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방성혜의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

두 아들을 둔 엄마 한의사 방성혜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무척 귀한 일이지만 또한 매우 힘든 일이기도 하지요. <동의보감> 속에는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을 위한 양육의 지혜가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이 칼럼을 통해서 그 양육의 지혜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학력]
-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및 동 대학원 석사, 박사학위 취득 (의사학)

[경력]
- 현 인사랑한의원 원장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원 의사학교실 겸임교수
- MBC 창사특별기획드라마 <마의> 한의학 자문

[저서]
- 2017 『조선왕조 건강실록』
- 2016 『아토피, 반드시 나을 수 있다』
- 2015 『용포 속의 비밀, 미치도록 가렵도다』
- 2014 『동의보감 디톡스』
- 2013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
- 2012 『마흔에 읽는 동의보감』
- 2012 『조선, 종기와 사투를 벌이다』
- 2012 『조선 최고의 외과의사 백광현뎐 1, 2』

방성혜
방성혜

두 아들을 둔 엄마 한의사 방성혜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무척 귀한 일이지만 또한 매우 힘든 일이기도 하지요. <동의보감> 속에는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을 위한 양육의 지혜가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이 칼럼을 통해서 그 양육의 지혜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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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곧 식의(食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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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3년 세조 임금은 <의약론 醫藥論>이라는 책을 써서 인쇄하고 반포하게 하였다. 여기에서는 의사의 여덟 가지 종류에 대해 말하고 있다.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심의(心醫),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식의(食醫), 약으로 치료하는 약의(藥醫), 위급한 상황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혼의(昏醫), 환자를 살피지도 않고 침과 약을 쓰는 광의(狂醫), 고쳐줄 약이 없는데도 참견하는 망의(妄醫),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의술을 잘못 행하는 사의(詐醫), 환자를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전혀 없는 살의(殺醫)가 세조 임금이 말한 여덟 가지 종류의 의사이다.


이 중에서 최고 경지의 의사는 심의(心醫)이고 그다음 경지의 의사는 식의(食醫)이며 그다음 경지의 의사가 약의(藥醫)이다.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만으로 병을 낫게 하는 의사가 최고 경지의 의사이고,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그다음으로 훌륭한 의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엄마들은 최고의 의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이미 갖추고 있지 않은가?


아이가 아플 때 옆에서 아이의 손을 꼭 잡고서 “금방 나을 거야. 엄마가 옆에서 지켜줄게.”라고 말하며 안심시켜 준다면 그것이 바로 최고의 약이다. 아이가 아프기 시작할 때 치료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 병세를 초기에 꺾어놓는다면, 엄마가 바로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푸드 닥터, 곧 식의(食醫)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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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의 황제 인종은 여러 해 동안 전쟁에 임하면서 피로가 극심해졌고 정력 또한 약해져서 결국 발기부전의 상태에 빠져 버렸다. 이때 어의였던 홀사혜(忽思慧)는 양신구채죽(養腎韮菜粥)이라는 음식을 올려 황제의 병을 치료했다. 양신구채죽이란 양의 콩팥(養腎)을 반으로 자른 후 여기에 양고기와 부추(韮菜), 구기자와 쌀을 넣어서 끓여 만든 죽이다. 인종은 이 죽을 매일같이 먹은 지 3개월이 될 무렵에 병이 완쾌하였고 뿐만 아니라 얼마 후에는 황후가 임신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콩팥과 부추, 구기자는 모두 신장의 양기를 보강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이것을 재료로 하여 죽을 만들어 3개월을 복용하니 마침내 효과를 보았다는 것이다. 이는 음식으로 황제의 병을 치료한 셈이다.


음식으로 아이를 가지게 한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습관성 유산으로 고생하던 어떤 부인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어떤 부인이 매번 임신만 하면 석 달째에 꼭 유산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 의사가 치료해주고자 하였으나 웬일인지 이 부인은 약은 먹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음식처방을 내렸는데 이는 4-5년 묵은 암탉과 붉은 기장쌀을 함께 끓여 죽을 쑤어 먹도록 한 것이었다. 이렇게 붉은 기장쌀 죽을 계속 먹자 그 부인은 마침내 유산을 하지 않고 무사히 아들을 출산하였다고 한다. 암탉은 갈증과 설사를 그치게 하고 오장의 기운을 보하고 골수를 보충하며 양기를 북돋아 소장을 따뜻하게 해준다. 붉은 기장쌀은 기침과 설사 및 갈증을 그치게 하는 효능이 있다. 이 두 가지 음식이 허약한 임산부의 습관성 유산을 치료해준 것이다. 역시 음식으로 병을 치료한 셈이다.


