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인선
[Ph.D. Life in Germany!]

경희대 한의과대학에서 경혈학을 전공하고 현재 독일 Tübingen 대학에서 뇌신경과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의 박사 생활과 저의 연구 분야에 관해 재미있게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의사 이인선 프로필

실험 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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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계획서, 피험자 안내문, 피험자 실험 동의서, 피험자 모집 공고문 작성 및 독일어 번역 :
독일어 번역은 의과대학 학생인 Eric의 도움을 받았다. 사실 피험자 모집 공고문을 제외하고 모든 내용은 작년부터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연구 계획서는 영어로 작성하고 그 외의 문서는 독일어로 번역하고 지도 교수에게 다시 수정을 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특히 ‘기능성 소화불량증 (functional dyspepsia)’에 해당하는 독일어가 무엇인지에 관해 여러 독일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견이 있었는데, 최종적으로 Funktionelle Dyspepsie (Reizmagen)으로 표기하기로 결정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흔한 소화불량증이 독일에서는 상대적으로 희귀하기 때문에 의사들도 그 이름을 잘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해당하는 독일어 Reizdarm과의 차이를 일반인이 잘 구분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피험자 모집 공고문에 증상 및 진단 방법을 자세하게 기술하기로 하였다.


Ethic proposal 제출 :
준비된 서류를 우편과 이메일로 Ethic committee에 제출하고 승인을 기다렸다. Ethic committee에 방문할 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에 6~8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같은 도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편으로 접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Pilot 실험 :
본 실험을 시작하기 전, 소수의 건강인을 대상으로 pilot 실험을 진행했다. Pilot 실험은 fMRI 사용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ethic proposal을 제출할 필요도 없어서 다행히 일찍 진행할 수 있었다. 비록 작은 sample로 진행하는 pilot 실험이지만 MRI에 참여할 수 있는 피험자를 모집하고, 아침 일찍 실험에 필요한 도구를 캐리어에 넣어서 매일 실험하고, 여러 분석 방법을 모두 동원해서 분석하느라 진이 빠졌다. 특히 새롭게 시도하는 sequence는 우리 랩에서 내가 처음 분석을 시도하는 것이라서 틀린 것이 없는지 하나하나 찾아가며 분석했다. 약 1개월 정도가 소요되었고 그 결과를 정리해 지도 교수님들에게 발표하였다. Pilot 실험의 결과에 따라 본 실험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히 본 실험에 들어가기 충분하다는 판단이 나왔고, protocol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본 실험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한국에서는 pilot 실험 없이 바로 본 실험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는데, 시행착오도 미리 겪을 수 있고 더 많이 준비할 수 있어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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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외 활동 :
연구 외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ethic committee의 결정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매일 새로 나온 논문을 읽고 내 연구에 적용할 만한 것이 있는지 계속 확인했다. 실제로 설문지에 한두 가지 항목이 추가되기도 하고, 작은 실험 하나를 추가하기도 하였는데 연구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외에도 새로운 fMRI 연구 방법에 관한 technical review 논문의 draft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논문을 쓰기 위해서 오랜만에 교과서를 들고 공부하면서 진행 중인 연구에서 잠시 눈을 돌려 여러 가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생각해낼 수 있었다. 공학/기술적인 부분에서 부족함을 많이 느끼곤 했는데,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강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한의대 출신 과학자로서 결국에는 의학과 과학, 임상과 연구를 연결시킬 수 있는 연구를 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많은 의사들이 연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하거나,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연구를 하는 경우가 많고, 연구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낮은 상태에서 연구를 위한 연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Ethic 승인 :
Ethic committee의 일 처리는 아주 느린 편이다. 결국 6주의 시간이 모두 지나서 지도 교수가 전화로 문의했는데, 마치 그때 일 처리를 시작한 것처럼 보여서 교수와 나 모두 화가 많이 났다. 전화를 건 지 며칠 만에 결과가 우편으로 배송이 됐는데, 다행히 모든 서류가 무사 통과되었다. 이제 드디어 피험자를 모집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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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군 모집 :
이번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피험자 모집이다. 우선 기능성 소화불량증 환자를 모집해야 하는데 독일 사람들은 소화 불량을 심각한 병으로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내가 일하고 있는 대학 병원을 찾는 숫자가 극히 적다. 생소한 질환의 환자를 모집하려니, 대학교와 시내에 모집 공고문을 붙이러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일주일에 채 한 명도 모집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결국 일반 진료 의원을 찾아다니며 의사들에게 연구를 설명하고 모집 전단지를 두고 오는데, 이때에도 독일어를 할 수 있는 친구가 붙어 다니며 도와줬다.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은 신문에 광고를 내는 것이었는데, 내가 독일어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우리 랩의 technician이 하루 종일 전화기 앞에 대기해야만 했다. 내 실험을 위해서 기꺼이 시간 내주고 목이 쉬도록 전화를 받아준 사람들에게 너무 감사하고 미안했다. 꼭 보답을 받으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평소에 다른 사람을 많이 도우려고 했던 것이 이런 식으로 돌아온 것 같다. 실험을 다 마치면 내가 맥주 한 잔씩 사기로 했는데, 서로 밥이나 술을 사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독일 사람들이라 그런지 아직 말만 했을 뿐인데도 나에게 아주 많이 고마워했다.


