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MCRIC

경기 광주 남한산성에 가면 성곽길만 둘러보고 오면 될 줄 알았다. 그곳에 만해기념관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을 기억하는 곳

처음 만해 한용운 선생과 인연을 맺은 건 대학원 때였다. 가까이에 만해 선생이 말년을 보냈던 심우장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심우장은 버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파른 산 중턱 마을, 좁은 골목을 따라 한참을 올라야 하는 위치여서 찾는 이 하나 없었다. 성북구에서 관리를 한다고는 하지만, 관광지로서도 이득이 없으니 무너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은 정도였다. 가까이에 심우장이 있다는 걸 인연 삼아 학교 차원에서 만해예술제를 만들었고, 여러 행사를 기획했다. 그 행사는 이제 만해 선생 유관 단체에서 이어받아 계속 개최하고 있는 듯하다.

그때 만해 한용운이라는 인물을 다시 보게 됐다. 그저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배웠던 ‘님의 침묵’의 저자로만 각인됐던 그 인물이 내 삶으로 들어와 되살아나는 듯했다. 대학교도 만해 한용운 선생과 인연이 있는 곳으로 갔던 터라 강원도 인제 백담사와 그 아래 만해마을도 종종 찾곤 했었다. 그게 다였다. 그런데 10년이 훌쩍 넘어서 만해 스님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경기도 광주의 남한산성이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만해기념관이 있는 곳은 남한산성의 행궁과 아주 가까웠다. 백숙거리를 지나 남문 쪽으로 방향을 꺾으면 오른쪽으로 골목길이 보인다. 그 길 끝이 만해기념관이다. 대체 왜 이곳으로 자리를 정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미리 연락해 두었던 만해기념관 측 직원을 만나 그것부터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처음에는 심우장 쪽에 만해기념관이 있었다고 해요. 그러다가 관련 부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옮길 곳을 찾게 됐는데, 여러 곳을 둘러보다가 눈에 들어온 곳이 바로 여기였다고 하고요.”

그리고 만해기념관에 붙은 안내판을 보니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안내판의 내용에 따르면 남한산성은 처음 지어질 때부터 불교와 아주 인연이 깊은 곳이었다. 조선 인조 당시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조선 팔도의 승군을 동원했다는 것. 성내 곳곳에 국청사, 개원사, 천주사 같은 사찰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 절은 모두 나라를 지키고 국가를 안위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곳들이었다. 그러니 남한산성은 암흑과도 같았던 일제 36년 겨레의 등불과도 같았던 강직한 인물 만해를 기리는 장소로 최적이었던 셈이다. ‘여기서 나라 독립의 희망을 놓지 않았던 만해 한용운의 기념관을 세우고 이로써 향후 다가올 국난을 이겨낼 민족의 정신을 고양하고자 했다.’라는 것이 기념관을 설립한 이들의 마음이었다.

처음 마주한 ‘님의 침묵’ 초판본

기념관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교육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기념관은 들어서는 초입부터 만해의 시가 들어오는 이를 반긴다. 그리고 왼편에서부터 만해 한용운이라는 인물의 생애와 시기별 작품, 그 의미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이곳만 찬찬히 잘 살펴도 만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고 갈 수 있을 법했다.

만해. 그를 부르는 그 이름은 법호다. 그러니까 그는 승려 신분이었다.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참여했을 때 그는 불교를 대표하는 2인 중 하나였다. 민족대표 중에서도 끝내 조선의 독립을 향한 열망을 내려놓지 않았고, 누구보다 강직하게 버티며 아름다운 시어로 그의 뜻을 써 내려갔다. 그가 얼마나 일제에 강경했는지는 그의 말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당시 경복궁의 앞을 막은 채 지어진 조선총독부를 바라보는 것마저 싫어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경복궁의 뒷산인 백악산의 북쪽에 터를 얻어 심우장을 지었다. 방향도 북향이었다. 남쪽은 총독부가 있으니 제아무리 추운 북풍이 몰아쳐도 돌아앉지 않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리고 그는 가난과 지병에 시달리다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에 눈을 감는다. 만해의 일생은 되돌아보면 볼수록 출가자로서, 시인으로서, 그리고 나라를 잃은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강직한 이였는지를 곱씹게 된다.

