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의 의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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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침구과 전문의로서 활동하면서 침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2019년 미국 뉴욕으로 왔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한의사로서, 강사 및 연구자로서,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해외에서 살아가는 일상과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미국 한의원에 내원하는 환자 분포
미국에 온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동안 개인 한의원도 오픈했고 다른 한의원에서 부원장으로 진료도 하면서 다양한 환자들을 만났는데요. 이번 칼럼에서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실 준비를 하고 있는 한의사분들을 위해 미국에서는 어떤 환자들이 한의원에 많이 내원하고, 한국에서 만나게 되는 환자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우선 침 치료를 받는 환자 수는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2007년에 발표되었던 연구 논문에 의하면 미국에서 침을 사용해 본 적이 있는 환자 수는 5년 전이었던 2002년에 비해 50%가 증가하였고, 성인 1,000명당 침 치료를 받으러 간 횟수도 1997년에는 27.2회였던 것에 비해 2007년에는 79.2회로 거의 세배나 늘어났다고 합니다 [1]. 10년이 지난 지금은 침 치료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도 더욱 높아졌고 보험 적용 범위 또한 넓어졌기 때문에, 침 치료를 받는 환자 수가 더욱더 늘어났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늘어난 환자 수만큼 당연히 한의사 수도 많이 증가했습니다. 20,750명이었던 2003년에 비해 2018년에는 그 수가 37,886명으로 집계되었고, 그중 절반 이상이 캘리포니아 (12,135명; 32.03%), 뉴욕 (4,438명; 11.71%), 그리고 플로리다 (2,705명; 7.13%)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2]. 또한, 늘어나는 경쟁 속에서 미국 한의원들도 한국과 비슷하게 전문 분야로 특화된 형식의 클리닉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대부분 일반 진료 위주로 많이 합니다.
2019년 9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약 6개월간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에 각기 다른 한의원에서 부원장 진료를 하면서 본 환자 수를 집계해 보니 약 1,200명 정도 되었습니다. 요일마다 진료를 했던 지역 (Bayonne, Journal Square, Palisades Park)이 모두 달랐는데도 불구하고 클리닉에 내원하는 환자분들의 분포는 매우 비슷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교통사고 전문 한의원이거나 특수한 지역에 위치한 한의원이 아니라면 다른 일반 한의원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약 60%는 근골격계 통증, 20%는 불안과 불면 등의 정신과적 문제, 10%는 여성 질환, 그리고 나머지 10%가 기타 정도로 분류되더군요. 근골격계 통증으로 인해 내원하시는 환자분들의 상태는 한국에서 보던 환자분들과 연령대 이외에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연령대가 높은 분들이 더 많이 내원하셨다면 미국에서는 오히려 조금 더 젊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무거운 총기를 매일 착용함으로 인해 생긴 허리 및 골반 통증으로 내원한 미국 경찰 환자 등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환자들도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의 환자는 장시간 근무로 인해 발생한 요통 혹은 경항통, 과사용으로 인한 테니스 엘보우, 손목 통증 등으로 내원했으며 침 치료에 대한 반응도 좋은 편이었습니다.
여성 질환, 불안, 불면 등의 문제로 내원하시는 분들은 한국에서 자주 뵐 수 있지만, 한국 환자들과 양상이 조금 달라서 진료 초반에 따로 공부를 많이 해야 했습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될 것이 두려워서 산부인과 선생님의 처방으로 첫 생리를 시작하자마자 성인이 된 최근까지 매달 피임약을 복용했던 불임 환자, 약물 남용으로 인해 재활 치료 중인 환자의 심한 불안과 불면증, 고도 비만 환자의 체중 감량 등 한국에서 접하기 쉽지 않았던 분들이 꽤 내원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에서만 특징적으로 볼 수 있는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라임병 환자가 대표적인 예인데, 안면마비로 내원했던 환자 중에서 일반적인 안면마비 환자와 증상이 사뭇 달라서 초진 시에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1회 침 치료 후에도 치료에 대한 반응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정밀 검사를 받도록 권유하였는데, 라임병으로 진단받아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라임병의 ‘라임’이라는 단어 자체가 미국 북동부에 있는 ‘라임’이라는 지역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니, 이 병은 미국에서는 매우 흔한 질환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질환입니다. 더군다나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라임병의 초기 증상인 Bulls-eye rash (황소 눈처럼 생긴 발진)가 나타나 있는 상태로 항상 내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말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볼 수 있는 환자들이 대체로 한국과 유사하기 때문에, 미국 진출을 준비하는 한의사분들이 크게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시간 단위로 청구할 수 있는 미국의 보험 제도 덕분에 오히려 한국에 있었을 때보다 환자 한 분 한 분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각 증상에 대해 더욱 상세히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세계 어디서든 환자를 위한 마음을 토대로 배움의 자세를 견지한다면, 언어의 장벽이 다소 있더라도 진심은 통하는 것 같습니다.
References
© 한의사 이승민의 워킹맘 한의사 앤 더 시티
워킹맘 한의사 앤 더 시티
2005년 한의약의 세계화에 일조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안고 한의과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막연했던 꿈은 병원에서 수련의 생활 및 펠로우 생활을 하며 침구학이라는 분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대학원 과정에서 양한방 협진 연구를 돕게 되며 현대 의료 시스템 내에서의 침 치료 역할뿐만 아니라 한의사의 역할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침구과 전문의 자격과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부산대학교 연구교수로 일하면서 한의약 교육의 세계화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얻어, 미국,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현지 의료인들에게 한국 침 관련 강의를 하게 되었고, 각국에서 기대치 못한 호응을 얻어 무척 기뻤습니다. 이후 2019년에는 마침내 미국 현지에서 한의약을 좀 더 알려보고자 하는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뉴욕으로 건너오게 되었습니다.남편이 현지 대학원 과정에 진학하여 공부를 하고 있어, 저는 현재까지 두 딸아이의 엄마이자, 뉴욕 맨해튼에서 개인 한의원을 운영하며 현지 대학에서 강사 및 연구자로 일하는 워킹맘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가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이곳에서 보고 느꼈던 한국 한의약, 해외에서의 진료 경험, 그 외 일과 육아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공감 혹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 경희대학교 대학원 임상한의약(침구의학) 전공 박사 졸업
- 경희대학교한방병원 침구과 전문의 자격 수료
- 전 경희대학교한방병원 침구과 연구펠로우
- 전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연구교수
- 현 Virginia University of Integrative Medicine 강사
- 현 뉴욕 맨하탄 Healthy With Kathy Acupuncture Clinic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