대조군 모집 :
대조군은 환자군과 성별과 나이를 맞춰 모집하게 되기 때문에 일단 환자가 모인 이후에 모집을 시작할 수 있다. 그래도 대충 환자의 나이를 예상해서 3~4명의 건강인을 우선적으로 실험하기로 했는데, 실험 초기에는 여러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어렵게 모집한 환자들이 실험을 포기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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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Wi 학생 모집 :
HiWi라는 것은 영어로 표현하자면 student assistant job에 해당하는 것으로 독일은 법적으로 학생 신분인 경우에 일하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지만, 학생들이 생활비를 벌기 위한 목적으로 HiWi job을 많이 갖는다. 예를 들어 생물학과 학생이 연구실에서 보조를 하는 것 등이 HiWi에 해당한다. 내 실험에서도 독일어 통역 및 채혈을 위한 HiWi 학생을 모집하였다. 이것도 처음에는 지도 교수가 나에게 채혈 강의를 듣고 연습을 한 후에 직접 하라고 하였지만, 의과대학 학생이 아닌 연구를 목적으로 한 채혈 강의가 더이상 진행되지 않는다고 해서 급하게 모집하게 된 것이다. 언제 있을지 모르는 채혈 강의를 기다리느라 수개월을 보냈는데, 이제 와서 학생을 찾아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 매우 답답하게 느껴졌다. 또 지도 교수와 나의 생각이 다를 때 대처를 잘못하면 박사 과정 중에서 몇 개월의 시간이 허무하게 지나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쨌든 결국에는 한 학생이 지원하여 지도 교수 면접, 채혈 능력 검증, 수십 장의 서류 제출, 기나긴 기다림을 통해 마침내 채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채혈 준비 :
채혈을 하고, fMRI 촬영하는 장소에서 버스를 타고 혈액을 운반해 분석하는 랩으로 전달하고, 분석된 결과를 받는 과정에서 필요한 장비들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실험 하루 전날 혈액 검사실에 방문하여 바늘, sample tube, 알코올, 밴드, NaCl 용액, glucose meter 등을 챙기고, 실험날 당일 연구실 제빙기를 이용해 얼음을 채우면 준비가 끝난다. MRI에서 이용할 수 있는 바늘은 금속이 없는 특수 재질로 굵기가 굵어서 채혈에 실패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데, 그때 시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지도 교수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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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험자 모집 및 스크리닝 :
아주 적은 수의 기능성 소화불량증 환자가 모집되었고, HiWi 학생의 도움을 받아 스크리닝을 진행했다. 병력 청취와 설문지 작성으로 구성된 스크리닝 과정을 통해 피험자에게 실험의 목적을 설명하고 실험 날짜를 잡는 것뿐 아니라 환자를 실험 전에 미리 만나보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임상 경험이 거의 없는 나에게 환자들이 자신의 증상을 호소하고 내시경 결과, 복용하고 있는 약의 영수증 등을 꼼꼼히 챙겨와서 하나라도 더 많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 번 환자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연구에 참여하는 환자들의 경우 이 연구가 자신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연구자의 입장이 아닌 환자의 입장에서 가치 있는 연구가 될 수 있도록 검토하는 시간이 되었다. 특히 장기간 소화불량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분들을 볼 때마다 의사로서 연구하는 보람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 자주는 아니지만 소화불량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의사와 대화하고 싶어서 연구에 신청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서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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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일기 2에서 계속됩니다. LIS08-1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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