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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은 알려지지 않은 게 참 많다. 아파트가 늘어선 복판에 이런 미술관이 있을 줄이야. 관심을 두지 않으면 이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발길을 들이는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찜질방을 예술 공간으로

경기도 화성시는 참 독특한 도시다. 흔히 수원 곁의 신도시쯤으로 알고 있는 이가 많은데, 사실 이 지역은 과거 남양군과 수원의 일부가 합쳐진 지역이다. 그 이름의 유래는 수원의 화성이 맞다. 화성은 정조가 한양의 천도를 꿈꾸며 건립한 당시의 신도시다. 당시 성곽의 터를 둘러보며 정조는 장자(莊子)의 ‘화인축성(華人祝聖)’이라는 고사를 떠올렸다고 한다. 이는 부귀와 번창을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니까 정조는 도읍을 이곳으로 옮겨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것. 그 화성이라는 이름은 1970년 남양군과 수원시의 일부가 합쳐진 새 도시에 그대로 붙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화성 지역에 화성이 없다는 점. 그럼에도 수원 시민이나 화성 시민 모두가 별반 이 문제를 신경 쓰지 않는다.

정작 화성시를 알린 건 수원에 남은 화성이 아니라 제부도였다. 서해의 관광지로 각광받은 이 섬은 물때에 따라 섬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리고 닫히길 반복했는데, 이른바 ‘모세의 기적’에 비유한 미디어의 홍보를 등에 업고 제부도를 찾는 사람이 갈수록 늘었다. 문제는 제부도를 제외하고 화성시를 대표할 만한 여행지가 별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화성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한데, 좀처럼 해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병점역에서 제법 가까운 소다미술관의 발견은 그래서 신선했다. 이곳은 사방이 아파트로 둘러싸인 거주지역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아무 정보 없이 여기를 방문했다면 “왜 굳이..?”라는 질문을 하고도 남을 만큼 뜬금없는 위치다. 그러나 이 미술관의 탄생기를 알고 나면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모두의 의문을 수긍으로 바꿔버릴 이 미술관의 비밀은 바로, 이곳이 원래 찜질방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자리에 찜질방이 지어진 것은 2009년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찜질방은 온 가족이 함께 즐겨 찾을 만한 시설이었다. 당시 이 건물을 올리고자 했던 이는 부푼 꿈을 안고 공사를 시작했다. 1층의 철근 콘크리트 벽체를 올리고 천장 구조까지 마무리한 시점이었다. 돌연 공사를 멈추게 됐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황을 누렸던 찜질방 사업의 미래가 불투명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장이 급변하면서 이렇게 많은 돈을 쏟아부었는데도 이익을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이 공사장은 4년을 방치되어 있었다.

멋진 도시재생의 결과물

이곳에 새로운 기회가 다가온 것은 하버드 건축대학원 출신의 권순엽 건축가 덕분이다. 좀처럼 공사장의 활용방안을 찾지 못하던 차에 그는 이곳을 미술관으로 활용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냈다. 층고가 높아서 전시하기에 좋다는 이유였다. 아직은 골조만 남아 있으니 충분히 미술관으로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권순엽 건축가는 그렇게 이곳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4년 동안 뼈대만 남은 채 온갖 쓰레기와 잡초에 뒤덮여 있던 건물은 빠르게 정비되어 갔다. 건물의 리모델링은 최소한으로 진행하되 장점을 살리고 건물의 구조를 활용해 조형적인 면모를 부각하기로 했다. 약간의 그래픽 아트를 더하고 컨테이너를 배치해 완성한 건물은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곳에는 ‘소다미술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시도는 분명 파격적인 실험이었다. 너른 부지가 통째로 건축 폐기물이 될 뻔했지만, 건축가의 안목으로 새롭게 진화했다. 지금은 어떤 이가 와서 보아도 원래 찜질방으로 설계됐다는 걸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된 건물이 서 있다. 파격적인 실험은 대성공을 거뒀고, 개관 첫해에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최우수상,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본상을 받았다. 그만큼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당초 목욕탕으로 설계했던 공간은 메인 실내 전시관이 됐다. 불규칙한 단차와 마감을 하지 않은 콘크리트 구조물, 하얀 벽체는 이 건물의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계단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가면 그곳은 그 나름대로 열린 전시장이다. 선과 면이 완성하는 건축물은 자체로 예술작품일 수 있다는 걸 증명한다. 외부에 놓인 컨테이너는 주제별 작품의 전시장이다. 내부에서 외부로,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공간을 이동하는 행위는 소다미술관이라는 건축예술을 완성하는 작품이다. 이 모든 것이 건축가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는 데에서 깜짝 놀랄 따름이다.