음식으로 병도 고치고 결혼도 한 사례가 있다. 한 여인이 노채(勞瘵)라는 병에 걸렸다고 한다. 노채란 지금의 폐결핵을 말한다. 가족들은 죽었다고 생각해서인지 혹은 일부러 그런 것인지 병든 그녀를 관 속에 넣어서 강물에 띄워 보냈다. 그런데 한 어부가 강에서 물고기를 잡던 중에 이 관을 보게 되었다. 관을 열어보니 여인은 죽지 않고 아직 살아있었다. 그리고 노채의 병을 앓고 있는 것을 알고서 어부는 뱀장어를 많이 끓여서 먹였다고 한다. 그러자 그녀의 폐결핵은 낫게 된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시 건강해진 그녀는 어부의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뱀장어는 오장의 허약함을 보충해주고 또한 노채의 병을 치료하는 효과도 있다. 뱀장어라는 음식과 어부의 정성이 합해져 여인의 병이 치료된 것이다.


이렇게 음식으로 병을 치료한 재미있는 사례들이 있다. 꼭 심각한 질병이 아니라 하더라도 가벼운 생활 질환에서 약처럼 쓰일 수 있는 음식들이 우리 주위에는 충분히 있다. 그러니 심의(心醫)이자 식의(食醫)인 우리 엄마들이 아이가 아플 때 이런 음식을 잘 활용한다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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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에서는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에 관해 이렇게 말하였다. “의사가 병의 원인을 먼저 밝혀낸 다음에는 그 원인에 따라 음식으로 치료해야 한다. 음식으로 치료해도 낫지 않으면 약을 써야 한다. 노인이나 어린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잘 먹는 사람이나 병을 오래 앓아 약이 지겨운 사람이나 궁핍하여 재물이 없는 사람 모두 음식으로 조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즉, 병이 생겼을 때는 그 원인에 맞는 음식으로 먼저 다스려본다는 것이다. 그래도 되지 않으면 그때 약을 쓴다는 것이다.


음식이 과연 약만큼이나 질병에 치료 효과가 있을까? 이에 대해 <식료찬요 食療纂要>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옛사람들이 처방을 내릴 때 먼저 음식으로 치료하는 방법을 썼다. 음식으로 치료해도 낫지 않으면 그때 약으로 치료하였다. 또 말하기를 음식에서 얻는 힘은 약에서 얻는 힘의 절반 이상이 된다고 하였다.” 음식의 힘이 약의 힘에까지 온전히 미치지는 못하지만 절반 이상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가벼운 질병의 초기라면 음식으로도 치료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음식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식료치병(食療治病)’이라고 하였다.


간혹 아이들이 아플 때는, 혹은 한밤중이나 휴일에 아플 때에는 어떻게 처치해줘야 할지 난감해질 때가 있다. 물론 병원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 위급하고 위중한 병일 때에는 의사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가벼운 생활 질환이라면 음식으로 치료하거나 혹은 음식으로 악화를 막을 수도 있다. 혹은 아이와 잘 맞는 음식으로 평소에 병을 예방할 수도 있다. 또는 꼭 질병까지는 아니어도 허약하거나 치우친 체질을 보강하고 바로잡아 주는 데에도 음식이 매우 유용하다. 그러니 식의(食醫)라는 직책이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다. 우리 엄마들이 바로 이 식의(食醫)다. “음식의 마땅함을 알지 못하면 삶을 온전히 할 수 없고, 약의 성질에 밝지 못하면 병을 제거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의사들은 당연히 약의 성질에 밝아야 할 것이고 엄마들은 음식의 마땅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좋은 엄마, 좋은 식의(食醫)가 될 수 있다.




© 한의사 방성혜의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