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MCRIC

용인이라는 땅이 가지고 있는 보물은 대체 몇 가지일까. 갈 때마다 새로운 면을 만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이렇게 대단한 곳이 용인의 품 안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20만 평 속 36개의 테마가든

올 때마다 느끼지만, 용인은 동서가 참 다르다. 지극히 신도시의 모든 것을 갖춘 서쪽에 비해 동쪽은 완연한 농촌이다. 그래서 에버랜드를 제외하면 용인의 동쪽 지역은 좀처럼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 그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인시를 탐험하다 보면 뭔가 새로운 것이 계속 튀어나온다. 순대로 유명했던 처인구 백암면 안쪽 깊숙한 곳의 한택식물원도 그렇게 찾은 곳이었다. 좁은 도로를 따라 들어가는 내내 여기에 뭐가 있을까 싶은데, 발 디디는 순간부터 별천지가 펼쳐진다.

이곳을 가려면 양지IC에서 12킬로미터 정도를 더 들어가야 한다. 그만큼 용인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 물어보니 이 식물원을 아는 이도 있지만, 알고 있었더라도 잊고 있거나 아예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이 식물원은 역사가 매우 깊은 곳. 1981년에 설립했다. 전초 단계인 개발은 1979년이었으니 국내에서는 꽤 오래된 식물원 중 하나로 손꼽아야 할 정도다. 게다가 식물원을 만든 이는 이택주라는 개인이다. 그러니까 개인의 염원이 30년 넘는 세월을 공들여 완성한 곳이 한택식물원인 셈이다.

이택주 원장은 한국의 자생식물이 잡초 취급을 받던 1970년대, 식물원 하나 없는 국내에도 세계적인 식물원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희귀 멸종위기 식물을 들여와 번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자생지를 복원하고 신품종을 개발하는 일에도 매달렸다. 2001년에는 비영리 재단법인을 세워서 이곳의 운영을 체계화하려는 노력도 기울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식물원은 그 크기가 660,000㎡ (약 20만 평)에 달한다. 동원과 서원으로 나누어서 특성화했으며, 동원은 230,000㎡ (약 7만 평) 크기로 일반인에게 개방된 구간이다. 여기는 총 36개의 테마를 가진 가든으로 꾸며져 있다. 반면 서원은 ‘서식지 외 보전지역 및 연구 재배지역’이다. 동원의 두 배에 달하는 지역이 연구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동원과 서원에서 자라는 식물은 총 9,700여 종 1,000만여 본. 이 중 자생식물만 2,400여 종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 안에는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한국산 자생식물이 거의 다 모여 있다는 의미다. 때로는 발걸음을 디뎌 확인하는 것보다 숫자로 마주할 때 그 진가가 보이기도 한다. 한택식물원이 딱 그렇다. 한 사람이 일군 위대한 결과라 불러야 마땅한 곳이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니 식물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가득 피어난 연꽃부터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탁한 땅이어도 진흙을 뚫고 올라와 꽃을 피워내는 연꽃의 힘.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 그 단아한 자태는 볼수록 곱다. 가든센터라 불리는 한택식물원 입구의 마당에는 색깔도 다양한 연꽃이 피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종류도 다양하다. 국내 종이 아닌 외래종인 가시연꽃도 한쪽에 무리 지어 피어있다. 이 식물원은 들어서는 입구부터 여름의 아름다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 해서 무작정 볼 게 없을 거로 추측하는 건 위험하다. 이미 많은 사람이 그런 식으로 습관적 선택을 하는 게 아쉽다. 이곳은 그게 얼마나 아쉬운 일인지 느낄 수 있게 하는 여행지다. 겉으로 봐도 외양이 크게 나쁘지 않지만, 입장권을 끊고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진가가 드러난다. 입장료는 조금 비싼 편이다. 어른 9,000원, 어린이 및 청소년은 6,000원이다. 이건 개인이 만든 시설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다.

