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인선
[Ph.D. Life in Germany!]

경희대 한의과대학에서 경혈학을 전공하고 현재 독일 Tübingen 대학에서 뇌신경과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의 박사 생활과 저의 연구 분야에 관해 재미있게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의사 이인선 프로필

어느 대통령의 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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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두 달 만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외국에 나와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한국과 현재 살고 있는 나라를 비교하게 됩니다. 물가, 주거, 안전과 같은 일상생활과 관련된 것부터 우리와는 많이 다른 그들의 직업 환경, 문화, 정치, 역사를 배우면서 우리보다 나은 면들을 많이 보았지만, 저는 그래도 새삼 우리나라가 많이 발전했고 참 살기 좋은 나라라고 느꼈습니다. 한국 전쟁과 일부 대기업이 한국에 대한 지식의 전부인 독일 친구들에게 제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새로운 한국을 알려줄 때나 학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해 좋은 인상을 받고 오는 친구들을 만날 때면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전통문화뿐 아니라 우수한 음악, 영화 시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 성실하게 일하고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친절함을 강조하는 우리의 장점을 독일에서 더 크게 느낍니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어떨까요? 지금까지 주로 독일 생활이나 연구 관련된 이야기를 해드렸는데, 오늘은 독일의 한 대통령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에게 독일의 정치인하면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가장 유명할 듯합니다만, 오늘은 독일 역사에 최연소 대통령 및 최단 재임 기간을 기록한 크리스티안 불프 대통령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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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59년 오스나뷔르크 출생으로 독일 기독교 민주연합 입당, 변호사 자격 취득, 시의회 의원, 주지사를 거쳐 2010년 연방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그는 왜 최단 재임 기간을 기록하고 중도 사임하게 되었을까요? 독일에서 처음으로 검찰이 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면책권 철회를 요청하면서까지 그를 조사하고자 했던 일은 무엇일까요? 수십억짜리 비리를 저지르거나, 성추행 등의 스캔들에 시달렸을까요? 그가 저지른 비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니더작센주 주수상 시절 뮌헨의 옥토버페스트를 방문, 지인이 약 400-700유로 (약 60-90만 원) 정도의 비용을 지원해 호텔 객실 업그레이드 및 편의 제공을 부탁함. (본인은 몰랐다고 주장)
2. 주택 구입을 위해 지인 (기업가)으로부터 시중 금리보다 낮은 연리 4% 조건으로 약 50만 유로 (약 6억 3천만 원)를 빌림.
3. 2의 문제가 드러나자 이를 갚기 위해 일반인보다 낮은 금리로 특혜 대출을 받음 .
4. 부인이 자동차를 구입하고 할부로 지불할 때 0.3% 낮은 금리를 적용받음 .
5. 부인이 자동차 구입 시 자동차 판매원이 불프의 아들을 위한 선물로 30-40유로 (약 4.5-6만 원)의 유아용 장난감 자동차를 선물함.
6. 위의 사건들을 보도하는 언론에 전화를 걸어 언론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함.


불프는 일련의 사건이 발생하고 약 2개월 후 사임을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합니다. 사건이 터졌을 당시 ‘친구에게 돈을 빌리지도 못하는 나라에서 살기 싫다’고 하였고, 사임 발표 기자회견장에서도 ‘결코 불법적인 일은 저지르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해당 사건으로 재판을 받아, 향응 수수 및 직권 남용 혐의에 관해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대통령이 사임한 사건의 규모가 생각보다 작은 것에 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사퇴가 이루어졌다는 것에 놀라고, 결국 무죄로 선고받았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이 사건은 대통령이 큰 죄를 저질러 유죄를 인정받아 사임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같이 독일을 대표하는 공직자에게 국민들이 신뢰를 잃었을 때 그 자리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예시가 될 것입니다.


최근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많은 분들이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미 독일에서도 Zeit, Speigel, Süddeutsche Zeitung, Deutsche Welle, Tagesschau 등의 주요 방송을 통해 몇 번이나 한국의 상황이 전달되어 더 이상 한국만의 뉴스거리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유학생 및 독일 거주 한인들도 지난 11월 12일 베를린, 라이프치히, 프랑크푸르트, 슈투트가르트 등지에서 우리의 의견을 내는 평화로운 시위를 진행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찬반양론으로 나름 활발한 토론이 이뤄지기도 하였는데요, 외국에서 한국 정치에 관한 시위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 부끄럽다, 민폐라는 의견 또한 있었습니다. 정작 독일에서는 누구에게나 (외국인 포함) 평화로운 방법으로 의견을 표현하는 것을 독려하고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을 때의 역사를 처참하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나라도 국민의 힘, 정직과 신뢰의 가치, 표현의 자유가 다시 주목받아 민주주의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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