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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서 오산은 가장 작은 도시 중 하나다. 면적도 작고 인구도 적다. 여행할 곳마저 좀처럼 알려진 게 없다. 이곳을 가기 전까지는 나 역시 무척 망설였다. 어딜 가야 할지, 무엇을 봐야 할지.

재미가 살아있는 판타지 조선

사실 처음에는 기대가 그리 크지 않았다. 전국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미니어처로 볼거리를 만들어둔 곳을 몇 군데 다녀오기도 했고, 한두 곳 이외에는 큰 인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완벽히 예상 밖이었다. 들어가는 길목에서부터 눈이 휘둥그레졌고, 입장부터 관람이 끝날 때까지 돋보이는 기획력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들어가는 길에 놀랐던 건 차 안에서도 시선을 빼앗기는 구조물 때문이었다.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의 세트장이 굉장히 큰 규모로 서 있다. 드라마가 끝난 후 관리가 되지 않아 망가진 부분이 보이기도 했지만, 원시시대의 신화적인 장면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 바로 옆에 미니어처빌리지가 자리하고 있다. 미니어처빌리지는 문을 연 지 이제 1년이 갓 지났다. 개관 당시부터 입소문이 빠르게 퍼져 순식간에 예약이 동나버리기로 유명했다. 뭐가 그리도 많은 호평을 끌어낼까 싶었는데, 티켓을 끊고 문 안쪽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이해가 됐다. 이 전시의 전반부 콘셉트는 ‘시간여행’이다. 빛으로 치장한 정조의 화성행궁 행차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는 순간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미니어처빌리지의 1층은 매표소와 카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는 지하 1층을 온전히 사용한다. 그만큼 공간의 이동이 많지 않다는 의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문이 열리면 헛웃음이 터진다. 눈앞에 온통 미니어처로 이루어진 세상이 펼쳐진다. 50평은 되어 보이는 공간이 전부 미니어처다. 시작은 조선시대부터다. 다만 실제 역사에서는 등장한 적 없었던 가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곳의 조선은 정조가 구현한 판타지 월드다. 정조대왕의 거대한 동상이 서 있고, 세상은 태평성대다. 머리 위로는 가마가 줄지어 경전철처럼 달린다. 한쪽에는 정조공항이 있다. 그 시대에는 당연히 없었을 비행기 대신 하늘을 나는 비차가 있다. 커다란 날개를 양쪽에 단 것이 영락없는 비행기다. 공항은 한옥으로 지은 인천공항을 닮았다. 공항 아래 마을에서는 잔치가 한창이다. 여기서 이 전시관의 재미 포인트가 빛을 발한다. 버튼을 누르면 ‘범 내려온다’가 울려 퍼지며 화려한 사이키 조명이 반짝인다.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흔들거린다. 이 기똥찬 상상력에 한참을 웃었다. 공항 뒤편 산 너머에는 오래전 열광적인 인기를 끌었던 배추도사와 무도사가 구름을 타고 날아간다. 이 얼마나 즐거운 세상인가.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눈을 부릅뜨고 곳곳을 살피며 전시를 즐기게 된다.

통일을 갈망케 하는 미니어처 세상

조선시대를 다 봤다면 잠시 입구 쪽으로 돌아가자. 입구의 왼쪽은 판타지 조선의 세상이라면, 오른쪽으로는 오산의 역사가 미니어처로 재현돼 있다. 우리는 오산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많지 않다. 어떤 역사를 가진 지역인지, 시대와 시대를 어떻게 지나왔는지 잘 모른다. 아마도 오산 비행장과 한국전쟁 시절 6·25전쟁 당시 마를린 몬로의 미군 부대 위문공연 정도가 고작일 테다. 그래서 오산을 미니어처로 구현했다는 건 의미가 크다. 바닥에 그려진 화살표를 따라 걷다 보면 오산의 과거부터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오산시의 모습, 재건의 과정을 거쳐 1970년대 오산을 만난다. 이 부분에서는 한국의 과거 모습이 오산시에서 투영되고 있다. 청바지와 통기타, 장발 단속 등이 저 작은 세상에서 모두 되살아났다.

이 전시 반대쪽, 그러니까 조선시대가 지나간 그다음부터는 부산과 서울의 주요 랜드마크가 펼쳐져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숱하게 마주했던 그 광경이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한편으로는 부산역과 서울역 두 기차역이 제법 비중 있게 재현돼 있다. 이건 이다음 전시관부터 이어지는 두 번째 파트를 위한 포석이다. 다음 전시관으로 넘어가는 문은 열쇠 구멍 모양이다. 그 위로 ‘평화의 실크로드’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 문을 넘어서면서 이곳의 두 번째 전시 콘셉트에도 감탄하게 됐다. 첫 번째 전시관의 제일 마지막 구조물은 서울역이었다. 이곳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언젠가는 우리가 만나게 될 평양역이 나온다. 서울역과 평양역 사이에는 판문점이 있고, 몇 년 전 남과 북의 두 정상이 경계선을 넘어 악수를 나누던 그 유명한 장면이 눈길을 끈다. 그러니까, 이곳의 두 번째 전시는 한반도 끝 부산역 혹은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떠나는 평화 여행이다.

