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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는 늘 가을이 궁금했다. 물론 가을에도 몇 번을 다녀왔지만 매번 10월 초였다.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 청량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사진으로 봐서 잘 알았기에 그 풍광을 눈에 직접 담고 싶었다.

산사음악회가 시작된 곳

지금까지 청량산에 오른 건 늘 가을의 초입이었다. 청량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청량사에 가는 길이었다. 매년 10월 첫째 주말이면 청량사에서 산사음악회가 열리기 때문에 취재차 찾아갔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산사음악회는 청량사에서부터 시작했다. 산사라는 공간은 원래 전각이 마당을 에워싸는 형국이라 음악회를 열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긴 하다. 그중에서도 청량사는 특히 산사음악회를 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다.

산사음악회가 여기에서 처음 시작된 이유는 이 절의 지형을 보면 알 수 있다. 청량사는 앉아 있는 자리부터 범상치 않다. 청량사의 골짜기 사이, 그중에서도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곳이다. 하고많은 자리 중에 하필 맞은편으로 청량산의 다른 봉우리가 내다보이는 자리여서 겉에서는 여기에 절이 있다는 걸 알기 어렵다. 가파른 비탈을 따라 한참 올라가야만 절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절로 들어가는 길은 두 군데 있다. 하나는 비탈을 따라 구불구불 걸어 올라가는 길, 또 하나는 청량산 골짜기 안쪽으로 차도를 따라 더 올라가면 나타나는 입석(서 있는 돌) 부근이다.

입석 쪽에서 들어가면 산비탈을 따라 오솔길을 걸어 절 왼편으로 들어간다. 이쪽은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 코스다. 다른 하나의 길은 청량사 아래에서 비탈을 거슬러 가는 길인데, 이렇게 올라가면 어느 순간 숲 바깥으로 웅장하게 자리 잡은 청량사의 위용을 느낄 수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비로소 청량사가 이곳에 자리를 튼 이유가 몸으로 느껴진다.

청량사는 앉아 있는 지형의 특성상 물음표(?)의 형상을 하고 있다. 왼쪽 물음표가 시작하는 지점에 석가탑을 빼닮은 석탑이 서 있고, 그 곁으로 줄줄이 전각이 섰다. 아래에서 위로 전각이 줄을 서는 여느 사찰과 달리 이곳은 좌우로 전각이 자리를 잡았다. 물론 위아래로도 전각이 있긴 하지만 이는 좁은 비탈을 따라 겹치게 자리를 배치한 방식일 뿐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한국의 여러 산사 중에서도 가람 배치가 독창적인 곳이다. 그러니까 결국 움푹 들어간 자리, 맞은편을 막고 선 봉우리로 인해 천연의 공연장인 셈이다. 산사음악회를 연다면 이만한 명당이 없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낙동강

청량산 일대에 단풍이 들면 전국의 유명한 어느 곳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오래전 잡지사에서 일할 당시 청량산 청량사의 가을 풍경을 본 적이 있다. 산속에 폭 안겨 있는 그 모습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오매불망 가을의 청량사를 보고자 했다. 그 뒤로 무려 10년 만에 가을의 청량사를 볼 기회가 생겼다. 방송 촬영 차 가을의 청량산을 오르게 됐다.

청량사 산사음악회가 열릴 때는 단풍의 기미가 희미할 무렵이어서 늘 아쉬웠다. 그 아쉬움을 단박에 털어낼 만큼 아름다운 경치가 눈앞에 펼쳐졌다. 청량산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다. 해발 870미터. 태백산맥의 줄기인 중앙산맥으로 솟아 있고, 그 발치로 낙동강이 휘돌아 흐른다. 여기에 청량사가 터를 잡은 것은 신라시대 원효대사의 시기인 663년(문무왕 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효대사는 직접 이 자리를 선택하고 현재의 유리보전을 지어 올렸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전각이다. 아픈 이가 찾아와 몸을 의탁하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한 공간이기도 하다.

당시만 해도 청량산에는 연대사라는 절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암자가 26개에 달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양산 통도사 같은 거대 사찰과 비교해도 될 만큼 이곳이 신라불교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가파른 비탈을 깎아 지은 절은 양쪽으로 솟아오른 봉우리와 맞은 편의 산세가 완벽하게 절을 감싸 안는 형국이다. 여기에 알록달록한 단풍이 물들어 오니 가위 절경이다. 사람에 따라 이 절을 남성적이고 선이 강하다고 평하지만, 내 눈에는 곡선과 직선이 잘 조화를 이룬 지극히 여성적인 사찰처럼 보였다. 이는 주변을 에워싼 산세의 유려한 곡선도 한몫하는 듯하다.