여기 만해기념관에는 그런 만해에 관한 자료 800점이 소장돼 있다. 이제는 어디서도 구하기 힘든 자료들이다. 당시 나왔던 만해의 작품이 출간 당시 그대로 대부분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이목을 끄는 건 단연 <님의 침묵> 초판본이다. 설악산의 오세암에서 탈고한 것으로 알려진 이 시의 초판본은 처음 마주한다. 지금까지 그토록 많은 만해의 유물을 보았음에도. 독립을 향한 열망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 그 시의 초판본은 갱지에 별다른 삽화도 없이 담백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시어 하나하나가 더 절절하게 눈에 와 닿는다.

만해기념관이 전시하고 있는 또 다른 소장품은 건국공로 훈장이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만해 한용운 선생이 평생 보여주었던 강직했던 일념을 인정해 건국공로 최고 훈장을 수여했다. 무려 만해가 눈을 감은 지 18년 만의 일이었다.

한 점 한 점 이곳에 전시한 소장품을 살피다 보면 만해 한용운이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그를 만해 스님이라 칭하지 않고 ‘선생’이라 부르는 건, 승려이기에 앞서 민족의 지도자라 불러도 아깝지 않은 생애를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곳을 찾는 이의 발걸음이 뜸해지고 있다고 한다. 남한산성을 찾는 이는 많아도 이곳을 눈여겨보는 이는 드물다. 부디 앞으로는 남한산성에서 만해기념관을 일부러라도 찾는 이가 늘어나길 바라본다. 그것이 나라를 위해 평생을 바쳤던 이에 대한 마땅한 우리의 태도일 테니.

생콩으로 만든 두부의 차진 맛

남한산성 일대는 예부터 보양식을 찾아오는 이가 많았던 모양이다. ‘백숙거리’니 ‘보양거리’ 같은 길의 명칭이 이를 보여준다. 요즘은 이곳에도 두부 요릿집이 많아졌다. 꽤 이름을 알린 두부 전문점도 많다. 그중에서도 한 번쯤 꼭 가볼 만한 집이 있다. 남한산성을 위해 올라가는 길 초입의 ‘두부 만드는 집’이다.

이 집은 매일 새벽부터 직접 두부를 만든다. 특이하게도 다른 전문점과 다르게 콩을 삶지 않고 불리기만 해서 사용한다. 그러니까 생콩으로 만든 두부다. 예전에는 여기에 견과류도 함께 넣어서 만들었지만, 요즘은 오로지 콩만 쓴다. 새벽 5시부터 시작한 두부 작업은 오전 10시까지 이어진다. 매일 꼬박 5시간씩 두부를 만드는 것이니 이 얼마나 고된 일상인지. 만드는 방식이 독특하다. 두부를 갈아서 삶고 나면 면 보자기에 싸서 틀에 넣는다. 커다란 틀이 아닌 작은 사각형 틀에 보자기째 넣어서 굳히는 것. 따로 누르는 것도 없이 두부 자체의 무게로 간수를 빼내는 것도 이색적이다.

이렇게 만드는 두부는 씹히는 식감도 남다르다. 두부라기보다는 마치 녹두묵을 베어 먹는 것만 같은 차진 느낌. 그만큼 탱글탱글한 탄력이 살아 있다. 이렇게 만든 두부로는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낸다. 두부 그대로를 먹기도 하지만, 순두부 짬뽕을 만들기도 하고 두부김치도 낸다. 무엇보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건 능이두부전골이다.

전골에는 능이, 느타리버섯, 팽이버섯이 듬뿍 들었다. 가운데로 두부가 가지런하게 놓였고, 칼칼한 고춧가루가 얹어졌다. 아래에는 갓난아기 주먹 같은 만두도 들었다. 이 전골은 향긋한 능이의 향이 일품이다. 버섯이 전골 전체의 풍미를 만들어낸다면, 고소한 맛과 차진 식감은 보자기두부의 몫이다. 양도 꽤 많아서 4인이 함께 먹기에 알맞으니 가족이나 친구끼리 남한산성을 찾아간다면 꼭 들러보길 추천한다.

콩은 단백질이 풍부한 대표적인 식품이다. 성장기 어린이, 운동선수나 임산부에게도 권할 만하다. 섬유질이 많아 변비에 좋고 혈당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절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비타민 B군 함량이 높다는 건 중추 신경계 조절과 스트레스 및 불안, 우울증 예방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 이외에도 철, 칼슘, 인, 마그네슘, 아이오딘 등의 성분도 많아 여러모로 몸에 이롭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