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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으로 차를 몰았다. 몇 번이나 다녀온 곳이다. 그럼에도 볼 게 또 생겼다. 어떤 여행지든 마찬가지다. 늘 변화가 생기고 그래서 새로워진다. 갔던 곳을 또 가는 건 그래서다. 이번에는 지극히 평범했던 시장 골목 안팎의 변화를 보기 위한 길이었다.

묵은 골목이 문화공간으로

지난 몇 년 사이 ‘도시재생’이 트렌드를 이루고 있었다. 오래된 골목과 구도심이 재개발이 아닌 본래의 모습 그대로를 살려 새롭게 태어나는 길을 택했다. 세월이 묻어 있지만 새로운, 익숙하지만 낯선 그 무엇. 이른바 레트로라는 열풍을 타고 도시재생은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담양의 관방제림 뒤편도 마찬가지였다. 시장을 끼고 골목을 따라 뻗어나간 이 길에는 ‘담빛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분명 몇 년 전 이 골목을 찾았을 때만 해도 이만큼 변화가 크지는 않았다. 여느 오래된 구도심처럼 그저 그곳의 사람들이 살던 흔적이 그대로 엿보이는 골목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 몇 년 사이에 이곳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다행스러운 건 도시재생이 아무런 의미 없이 그저 구색을 갖추기 위한 게 아닌 듯하다는 점이었다. 캐치프레이즈로 ‘사람이 곧 문화가 되는 길’이라는 문구를 걸었고, 길의 옛 모습을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변화를 주려고 노력한 구석이 보였다.

담빛길은 주요 거점을 4구간으로 나누어 각각의 색채를 부여했다. 1구간은 도심 오른편 외곽에 자리한 담빛예술창고부터 시작해 영산강 관방천을 따라 국수의 거리, 담빛라디오스타, 담주 다미담 예술구까지, 2구간은 그 아래 골목에 자리한 인문학가옥과 청소년 문화의 집, 3구간은 담양교 인근의 천변리 정미다방부터 중앙공원을 거쳐 해동문화예술촌까지 이어진다. 마지막 4구간은 담양문화회관이다. 담빛길이 조성된 건 2016년부터다. ‘문화생태도시조성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시행됐다. 무너져 가는 원도심을 활성화해 보자는 목적이었는데, 5년 차를 넘어가면서 비로소 골목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 중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해동문화예술촌이다. 공용버스 터미널 근처에 자리하고 있어서 담양을 찾은 사람들이 가장 처음으로 둘러볼 만하다. 해동문화예술촌은 1960년대에 지어진 해동주조장을 리모델링했다. 해동주조장은 담양을 대표하는 술을 50년 넘도록 빚어오다 2010년에 문을 닫았다. 그 후 몇 년간 방치돼 있던 것을 활용해 전시, 공연, 문화교육 등이 가능한 문화 복합공간으로 기능하도록 만들어 두었다. 지금은 주조장 바로 곁의 구 담양의원, 구 읍 교회까지 담양군이 매입해서 해동문화예술촌의 일부로 편입시켰다.

LP와 CD로 음악을 즐기는 곳

국수거리에서 가까운 담빛길 골목을 걷다가 독특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모티브로 한 듯한 외양이다. 간판에는 ‘담빛라디오스타’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찾아보니 담양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라디오 방송국이란다. 2018년에 개국해서 매주 토요일 오후에 실제 방송을 진행하는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이 거리는 라디오와 지극히 잘 어울린다. 오래된 풍경에 아날로그 감성이 그대로 살아 있는 라디오 방송. 거기다 실시간 생방송이니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이 고스란히 방송 되기도 좋았을 테다. 오픈스튜디오 구조여서 방송 중일 때는 창밖에 서서 방송을 구경할 수도 있게 해 놓았다. 토요일에 이 거리를 거닌다면 누구나 현장의 생생함을 그대로 담은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셈이다. 담빛길을 찾은 날이 평일인 게 아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 찾아봤더니 비교적 오래전의 기록이 나왔다. 마지막 기록이 3년 전이다. 운영 주최 측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지금은 운영하고 있지 않단다. 아쉬웠다. 방송했던 프로그램은 꽤 신선했다. ‘이장님이 들려주는 담양이야기’, 담양에 정착한 외국인을 초청해 듣는 ‘우리 한국사람이에요’ 같은 프로그램은 꽤 관심이 갔다. 뭐가 문제였을까. 미루어 짐작건대 아마도 운영비가 문제 아니었을까? 지상파 방송사의 라디오마저 광고를 받아도 온전히 운영이 힘들 지경인데, 지역의 이런 시도야 말할 것도 없을 듯하다. 전문 진행자가 없어도 날 것 그대로의 재미가 있었을 것 같은데, 아쉽고 또 아쉽고 아쉬웠다. 8년 넘게 라디오 패널로 출연하면서 라디오가 주는 매력을 잘 알고 있는 처지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나마 좀처럼 떨쳐내지 못한 그 아쉬움을 달랠 만한 공간이 있다는 건 위안이 됐다. 국수거리에서 3구간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 읍사무소 앞에 근사하게 자리한 건물이 있다. 담양LP음악충전소라는 곳이다. 2022년 10월 말에 준공한 따끈따끈한 신축이다. 그 안에는 카페와 함께 3만여 장에 달하는 LP와 CD가 전시돼 있다. 이는 모두 광주MBC에서 기증한 것들이다. 이제는 방송사에서도 디지털 아카이브를 운영하니 LP와 CD는 자리만 차지할 뿐, 별반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이를 활용한 멋진 혜안이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꽤 세련된 인테리어가 멋지다. 음악충전소는 2층에 자리하고 있다. 한쪽에 LP와 CD가 모여 있는데 이제는 보기 어려운 레코드 가게를 보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는 음료를 즐기면서 직접 음악도 들어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진하게 우러난 담양의 맛