통일을 전제한 평화 무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절대 꿈도 꾸지 못할 여행. 하지만 몇 년 전 잠시나마 상상해 보았던 그 여행이다. 우리는 과연 기차를 타고 북을 넘어서 나아간다면 어디를 어떻게 여행하게 될까. 그 상상을 거대하게 옮겨두었다. 중국의 하얼빈을 거쳐 사천성으로, 높다란 산맥을 건너 키르기스스탄, 벨라루스, 러시아, 발트 3국, 독일,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까지. 나라마다 랜드마크를 만날 수 있고 역사 속 주요 장면이 곳곳에서 재현된다. 하얼빈 기차역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장면이 한자리를 차지한다. 그런 크고 작은 사건이 군중 속에, 도시 속에 녹아 있으니 찬찬히 찾아볼 필요가 있다. 마치 ‘윌리를 찾아라’를 미니어처로 보는 것만 같다.

전체적으로 전시는 별도의 설명이나 안내가 필요 없다. 꼭 필요한 곳에는 버튼이 놓여 있고, 간단한 사진이나 영상으로 이해를 돕는다. 이곳에 외국인 친구들을 데리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그래서다. 이곳의 미니어처가 단순히 시대상의 재현이나 랜드마크 구현으로 그쳤다면 별반 감동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탄탄한 기획과 기발한 아이디어, 세밀하고 꼼꼼한 구성이 보는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곳의 스토리라인을 충실히 따라가도록 한다. 결코 입장료가 아쉽지 않은 곳이다.

누룽지의 구수함 닭의 쫄깃함

올해는 경기도 일대를 여행하면서 닭백숙을 참 많이 먹었다. 지역마다 동네마다 맛있는 닭백숙 가게가 있어서 입이 즐거웠다. 이번에는 오산에서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할 때 또 닭백숙을 추천받았는데, 이곳은 이곳대로 또 다른 특징이 있었다.

상호는 ‘황금장수촌’이다. 오산에는 제법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방송 출연도 좀처럼 하지 않고, 어머니가 중심이 되어 딸과 아들, 사위까지 온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상황버섯을 넣어서 만든다는 게 특징인데, 상황버섯은 몽땅 지리산의 농장에서 수급한다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닭백숙에 들어가는 황기와 인삼은 금산, 쌀은 함양, 대추는 경산에서 가지고 온다. 모두 시장에서 공수하는 게 아니라 직거래다. 이런 방식으로 식자재 단가를 조금이라도 낮추는 한편 품질과 맛을 일정하게 보장할 수 있도록 했다. 믿고 먹는 집이라는 이미지는 이렇게 만들었다.

이 가게가 독특하다고 생각한 건 음식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다른 닭백숙 전문점은 닭고기와 죽을 한 그릇에 담아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여기는 다르다. 닭고기와 약재를 함께 담아낸 그릇 하나에 누룽지 죽을 담은 그릇이 별도로 있다. 둘 다 크기도 커서 곁들인 반찬까지 깔면 상에 빈자리 찾기도 힘들 지경이다. 이건 먹는 사람의 편의를 고려한 선택이다. 닭고기를 다 먹어야 죽을 먹기 쉬운 다른 가게와 달리 죽을 먼저 먹고 싶은 사람은 죽을 먼저 먹을 수 있도록 한 것. 확실히 손님의 입장을 생각하고 고민한 구석이 엿보인다.

맛은 어떨까. 이 정도로 노력의 깊이가 담겨 있다면 맛을 기대할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닭은 큼지막한 토종닭이다. 다리 하나가 여느 치킨집 통닭만 하다. 살을 발라 먹는 데도 한참 걸린다. 이렇게 큰 닭이 젓가락으로 툭툭 치면 살이 훌렁 벗겨질 만큼 삶은 정도도 훌륭하다. 주문하면 초벌로 익혀둔 걸 20분간 압력솥에 넣어 다시 익힌 결과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주문부터 서빙까지 50분이 걸린다. 이렇게 하려면 손이 엄청나게 가기 마련인데도 식당 쪽은 익숙해서 괜찮다며 웃는다.

부드럽지만 쫄깃하게 씹히는 느낌은 그대로다. 이것이야말로 충분히 시간을 들여 키운 닭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이다. 담백한 백숙은 상황버섯이 우러난 국물 덕에 고소한 맛까지 더했다. 약간의 소금과 후추만 더하면 맛은 더 필요한 게 없을 만큼 충분히 훌륭하다. 다른 그릇에 담아낸 죽은 솥의 모양 그대로 둥글게 떠낸 누룽지가 통째로 담겨 있다. 쌀만으로 만든 죽과 누룽지로 만든 죽은 구수함의 깊이가 다르다. 고소한 국물을 쭉 빨아들인 누룽지의 구수함이란. 심지어 양까지 많아서 든든하다. 낯선 도시에서 즐기는 여행의 완벽한 마무리다.

참나무에서 자라는 상황버섯은 자연산을 구하기가 힘들다. 부르는 게 값이다. 예부터 효능이 뛰어난 귀한 약재로 여겨졌기에 <본초강목>, <동의보감>을 비롯한 여러 의학서에서 빼놓지 않고 다루고 있다. 이 버섯은 프로테오글리칸 (proteoglycan), 다당류, 비타민, 아미노산, 미네랄 등이 풍부하다. 다만 자라온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베타카로틴 (β-carotene)이 많아 우리 몸의 면역력을 끌어올리는 데 효과가 있다. NK 세포로 알려진 면역 세포를 활성화해서 우리 몸에 들어온 바이러스나 감염 세포를 직접 공격해 제거한다. 이는 항암 효과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슐린 분비와 췌장 보호에도 좋아서 당뇨병 예방 및 증상 개선에 도움을 준다. 식후 혈당 상승을 억제하는 기능도 있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