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문생 박사의 약선설계론

약을 더 이상 쓸 수 없거나 아예 약을 쓸 단계를 넘어 선 환자, 혹은 장기간 약을 써도 몸만 상할 뿐 호전이 되지 않는 만성 질환, 면역 질환 등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요양을 하면서 여러 가지 자연의 혜택을 누리려 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음식이다.

중의학자들이 한방 고전 속의 식치방(食治方)에 맛내기 식품들을 더하여 효과도 있고 맛도 있게 하겠다는 의도로 - 선택한 식치방의 효과를 그대로 나타낼 수 있다는 객관적인 논리 제시가 없는 채로 - 만들어 유포시킨 것이 약선(藥膳, Curative Food)이다. 필자가 십여 년 연구로 객관적 논리를 창안함으로써 가능해진 합리적 약선 제작 방법이 약선설계(Planning of curative food)다.
[학력]
-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박사학위 취득(한의학)

[경력]
- 현 한국약선연구원 원장
- 현 안문생한의원 원장
- SBS 중국약선여행 전문연사
- MBC 라디오 동의보감 전문연사
- 경원대학교 사회교육원 약선강좌 외래교수
-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약선학 석사과정 겸임교수
- 원광한의대, 경원한의대, 상지한의대, 동의한의대 외래교수 및 강사(10년)
- 약선설계 관련 앱 개발

[저서]
- 2012 『약선설계학』
- 2012 『약선설계본초』
- 2003 『안문생 약선기』
- 『식의기초연구』
- 약선재료사전(App)
- 이안평가(App)

안문생
안문생

중의학자들이 한방 고전 속의 식치방에 맛내기 식품들을 더하여 효과와 맛을 둘 다 충족시키고자 만들어 유포시킨 것이 약선이다. 하지만 객관적인 논리의 제시는 없었다. 필자가 십여 년간의 연구로 객관적 논리를 창안함으로써 가능해진 합리적 약선 제작 방법이 ‘약선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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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한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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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한국 약선 연구원 수강생들에게 상해과학기술출판사(上海科學技術出版社)에서 출판한 ‘중의음식영양학(中醫飮食營養學)’이란 소책자를 강의한 적이 있다. 그 때만 해도 그 명칭이 무언가 부족한 점을 메워주는 듯한 느낌을 받고 선택하였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그 책의 내용은 영양학과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에 그 책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명칭에서 무언가 기대를 했던 자신의 무지함이 부끄러운 것이다. 음식에 대한 이론을 거의 식품영양학에서 다루기 때문에 식품영양학과 한의학의 접목에 도움이 될 거라는 허무맹랑한 공상을 했던 것 같다.


근래에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한의사들과 의사들이 같이 모여 암 치료에 대해 토론을 하는 모습을 잠깐 보았다. 한의사는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도 안 된 방법으로 암과 같은 위험한 질환을 다룬다는 듯한 상대 쪽의 논리나, 억지로 영양학이나 면역학적인 논리를 섞어서 설명하려고 애쓰는 한의사들의 안타까운 모습으로부터 과거의 부끄러움이 다시금 떠올랐다.


이거야말로 진실의 왜곡이 이만저만 심한 게 아니다. 비유하자면 기계가 인간에게 매우 비과학적이고 검증도 안 되었다고 비난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 문제의 심각성은 사회적이고 학문적인 힘의 균형이 바뀌지 않는 한 그 진실이 대중에게 결코 인식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사람들이 식품으로 사용하는 동식물은 모두 생명이 있는 존재이다. 비록 사람이 자연계 먹이사슬의 맨 정점에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도 그 사슬의 구성원이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연계는 그들과 사람들이 같이 협력하여 운영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철수'의 입증 가능한 전신의 의학적인 정보가 '철수라는 사람'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철수와 영희 두 사람의 그런 소상한 정보만을 비교하여 그들이 같이 살면 어떻게 되리라고 확신하는 사람도 역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철수나 영희가 아니고 식품으로 사용하는 동식물로 바뀌면 그 재료들을 구성하는 일부분에 불과한 '성분'이라는 정보가 갑자기 그 재료 전체와 동격이라는 듯이 행세한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그 행세가 마이너 의견으로서 조심스럽게 나타나는 게 아니고, 그것이 진실이고 과학이라고 주장한다는 것, 또한 그렇게 대중들에게 인식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현대의 물리학자들이 이미 오래전에 한 세포의 모든 분자에 대한 정보를 합해도 결코 그 세포가 지닌 생명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전혀 이 논리를 개의치 않고 있다. 그 말은 그저 우주 공간에서만 메아리치고 있을 뿐이다.


이 사회는 한의학의 차별적인 가치를 전혀 모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분이나 또 다른 논리적인 정보로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생명체들끼리의 관계를 수백 년 혹은 그 이상의 긴 세월 동안의 지속적인 임상실험을 통하여 증명하고 그 결과물을 모아서 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이기 때문에, 정보의 의학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임상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식품들의 어떤 조합이 어떤 질환에 유용한지 수백 년 혹은 그 이상의 지속적인 임상실험을 통하여 증명한 결과물인 '식치방'이 한의학의 고전 속의 소중한 자료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은 더욱이 알지 못한다. 그저 성분으로 명쾌하게 설명하는 식품이론만이 과학적이고 유익하다고 믿을 뿐이다.  


한방 처방이나 식치방 이야말로 철수와 영희가 만나서 지내온 역사지만, 철수와 영희의 검사 정보 혹은 일부 조직에 대한 현미경적인 최신 정보로 말해야 과학이지, 생명체 그대로를 활용한 수백 년 동안의 임상실험은 검증할 수 없는 비과학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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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엇갈릴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전체가 합해져서 떠오르는 생명의 현상이 결코 부분의 논리로 설명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명끼리의 관계도 결국 장구한 세월 동안의 임상 관찰을 거치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다. 우리가 먹는 식품이라는 생명체들이 우리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도 바로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따라서 만일 한의사가 의약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의 환자를 진찰하고 식품만으로 구성된 적합한 처방 - 식치방 - 을 선택하면 조리사가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고 할 때, 한의학적인 관점, 식품영양학적인 논리, 조리학적인 입장 등을 모두 존중하면서도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방법론이 어찌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약선설계학은 바로 이러한 과정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장소를 제공하는 이론이다. 식치방은 경험이지만 처음 시작은 방제학적인 가설로부터 시작하였을 것이다. 한의사가 한약으로 일반 환자를 치료할 때는 이 경험의 결과물만으로 충분하지만, 식치방을 맛있는 음식으로 바꾸면서도 효과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에 대한 역사적인 경험은 충분하지 않다. 이 부족한 부분에 가장 오차를 좁히는 철저히 한의학적인 가설을 첨가한 것이 약선설계학이다.


이렇게 그 뼈대를 형성하는 이론은 반드시 생명체를 통째로 사용하는 학문인 한의학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벽체 등에 살을 붙일 때는 그곳에 사용될 수 있는 재료들 중 가장 영양학적이고 조리학적인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또한 약선설계학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질병에 대한 음식의 활용은 "한의학적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가 아니고 "한의학적인 방법밖에 없다"가 옳은 표현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한의학계에서 이런 주관을 확고히 다지지 않는다면 심각하게 왜곡된 현실을 아무도 바로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어쩌다 칼럼이 지식전달을 넘어 호소문처럼 보이게 되었지만 한번은 집고 넘어가야 한다고 믿어 왔기에 실행에 옮겼다.


※ 본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KMCRIC의 공식적 견해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 안문생 박사의 약선설계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