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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행을 다니다 보면 재밌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자주 만난다. 심지어 수원의 ‘해우재’는 건물의 생김새부터 변기 모양이다.

아이들을 위한 ‘똥’ 박물관

그냥 보면 모른다. 드론을 띄우거나 주변의 높은 건물로 올라가야만 이 건물의 제대로 된 모양새를 볼 수 있다. 완벽한 수세식 변기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나면 보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온다. 대체 누굴까? 이런 건물을 지은 사람은. 해우재를 찾아온 아이들도 킥킥대며 웃기 바쁘다. 이곳은 ‘똥’과 ‘화장실’ 박물관이다. 똥에 관한 온갖 정보를 한데 모아서 담아 두었다. 이런 곳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원에만 있다는 게 박물관 측의 설명이다.

아이들은 똥 이야기만 나오면 키득거린다. 더러운 것, 부정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리라. 멀리하고 싶어 하면서도 관심을 보이고 흥미를 느낀다. 그래서 이 박물관의 주 고객층은 아이들이다. 이날도 어린이집, 유치원 단체 관람이 끊이지 않았다. 가족 단위 방문객도 많다. 역시 아이의 손을 잡고 온다.

박물관은 안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둘러볼 거리가 많다. 마당 가득 화장실의 역사나 문화와 관련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널빤지 위에 앉아서 똥을 누는 사람 모양이며 자면서 오줌을 싸 키를 쓰고 쫓겨난 아이, 똥을 굴리는 쇠똥구리 등 재미난 풍경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건 백제시대의 남자 소변기 ‘호자’다. 지금까지 박물관을 숱하게 다녔음에도 호자는 처음 봤다. 그냥 보기에는 귀여운 강아지 모양이다. 얼굴에 적당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묻지 않아도 무슨 용도인지는 확실하게 알 것 같다.

마당을 돌아다니며 조형물을 구경하는 데만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 박물관 안쪽으로 들어갈 시간. 자동문이 열리고 안쪽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아기자기하고 깔끔하다. 주로 찾아오는 손님이 아이들인 만큼 내부 콘텐츠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그렇다고 콘텐츠가 유치한 것도 아니다. 어른들도 잘 몰랐던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것이 요강과 관련한 내용이다. 보통은 요강이 한국의 시골에만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서양에서도 요강을 사용했다는 걸 알려준다. 중세 시대 서양에서는 요강을 비울 때 창밖으로 던져버리곤 했는데, 이때 바닥에 깔린 오물을 피하고자 만들어진 것이 하이힐이라는 정보는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흥미로워했다. 실제 나라별 요강까지 함께 전시해 놓아 각각의 차이도 한눈에 보인다. 중국과 서양의 요강은 구태여 이렇게까지 화려할 필요가 있나 싶을 만큼 아름답다.

‘미스터 토일렛’ 심재덕

이외에도 재밌는 내용이 여기저기 보인다. 바깥에서도 내부가 훤히 보이지만 사람이 들어가서 문을 잠그면 유리가 흐려지면서 내부가 보이지 않게 되는 첨단 화장실부터 농경사회에서 인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콘텐츠, 세계 각국의 화장실 문화 등 온갖 정보가 넘친다. 이 중에서도 영하 60도의 혹독한 추위 속에 살아가는 에스키모는 실외에서 변을 볼 수가 없어 실내에서만 용변을 해결해야 했다는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그럴 수밖에 없다는 수긍의 끄덕임이 뒤섞이는 반응을 보였다.

2층은 통째로 아이들을 위한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다. 주인공 개똥이와 함께 흐물이, 딱딱이, 황금이가 등장해 건강한 식생활과 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으면 흐물이가 나오고 물을 많이 마시지 않으면 딱딱이가 나오는 식이다. 전시를 모두 보고 나면 왜 채소와 물을 많이 먹어야 하는지, 인스턴트 음식을 멀리하고 골고루 잘 먹어야 하는 이유 등을 깨닫게 된다. 박물관의 전시는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아주 유익하다. 뻔히 다 아는 이야기겠지만 건강한 식습관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다.

남녀노소 누구나 흥미롭게 둘러볼 수 있는 이런 공간을 만든 인물인 ‘미스터 토일렛’ 심재덕 씨다. 기획전시에 등장하는 ‘개똥이’라는 이름은 원래 그의 어릴 적 별명이었다. 그는 외갓집 뒷간에서 출생한 탓에 개똥이라고 불렸단다. 1996년 그가 수원시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2002한일월드컵 유치에 성공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깨끗하고 위생적이며 이용하기 편한 화장실 문화를 만들자는 ‘화장실문화운동’을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제사회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던 화장실 문제는 이로 인해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이 문제를 더 중요하게 다루기 위해 민간 국제기구인 세계화장실협회(WTA)를 만들기도 했다.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건물도 원래 심재덕 씨의 집이었다. 그가 사망한 이후 유족은 이 건물을 박물관으로 사용해달라며 기증했고, 그렇게 해우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화장실 문화가 중요하다는 건 이제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좀처럼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 편견을 깨는 공간이 수원의 해우재다. 대체로 아이들을 위한 공간처럼 보이지만, 어른에게도 쏠쏠한 재미를 안기는 곳인 만큼 수원 여행에서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숙성시킨 돼지고기의 감칠맛

