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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쇼핑

닥터 쇼핑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 심각하지는 않은 사소한 질병이나 증상을 가진 환자들이 대학병원의 유명한 교수같이 권위가 있거나 지명도가 높은 의사를 이리저리 찾아다니는데, 마치 마트에서 상품을 쇼핑하는 것 같다고 하여 생긴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의사를 쇼핑하면서 의학지식도 함께 얻게 된다. 그래서 덩달아 자기 머리가 띵한 건 뇌종양인 거 같고, 속이 좀 더부룩한데 위암일지도 모르겠고, 가슴이 약간 답답해지면 공황장애가 틀림없을 듯싶은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증상을 심각하게 판단해 주지 않는 의사는 오히려 불신하게 되고 닥터 쇼핑이란 굴레에서 헤어나기 어렵게 된다.

이런 행위의 핵심은 건강염려증이다. 그런데 그 자신은 자기가 가진 증상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없어서 처음 만나는 의사의 판단 능력에 대해 의심을 품어 버린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권위와 유명세에 의존하게 되고, 전문적이고 편의적인 의료시설이나 대형화된 병원을 선호하게 된다. 이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결국 건강염려증을 지닌 환자는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필요하지 않은 처치나 과잉한 진료를 받는 경우도 흔하다.

건강염려증은 일종의 욕구 표출이기도 하다. 자기가 아픈 걸 알아달라는 투정인 셈이다. 자신은 끊임없이 누군가의 보살핌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알리려는 것인데, 이런 행동에는 체질적인 경향성도 있다.

체질감별

닥터 쇼핑이 있다면 체질 쇼핑도 있다.

“우리 가족이 체질에 아주 관심이 많아요.”

처음 찾아온 날 이렇게 말한 분이 있다. 별달리 불편한 곳은 없고 단지 체질을 알고 싶어서 내원한 것이라, 세 번 만난 후에 체질을 알려주고 섭생표를 주었다. 그랬는데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는 하는 말이, “우리 가족이 체질에 아주 관심이 많은데요.”라고 하면서 고민이 생겼다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했더니, 내게 오기 전에 다른 곳에서도 여러 번 체질을 감별 받았고 이번에 네 번째 다른 섭생표를 받았다는 것이다.

아이고 두야. 그럼 지속해서 체질침을 맞았었느냐고 물었더니 불편한 곳이 없으니 그러지는 않았고, 체질침을 놓지도 않고 체질을 알려준 곳도 있었다고 했다. 가슴이 아주 답답해졌다. 들어온 것도 아니고 나간 것도 아니게 출입문에 반쯤 걸쳐 선 그분을 향해서 “감기에 걸리거나 어딘가 아픈 증상이 생기면 오라.”고 하면서 돌려보냈다. 아마도 그 가족은 체질에 관심만 많을 뿐, 체질이란 개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준비는 아직 안 된 상태일 것이다.

체질을 감별하는 일을 마치 액세서리를 구매하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나 이런 거 해 봤다고 뽐내는 장식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왜 여기저기 체질이 다르게 나오냐며 불만을 토로한다.

체질 쇼핑

8체질 한의원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많다. 요즘은 인터넷에 광고가 넘치니 더 그렇다. 체질 쇼핑이라고 이름을 붙인다면 위의 가족과 비슷한 경우이다. 아픈 데는 별로 없다. 8체질이란 말을 들었다. 호기심이 동한다. 가족들을 들쑤셔서 체질을 보러 간다. 무슨 체질인지 듣고 섭생표도 받는다. 하지만 그걸 지키는 쪽으로는 누구도 관심이 없다. 뭐 아픈 곳도 없지 않은가. 그러다가 가족 중의 누군가가 다른 곳에 다녀온다. 구성원 중에 누군가는 (그의 체질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별개로 하고) 만족하는 사람이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여러 다른 체질 이름을 듣게 된다. 그러면서 8체질 한의원을 돌아다닌다.

불안

남편은 도박에 빠졌고 압박에 시달리다 1년 전에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남겨진 부인이 복통이 생겨 병원에 갔다가 난소암 판정을 받았다.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마치니 머리가 모두 빠졌다. 아들은 스무 살이고 세상살이가 너무 어렵다고 호소하는 마흔네 살 여성분이다. 먼저 와서 치료를 받았던 동생과 함께 왔고,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저리고 시린 증상이 있어서 그것을 치료했다. 머리가 빠진 것을 염려하는 게 안타까워서 “위축되거나 움츠리어 들지 마라. 사실 다른 사람들은 당신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위로했다. 2021년 7월의 일이다.

2022년 3월에 등이 결리고 아프다고 찾아와서 체질침 치료를 했다. 이분도 나가다 말고 돌아서서는 얘기를 선뜻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그동안 8체질 한의원 세 곳을 더 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왜 보는 분마다 체질이 다르냐며 따진다. 다시 의자에 앉히고 말했다. “고민을 누가 만들었습니까?”라고 물으니 “제가요.”라고 한다. 왜 내게 다시 왔는지 물었더니 동생이 가라고 권했다는 것이다. “체질이 왜 다르게 나오는지 그건 내가 대답해 주지 않겠다. 대신 왜 그런지 생각해 보라.”면서 숙제로 내주고 돌려보냈다. 나와의 믿음을 깨버린 분에게 재차 설명을 붙인다는 게 적절하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이분의 문제는 불안이다. 불안감이 마치 체질 쇼핑처럼 표출된 것이다.

체질맥진

체질을 감별하는 기계는 없다. 그리고 현재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체질감별 도구는 체질맥진이다. 체질맥진은 사람의 손목에 있는 요골동맥을 통해서 체질마다 고유하게 발현하는 체질맥을 손가락의 감각을 통해서 찾아 구별해 내는 기술이다. 여덟 가지 중에 구별해 내는 것이 무어 그리 어렵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체질맥진은 오랜 수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고난도의 기술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체질맥진을 시행하는 사람의 임상 경험과 숙련 정도에 따라 체질 판단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몸을 통해서 자신의 재능을 펼치는 예술가, 체육인, 기술자의 수준이 저마다 다르듯이 말이다.

어디에서 누구를 통해 체질감별을 받던지 그곳에서 최소한 열 번 이상은 체질침 치료를 받아보아야 한다. 그러면 혹시 첫 감별이 잘못되었을 경우 그것을 교정할 기회가 시술자와 환자 모두에게 생긴다.

신장 투석 중인 환자는 아예 체질맥진을 할 수 없다. 또 요골동맥의 위치적인 기형인 반관맥은 생각보다 많다. 이때도 체질맥진이 어렵다. 간혹 체질맥이 굉장히 어려운 경우가 있다. 깊은 난치병이 있는 경우에도 그렇다. 이런 경우에 체질을 감별하려면 정말 의사의 연륜이 필요하다.

© 이강재 원장과 떠나는 8체질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