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승민
[워킹맘 한의사 앤 더 시티]

안녕하세요? 저는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침구과 전문의로서 활동하면서 침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2019년 미국 뉴욕으로 왔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한의사로서, 강사 및 연구자로서,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해외에서 살아가는 일상과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의사 이승민 프로필

인종차별에 대해서만큼은 예민하게!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스파 세 군데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 때문에 미국이 떠들썩합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 내의 아시아 커뮤니티가 특히 떠들썩합니다. 총격으로 사망한 8명 중 6명이 아시아 계통이었고, 그중 4명은 한국계였다는 사실에 더더욱 남 일 같지가 않은데요. 안 그래도 코로나바이러스 이후로 미국 내에서 아시아인을 향한 증오 범죄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은 더욱더 충격적입니다. 아시아 커뮤니티에서도 더는 조용히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외치며 길거리로 나서고 있고, 방송 매체와 소셜 미디어에서는 계속 문제 제기를 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StopAsianHate


이런 인종차별 문제는 한국에서 거주하는 한국인이라면 잘 경험하지 않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으나, 미국으로 건너오는 순간 거의 무조건 한 번쯤은 속앓이를 하게 됩니다. 저처럼 약간 무딘 경우라면, 처음 한 두 번은 못 느끼다가 어느 날 하루를 돌이켜 보다가 누군가의 특정 행동이 인종차별적인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혼자 억울해하며 이불킥을 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죠. 증오 범죄나 총격 사건처럼 드러내 놓고 인종차별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 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정말 유치하게, 이유 없이, 뭐라고 지적하기에도 애매하고 오묘하게 차별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코로나 이전에 다른 주에 살고 있는 가족을 만나러 미국 국내선 비행기를 탄 적이 있습니다. 짧은 여정이라 따로 식사 시간은 없었고, 중간에 승무원이 음료와 땅콩 정도만 주고 있었는데요. 앞 좌석부터 순서대로 내려오고 있길래 나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만 건너뛰더군요. 그 땅콩이 뭐라고. 실수라고 생각했으나 오히려 승무원을 불러 물어보면서 실수가 아니었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당황하며 사과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모든 승객에게 다 줬다고 비웃듯이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확신했죠. 정말 유치하지만 이 정도로 작은 차별이 조금씩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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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미국에서는 식당에 들어가면 보통 웨이터가 자리까지 안내해 주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식당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자리는 당연히 경치가 잘 보이는 창가 자리이고, 화장실 근처나 구석진 곳은 아무래도 제일 인기가 없죠. 이쯤이면 예상했겠지만, 간혹 창가가 비어 있는데도 일부러 안쪽 자리로 안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웨이터가 중간중간에 주문하고 확인하러 올 때도, 옆 테이블에는 정말 자주 가면서 우리 테이블에는 매우 드물게 오거나 못 본 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대체로 아시아인들이 팁을 적게 주기 때문에 웨이터들도 차별 대우하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반대로 서비스가 안 좋아서 팁을 적게 주는 악순환도 이어지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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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점에서 주문할 때 옆에 있는 사람에게 티 나게 더 친절하다든지, 불렀는데 일부러 못 들은 척하거나, 내가 먼저 왔는데 뒤에 있는 사람 주문부터 받는 등의 경험들… 자주 겪다 보면 어른도 어느새 주눅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애매한 차별이 학교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한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던 학부모의 글을 읽고 분노했던 사건이었습니다. 미국 전역의 학교들도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마이크를 끄고 있다가 질문에 대해 답을 알고 있거나 특별히 발언하고 싶을 경우 손을 들고 선생님이 지적하면 마이크를 켜고 답한다고 합니다. 요즘은 부모가 집에서 아이와 같이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우연히 수업을 듣게 되는데 유독 본인 아이가 손을 들 때 선생님이 잘 안 불러주고, 다른 백인 아이들 위주로 발언권을 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서 본인 아이가 답을 할 때면 반응이 시큰둥하지만 유독 백인 친구가 답을 하는 경우 폭풍 칭찬을 해 주고 분위기를 띄워주는 것 같다는 글이었습니다. 이게 차별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해서 문제를 제기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글이었는데, 댓글에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면서, 이런 종류의 차별이 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당황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런 일이 지속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도 기가 죽게 되고, 조금씩 위축되는 것이 보인다고 했던 그 학부모 글을 보고 특히 안타까웠습니다.


위에서 말했던 애틀랜타 사건도 실은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총격을 가한 범인은 당연히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 사건에 대해 브리핑을 했던 백인 경찰관에게도 현재 많은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범인이 총격 당일 매우 안 좋은 일이 있는 안 좋은 날이었고 (bad day), 성적 중독 문제로 인해 스파에 가서 총격을 가한 것이지 특정 인종을 향한 범죄가 아니었다고 했다며 범인을 옹호하는 듯한 브리핑을 해서 그런데요. 과연 범인이 유색 인종이었다면 같은 발언이 나왔을지, 피해자들이 아시아계 여성이 아니었다면 ‘성적 중독 문제로 스파에 갔다’는 범죄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을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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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나 타지에서 살기 위해서 제일 먼저 적응(?)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분명 인종차별일 것입니다. 해외의 삶이 항상 화려하고 다이내믹하고 긍정적인 경험들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니까요. 매일 속앓이 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 무뎌지고, 억울하지 않게 적절하게 반응하는 것도 배워야 하지만, 살면서 더 많이 느낀 것은 인종차별을 당하면 당황하지 말고 최대한 확실하게 반응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종차별에 대해서만큼은 예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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