계곡을 꽉 채운 식물의 향연

입구에서 잠시 멈칫하게 했던 아쉬움은 식물원의 안쪽으로 발을 들이면서 점차 희석되어 간다. 국내 최고라고 자부하는 식물원을 여럿 다녀왔지만, 이곳은 다른 어디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여타 식물원이 그렇듯 이곳 역시 평지에서 시작해 경사를 타고 산자락 깊숙한 곳으로 올라가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나오는 건 사계정원. 여기에서는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을 마주한다.

그 옆에는 아이들이 호기심을 보일만한 허브&식충식물원이다. 자료 사진으로만 보았던 파리지옥, 끈끈이주걱 따위가 한데 자리하고 있다. 이게 정말 곤충을 잡아먹고 산다는 거지? 여타의 식물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파리지옥은 생각보다 아주 작고, 길쭉한 통으로 이루어진 네펜데스는 생각보다 큼지막하다. 곤충에게는 죽음의 땅이겠지만 인간에게는 흥미를 자아내는 곳. 그냥 지나치긴 어렵다.

그 뒤로는 산책길을 따라 오르며 여러 테마의 가든을 구경하면 된다. 다른 식물원이 으레 그러하듯 이곳도 식물의 종류에 따라 가든을 구분 지어 놓았다. 아이리스만 심어둔 아이리스원, 원추리 종류가 이렇게 많다는 게 놀랍기만 한 원추리원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궁화도 종류가 어찌나 많은지. 생태환경에 맞춰 구성해 둔 지역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암석원이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이곳에서는 암석 지형에서 자라는 식물을 볼 수 있다.

  

사람은 그저 꾸준히 걷기만 하면 된다. 걷는 동안 곁으로 스쳐 가는 식물을 찬찬히 살피고 만든 이가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지를 놓치지만 않으면 꽤 즐겁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평일에는 사람도 많지 않으니 한적해서 좋다. 물론 경사를 따라 걷는 자체가 버거운 이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골짜기 안에는 무척 다양한 지형이 펼쳐지니 지루함은 좀처럼 느끼기 힘들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길이 있고, 그 물길은 때로 모였다 흩어지고 가늘게 흐르다 제법 큰 줄기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 물길의 위쪽에는 크진 않아도 멋들어진 작은 폭포도 있다. 재작년 태풍 때 거센 물길에 산책로가 무너져 통행이 금지된 구역이 일부 있다는 건 아쉬웠다. 그때의 상처는 치유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이 식물원의 특징 중 하나는 다른 기후대의 생태도 관찰할 수 있다는 것. 호주에서 자라는 식물만 모아둔 호주온실, 남아프리카온실 같은 데가 그런 곳이다. 그중에서도 중남미온실은 독특한 기후대의 중남미 지형에서 자라는 온갖 선인장을 모아두었다. 그 온실을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제법 오묘한 기분이 든다. 이 코스는 빼놓지 말고 꼭 다녀오길 추천한다. 식물원을 온전히 모두 즐기려면 2시간 이상은 족히 잡아야 한다. 그만큼 규모 있는 곳이다. 용인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용인은 이렇게나 다채로운 얼굴을 가진 도시다. 대체 뭘 얼마나 더 보여줄지 기대하게끔 하는 도시다.

밀면이 먹고프면 용인으로

용인은 인구가 많은 만큼 외식업도 발달해 있다. 심지어 곳곳에 골프장도 많다. 골프장이 많다는 건 골프를 즐기는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만큼 독특한 음식이 발달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돼지국밥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알려진 밀면도 용인 곳곳에서 팔리는 중이다. 확실히 이제는 전국의 외식업이 평준화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한데, 한발 더 나아가서 부산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기까지 하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최근 용인에서 아주 각광받는 ‘민속가야밀면’이다.

이 가게의 사장님은 원래 해외에서 축구 에이전트로 일하던 인물이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일을 하던 중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생계가 위협을 받는 상황까지 몰리게 됐고, 평소에 좋아하던 밀면을 만들어 팔기로 결심하면서 이 식당을 열었다. 사장님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본인은 성격이 뭘 시작하면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단다. 제대로 된 밀면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밀면 만드는 법을 배웠다. 용인에 자리 잡기로 한 후에는 경기도권에서 선호하는 입맛을 별도로 연구하기까지 했다. 그리고서 완성한 것이 지금의 밀면이다.