담빛길에는 아직 가지 못한 곳이 많았다. 한정된 시간에 빠르게 찾아간다고 해도 모두 들러보는 건 어려웠다. 서둘러 다음 목적지로 가야 할 일정이 있었다. 떠나기 전에 담양에서 끼니를 때우기로 했다. 그간 올 때마다 국수거리에서 국수를 먹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걸 찾아볼 참이었다. 한동안 먹거리를 주제로 여행을 다닌 적이 있었다. 국수를 좋아해서 지역마다 국수를 찾아다니고, 그 와중에 지역의 특징이 국밥에서 드러난다는 걸 알게 되면서 동네마다 보물찾기하듯 국밥만 먹으러 다녔다.

그렇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순댓국을 여행의 테마로 삼아도 훌륭하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국물 한 점 없이 싹싹 긁어먹은 순댓국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찾아 먹어야 할 순댓국은 계속 등장했다. 담양의 담빛길 골목 한쪽에 자리한 작은 순댓국 가게도 그랬다. 간판에 쓰인 ‘대통순대’라는 단어. 도전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무언가 새로울 것 같으니 말이다.

이름만 봐도 대략 어떻게 만드는지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궁금했다. 어떻게 만드는 게 대통순대일까? 주인아주머니는 심드렁하게 쳐다보더니 말했다. “대나무를 이용해서 만들지.” 아니 그 정도는 충분히 알겠다. “대나무에 넣어서 익히는 건가요?” “응. 담양에서는 예전부터 그렇게 순대를 만들었어.” 짐작 대로였다. 순댓국 하나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국물이 뽀얗다. 그 위에 부추를 가득 올렸다. 순대를 떠서 보니 전형적인 피순대 스타일이다. 전라도 지역의 특징이라고 해도 좋을 듯했다. 국물부터 맛을 보니 깔끔하고 진하다. 콩나물이 들어 있어 텁텁하지 않아 좋았다. 단숨에 입맛을 사로잡는다. 피순대도 잡내가 전혀 나지 않았다. 채소도 적지 않게 들어 있어서 씹히는 맛도 좋았다. 이만하면 담양에서 굳이 찾아도 될 법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그릇이 뚝딱. 허기를 달래주는 고마운 담양의 맛이다. 다음에도 찾을 만한 국밥이 있어서 담양에 더 애정이 깃든다.

대나무는 잎에서부터 뿌리까지 식용으로, 약용으로 활용도가 아주 높은 식물이다. 대나무의 푸른 잎을 죽엽, 줄기의 중간층을 죽여, 줄기를 불에 구워 빼낸 액즙을 죽력이라고 부른다. 죽엽은 맛이 쓰고 성질이 차다고 알려져 있다. 페놀 성분, 아미노산, 유기산, 당류 등이 포함돼 있다. 포도상구균이나 녹농균에 대한 억제 작용을 하는 특징이 있다는 게 눈에 띈다. 또 젖산균을 비롯한 김치 발효 미생물의 생육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예전에는 김칫독에 대나무 잔가지를 꺾어서 넣기도 했다. 대나무 기름인 죽력은 눈을 밝게 하고, 면역력 향상과 전신 기혈의 대사에 도움을 준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