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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외

오이(Cucumis sativus L.)의 원산지는 인도 북부지방으로 추정된다. 인도에서 그리스와 로마로, 중국을 통해서 동아시아로 전해졌다. 로마인들이 유럽으로 전파했다. 영어 cucumber는 라틴어 cucumere가 어원이라고 하는데, 가운데가 빈 그릇을 뜻한다고 하기도 하고, 또는 굽었다(屈)는 뜻이라고도 한다.

한자로는 오이 과(瓜)인데 오이나 참외 같은 박과 식물 열매의 총칭이다. 과자는 덩굴(冖)에 열매(厶)가 달린 모양을 형상한 것이라고 한다. 덮을 멱(冖)은 덩굴이 땅바닥으로 뻗거나 다른 것에 감겨 오르는 줄기를 표현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瓜)는 외로울 고(孤)와 통한다. 참외(甛瓜)는 단(甛) 오이(외)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melon인데 이는 me와 lone이 합쳐진 글자라고 한다. lone은 혼자라는 뜻이니 멜론은 나(me) 혼자라는 의미이다. 한글에서 오이는 외이고 외는 ‘혼자인’의 뜻이다. 한자의 과는 외로움과 통하고, 참외는 영어로 ‘나 혼자’이다. 나 혼자이면 당연히 외롭다.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오이는 왜 ‘혼자라서 외로운’ 이름을 갖게 된 것일까? 다른 식물은 대개 쌍(雙)으로 꽃이 피어 열매도 쌍으로 달리는데, 외는 마디 하나에 꽃이 하나씩만 핀다고 한다. 박과 식물만은 꽃이 홀로 피니 열매도 하나뿐이다. 꽃이 홀로 피어야 그 열매가 둥글게 자랄 수 있고, 다른 열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마음껏 몸이 굵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식물의 꽃이 쌍이 아니고 홀로라고 ‘외’가 된 것이다. 외라는 이름을 처음 지은 한글을 쓰던 조상과 한자를 사용했던 사람들, 그리고 melon이라고 명명한 유럽인의 인식이 모두 동일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홀로되어 쓸쓸함’을 의미하는 ‘외롭다.’는 바로 ‘외와 비슷한 처지가 되었다.’라는 뜻이다.

서로

체질론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서로(mutual)와 상(相)을 꼽고 싶다. 한자 상(相)의 뜻이 서로인데, 사람들에게 “서로가 무슨 뜻인지 한번 설명해 보세요.”라고 하면 뜻밖에 말문이 막혀버리는 경우가 많다. 일상에서 ‘서로’라고 쓰면서 그 뜻이 무엇인지 말로 표현해 본 기억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나처럼 서로가 무슨 뜻인지 물었던 사람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짝을 이루거나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라고 나오는데 서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홀로이다.

홀로와 홀로가 만나서 짝을 이루거나, 홀로와 홀로가 관계를 맺거나, 양쪽인 두 홀로의 상대가 바로 서로이다. 즉 홀로와 홀로가 만나고 그 사이에서 서로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니 서로가 되려면 반드시 홀로와 홀로인 쌍방이 필요하다. 그렇게 이어져서 맺어진 것이 관계이다.

흐름

바람(風)은 공기의 흐름이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풀이나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이 있는 것을 안다. 바람은 기압의 차이에서 생긴다.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공기가 움직이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는 없다. 바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바람이 없다고 하는 것은 바보짓임을 우리는 안다.

우리 몸 안의 기 또한 흐름이다. 기(氣)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바람의 경우처럼 기의 흐름을 만드는 것도 우리 몸 안에 그 조건이 있다. 그 조건 역시 차이(差異)로, 센 것과 약한 것의 구별인데 그것은 바로 내장의 구조이다. 우리 몸에는 내장기관이 있고 그 내장기관들이 각각 세고 약한 구조로 조합되어 있다. 그렇게 조합된 구조가 체질이다. 내장기관이 세고 약한 차이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기의 흐름이 발생할 것이다. 체질이 바로 우리 몸에서 기의 흐름을 만드는 기본적인 조건인 셈이다.

출처: 8체질을 압시다 『빛과 소금』 113호 두란노서원 1994년 8월

그래서 내장기관은 자신의 기를 전송하는 각각의 길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경락(經絡)이다. 무선(無線)으로도 파동이나 전기에너지가 전송되듯이 경락은 바로 그 형태가 눈에 보이지는 않는 통로이다. 이 경락을 통해서 내장기관은 서로의 영향력을 주고받는다. 이런 영향력의 흐름이 바로 기다.

다름과 차이가 흐름을 만들고 관계를 형성한다. 양쪽의 준위(準位)가 같다면 흐름도 관계도 없다. 이 흐름은 바람의 경우처럼 보통은 세고 높은 곳에서 약하고 낮은 쪽으로 방향성을 갖는다.

체질론에서 관계를 상징하는 핵심적인 글자가 서로(mutual)와 상(相)이라고 했다. 다시 반복하여 강조한다. 서로란 홀로와 홀로의 관계를 의미한다. 서로라는 말에는 그 홀로와 홀로가 동일하지 않고 다르고, 그 홀로와 홀로가 준위의 차이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서로라는 말을 쓸 때는 이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생명

생명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생명을 직접 증명해 낸 사람은 없었다. 식물의 떡잎을 아래에서 떠받치고 있는 줄기를 보라. 거센 바람이 불어도 그 가냘픈 줄기는 상대적으로 거대한 떡잎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 이것이 생명체에서 생명이 가진 힘이다. 생명이 있다면 빛(光)이 나고 온기(熱)가 있으며 움직이는 힘(力)이 있다. 이것을 권도원 선생은 생명의 상징인 불(火)이 가진 화삼현(火三現)이라고 했다.

기(氣)가 우리 몸 안의 생명현상이듯이 바람은 지구의 생명현상이다. 지구의 축(軸)은 조금 기울어져 있다. 지구 축의 기울어진 차이 때문에 지구에서는 지역에 따라 기후가 달라지고 계절의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대기와 해양의 거대한 흐름이 만들어졌다. 이런 환경조건의 차이가 사람의 체질을 만들었다. 이렇게 다른 환경조건에서 만들어진 체질은 상대적으로 다르다.

© 이강재 원장과 떠나는 8체질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