과거 이곳은 누구도 쉬이 찾아오기 어려운 산간벽지였을 터. 가히 신선이 살 만한 장소였을 테다. 실제로 산속에는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대와 선녀가 놀다 갔다는 선녀봉이 있다. 여기에 더해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도 이곳에서 공부했다. 그가 마시고 정신이 맑아졌다는 총명수와 감로수 같은 약수도 많다. 청량사 중심부에는 수로를 천정으로 올려서 물을 받은 약수가 있다. 대나무 수로에서 부글부글 내려오는 물길이 이색적이다. 이 물은 무척 시원하고 달다. 역시 산세가 좋으면 물도 맛있다. 사 먹는 물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다.

이 물은 청량산의 계곡 물줄기를 따라 흐르고 흘러 낙동강으로 합류해 들어간다. 기왕 여기까지 왔다면 낙동강을 따라 안동 도산까지 이어지는 예던길도 걸어보면 좋겠다. 이 길은 과거 퇴계 선생이 청량산으로 공부하기 위해 걸어 다니던 길이다. 낙동강의 단아한 물길과 우뚝 솟은 청량산의 위용을 모두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솔잎으로 구운 봉화의 명물

봉화는 전국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오지이다. 그래서 먹거리를 이야기하면 가을의 송이나 도토리묵 같은 걸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봉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는데, 솔잎으로 구운 돼지숯불구이다.

청량산 물길을 따라 상류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봉성면으로 들어서면 먹거리촌이 나온다. 이 마을은 전체가 솔잎숯불구이로 유명하다. 원래 솔잎숯불구이는 이 마을에 장이 열릴 때마다 먹던 요리다. 시간이 흘러 봉성면의 장터는 갈수록 그 규모가 줄어들었지만, 그곳에서 팔던 이 요리는 입소문을 타고 찾는 이가 늘어나며 봉화를 대표하는 먹거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지금은 먹거리촌에 7~8집이 솔잎숯불구이를 내놓는다.

조리 과정은 단순하다. 돼지고기를 굽다가 마지막에 솔잎이 수북하게 달린 가지에 불을 붙여 향을 입히는 식이다. 솔가지가 다 타버릴 정도로 굽는 것도 아니고 마지막에 센 불로 빠르게 마무리하는 정도로만 사용하는 것 같았다. 접시에 담을 때도 숯으로 쓴 솔잎을 깔고 그 위에 고기를 담아 내온다. 겉보기에는 여느 숯불구이와 큰 차이가 없는 듯하지만, 봉화 어디에나 흔하게 있는 소나무를 이용해 조리한다는 점에서 봉화를 찾아온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주로 목살 부위를 사용하는 것 같은데, 기름기가 적당하고 불향이 잘 배어 있어서 맛이 확 살아나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가게가 일반적인 숯불구이와 양념구이 두 가지로 나뉘어 있다는 것도 특징. 숯불구이도 좋지만, 과하지 않게 양념을 재서 구운 양념구이도 맛이 꽤 좋다. 가격도 400그램에 2만 원 정도로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다. 봉화를 찾는다면 꼭 한 번쯤 먹어볼 만한 봉화만의 요리다.

소나무의 이파리인 솔잎. 소나무는 한국, 일본, 중국에 분포한다. 특유의 상쾌한 향이 인상적이지만 쓴맛도 지니고 있는 게 특징이다. 오래전부터 향신료와 약재로 사용하던 식재료이기도 하다. 채취하는 시기에 따라 약효가 다르다고 알려져 있는데, 새순이 나는 4~5월이나 12~1월이 적기라고 말한다. 솔잎의 가장 큰 효능은 자양강장이다. 신체를 튼튼하게 해 주고 몸을 가볍게 한다. 풍을 물리치는 기능도 있어서 중풍 예방에 도움이 있다. 이외에도 소화가 잘되지 않을 때 솔잎이 좋다고 하며 위염이나 십이지장궤양, 만성 대장염 등의 염증성 질환에도 효과가 좋다. 솔잎의 또 다른 기능은 피를 맑게 하는 것. 체내 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 주며 각종 비타민과 테르펜틴 (terpentin)이 풍부할 뿐 아니라 콜레스테롤을 낮춰 심혈관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