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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대부도는 가족여행으로 각광받는 섬이다. 육지와 연결되어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곳곳에 가 볼 만한 곳도 많아졌다. 그중에는 ‘섬에 이런 곳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여행지도 있기 마련. ‘유리섬박물관’이 그런 곳이었다.

유리로 지은 동화 속 공간

유리섬이 대체 뭔가 싶었다. 이런 장소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서야 “오오!”라는 소리가 나왔다. 한눈에 보아도 예쁘다. 유리섬박물관에는 ‘한국의 무라노’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무라노’는 이탈리아의 섬이다. 베네치아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데, 유리 공예가 발달해 있다. 13세기부터 유리를 제조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그 전통이 이어지면서 유럽 전역에 명성을 떨친 유리 공예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그러니까 유리섬박물관은 대부도를 한국의 무라노로 만들고 싶어 하는 의지를 담아 만든 곳이고, 유리섬이라는 이름은 대부도를 유리 공예의 중심지로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었다.

구태여 안쪽으로 발을 들이지 않아도 박물관은 이미 시선을 충분히 빼앗았다. 주차장에 내려 표를 구매하러 가는 그 짧은 동안에도 하늘 위로 드러나 있는 어린왕자의 흐뭇한 웃음이 바라보는 사람도 미소를 짓게 했다. 저쪽 편에는 이름 모를 캐릭터가 둥실둥실한 몸을 드러낸 채 손을 흔들고 있다. 이곳의 입장료는 성인 1만 원, 청소년 9천 원, 소인 8천 원이다. 금액이 절대 싸지는 않지만, 이만한 가치는 충분하니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다.

  

안쪽의 시설은 꽤나 넓다. 43,000제곱미터 (약 1만 3,000평)에 달한다. 결코 작지 않은 부지가 어느 한 곳 아쉬운 것 없이 유리공예품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한국의 무라노’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너른 마당은 온통 아기자기한 유리공예 작품으로 꾸며 놓았다. 어린아이라면 함박웃음을 지을 만한 캐릭터도 곳곳에 놓여 있다.

홍학 떼가 무리 지어 바위 위에 서 있는 광경이나 에일리언과 꼬마 악마가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은 귀엽기 짝이 없다. 괜스레 큭큭 웃게 된다. 원숭이 얼굴을 한 정체 모를 상상 속 동물도 그렇다. 만든 사람의 센스와 유머가 곳곳에서 엿보인다. 이 모든 게 유리 공예라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반듯하게 잘 지어놓은 건물에 들어가기 전에 바깥을 충분히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이미 입구로 들어서면서 곳곳으로 시선을 빼앗긴 후였지만, 워낙 주변의 지형을 잘 활용해서 지어둔 덕에 산책 삼아 돌아보기에 안성맞춤이다. 야외조각공원을 지나면 ‘러브로드’라고 이름 지어 놓은 유리섬 둘레길이 나온다. 가족이나 연인이 날씨 좋은 휴일에 천천히 걷기에 알맞다. 바로 옆의 연못과 드넓은 갈대밭 곁으로는 수상 무대를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서는 수시로 공연도 열린다고 하니 때를 잘 맞춘다면 미술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달궈서 후 불면 만들어지는

외부에서 산책과 작품 감상을 마쳤다면 이제는 본격적인 유리공예의 진가를 만날 시간이다. 이곳은 어린이미술관이 따로 있고 메인 공간인 맥아트미술관이 별도로 지어져 있다. 이중 맥아트미술관은 회화, 입체, 설치, 영상 등의 전방위 예술공간이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다는 건 정보 없이 가볍게 대부도를 찾은 사람에게 꽤 높은 만족도를 선사한다.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도 공간이지만, 이곳에서 꼭 봐야 할 건 따로 있다. 유리공예 시연이다. 박물관 측은 커다란 별도의 장소를 마련해 유리공예 시연장을 만들어 두었다. 200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시설이다. 이곳에서 하루 세 번 유리공예 시연을 진행한다.

시연이 시작될 때가 되면 박물관에서 별도의 방송을 하니 이때 맞춰서 시연장에 입장하면 된다. 박물관에는 상주하고 있는 작가들이 있다. 그들이 작품 활동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레지던스를 제공하고 있고, 여기에 입주한 작가들이 시간을 내어 관람객에게 유리공예의 매력을 직접 생생하게 전한다. 텔레비전과 같은 영상 미디어에서야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눈앞에서 유리가 작품이 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다. 그간 유리 공예를 하는 작가도 여럿 만나 보았다. 얘기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실제로 유리 덩어리가 작품으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니 생각보다도 훨씬 빠르게 과정이 진행됐다.

긴 봉에 매단 유리가 시뻘건 용광로로 들어가서 달궈지더니 이내 밖으로 나왔다. 이것을 입으로 불기도 하고 도구로 잡아당기기도 한다. 슬슬 달래주듯 모양을 잡아가더니 어느새 톡톡 쳐서 분리했다. 작가가 미리 컵을 만들 거라는 얘기를 해 주었지만, 완성된 모습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투명하고 예쁜 와인잔이었다. 주변에 앉아 있던 학생들 입에서 “헐”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다음에는 문양이 들어간 장식용 그릇이라고 했다.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달궈서 후 불고 톡톡 두드리고 차가운 쇠에 올려 몇 번 굴리니 이내 완성. 처음 봉에 붙여두었던 유리에 문양을 내는 재료를 섞어두었던 것인지, 투명한 잔에 알록달록한 별이 떠 있었다.