원래 밀면이라는 음식은 근현대사의 비극 속에 태어난 음식이었다. 6·25전쟁 중에 유일하게 유린당하지 않은 도시 부산. 이 항구도시에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이 몰려들었다. 피난 생활 중에도 냉면을 대하는 이북 사람들의 마음은 진심이었다고 해야겠다. 메밀을 구하기 어려운 부산에는 다행히도 미국에서 원조로 들어온 밀가루가 풍부했고, 이를 이용해 면발을 뽑았다. 자연스럽게 북쪽의 음식이 엉성하게나마 만들어지고 팔리기 시작했다. 차갑게 식힌 육수를 부어서 평양식에 대한 갈증을 채웠고, 매콤한 양념장을 얹어서 함흥식 농마국수를 향한 향수를 달랬다. 시간이 흐르면서 밀면은 그 자체로 진화를 시작했다. 밀가루 특유의 비릿한 냄새와 저렴한 재료가 자아내는 육수의 잡내를 잡기 위해 한약재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밀면의 형태가 완성되어 갔다.

민속가야밀면의 특징이라면 부산의 밀면에서 느낄 수 있었던 짙은 한약재의 향이 훨씬 덜 하는 점. 그리고 면발의 느낌이나 양념의 매콤한 정도 역시 훨씬 세련된 느낌으로 다듬어졌다. 근래 유행하는 들기름국수도 이 가게의 메뉴판에 올랐다. 원래 ‘장원막국수’라는 간판으로 시작했던 고기리막국수의 들기름국수는 밀면에도 썩 잘 어울린다. 고기리막국수가 자기만의 레시피를 완성했다면, 민속가야밀면은 훨씬 캐주얼한 형태와 맛으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이외에도 용인 곳곳에 들기름국수가 유행처럼 퍼져있는 걸 감안하면, 이제는 용인을 들기름국수의 메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더불어 이 식당을 찾아갔다면 수육은 반드시 먹어보고 오길 권한다. 삼겹살이나 목살, 앞다릿살 등을 사용하는 다른 식당과 달리 가브리살을 사용했는데, 쫄깃한 식감이나 감칠맛이 일품이다. 구태여 부산행 열차에 오르지 않아도, 수도권에서 이 정도 퀄리티의 밀면과 수육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이제 밀면이 먹고프면 용인으로 달려야겠다.

한국인에게 들깨는 고맙기 그지없는 식물이다. 열매인 들깨는 가루로 내어 걸쭉하고 담백한 국물을 만드는 재료가 되고 그 자체로도 요리에 특유의 고소한 맛을 더한다. 게다가 쌈을 먹을 때에도 들깨의 이파리인 깻잎은 빼놓을 수 없다. 들깨를 짜서 만드는 들기름은 아주 오래전부터 식용유로 사용해 왔다. 나물 등을 무칠 때 넣어서 먹으면 향긋한 그 내음이 입맛을 돋운다. 그러니까 열매, 잎, 씨까지 모든 걸 아낌없이 내어주는 재료라 할 수 있겠다.

여기에 더해 들기름에는 몸에 이로운 성분도 많다. 먼저 혈관 속 노폐물인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 리놀레산 (linoleic acid) 성분이 있다. 성인병의 주요 원인이기도 한 콜레스테롤을 관리하는 대표적인 식품으로 손꼽힌다. 들기름에는 조혈 작용을 돕는 성분도 들어 있다. 혈관 속 혈액이 뭉치지 않게 해 주어서 흐름을 원활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빈혈을 개선할 수 있다. 무엇보다 들기름에는 DHA 성분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성장기 아이에게 권하는 이유다. 또 오메가-3가 많이 들어있어서 뇌신경을 발달시키고 치매를 예방하는 등의 효과가 있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