이번에는 수원 화성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원에도 맛있는 먹거리가 많은데, 특히 화성 인근에 많이 몰려있다. 그렇다고 이미 잘 알려져있는 통닭이나 갈비, 평양냉면을 찾아온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신생 중국집이다. 생긴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위치는 팔달구청 맞은편이다. 깔끔한 외관과 내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은 아니지만, 메뉴판을 보니 자못 기대감이 커진다. 일반적인 짜장면이나 짬뽕도 있지만, 눈이 휘둥그레지는 메뉴도 눈에 띈다. 식당 측에서 추천한 건 크림짬뽕과 항아리마늘숙성탕수육이다. 메뉴 이름을 듣고 주방장의 얼굴을 다시 살폈다. 무척 젊은 남자다. 나이는 이제 서른 후반. 그런데 이미 경력이 18년이란다. 그러니까 열일곱 살 때부터 중국집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해온 셈이다.

그의 실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마침 손님이 없어 주방에 들어가 그의 요리 과정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의 탕수육은 다른 집의 것과는 시작부터 차이가 있었다. 그는 탕수육에 쓸 돼지 등심을 미리 손질해서 항아리에 넣고 다진 마늘에 재어 숙성해서 쓴다. 잘 숙성한 등심은 바로 전분에 묻혀 튀겨낸다. 크림짬뽕은 보통의 짬뽕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지만 크림파스타의 조리법을 가미했다. 여기에 청양고추를 넣어 매콤한 맛을 더한다.

식탁에 깔린 탕수육과 짬뽕의 맛을 볼 차례다. 중국 음식은 요리부터 먹는 게 순서다. 탕수육부터 한입 물어봤다. 항아리에서 마늘에 재어 숙성한 등심은 과연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저 젊은 주방장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바사삭. 전분을 입혀 튀겨낸 탕수육은 튀김옷이 바삭했다. 반면 그 속의 고기는 무척 부드러웠다. 씹는 동안 고기에 배어 있었던 마늘의 향이 은은하게 입안으로 퍼져간다. 이 집의 탕수육은 소스를 붓지 않고 따로 내주는데 여기에도 이유가 있었다. 가능하면 부먹보다는 찍먹으로 먹는 편이 좋다. 튀김옷의 식감을 유지하면서 마늘의 향이 소스의 맛에 가려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이제 이 집의 주력 메뉴 크림짬뽕. 국물은 역시나 크리미하다. 그럼에도 육수의 진한 묵직함이 느껴진다. 이 음식의 조리법이 크림파스타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걸 직관적으로 느끼게 하지만, 전반적으로 짙게 배어있는 불맛과 해산물의 감칠맛이 짬뽕의 원형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젊은 감각과 오래 몸에 익힌 실력이 음식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좀처럼 말수가 많지 않은 주방장은 음식의 맛이 어떤지 궁금한 듯 주방 한쪽에 서서 먹는 모습을 내내 지켜보고 있었다. 내 입맛이 대체로 후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싸구려는 아니다. 근데 그의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그를 바라보며 엄지를 척 올려줬다. 그는 이 반응을 보곤 함박웃음을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공들여 만든 음식이 먹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 이건 음식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 최고의 찬사다. 그리고 먹는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은 만든 이를 행복하게 한다. 만든 이와 먹는 이, 모두가 행복한 음식이다. 남수대반점의 음식은 그랬다.

전 세계에 한국만큼 마늘을 많이 먹는 나라가 없다고 하지만, 원산지는 의외로 중앙아시아다. 백합과의 채소로 같은 종에서는 가장 맵다. 냄새가 강한 게 단점인데, 이외에는 100가지 이로움이 있어서 일해백리(一害百利)라고도 한다. 2002년 미국의 <타임>지는 마늘을 세계 10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만큼 몸에 좋은 식품이다. 중국 의서 <본초강목> 및 <신농본초>에서는 마늘이 살균과 강장에 효능이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마늘을 대표하는 성분은 알리신 (Allicin)이다. 이 성분은 마늘이 상하는 순간 알리나제 (Arlinase)라는 효소와 반응해 자기방어물질인 알리신이 된다. 이는 강력한 살균 및 항균 작용을 한다. 식중독균을 죽이고 위궤양을 유발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Helicobacter pylori)까지 죽인다고 알려져 있다. 더불어 소화를 돕고 면역력을 높이며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추는 효과가 있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