시연은 서너 가지의 서로 다른 공예품을 만들고 끝을 맺었다. 무대에 나섰던 두 명의 작가는 거의 매일 박물관 안의 레지던스에 상주하며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배고픈 공예작가의 길이지만, 이렇게라도 그네의 작품을 소개하고 만드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어서 만족스러운 듯했다. 주말이면 관람객을 대상으로 직접 유리공예를 해 볼 수 있는 체험도 가능하다. 이쯤이면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떠나기에 수도권 거주자에게는 매우 훌륭한 선택지가 아닐까 싶다.

맛있게 매운 서해의 별미

지금은 주꾸미의 금어기다. 사실 봄을 주꾸미의 계절이라며 소비를 권하는 마케팅을 좋아하지 않는다. 봄에는 주꾸미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봄에 주꾸미를 먹는 건 알집에 들어찬 알 때문이다. 이걸 밥알에 비유하며 별미이므로 이때 먹어야 한다고 자꾸만 강조한다. 한술 더 떠서 5월부터 8월 31일까지 주꾸미 금어기가 되기 전인 4월에는 주꾸미를 ‘꼭’ 먹으라고 권하기까지. 개인적으로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짓이다. 주꾸미는 문어과다. 모든 문어과는 9월 이후 가을부터가 제철이다. 모든 생물은 알을 배는 시기에 모든 에너지를 알에 집중시키기에 가장 맛이 없을 때다. 다시 말해 주꾸미를 먹으려면 가을에 먹는 게 가장 좋다. 봄에 주꾸미 전문점에 가지 않는 개인적인 이유다.

물론 가게 입장에서는 봄에도 장사를 해야 하니 무조건 먹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이럴 때는 미리 잡아둔 주꾸미를 사용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해법도 없을 테다. 그래서 주꾸미 요리를 하는 솜씨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번 대부도 취재에서 여러 스폿을 다녔는데, 추천받은 주꾸미 가게를 슬쩍 들러보곤 그대로 눌러앉았다. 벽에 붙어 있는 안내 문구 때문이었다. 이 가게에서는 알배기 주꾸미를 취급하지 않는다며 알배기를 찾는다면 죄송하지만, 다른 가게를 찾아달라는 정중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대부도 현지인이 추천하는 곳인 데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곳이라면 기꺼이 먹어보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가게의 이름은 ‘불난그집’이다. 메뉴는 복잡하지 않다. 불향주꾸미정식과 불향바지락정식, 주꾸미샤브샤브 바지락 칼국수다. 그리고 사이드로 수제돈까스와 메밀소바, 왕새우튀김이 있다. 이중 메인은 역시 불향주꾸미정식이다. 이 안에 메밀소바와 새우튀김, 음료까지 제공한다. 그러니까 이곳에서는 사이드메뉴를 볼 이유가 없다. 불향주꾸미정식은 1인 1만 6천 원. 구성에 비해 가격도 훌륭하다.

주문을 넣고 기다리니 오래지 않아 상에 음식이 깔린다. 직화로 볶아낸 주꾸미의 향이 코를 자극한다. 매운맛을 더해 제대로 만든 주꾸미볶음이다. 매운 정도도 딱 알맞다. 지나치게 혀의 통각을 마비시키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매콤하게 입맛을 돋우는 식이다. 주꾸미는 쫄깃하게 씹히고 감칠맛도 온전하게 전해진다. 얼굴 전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쯤에 커다란 새우튀김을 한입 물었다. 바삭하게 부서지면서 새우살이 입안에 가득 찬다. 메밀소바의 국물과 면발은 입에 남은 매운맛을 씻어 내린다. 대부도에 왔다면 기꺼이 찾아갈 만한 구성과 맛이다.

굳이 알이 밴 주꾸미가 아니어도, 갓 잡은 주꾸미가 아니어도 이 정도면 충분히 추천할 만한 맛과 솜씨라고 하겠다. 물론 기왕이면 선선해지는 가을 주꾸미가 진정한 제철을 맞을 때 찾는 게 가장 좋겠다. 가게를 나와 바닷가를 곁에 끼고 달리는 동안 주꾸미의 감칠맛이 긴 여운을 남긴다. 유리섬박물관에 주꾸미정식이라면, 언제든 대부도를 다시 찾을 이유는 충분할 듯하다.

주꾸미는 봄이면 많은 이가 즐겨 찾는 문어과의 연체동물이다. 낙지보다 작고 우리나라 전 연안에 분포한다. 서해에서만 잡히는 게 아니다. 비록 작고 귀여운 용모지만 효능은 결코 귀엽지 않다. 특히 주꾸미에는 타우린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100g당 1,600mg으로 해산물 중에서는 함량이 가장 높으므로 원기 회복에 큰 효과가 있다. 칼로리도 100g당 47kcal 정도로 낮아서 다이어트에 좋은 식품이다. DHA가 많아 두뇌 발달과 기억력 향상에도 좋다. <동의보감>에서는 주꾸미에 '담석 용해, 간장 해독 기능 강화, 혈중 콜레스테롤 감소, 혈압 정상화, 당뇨병 예방, 시력 회복 및 근육의 피로 회복 등에 좋은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다.'고 소개한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