오리를 늘 볼 수 있습니다. 처음 도착했을 때, 인도와 차도를 가리지 않고 제멋대로 다니는 거위 몸집이 생각보다 커서 마주쳤을 때 움찔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 초등학교는 워릭셔 카운슬 (행정 단위)의 학교 배정 담당자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며칠간 전화기를 붙들고 사정을 설명한 후에 간신히 배정되었습니다. (2달 전 보낸 이메일이 끝내 확인이 안 되었던 것이지요.) 학교가 차로 15~20분 가야 하는 거리에 있어서 같은 아파트 주민이 알려준 카운슬에서 무료 제공하는 택시 통학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주민 모두 방문연구자, 학생의 입장이라 왓츠앱 커뮤니티를 통해 서로 도와주는 분위기입니다. 유럽의 에너지 대란으로 걱정했지만, 천만다행으로 직원 기숙사 렌트비는 학교 주변의 일반 월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전기세, 수도세, 난방비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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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원 기숙사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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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가 큰 테스코 슈퍼마켓과 한인 마트가 있어서 밥 지어 먹고살기에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한국 음식은 한국에서 먹는 것과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먼 타지에서 아쉬운 대로 도움이 됩니다. 과일, 채소, 육류가 상당히 싼 편입니다. 식당에서 사 먹을 경우 일단 음식도 비싸고 음식값의 12.5%의 서비스료를 거의 기본으로 추가하여 내게 됩니다. 동네 수더분한 식당에서 간단한 피자, 스파게티, 음료수만 먹어도 금세 50파운드 (대략 7만 5천 원)가 넘어가게 되지요. 처음에는 깜짝 놀랐는데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역시 영국은 펍입니다. 심지어 대학 구내에도 펍이 3곳 있습니다. 어느 동네에 가도 펍이 있고요. 안주를 안 시키고 반 파인트, 한 파인트 본인 주량대로 시킬 수 있습니다. 술을 못 마시면 탄산음료 등 소프트 드링크를 시켜도 괜찮습니다. 런던의 유명하고 오래된 펍을 모아 소개하는 책도 있습니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나 주말 저녁의 경우 꽤 붐비는데, 삼삼오오 모여 맥주잔을 손에 들고 서서 한참 노닥거리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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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릭대학교 내부에 있는 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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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의 존 스노우 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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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번트리는 런던에서 기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북서쪽에 있는 작은 도시라서 당일치기나 주말여행으로 충분히 런던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주요 미술관과 박물관 입장이 무료이며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건축물들이 남아 있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오래된 건물일수록 난방이 잘 안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연구 과제 및 학위 논문 완결을 위해 런던대학교와 런던위생열대의학대학원 (London School of Hygiene and Tropical Medicine, LSHTM)의 도서관을 여름 방학 동안 집중적으로,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이용했습니다. LSHTM은 국제 보건 (global health), 역학 및 보건 분야의 선도적인 여러 연구자가 모인 대학원으로 다양한 석사/박사 과정이 개설되어 있습니다. 저는 원격 (distance learning) 과정으로 2016년부터 시작했으나 진료와 업무 때문에 마치지 못한 역학 석사 (Master of Science in Epidemiology) 과정의 학위 논문을 제출하고 코스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도서관의 규모는 작지만, 역학 및 보건학 관련 자료들이 집중적으로 구비되어 있어 학위 논문 외의 연구 수행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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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SHTM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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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SHTM 도서관


또한 평소에 관심이 있었지만, 여건상 참석이 어려웠던 유럽 지역 학회와 여러 단기 교육 코스- 스코틀랜드 애버딘 대학의 통증 역학 방법론 단기 교육 (영국 애버딘, 3월), 스위스 역학 윈터 스쿨 (스위스 벵엔, 3월), 유럽 통증 학회 (아일랜드 더블린, 4월), LSHTM 국제 보건 정책 단기 과정 (온라인, 5월), 유럽 역학 교육 연수 (이탈리아 피렌체, 6~7월), 영국 킬 (Keele) 대학의 예후 연구 방법론 (온라인, 7월) - 에 참가하여 견문을 넓힐 기회였습니다.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온 여러 연구자, 박사 과정 학생들과 함께 각자의 연구 주제와 일상생활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던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 애버딘 통증 역학 방법론: https://www.abdn.ac.uk/iahs/research/epidemiology/short-courses-453.php

※ 스위스 역학 윈터 스쿨: https://www.epi-winterschool.org

※ 유럽 역학 교육 연수: https://www.ee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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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역학 교육 연수 단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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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년은 평소 업무에서 해방되어 자신과 가족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한국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이런 여유를 가지기는 당분간 어렵겠지요. 삼시 세끼 밥을 함께 해 먹고 치우고 하다 보면 시간도 금세 갑니다. 초등학교 학기 중이라도 유럽 인접 국가와 도시로 2박 3일의 짧은 주말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점은 영국 체류의 장점일 것입니다. 하지만 굳이 먼 곳에 가지 않더라도 워릭대학 캠퍼스 내에 있는 여러 자연보호 구역 (santuary)으로 1~2시간 산책하며 가족 시간을 가지는 것 역시 좋았습니다.


만약 혼자 왔었다면 아마 가지 않았을 여러 미술관 (영국 내셔널 갤러리,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등)을 가족과 함께 방문하면서 미술 무식자인 저마저도 좋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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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도착했을 때의 낯섦이 엊그제 같은데, 귀국일이 1주도 남지 않았습니다. 짐을 정리하고 냉장고를 비우다 보니 1년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가족과 함께 영국에서 보낸 소중한 1년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재충전 후 한국에서 보낼 일상도 더욱 기대됩니다. 소중한 연구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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