공간은 어디 하나 버릴 곳이 없다. 눈 돌려 바라보는 곳마다 소재와 소재가 만들어내는 선이 있고, 그것이 곧 작품이다. 그 사이사이에 또 다른 예술이 깃들었다. 미술관을 둘러보는 내내 눈이 즐겁다. 이토록 멋진 공간이 거주지역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소다미술관은 경이로운 곳이다. 도시재생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건축이다. 이쯤 되면 화성을 대표할 만한 여행지라고 해도 괜찮을 듯하다.

입이 즐거운 돈가스의 변주

소다미술관의 단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걸리는 건 화성의 번화한 장소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미술관의 곳곳을 걷다 보면 배가 고파오기 마련인데, 꽤 거리를 두고 이동해야 한다. 어쩌겠는가. 이럴 때는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다.

기왕 이동을 결정했다면 차로 15분 거리의 화성 신도시 동탄까지 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다. 아무래도 번화한 지역에는 선택지가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식당 중 하나는 ‘인생돈가스’다. 이 가게는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동탄에 와야만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외지인에게는 식당 이름이 생소하겠지만, 동탄 센트럴파크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에게는 꽤 유명한 곳이다.

문을 연 지는 6년 정도. 가성비를 전제로 두고 새로운 맛을 개발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그 결과는 메뉴판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표적인 것이 불맛을 입힌 매운 돈가스와 와사비크림치즈 돈가스. 단호박크림이 올라간 것도 눈에 들어왔지만, 사장님의 추천을 따르기로 했다. 여기는 매일 아침 그날 사용할 소스를 만들고 고기도 아침마다 목우촌 등심을 배송받아 쓴다고. 젊은 사장님의 깐깐한 운영 기준이 돋보였다.

먼저 나온 것은 매운 돈가스. 사장님은 매콤하지만 불쾌한 느낌을 주지 않는 맛을 원했는데, 아귀찜을 먹다가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아귀를 넣은 것은 아니다. 숙주나물을 기본으로 고춧가루의 매콤한 맛을 살렸다. 처음에는 캡사이신을 넣어 매운맛을 올린 게 아닌가 싶어 걱정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캡사이신의 매운맛을 아주 싫어한다. 다행히 고춧가루만으로 매운 정도를 조절했다고 해서 마음이 놓였다. 먹어 보면 아삭한 숙주나물의 식감이 잘 살아 있다. 센 불에 고춧가루 양념을 넣고 채소와 숙주나물을 넣어 빠르게 익혀서 만드는 듯한데, 정말 아귀찜을 연상케 하지만 불맛이 잘 살아 있다. 이게 돈가스와 잘 어울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두 번째로 나온 와사비크림치즈 돈가스도 마찬가지다. 2017년에 개발한 메뉴다. 삼겹살 가게에서 삼겹살에 와사비를 올려 먹다가 돼지고기와 와사비의 궁합에 반해 만들었다. 문제는 강렬한 와사비의 톡 쏘는 맛이었는데, 이를 완화해 줄 재료로 선택한 게 크림치즈였다. 이 덕분에 와사비 특유의 알싸한 맛은 살아있지만, 훨씬 부드럽게 소스의 맛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새싹샐러드를 올려 채소의 씹는 맛도 더했다. 신의 한 수는 견과류였다. 견과류는 채소와는 또 다른 치감을 선사한다. 돈가스의 바삭함, 채소의 씹는 맛, 견과류를 이빨로 아작아작 부수는 재미까지. 견과류의 고소한 맛은 와사비크림치즈의 산뜻함과 돈가스의 기름진 묵직함을 조화롭게 만든다.

전국에 돈가스 잘 만드는 식당은 많다. 저마다 장점이 있지만, 새로운 맛을 경험하고 싶다면 화성에서 꼭 찾아볼 가치가 충분한 가게다. 가족이 함께 화성을 찾았다면 한 번쯤 꼭 방문해 보는 게 좋겠다.

와사비는 와사비다. 한때 와사비를 고추냉이라 불러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실상 둘은 전혀 다른 종이라는 게 밝혀졌다 (와사비는 겨자과, 학명은 Wasabia japonica / 고추냉이는 십자화과, 학명은 Wasabia koreana). 와사비는 뿌리를 갈아 음식의 양념으로 사용한다. 예전에는 뿌리를 말려 류머티즘이나 신경통을 다스리는 약재로 썼다고도 한다. 비타민 C 함량이 매우 많아서 100그램당 하루 권장 섭취량의 70%가 들었다. 비타민 B군도 상당하다. 이외에도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다. 우리 몸에 필요한 칼슘, 마그네슘, 칼륨, 철분, 아연, 망간 등이 함유돼 있다. 와사비의 가장 큰 특징은 시니그린 (sinigrin)이다. 이 성분은 산소와 접촉하면 이소티오시안산염 (isothiocyanate)이 되는데, 코를 쏘는 매운맛이 여기서 비롯된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